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간직하고 싶은 이야기

그림 작가 구경선-'신정선기자의 눈빛'

바다가는길 2014. 7. 26. 15:57
“웃어보세요”라는 말은 소용없었다. 청각장애인인 그림작가 구경선씨의 사진을 찍으려고, 사진기자는 눈빛과 손짓으로 표정을 부탁했다. 앞으로는 그마저 힘들어질지도 모른다. 구씨는 망막색소변성증으로 점점 시력을 잃어가고 있다.
“웃어보세요”라는 말은 소용없었다. 청각장애인인 그림작가 구경선씨의 사진을 찍으려고, 사진기자는 눈빛과 손짓으로 표정을 부탁했다. 앞으로는 그마저 힘들어질지도 모른다. 구씨는 망막색소변성증으로 점점 시력을 잃어가고 있다. /이명원 기자

아무것도 듣지 못하는 소녀는 그림 그리기에 빠져들었다. 그는 두 살 때 열병을 앓은 후 청력을 잃었다. 하지만 색연필만 잡으면 누구나 감탄하는 예쁜 그림을 뚝딱 그려냈다. 덕분에 그는 학교에서 '잘 못 듣는 아이'가 아니라 '잘 그리는 아이'로 통했다.

훗날 그는 '토끼 베니'의 작가가 된다. 귀가 예민하다는 토끼. 청각장애인인 그는 '내 몫까지 잘 들어달라'는 희망을 담아 토끼 베니를 만들어냈다. 베니는 5년 전 커뮤니티 사이트인 싸이월드의 스타로 떴다. 베니가 만사가 힘겨운 듯 풀밭에 드러누워 있는 그림이 '귀찮아 토끼'로 유명해졌다. 16만명이 미니홈피 배경화면에 쓰겠다고 다운받았다. 피겨 스케이팅 선수 김연아도 자신의 홈피에 '귀찮아 토끼'를 걸어두고 훈련에 지친 심정을 전했다.

베니의 인기에 힘입어 구경선(31)씨는 '구작가'로 다시 태어났다. 신(神)은 공평하다고 생각했다. 들리지는 않아도 볼 수 있으니 그림을 그릴 수 있어 감사했다. 그는 베니가 등장하는 동화책을 썼고, 장애를 극복한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기 위해 강연을 하기도 했다. 해외 봉사활동도 했고 기부 계획까지 세웠다.

하지만 지난해 9월 구씨는 그야말로 눈앞이 캄캄해지는 소식을 들었다. 시야가 점점 좁아지다가 결국 시력을 잃게 되는 망막색소변성증 진단을 받은 것이다. 어셔 증후군이라고 하는데, 청각장애와 함께 시각장애가 점차 진행되는 유전적인 질환이다. 현재까지 치료법은 없다. 진행을 막을 수도 없다. 언제일지 모르지만 시력을 완전히 잃게 되는 날이 오리라는 것만 알고 있을 뿐이다.

◇언젠가 그날이 오더라도

지난 21일 서울 성동구의 한 오피스텔로 구씨를 찾아갔다. 문 앞에서 벨을 눌렀지만 응답이 없었다. 잠시 기다리다 문 앞에 있다고 휴대폰 문자를 보냈다. 1분쯤 지났을까. 구씨가 환하게 웃으며 문을 열어줬다. 작업실은 아기자기한 소품으로 꾸며져 있었다. 구씨의 어머니와 아홉 살 아래 남동생은 동대문구 장안동에 살고, 구씨는 지난 1월부터 고양이 한 마리와 함께 이곳에 살고 있다.

―시력이 점점 약해지고 있다고 하던데 지금은 어느 정도인가.

"현재 남아 있는 시야는 10도 정도. 힘겹지만 글자를 읽을 수는 있는 수준이에요. 바로 아래 단계가 5도만 남는 건데, 그때부터는 앞을 보기 어렵다고 들었어요. 물론 그림도 그릴 수 없겠죠. 하지만 언제 완전히 시력을 잃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대요. 더 이상 나빠지지 않고 지금 상태로 십수 년 갈 수도 있다고 하고…."

구씨는 청각 장애 2급이다. 청각장애 등급은 2급이 가장 높다. 두 귀의 청력손실이 각각 90dB 이상이라는 뜻인데, 옆에서 비행기가 지나가는 소리가 나도 잘 모를 정도이다. 구씨는 망막색소변성증으로 시력이 약해지면서 중복 장애 1급 판정을 받았다.

