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는 남자- 남진우 책 읽는 남자 -남진우 여기 한 그루 책이 있다 뿌리부터 줄기까지 잘 가꿔진 책 페이지를 넘기면 잎사귀들이 푸르게 반짝이며 제 속에 숨어 있는 나이테를 알아달라고 손짓한다 나는 매일 한 그루씩 책을 베어 넘긴다 피도 흘리지 않고서 책들은 고요히 쓰러진다 아니면 한 장씩 찢어 입.. 메모장 2013.07.24
꽃들-문태준 꽃들 -문태준 모스끄바 거리에는 꽃집이 유난히 많았다 스물네시간 꽃을 판다고 했다 꽃집마다 '꽃들'이라는 간판을 내걸고 있었다 나는 간단하고 순한 간판이 마음에 들었다 '꽃들'이라는 말의 둘레라면 세상의 어떤 꽃인들 피지 못하겠는가 그 말은 은하처럼 크고 찬찬한 말씨여서 '꽃.. 메모장 2013.04.30
폐허 이후-도종환 폐허 이후 -도종환 사막에서도 저를 버리지 않는 풀들이 있고 모든 것이 불타버린 숲에서도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믿는 나무가 있다 화산재에 덮이고 용암에 녹은 산기슭에도 살아서 재를 털며 돌아오는 벌레와 짐승이 있다 내가 나를 버리면 거기 아무도 없지만 내가 나를 먼저 포기하.. 메모장 2013.04.02
낯선 곳-고은 낯선 곳 -고은 떠나라 낯선 곳으로 아메리카가 아니라 인도네시아가 아니라 그대 하루하루의 반복으로부터 단한번도 용서할 수 없는 습관으로부터 그대 떠나라 아기가 만들어낸 말의 새로움으로 할머니를 알루빠라고 하는 새로움으로 그리하여 할머니조차 새로움이 되는 곳 그 낯선 곳.. 메모장 2013.01.15
방문객-정현종 방문객 -정현종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부서지기 쉬운 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 마음이 오는 것이다-그 갈피를 아마 바람은 더듬어불 수 있을 마음. 내 마음이 그런 바.. 메모장 2013.01.07
山山水水-임제 是是非非都不關 山山水水任自休 莫間西天安養國 白雲斷處有靑山 -임제의현 옳다거니 그르다거니 상관말고 산은 산 물은 물, 그대로 두라. 하필이면 서쪽에만 극락세계랴. 흰구름 걷힌 곳이 청산인 것을. 메모장 2012.12.31
두고 온 것들-황지우 두고 온 것들 -황지우 반갑게 악수하고 마주앉은 자의 이름이 안 떠올라 건성으로 아는 체하며, 미안할까봐, 대충대충 화답하는 동안 나는 기실 그 빈말들한테 미안해. 창문을 좀 열어두려고 일어난다. 신이문역으로 전철이 들어오고, 그도 눈치챘으리라, 또 다시 핸드폰이 울리고, 그가 .. 메모장 2012.12.28
哭劉主簿 哭劉主簿 -元重擧 人世一番花 (인세일번화) 乾坤是大樹 (건곤시대수) 乍開還乍零 (사개환사령) 無寃亦無懼 (무원역무구) 친구의 죽음 인생은 한 번 피는 꽃 천지는 큰 나무다. 잠깐 피었다 도로 떨어지나니 억울할 것도 겁날 것도 없다. -안대회 역 오늘 신문에서 읽은 시. 어제 비 오더니 .. 메모장 2012.12.15
'stopping by woods on a snowy evening' stopping by woods on a snowy evening -Robert Frost Whose woods these are I think I know. His house is in the village though: He will not see me stopping here To watch his woods fill up with snow. My little horse must think it queer To stop without a farmhouse near Between the woods and frozen lake The darkest evening of the year. He gives his harness bells a shake To ask if th.. 메모장 2012.12.12
시 한수. 萬里靑天(만리청천) 雲起雩來(운기우래) 空山無人(공산무인) 水流花開(수류화개) 황정견 서랍 속에 굴러다니는 쪽지, 버리려고 펴보니 이 시가 적혀있구나. 안오는 버스 기다리느라 짜증날 때, 먼 하늘 보고 멍때리면서 속으로 읊는 시. 쪽지 버리고 이 시를 잊어버릴 수도 있어 메모해놓.. 메모장 2012.11.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