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르띠에, 시간의 결정
--본 전시는 까르띠에 컬렉션으로 불리는 소장품들과 아카이브 자료 및 평소 대중에게 공개되지 않았던 개인 소장자들의 현대 작품을 포함한 약 300여점을 한데 모아 까르띠에 스타일이 갖는 강력한 문화와 창조적 가치를 선보입니다. ‘시간의 축’이라는 주제 아래 ‘소재의 변신과 색채’, ‘형태와 디자인’, ‘범세계적인 호기심’이라는 세 가지 관점으로 구성되며, 이를 통해 초창기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까르띠에 메종의 선구자적 정신과 독창적인 비전을 함께 살펴볼 수 있습니다.
전시 디자인은 아티스트 스기모토 히로시와 건축가 사카키다 토모유키가 설립한 건축 사무소 신소재연구소(New Material Laboratory Lab)에서 맡았다.--
시간의 결정. 전시제목이 중의적으로 다가온다. 보석이라는 몇 만, 몇 억년의 시간의 결정체와, 까르띠에라는 브랜드의 역사 자체가 시간의 결정을 맺는다는 의미로.
전시를 보고싶었던 건 까르띠에라는 명품주얼리에 대한 관심도 있었지만, 히로시 스키모토의 전시디자인이 궁금하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는 어떻게 전시를 기획했을까?
전시장을 들어서면 한, 폭 5M, 길이 10M이상 되보이는 아무것도 없는 어둑한 긴 공간이 나온다. 그 공간을 걸어가면 그 끝에 안내원이 있어 갈 방향을 지시한다.
지시에 따라 나무 간살벽으로 분리된 반대 방향으로의 역시 어두운, 아까 보다는 좁은 복도를 지나면 거기 또 안내원이 있어 육중한 검은 문을 열어준다. 너무 근엄해 오히려 웃음이 나온다. 너무 무게 잡는다 싶어서.
문을 열고 들어서면 거기 또 어둔 공간이 있고 그 끝에 문이 또 있었던가? 아, 일본식 얼기설기 진입로?
문을 들어서면 거대한 시계, 별로 인상 깊지 않아 대충 패스, 그리고 본격적 전시의 시작.
역시 어두운 검은 공간에 높은 천정으로부터 내려온 부염한 원통 기둥 안에 고이, 귀히 모셔진 미스터리 클락.
1920년대부터 현대까지 제작 연도는 제각각이지만 비슷한 스타일의, 예전 작품과 그걸 현대에 재해석한 작품들이 전시돼있다.
원통의 재료는 우리 고대 직물기법인 '라'로 짜였다는 패브릭, 우아하다.
더위를 뚫고 와 열이 가시지않은 탓에 그 앞에서 부채질을 하고 있자니, 안내원이 다가와 직물이 연약해 상할 수 있으니 부채질을 하지 말아 달라고. 아니 부채 바람에도 찢어질 지경이라면 뭐에 쓰지?
그 후로도 몇 번, 카메라는 무음모드로 해달라든가, 설명문이 너무 작은 폰트의 글씨로 쓰인 채 바닥에 있어 때론 카메라로 찍어 확대해 보거나 그것도 초점이 안맞아 안보이면 할 수 없이 쪼그려 앉아 읽을 수 밖에 없었는데, 일어나려 유리창을 짚으니 유리는 만지지 말아 주세요, 등등 지적질을 당했는데, 전시 오기 전에 안내원들이 너무 고압적이라 불쾌했다는 리뷰들을 봤었지만 난 그다지 기분 나쁘거나 하진 않더라. 그들은 그저 자신의 임무를 충실히 해내려 하는 것일 뿐이라.
무튼..
전시대의 재료들은, 나중에 전시 메이킹 영상을 보니 우리 고대 기법으로 짰다는 '라'를 비롯해 100년이라든가 천년이라든가 묵었다는 일본 삼나무, 일본의 어디에서 직접 공수해왔다는, 표면을 다듬지않고 거칠게 둬 더 멋있었던 석재, 실제 유리인지 레진이나 아크릴류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유리같은 재료, 모두 시간을 한껏 머금은 자연재료들을 사용한 게 좋았다.
하지만 전시설명은 너무 불친절해, 재료 설명도 없을뿐더러 글씨는 너무 작아 읽기도 힘든데다가 눈높이에 걸려있지도 않고, 심지어 쪼그려 앉아야만 읽을 수 있게 바닥에 붙어있기도 해, 뭐야, 무릎 꿇고 영접하라는 거야? 짜증스럽기도.
-시간의 신비-
-까르띠에의 예술성, 창의성 뛰어난 기술의 정수-
어두운 공간, 부염한 '라'에 둘러싸여 도열한 미스터리 클락, 프리즘 클락들. 값 비싼 재료들을 맘껏 쓴 정교한 탁상시계들.
와! 너무 예쁘다. 이런 값비싼 작품들을 무심히 서재의 책상 위에,혹은 벽난로 위 장식 선반같은데 놓고 향유하는 부류들이 있었단 말이지..