이런 어려움 때문에 인터뷰는 더디게 진행됐다. 소통 과정은 어려웠지만 불가능한 건 아니었다. 구씨는 남아있는 시력을 동원해 기자의 입술 움직임을 읽고 질문을 파악했다. 질문이 길어지면 말보다는 글이 나았다. 기자가 질문을 컴퓨터에 입력해 보여주면 구씨가 그걸 읽고 답했다.

구씨의 답을 기자가 이해하는 데도 시간이 꽤 걸렸다. 그의 발음은 일반인보다 좀 어눌하다. 청각장애인은 소리가 아니라 입 모양으로 말을 배우기 때문에 정확한 발음을 내기 어렵다. 구씨는 일단 말로 대답하고, 기자가 잘 못 알아들으면 컴퓨터 화면에 글을 입력해 보여줬다.

―현재 상태로 그림을 그릴 수는 있나?

"귀와 눈에 동시에 장애가 와서 그런지 평형감각이 없어요. 똑바로 선을 그었다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보면 비뚤어져 있더라고요. 똑바로 될 때까지 그리고 또 그려요. 같은 스케치를 최소한 5번은 해요. 조금이라도 비뚤어지는 건 제가 참을 수가 없으니까요."

―조금씩 시야가 좁아진다고 하니, 아침에 눈 뜰 때면 두려울 수도 있을 것 같다.

"아니, 그렇진 않아요.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그런 걸 의식하진 않죠. 하지만 아침 햇살이 침대 위를 환하게 비출 때는 갑자기 우울해지기도 해요. 두려움이 밀려오는 건 오히려 가족이나 친구와 재미있게 이야기를 주고받을 때예요. 소소한 행복 한가운데 있을 때가 제일 두렵다고 할까요. 그걸 잃게 될 거란 생각이 드니까요."

토끼 캐릭터 ‘베니’
―시력과 청력이 약한 상태에선 가족들과 함께 사는 게 도움을 받을 수 있어 더 편할 것 같은데, 혼자 작업실에서 지내는 이유가 있나.

"눈이 멀기 전에 이루고 싶은 소원이 여러 개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제 작업실을 가져보는 거였어요. 작가들은 누구나 다 작업실을 갖고 싶어하니까요. 하지만 돈이 없어 포기하고 있다가, 책 계약금에, 베니를 그린 엽서 판매금, 친구가 보태준 돈을 합해 기적처럼 이 작업실을 얻었어요."

―눈이 안 좋다는 건 어떻게 알게 됐나.

 

 "작년 9월쯤에 자주 만나는 친구가 병원에 한번 가보라고 했어요. 제가 계단을 올라가거나 거리를 걸을 때 자꾸 어딘가에 부딪혀서 이상하다고 생각했대요. 처음엔 녹내장인 줄 알았어요. 병원에 갔는데 의사와 얘기하는 엄마 표정이 점점 더 어두워졌어요. 그래서 뭔가 큰일이 났구나 싶었어요."

―청력을 잃은 상태에서 시력마저 잃게 될 것이란 진단은 엄청난 충격이었겠다.

"확진 받던 날 온 가족이 오열했어요. 남동생은 나가서 울고 엄마는 저를 부둥켜안고 울었어요. 저도 부정하고 싶었어요. 토끼 베니를 그리면서 꿈에 그리던 작가로 다시 태어난 줄 알았는데, 이젠 그 모든 게 사라지게 생겼으니까요."

―신을 원망해본 적은 없나.

"왜 아니겠어요. 처음엔 신을 원망하며 울부짖었어요. 몇년 전 친구를 따라 교회를 다니게 됐는데, 교회 사람과도 그것 때문에 참 많이 싸웠고요. 그러다 교회의 해외 봉사활동에 참여하게 됐는데, 거기서 혼자 쌓아올렸던 벽을 부수게 됐어요. 세상을 둘러보면 가난한 아이들은 돈 때문에, 장애가 있는 아이들은 몸 때문에 꿈을 포기하잖아요. 그런데 여러 어려움을 가진 제가 열심히 사는 모습만 보여줘도 그 아이들이 희망을 갖더라고요. 그냥 열심히 살기만 해도 누군가에게는 희망이 된다는 거, 정말 멋지지 않나요. 사실은 지금도 예술가로서는 시력을 잃는다는 걸 받아들이기 어려워요. 하지만 제가 예술만 하려고 태어난 것은 아니잖아요. 누군가에게 조금이나마 희망을 전하기 위해 사는 것이기도 하니까. 그래서 용기를 갖게 됐어요."

