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김선욱 <베토벤 소나타 전곡>. 8

바다가는길 2013. 11. 26. 21:29

2013.11.21.8시- LG아트센터

 

 

프로그램

1.피아노소나타 30 E장조 Op.109
   (1.vivace ma non troppo 2.prestissimo 3.andante mollto cantabile, espressivo)

2.피아노소나타 31 A플랫장조 Op.110

   (1.moderato cantabile molto espressivo 2.allegro molto 3.adagio ma non troppo-fuga:allegro ma non troppo)

3.피아노소나타 32 C단조  Op.111

   (1.maestoso-allegro con brio, appassionato 2.arietta-adagio molto semplice e cantabile)

 

 

30, 31, 32번의 마지막 세 소나타는 확실히 베토벤소나타중 그 백미들이다.

한 곡 한곡이, 한 악장 한 악장이, 한 마디 한 마디가, 심지어 한 음 한음이 버릴 것이 하나도 없다.

음표 하나하나가 모두 다 보석같다.

1, 2악장들도 당연히 모두 좋았지만, 이 세 곡은 특별히 마지막 악장이 절창들이었다.

소나타는 대개 주제를 보여주는 좀 빠른 첫 악장, 그리고 느린 2악장에 이어 완결을 짓는 강하고 빠른 3악장으로 이루어지기 마련인데 베토벤소나타는 후기로 갈수록 그 순서가 바뀌어 마지막에 느린 악장이 배치돼있다.

그 마지막 악장들은 너무 변화무쌍해서 거의 현란할 지경이었다.

오른손과 왼손이 조응하는 바로크적인 대위법들이 그만의 어법으로 변형돼 펼쳐지는가하면 또 한없이 낭만적인 절절한 멜로디의 선율들이 이어지고, 조들이 살짝 살짝 비틀어지며 변화를 주면 거의 재즈같기도하고 아름다운 선율들은 200년전 곡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요즘 뉴에이지곡을 듣는 듯 현대적인 느낌이기도 했다.

그 아무 것도 아닌 '도레미파솔라시도' 마저 너무나 유감한 선율로 만들어버리니...

베토벤은 이즈음 완전히 마스터가 됐다는 느낌이다.

음악을 완전히 자기 마음대로 떡주무르듯 주무르고 있다는 느낌.

마술처럼 이렇게 저렇게 펼쳐지는 음악은 악상을 떠올리며 작곡을 하느라 머리를 쥐어짜는 게 아니라, 머리속에서 저절로 샘솟는 악상들을 좇아 손이 그저 즉흥으로 미친듯 연주한 것 같기만 하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 곡들이 베토벤이 완전히 청력을 잃은 상태에서 작곡된 곡들이라는 것이다.

해설을 보니 베토벤은 1816년부터 보청기를 사용하고, 1818년부터는 필담을 해야할만큼 거의 청력을 상실했단다.

30번이 만들어진 게 1820년이라니,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했을까? 들리지도 않는 음악을 머리로만, 게다가 그렇게 완벽하게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게?

완벽하다는 의미는 곡들이 기승전결이 분명하게 잘 짜여있다는 얘기가 아니라, 오히려 곡들은 굳이 마무리를 지어야 할 필요를 못느낀다는 듯 그냥 뚝 사그라졌다가, 변덕많은 아이가 이 장난감 들었다가 던져버리고 이내 다른 장난감을 꺼내들 듯 또 다른 모티브들로 새로 시작되곤 하지만 두서없어 보이는 진행에도 그 모든 부분 부분들이, 결국 그래서 전체가 하나도 흘려 들을 데가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곡들은 그렇게 아름다움에도 불구하고 내가 듣기엔 너무너무 슬픈 곡들이었다.

즐거운 듯 신나게 춤을 춰도, 라랄라 목소리를 높여 노래를 불러도, 괜찮아 다 괜찮아 위로를 해봐도, 저항을 멈추고 운명 앞에, 신 앞에 머리를 조아려도, 마침내 먹구름을 뚫고 찬란히 내리꽂히는 빛줄기를 본다해도 실은 그 안에 깃든 슬픔, 입술을 꽉 깨물어 울음을 참아도 막을 수 없는 한없이 흘러내리는 눈물이 보인다.

베토벤, 이 정처없는 영혼, 이 가엾은 영혼을 어찌할까...

 

이 마지막 세 곡의 소나타는 해설처럼 유난히 espressivo, appssionato 같은 감성적인 악상기호들이 많이 붙어있다.

그만큼 베토벤 자신이 감정표현을 많이 담고싶어했던 곡들이란다.

그런데 오늘 김선욱의 연주는 내가 듣기에 오히려 지나친 감정과잉을 자제하려는 것처럼 보였다.

담담하고 담백해서 푸릇푸릇했다는 느낌.

왜 그렇게 김선욱의 연주가 마음에 드는 건지 그 이유를 잘 모르겠다 싶었었는데, 오늘의 연주를 듣다가 문득, 그는 특히 여린 음들, 피아노, 피아니시모의 음들을 참 잘 만드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작은 음들도 하나하나, 하나도 뭉글어짐없이 동글동글 정교하게 아름답게 사랑스럽게 빚어낸다.

그 여린 음들로부터의 크레센도, 디크레센도들도 너무 유연하고, 건반위를 손가락들이 날아다니는 속주중에도 음과 음사이에 여백이, 여유가 있고... 그래서 연주가 그렇게 다정다감하게 들리나보다.

오늘의 연주 중 가장 좋았던 부분도 32번의 마지막 악장중 트릴부분, 햇빛에 반짝이는 물결처럼 여리여리한 맑은 음들이 끝없이 반짝거리며 울리는 그 시간은 완전 breathtaking의 순간이었다.

 

오늘로서 32곡의 전곡연주가 다 끝났다. 와! 대단하다... 어린 나이에...

덕분에 베토벤소나타 하나하나를 유심히 들어볼 기회가 됐고, 덕분에 그 곡들을 더욱 더 좋아하게 됐다.

(아, 그리고 처음으로 들려준 앙콜. 조용하고 담박하던 곡. 나중에 알고보니 바가텔이라는데... 그 곡들도 덩달아 궁금해지고.)

 

앞으로 그가 보여줄 더 많은 레퍼토리들이 기대된다. 그의 손가락끝에서 무엇이 어떻게 흘러나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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