전시를 보는 내내 너무나 아름다운, 저절로 기쁜 탄성이 질러지는, 그 아름다움에 얼굴에서 웃음이 끊이지않던 작품들을 보면서도 마음 한 구석에서 계속 딴지를 걸던 생각.
1900년대 초부터 20년,30년, 40년.. 제작연도를 보며, 전쟁 전 후, 누구는 폐허 속을 헤매며 빵 한덩이를 얻으려 애쓰는 중에 누구는 아랑곳없이 이런 명품들을 누렸을 거라는 그 불편한 괴리감.
2023
1921 1926
1956 1997 1931
-소재의 변신과 색채-
디스플레이 대와 케이스, 가스가 스기라는 일본 삼나무. 천년이 넘은 나무들이라던가? 결이 그대로 살아있는 보기에도 단단해 보이는 나무들 자체가 아름다웠다. 손 내밀어 쓰다듬어 보고 싶을 만큼.
1905. 메탈 기술, 플래티늄을 최초로 적용.
1909.백년도 더 전의 디자인. 클래식하니 아름답다.
1986,1988
트리니티 2000. 작품도 작품이지만 투명한 빛을 머금은 받침대가 예뻐 한참 들여다봤다.
2015
2021 glyptic이라는 경속조각기술이라네.
2015.까르티에의 시그니처, 퓨마를 적용한 디자인.
1923. 재료가 뭔지 모르겠지만, 비싼 보석을 한껏 면을 내 존재감을 만드는 대신, 어느 시냇가에서 우연히 주운 예쁜 돌인냥 다듬은 담담한, 말간 디자인이 오히려 아름다웠다.
2021 1922
이처럼 옛 디자인의 모티브를 살려 현대에 제해석해 제작, 병치시킨 디스플레이들이 많았다.
1947. 와! 화려의 극치.
목걸이 2003 팔찌 1954
2016, 2017
힌두네크리스 1936 2021
나뭇잎, 꽃, 과일 모티브를 사용한 인디아스타일. 화려한 색의 향연. 와!하며 바라보며 절로 탄성의 미소가 지어지던 작품들.
2018,2021
cutti fruti팔찌 1925 목걸이 2022
-형태와 디자인-
기하학적이고 오가닉한 디자인.
딱 봐도 중량감이 느껴지는 거친 표면의 커다란 매스인 돌들을 얼기설기 쌓고 사이에 박스를 끼워 전시부스를 만든 디자인이 멋졌다.
티아라 1908. 백년도 더 전의 디자인이 모던하기 그지없다.
2020
머리장식 1902. 머리장식디자인도 아름답지만, 원목을 그대로 쓴 받침대도 멋져.
이것도. 거친 표면의 석재를 그대로 쓴..
이거 재료가 뭔지 모르겠다. 엣지에 살짝 비치는 푸른, 혹은 초록의 색의 기미가 신비로웠던.
1932. 어느 매체에선가 작품설명이 있었는데 40여캐럿의 에메랄드에 수백개의 다이아몬드를 세팅했다고. 어마무시한 재료들을 이렇게 무심하게, 화려하면서도 심플하게..
나무의 표면을 그대로 살린 전시대 이뻐.
2022
2012-2014
2015
1937
초커 1903 팔찌 2009
워치 2022
1932
2017
-범세계적인 호기심-
자연모티브와 각국의 이국적인 모티프의 적용.
규조토로 만들었다는 우주선 같은 전시대도 멋졌고..
오키드 브로치 1937. 플라맹고 1940. 팜트리 1957
1948.정교한 디자인의 앵무새 브로치.
2009. 뱀 모티프.
1919.
베니티케이스 1930. 1927
여기에 도대체 뭘 넣고 다녀? 싶던 작은 그러나 정교한 디자인의 베니티 케이스들.
2018
시계 케이스 2016. 시계 포장케이스도 이렇게 멋지고.
2018
뱀부 시리즈 1992-1998
시계 1922 팔찌 1927. 중국 모티프.
차이니즈 담배케이스 1925
1925.sotoir
힌두모티프 네크리스 1956
이집트 브로치 1925 이집트 펜던트 1924
1924.베니티케이스
1923
선인장 모티프
그리고 섹션 사이 사이 간주처럼 끼워져있던 장면들. 고대와 현대의 콜라보. 나쁘지않았다.
탑신 헤이안ㅡ기단, 지붕 히로시 스키모토 티아라 2012
연잎받침, 비파-헤이안(794-1185). 팔찌 2015. 25보살의 강림 2023
그래, 어떤 사람들은 이런 것들을 소비하며 산단 말이지? 엄존하는 엄청난 부의 격차를 새삼 실감하기도 했지만, 아름다움은 아름다운 것. 마음을 기쁘게 한다. 아름다운 것들이 내뿜는 환한 에너지를 맘껏 즐겼던 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