 

◇"열심히 살기만 해도 희망을 주다니"

두 살 때 청력을 잃은 구씨는 다섯 살 때부터 3년 동안 서울농학교(당시엔 선희학교)에 다니며 글씨 쓰기, 다른 사람 입술 모양 읽기, 말하기 등을 배웠다. 이후엔 일반 초등학교와 중·고등학교를 다녔다. 친구들과 의사소통을 제대로 할 수 없으니 소외감은 늘 그를 괴롭혔다.

"소외감이 항상 큰 숙제였어요. 소리를 듣지 못하니 다른 사람들과 같이 있어도 어울릴 수 없다는 느낌이 늘 저를 우울하게 했어요. 주위 사람들이 막 웃는데 저는 왜 웃는지를 몰라서요. 같이 있으면서도 혼자 따로 떨어져 있는 듯한 느낌에 눈물이 날 정도로 외로워요. 바로 옆에 엄마와 친구들이 있어도 그래요. 사랑하는 사람들과 같이 있을 땐 오히려 소외감도 더 크죠."

구씨는 한때 컴퓨터 게임광이었다. 온라인 게임 리니지에 빠져 24시간 잠도 안 자고 게임만 한 일도 있었다. 한국애니메이션고등학교를 중퇴하고, 21세가 될 때까지 가상의 세계에 빠져 살았다. 그러다 정신이 든 것은 게임광들의 정기모임에 나갔다 온 후였다. 온라인에서는 그토록 대단해 보이던 이들을 실제 만나보니 달랐다. 온라인과 오프라인 사이의 엄청난 괴리가 그의 머리를 내리쳤다. 구씨는 곧바로 고졸 검정고시를 준비해 다섯 번 만에 합격했다.

청각장애 그림 작가 구경선
히트작 ‘귀찮아 토끼’와 함께 구경선씨는 시력을 잃기 전 자신의 모습을 스스로 찍어 간직하고 싶다고 했다. 눈이 보이지 않게 되면 남이 찍어줘야 하기 때문이다. 뒤편에 걸린 그림이 그를 유명하게 한 ‘귀찮아 토끼’. 그의 분신인 토끼 베니가 만사가 귀찮은 듯 누워있는 모습이 많은 이의 공감을 샀다. 그림이 걸린 초록 옷장도 구씨가 직접 만들었다. /이명원 기자

 

―토끼 베니는 애초에 어떻게 그리게 됐나.

"원래 꿈은 동화의 나라 독일에 가서 공부해 동화작가가 되는 거였어요. 집안이 넉넉하지 못하니 유학비를 벌어야 했죠. 설거지 아르바이트라도 하려고 구인광고를 샅샅이 살핀 후 동생한테 부탁해 수십 군데 전화를 했는데 다 거절당했어요. 그러다가 싸이월드 미니홈피 스킨(배경화면 그림) 작가를 하면 한 달에 100만원을 벌 수 있다는 얘기를 듣고 응모해서 베니를 그리게 됐어요."

'한 달 100만원 수입'의 꿈을 안고 스킨 작가가 됐지만 결과는 실망이었다. 9개월 열심히 매달렸지만 번 돈은 한 달에 많아야 20만원. '역시 나는 안 되는구나. 그래, 내가 무슨 유학이냐.' 모든 게 귀찮아진 구씨가 마감 시간에 맞춰 던지듯 송고한 그림이 '귀찮은 토끼'였다. 그런데 만사가 귀찮아 벌러덩 누워버린 토끼가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많은 사람이 홈피 배경에 '귀찮은 토끼 베니'를 올렸다. 구씨는 그때 다시 한번 배웠다. '포기하지 않으면 기회는 온다.'

베니 덕에 구씨는 "돈을 많이 벌었다"고 했다. 얼마를 벌었느냐고 물었더니 그저 "많이"라고만 답했다. 그 돈은 그러나 "아빠 빚을 갚는 데 다 썼다"고 했다.

