떠남, 그리고 기억함

봄 중 겨울-강릉

바다가는길 2014. 4. 8. 16:55

아, 바다 보고싶다... 강릉이나 한 번 갔다올까? 강릉 가본지가 언제냐? 이맘쯤이면 경포대 주변으로 한창 꽃도 좋을텐데...

 

여행사 당일치기상품을 검색해 충동구매를 해버렸다.

 

막상 출발일이 가까워 아차, 날씨!, 검색해보니 강릉에 비.

 

"혹시 다른 날로 변경할 수 있나요?".

 

당연히 대답은 "노"

 

에이, 괜히 빗속에 고생만 하는 거 아냐, 싶기도 했지만 그냥 강행.

 

 

 

경포대 바다의 솔 숲은 더욱 자라 우거져있고, 예전엔 없던 감각적인 벤치며 그냥 툭, 무심히 던져진 듯한 돌들, 조형물이자 의자일 수도 있는 '오브제'로서의 돌들도, 와, 이거 누구 아이디어냐? 뭔가 아는 사람인데... 조경이 튀지않으면서도 세심했고, 솔 숲 사이로, 혹은 바다가를 따라 나무가 깔린 산책로도 잘 만들어져있다.

 

다행히 큰 비는 아니고 빗방울 난분분 날리는 정도. 하지만 바람이 장난이 아니어서 결국 우산살이 부러지고...

 

날씨체크를 한 덕분에 한 겨울용 오리털파카를 입고가서  그 바람을 견디며 바다를 볼 수 있었다.

 

으아, 바다! 너무 시원해...

 

 

 

나중에 버스로 돌아나올 때 보니까 경포바다를 향해 오른 쪽은 콘도며 상점가며 번화하고, 왼 쪽은 상대적으로 훨씬 조용하고 호젓하더라.

 

번다함을 즐긴다면 오른 쪽으로, 조용히 바다를 즐기고 싶다면 왼 쪽으로...

 

호수 너머 멀리 경포대 주변엔 벚꽃이 하얗게... 그 뒤 설악산은 며칠 간의 궂은 날씨로 눈꽃이 하얗게...

 

봄하고 겨울이 서로 사이좋게 나란히... 보기 드문 풍경.

 

추운 날씨에도 사람들은 말도 타고, 연도 날리고, 삼삼오오 바다를 즐긴다.

 

잠깐 반짝 햇빛 나는 동안. 솔 숲 가운데 이렇게 깔끔한 휴식공간이.

 

이런 발랄한 조형물도. 작품 설명이 있었는데 읽고도 잊어버렸네.

 

스테인레스 구 사이로 사람 모양의 틈이 뚫려 거기로 사람이 드나들고, 풍경도 드나드는 게 재미있었다.

 

해변 곳곳에 놓인 벤치. 비록 비가 좀 오긴 하지만, 바람이 무척 거세긴 하지만 바닷가 걷다 무심히 걸터앉아 다리 까딱 거리며 흔들흔들...

 

그러며 보는 바다. 바다가 완전 내 집의 정원 같다. 아무 생각도 없이 그냥 흔들흔들... 아, 저기 바다...

 

세찬 바람에 파도도 맘껏 키를 높이며 몰아쳐온다. 그 치솟는 물굽이도 한참 구경했는데, 사진으론 오히려 고요해보이는구나...

 

 

 

경포해변에 이어 다음 코스 커피거리 안목항으로.

 

이런 곳이 있는 줄 처음 알았는데, 경포해변 옆 안목항이란 부두에 해변을 따라 커피숍들이 줄지어있다. 부두 바로 옆 '홀리스커피'가 제일 높은 건물이라 전망이 좋다길래 들어갔더니 사람들로 와글와글, 빈 자리도 없어 사진만 한 장 찰칵.

 

건너편으로 보이는 건물들이 다 커피숍이다.

 

 

 

여기까지 와서 어디에나 있는 커피숍에 죽치고있긴 싫었지만, 빗줄기는 점점 거세어지고 우산도 부러지고 도저히 바닷가에 나가있을 수가 없어 할 수없이...

 

커피거리니까 뭔가 그만의 유니크한 커피를 만드는 집을 찾아들어갔어야 하지만 뭐 따질 수도 없이 아무데나 들어간 집. 커피거리라는 데서 생뚱맞게 모과차 시켜놓고 멍하니 비 오는 창밖 바다 구경.

 

서울로 돌아오는 길. 모두들 피곤해 잠에 빠졌는데 터널 하나 지나 문득 창 밖을 보니 와! 이게 뭐야...마술처럼, 내리던 비가 눈으로 변해있다.

 

달리는 차창 옆으로 눈발들이 횡으로 난다. 4월의 봄에 이게 무슨 일?... 우와...! 셔터스피드를 400, 500쯤에 놓고 그냥 카메라 셔터를 눌러댔다.

 

터널을 하나 지날 때마다 눈 세상은 더욱 더 깊어지고... 아득해지고...

 

 

 

 

 

 

 

 

 

 

 

 

 

 

 

 

 

눈 펑펑 내리는 산길을 지나는 동안 창에 코를 박고 그리운 마음으로 눈을 보았다.

 

궂은 날씨를 불평하며 길을 나섰지만 그 궂은 날씨가 이렇게 내게 큰 선물을 줄 줄이야...

 

앞으로 한동안 못 볼 겨울을 여기서 이렇게 만나다니...

 

4월에 만난 눈세상. 기억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