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르헤스, 문학을 말하다.

바다가는길 2015. 2. 10. 18:44

 

보르헤스, 문학을 말하다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저/박거용| 르네상스 | 2008년 10월

 

 

1967-68년 사이, 보르헤스가 하버드대에서 행한 여섯 차례의 강연집.

시, 은유, 이야기하기, 시 번역, 사고와 시, 한 시인의 신조, 라는 소주제를 갖고 이루어졌다.

녹음 테잎은 도서관 수장고에 묻혀있다가 30년 후 발견돼 책으로 출간됐다고.

강연 내용은, 제시되는 텍스트들이 내겐 낯설고 별 느낌이 안오는 것들이어서 사실 별로 재미가 없었고, 오히려 책 뒷편에 실린 그의 연보가 더 흥미로웠다.

1967년이면 1956년에 실명을 했다니까 이미 그가 완전히 실명한 상태.

꺼내 볼 아무 자료도 없이 오직 머리 속 기억만으로 무수한 책과 작가와 시대와 인용구들을 자유자재히 끌어 와 이야기를 풀어낸다는 게 거의 경이롭다.

 

연보를 보자면,

1899년.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출생. 영국계 할머니로부터 스페인어보다 영어를 먼저 배움.

1908년. 오스카 와일드의  '행복한 왕자'를 스페인 어로 번역.

1914. 스위스 제네바 이주, 프랑스어, 독일어, 라틴어를 배움.

1919. 스페인으로 이주.

1921. 잡지 프리즘 창간

1922. 잡지 프로아 창간

1923. 첫 시집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열기' 출간

이후 활발한 작품 활동

1935. '불한당들의 세계사' 출간

1937. 도서관 수석 사서직 얻음

1938. 유전적 요인과 지나친 독서로 시력을 잃기 시작함

1944. 소설집 '픽션들' 출간

1946. 정부 비판으로 도서관 일자리 잃음

1949. 소설집 '알레프'출간

1950. 아르헨티나 문인협회 회장 취임

1955. 페론 정부 실각 후 국립도서관장으로 임명

1956. 국립대 영문학 교수 겸임. 시력 완전 상실

1967. 결혼

1970. 소설집 '브로디의 보고' 출간. 이혼

1973. 페론 정부 재입각으로 도서관장직 해임

1975. 소설집 '모래의 책' 출간

1982. 수필집 '단테적인 아홉 개의 에세이들' 출간

1983. 소설집 '세익스피어에 대한 기억' 출간

1986. 비서와 결혼. 6월 14일 제네바에서 간암으로 사망.

 

 

아홉살 짜리 꼬마, 초등 2년 생이 번역이라니, 얼마나 깜찍한가?

그의 아버지는 심리학, 현대언어학 교수이고 어머니는 번역가였다니 그는 모태에서부터 책과 친할 수 밖에 없는 환경이었겠다.

천정까지 연결된 책장에 책들이 빼곡한 서재가 어릴 적부터 그의 놀이터였겠고, 설사 그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이 책, 저 책을 펼치며 두 눈을 반짝거렸을 그가 상상된다.

태내에서부터 시작된 책 사랑은 그의 평생동안 이어져, 소설가, 시인, 도서관장을 업으로 삼으며, 죽을 때까지 책에 둘러싸여 살았다.

아르헨티나에서 태어났으나 할머니의 영향으로 스페인어보다 영어를 먼저 배우고, 이후 독일어, 라틴어, 프랑스어까지 최소 5개국어를 구사하며 그 언어들로 쓰인 무수한 텍스트들을 자기 것으로 했을 것이고...

22살 나이에 잡지를 창간(어린 나이에 잡지를 발행하고...), 24세에 첫 시집으로 등단. 소설가로서보다 시인으로 먼저 등단을 했구나..

그가 시인이었다는 것도 몰랐고 당연히 그의 시는 하나도 읽어본 적이 없는데, 마침 지금 읽고있는 '류시화의 하이쿠읽기'에 언급되길, 보르헤스도 하이쿠를 꽤나 좋아했고 그의 시도 하이쿠처럼 짤막한 시들이라고...