구씨의 아버지는 연이은 사업 실패와 빚보증으로 재산을 날리고 막노동판을 전전했다. 그렇게 밖으로만 돌다가 가족들 곁으로 돌아왔을 때는 위암 말기였다. 아버지는 암투병을 하면서 가족과 마지막 석 달을 함께 보낸 후 빚더미를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그게 벌써 10년 전이다.

가족의 생계는 보험설계사로 일하는 어머니 유미순(59)씨의 몫이었다. 엄마를 위해 구씨는 2년 전 '엄마, 사랑해' 전시회를 열었다.

"엄마는 저에게 우울해하지 말라고 해요. 어느 날 깨달았는데, 그건 엄마가 제게 하는 말이 아니라 엄마 자신에게 하는 말이었어요. 가끔 엄마한테 애교를 부리면서 말해요. '엄마, 나는 엄마의 작품이야.' 그리고 둘이서 막 웃어요. 물론 저도 울기도 하죠. 하지만 그건 밤에 몰래 해요. 엄마 없을 때."

―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아빠는 바람 같은 사람이었어요. 항상 행방불명이었죠. 기다리는 아빠는 집에 오지 않고, 빚 갚으라는 독촉장만 날아왔어요. 아빠와 같이 산 날이 얼마 안 돼 추억이랄 것도 별로 없어요. 딱 하나 좋았던 기억이 있긴 해요. 언젠가 만들어주신 돼지고기 볶음밥. 그 냄새랑 맛이 아빠에 관한 유일한 추억이죠."

―청력도 잃고 아빠도 잃고 이젠 시력마저 사라져가는데, 운명이 자신에게 너무 가혹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나.

"아뇨, 그렇지 않아요. 세상에 저보다 힘든 사람도 많아요. 얼마 전에 중복 장애인 19명이 한자리에 모였어요. 다들 얼마나 열심히 사는지 몰라요. 그저 남들보다 조금 더 불편할 뿐이에요. 아빠 돌아가신 것도 그래요. 다들 언젠가는 아빠를 보내드리는 거 아닌가요. 저는 그저 조금 더 일찍 보냈을 뿐이죠. 물론 처음엔 죽을 것 같이 고통스러웠어요. 하지만 모든 상황에는 이유가 있는 것 아닐까요. 세상에 헛된 만남은 없다고 생각해요. 실패라고 생각한 경험도 나중에는 도움이 될 거라고 믿고요."

―상황을 그런 식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던 계기가 있었나.

"망막색소변성증 확진을 받은 직후에 필리핀 봉사활동을 떠났어요. 일정이 미리 잡혀 있던 거라 어쩔 수 없이 갔는데, 그곳에서 한 소년을 만났어요. 세계를 돌아다니는 사진작가가 되고 싶다기에, 베니가 사진가로 변신한 그림을 그려줬어요. 그랬더니 식당에서도 밥도 안 먹고 베니가 그려진 종이를 품 안에 껴안고 있더라고요. 아무것도 갖지 못한 아이에게 제가 희망을 줄 수 있다는 걸 알았어요. 그때부터 마음속에 쌓여 있던 분노가 녹기 시작했어요."


―만일 5분 후 시력을 잃게 된다면,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일이 뭔가.

"셀카를 찍고 싶어요. 제가 저를 찍는 건 그 후론 못할 테니까. 그리고 엄마한테 카카오톡을 보낼래요"

―뭐라고 써서 보내고 싶나?

"사랑해. 그리고 앞으로 더 잘 부탁해."

한참을 생각하다 이 말을 한 구씨의 눈동자엔 그렁그렁 눈물이 맺혔다.

구경선씨의 작품 '엄마는 방패'
◇마지막으로 보고 싶은 것은…

―그림은 당신에게 무엇인가.

"그릴 때는 무섭게 집중해요. 그때는 이 세상이 고요해져요. 안 들려서 고요한 게 아니라 원래부터 소리가 없어도 되는 세상이 시작돼요. 그리고 음악이 들리는 듯한 느낌이 들어요. 상상이긴 하지만 조용하고 잔잔한 시냇물이 흘러가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요. 모차르트 음악을 들어본 적은 없지만 아마 그 비슷한 것 아닐까 싶어요."

―기회가 되면 아직도 예전에 꿈꾸던 독일 유학을 가고 싶은가.

