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하사탕
드라마 한국 127 분 개봉 2000-01-01 감독 이창동 출연 설경구 (영호 역)
하나.
영화의 재미는 잘생긴 배우들을 보는 재미도 있겠고, 배경이 되는 아름다운 풍광을 보는 재미도 있겠고, 혹은 신기한 특수효과나 장쾌한 액션을 구경하는 재미도 있겠지만, '박하사탕'은 그 중 모처럼 이야기의 재미를 느낄 수 있게 하는 영화였다.
소설가인 감독답게 이야기가 치밀하고 설득력이 있다.
그러나, 감히 재미있었다, 라고 말할 수가 없다.
박하사탕은 그 흰 색깔이나 입안이 화하게 상큼한 맛이나 순수의 상징이기에 적합하지만, '박하사탕'이라는 제목의 이 영화는 그 하얀 박하사탕이 어떻게 해서 무자비한 발에 짓밟혀 부서져버렸나에 관한 이야기인 것 같다.
그 맛이 씁쓸하기 그지없다.
지금 형편없이 비루해져 있는, 한 영혼이 밟아온, 그를 탓할 수만은 없는 그렇게 될 수 밖에 없었던 삶의 궤적을 거슬러보여줌으로써 그 모습에 대한 이해를 요구하려는 것인지, 혹은 한 인간을 제물삼아 관통해 지나온 역사의 비극을 얘기하려는 건지.
스무 살 어린 날, 햇살 눈부신 강변에서 하늘을 보며 왠지 모를 눈물 흐를 때, 20년 후 바로 그 자리에서 더이상 버틸 수 없는 지친 삶을 스스로 마감하게 될 자신을 그는 알았을까?
비극적 역사의 죽창에 꿰인 한 인생의 모습.
그런 운명의 무거운 돌이 내게는 떨어지지 않았음을 안도하지만, 그때 그 자리의, 이 영화 속 주인공과 같은 다른 많은 사람들, 자기 심장에 박아넣은 그 상처를 지니고 지금 다들 어떻게, 어떤 모습으로 살아남아있을지?
둘.
과연 인간은 자신의 삶에 대해 어느 정도까지 책임을 져야하는 걸까.
역사의, 아니 거창하게 역사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어떤 종류의 것이든 인생에 충격을 줄만한 진흙탕을 거쳐왔다해도, 모두가 병든 삶을 사는 것은 아니다.
주인공은 왜 자신의 삶을 그렇게밖에 살아낼 수 없었나.
그를 단순히 역사의 희생양으로 보기엔 힘의, 폭력의 위험한 매력에 노출된 후 그리고 빨려들어가는 자신의 삶에 대해 너무 무저항적이었던 게 아닐지 하는 의문.
순수를 잃은 인간의, 군화발에 무자비하게 박살이 나버린 박하사탕의, 어쩔 수없이 손에 죄를 묻힌 자의, 삶에 대한 자포자기였다고 이해하려해도 한 구석에선 정말 그렇게밖에는 살 수 없었나, 하는 의문.
그 망친 삶에서 그의 책임은 얼마만한 분량일까, 하는 생각.
셋.
그래도 이 영화를 보고나서 제일 뇌리를 떠나지않는 건, 철교위에 마주 오는 기차를 향해 서서 다시 돌아가고 싶다고 외치는 주인공의 절규도 아니고, 스무 살 적 강가로 나들이 나가 햇살에 눈부신 듯 눈물 흘리는 모습도 아니고, 잡혀온 대학생에게 처음으로 미친듯이 폭력을 가하는 그 모습도 아니고, 영화를 보고나서 제일 기억에 남는 건, 끊임없이 레일 위를 달려가던 기차.
동그마한 산등성이들을 뒤로 하며, 들 한가운데를 달리고, 터널을 들고나며 구불구불한 철로 위를 하염없이 달리던 기차다.
달리는 기차의 마술에 흰나비떼처럼 휘르르 날아 나무에 앉던 하얀 꽃잎들. 시간.
그 기차를 타고 그 구불구불한 철로를 달려가면 나 살아 온 날들도 얌전히 철로가에 옹기종기 모여있을지.
영화 속을 내내 달리던 기차는 어느 새 내 마음 안에 선로를 이어놓고 어디론가 계속 달려가고 있다...
200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