36세에 첫 소설집인 '불한당들의 세계사' 출간. 30대 중반이라면 제법 생각이 익는 나이. 이후 '픽션', '알레프', '모래의 책'... 내가 읽으며 그 어마무시한 상상력에 감탄을 넘어 거의 경악했던 작품들을 비롯해서, 마지막 소설집이 1983년에 나왔다니 와! 80대에의 나이에도 퇴색하지않은 창작력, 총기.

게다가 그는 39세때 시력을 잃기 시작해 57세엔 완전 시력 상실.

책을 봐야하고, 글을 써야하는 사람이 시력을 상실한다는 건 거의 최악의 경우가 아닌가? 마치 육상선수가 다리를 잃는 것과 같지않을지.

청력을 잃은 베토벤이 명곡을 작곡했듯, 그도 시력상실 후에 여전한 명작들을 썼지만, 그 상황, 삶의 조건들이 어땠을지는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다.

그는 또 정권의 부침에 따라 도서관장이 되었다가 쫓겨났다가 다시 임명되기도 하고, 또 뜬금없이 67세에 결혼을 하고 3년 후 이혼을 하고, 다시 87세에 비서와 결혼을 하고 그 해에 사망을 했다.

간단히 한 줄, 한 줄로 이어지는 연보를 읽는 것 만으로도 그라는 한 사람의 일생이 얼마나 여러 겹이었을지 충분히 느껴진다.

누구도 대체할 수 없는 유일한 작가, 보르헤스. 분명 지구인이 아니었을 거야...

 

 

...저는 아름다움 속에는 영원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사람이 시간 속에서 글을 쓰고 시간의 상황과 사건과 실패에 연루되어 있더라도, 어쨌건 영원히 아름다운 것은 성취될 수도 있다고 생각할 정도로 용기있고 희망적입니다...

제가 글을 쓸 때, 저는 상황이 아니라 꿈에 충실하고자 노력합니다...이야기를 그것이 실제로 일어난 대로 말하는 데에는 만족감이 없습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발견하는 때-자신의 자연스런 목소리를, 자신의 리듬을 발견하는 때- 그런 순간은 오게 마련이지요..

제가 글을 쓸 때, 저는 독자를 생각하지 않고(독자는 가상의 인물이기 때문입니다), 저 자신을 생각하지 않습니다(저 자신 또한 가상의 인물일 것입니다). 저는 제가 전달하려는 것을 생각하고, 그것을 망치지 않으려고 최선을 다합니다. 젊은 시절에 저는 표현을 믿었습니다. .. 저는 모든 것을 표현하고자 했습니다. 가령 해질녘이 필요하다면, 해질녘에 맞는 정확한 단어-또는 오히려 가장 놀라운 은유-를 찾아야만 한다고 생각했지요

이제 저는 표현을 믿지 않고 오로지 암시만을 믿는다는 결론(그리고 이 결론은 슬프게 들릴지도 모릅니다)에 도달했습니다. 결국 단어들이란 무엇입니까? 단어들은 공유된 기억에 대한 상징입니다. 만일 제가 어떤 단어들을 사용하면, 여러분은 그 단어가 상징하는 것에 대한 어떤 경험을 꼭 갖추어야만 합니다. 만일 여러분에게 그런 경험이 없다면, 그 단어는 여러분에게 아무것도 의미하지 않습니다. 저는 우리가 암시만 할 수 있다고, 독자로 하여금 상상하게 노력할 수만 있다고 생각합니다. 만일 독자가 충분히 예민하다면, 무언가를 우리가 그저 암시만 한다는 것에 만족할 수 있겠지요...

제가 무언가를 쓸 때 저는 그것을 이해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저는 꿈이 무엇인지를 전달하려고 그저 애쓸 따름입니다. 그리고 그 꿈이 희미한 것이라 하더라도(제 경우엔 으례 그렇지만), 저는 그것을 미화하려 하거나 또는 이해하려 하지조차 않습니다...

저는 글쓰기란 일종의 합작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독자는 그 작업에서 자신의 역할을 하며, 책을 풍요롭게 만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