"'귀찮아 토끼' 그림을 사람들이 좋아하는 걸 보면서 깨달았어요. 그림은 솔직하게 그려야 한다는 걸. 그전에는 예쁘게만 그리려고 했어요. 독일 유학을 가고 싶었던 건 아주 멋진 예술가가 되고 싶었기 때문이에요. 그런데 미술 전시회에 가보면 작품을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이 드물잖아요. 자기만의 세계가 강한 그런 예술가보다는 단순하지만 아기부터 어른까지 공감할 수 있는 작가가 되겠다고 마음을 바꿨어요."

―만일 소리를 들을 수 있다면 가장 듣고 싶은 것이 무엇인가.

"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음성이 어떨지 궁금해요. 백화점에서 전화기를 어깨와 머리 사이에 끼고 통화하며 옷을 고르는 어떤 여성의 모습이 너무나 부러웠어요."

―때로는 장애 때문에 주목받는 것이 불편하지 않은가.

"장애도 제 자신인걸요. 이 야박한 세상에서 장애를 가진 저에게 다른 사람들이 관심을 보여주는 게 오히려 감사하죠. 사실 전 운이 좋은 편이에요. 세상에는 훌륭한 그림작가가 많잖아요. 그런데도 사람들이 관심을 갖는 건 우선 제 그림 덕이겠지만 이런 장애가 있으니까 그런 것도 있는 거죠. 가끔은 장애가 오히려 기회가 되기도 해요. 그래서 축복이라고 생각해요."

―정말 축복이라고 생각하나.

"사실이 그래요. 눈이 안 보이고 귀가 안 들려도 아직 입술이 남아 있고요. 게다가 손도 쓸 수 있잖아요. 입술이 있으니 말을 할 수 있고, 좋아하는 남자가 생기면 뽀뽀도 할 수 있을 테니까요. 손이 있으니 눈이 보이지 않게 돼도 도예를 할 수 있잖아요. 눈이 안 보이면 안 보이는 대로 삶의 새로운 시나리오가 펼쳐지지 않을까요?"

제일 싫은 마라톤도 '소원 목록'에

구씨는 시력을 완전히 잃기 전에 꼭 하고 싶은 일을 담은 '소원 목록'을 만들어놨다. 그 중 하나가 손톱에 봉숭아 물 들이기. 이달 초에 벌써 했다. "이 세상에서 제일 싫은 수학보다 더 싫은" 마라톤에도 내달 23일 참가한다. 원래는 뛰는 걸 싫어하지만 앞이 완전히 안 보이기 전에 도전하려는 것이다. 소원 리스트 중에서 '살빼기'는 현재 진행 중이다.

―살빼기는 왜 하나. 날씬해 보이고 싶은가.

"제가 시력을 잃으면 다른 사람이 옷을 입혀줘야겠죠. 그 사람이 불편하지 않게, 아무렇게나 입혀도 예뻐 보일 수 있게 살을 빼고 싶어요."

―앞으로 베니 캐릭터를 어떻게 키울 계획인가.

"제가 더 이상 그림을 그릴 수 없는 날이 오더라도 베니는 남을 수 있도록 준비를 하고 있어요. 베니를 영국의 유명한 피터 래빗처럼 키웠으면 좋겠어요. 제 힘을 한계까지 밀어붙여 베니 안에 몽땅 넣어둬야 후회하지 않을 것 같아요. 일상 에세이부터 철학 동화까지 이야기를 많이 만들어 두려고 해요. 컵이나 엽서 등 상품도 많이 만들고 싶어요. 그리고 팔아서 수익이 나면 절반은 꼭 기부할 거예요. 베니는 소외계층의 교육과 예술창작활동을 지원하는 한류문화인진흥재단(이사장 문신자)의 마스코트인데, 앞으로 이 재단이 추진하는 30개국 빈민 어린이 돕기 활동에도 참가할 예정이고요."

요즘 구씨는 아침마다 거리에서 출근하는 사람을 지켜본다고 했다. 시력이 남아 있을 때 살아 있다는 느낌이 무엇인지 그 이미지를 기억에 담아두고 싶어서다.

"출근하는 사람들을 보면 많은 게 보여요. 바삐 걸음을 재촉하는 사람, 기다리는 게 지루한 듯 계속 휴대폰을 보는 사람, 머리 감고 안 말린 여자, 잠이 덜 깬듯한 남자. 아주 다양한 모습을 보면서 살아있는 느낌을 간직해요."



Copyright ⓒ 조선일보 & 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