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기술 : 알랭 드 보통의 여행 에세이 알랭 드 보통 저/정영목 역 | 이레 | 2004년 07월 |
서양인들이란...
시계의 원리가 궁금하여 시계를 분해해보는 어린아이와 같다.
시계 뚜껑을 열고 시침, 분침을 떼어내보고, 나사를 풀고, 수많은 크고 작은 톱니바퀴를 들어내고, 수 십가지 부속품들을 분리해 일일이 조사하고, 분석하고, 방바닥에 죽 늘어놓고...
마침내 시계속에 뭐가 들었는지, 시계가 어떤 부품들로 구성됐는지, 어쩌면 시계가 어떤 방식으로 움직이는지까지 그 궁금증은 풀리지만, 시계는 더이상 시간을 알려주지 못한다. 방바닥에 죽 늘어서있는 부속품들은 결코 시계가 아니다.
여행에 무슨 기술이 필요하지?
여행이란, 책 속의 보들레르 말대로 그저 "어디로라도! 어디로라도!"이면 그만일 뿐.
그래도 책은 꽤 재미있다. 여러 유형의 여행자를 보는 것도 흥미있고...
가령 책을 읽다가 그 책의 배경이 된 곳을 직접 보고싶은 욕망에 여행을 나섰다가 중간에서 그만 여행의 불편함, 기차여행이 얼마나 피곤할지, 호텔이니 먹거리가 얼마나 불편할지, 기타등등에 지레 질려 포기하고 도로 돌아가서는 다신 집을 떠나지 않는 위스망스 소설 속 데제생트, 여행지가 뭐 꼭 어디 먼 곳이러야 할 이유가 있나 하며 자신의 침실을 여행하고 그 결과물을 <나의 침실여행>이라는 책으로 출간한 자비에 드 메스트르, 반면 1700년대 말, 그 옛날에 남미를 샅샅히 훑은 유럽의 여행자 훔볼트, 프랑스인이면서도 이집트를 자신의 진정한 고향이라고 생각해 여행한 플로베르, 자연을 찬미한 워즈워드와 아름다움을 소유하기 위해 그림을 그린다는 존 러스킨, 그리고 자신의 그림으로 수많은 사람들에게 새로운 시각을 일깨우는 고흐...등등.
알랭 드 보통, 안타깝구나. 그렇게 따지고 분석하고, 머리로 이해하고 기억하고 그 정보를 말끔히 정리하고 분류해놔야 직성이 풀릴 듯한 그가 진정한 여행을 할 수 있을지...
분석이 불가능한, 말로도 그려지지 않는, 어쩌면 이해도 안되는, 그러면서도 말을 잊고, 자신까지도 잊고, 아! 하는 느낌표 하나로 서는 그런 순간을, 그런 여행을 그가 경험할 수 있을지...
'행복을 찾는 일이 우리 삶을 지배한다면, 여행은 그 일의 역동성을 그 열의에서부터 역설에 이르기까지 그 어떤 활동보다 풍부하게 드러내준다. 여행은 비록 모호한 방식이기는 하지만, 일과 생존 투쟁의 제약을 받지 않는 삶이 어떤 것인가를 보여준다'
'우리가 어떤 장소에 가장 온전하게 있을 수 있는 것은 우리가 반드시 그 곳에 있어야 한다는 부수적인 도전에 직면하지 않을 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삶은 모든 환자가 자리를 바꾸어야 한다는 강박감에 사로잡힌 병원이다. 이 환자는 난방 장치 앞에서 아프고 싶어 하며, 또 저 환자는 창가에 누워 있으면 나을 거라고 생각한다...늘 여기가 아닌 곳에서는 잘 살 것 같은 느낌이다. 어딘가로 옮겨가는 것을 내 영혼은 언제나 환영해 마지않는다.' -보들레르-
'어디로라도! 어디로라도!' -보들레르-
'인생에서 비행기를 타고 하늘로 올라가는 몇 초보다 더 큰 해방감을 주는 시간은 찾아보기 힘들다...비행기의 빠른 상승은 변화의 전형적인 상징이다. 우리는 비행기의 힘에서 영감을 얻어 우리 자신의 삶에서 이와 유사한 결정적인 변화를 상상하며, 우리 역시 언젠가는 지금 우리를 짓누르고 있는 많은 억압들 위로 솟구칠 수 있다고 상상한다.
새로운 시점은 풍경에 질서와 논리를 부여한다. 도로는 산을 피하기 위해 곡선을 그리고, 강은 호수로 향하는 길을 따르고, 고압선 철탑은 발전소에서 도시로 이어지고, 땅에서 보면 제멋대로인 것 같은 도로들이 잘 짜여진 격자로 드러난다. 눈은 자신이 보는 것을 머릿속에 있는 지식과 일치시키려 한다. 새로운 언어로 익숙한 책을 판독하려 하는 것과 같다. 저 불빛은 뉴베리가 틀림없어. 저 도로는 M4에서 가지를 친 A33이야. 그리고 내내 우리 머리를 떠나지 않는 생각이 있다. 우리 눈에 감추어져 있었다 뿐이지, 사실 우리 삶은 저렇게 작았다는 것. 우리 눈에 보이는 것은 우리가 살고는 있지만 실제로 볼 기회가 드문 세상이다.'
'여행은 생각의 산파다. 움직이는 비행기나 배나 기차보다 내적인 대화를 쉽게 이끌어내는 장소는 찾기 힘들다. 우리 눈 앞에 보이는 것과 우리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생각 사이에는 기묘하다고 말할 수 있는 상관관계가 있다. 때때로 큰 생각은 큰 광경을 요구하고, 새로운 생각은 새로운 장소를 요구한다. 다른 경우라면 멈칫거리기 일쑤인 내적인 사유도 흘러가는 풍경의 도움을 얻으면 술술 진행되어나간다.'
'이국적이라는 말을 좀 더 일시적이고 사소한 맥락에서 생각한다면, 외국에서 만나는 장소의 매력은 새로움과 변화라는 단순한 관념으로부터 나온다...그러나 좀 더 심오한 기쁨도 있을 수 있다. 우리는 외국의 요소들이 새롭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의 정체성이나 신조에 좀 더 충실하게 들어맞기 때문에 귀중하게 생각할 수도 있다. 이국적이라는 것은 우리가 고향에서 갈망했으나 얻지 못한 것일 수도 있는 것이다.'
'내가 세상과 뒤섞이면서도
내가 가진 소박한 즐거움에 만족하며,
하찮은 노여움과 천박한 욕망을
멀리하며 살아왔다면,
그것은 그대 덕분이다......
그대 바람과 요란한 폭포......그대 덕이다.
그대 산이여, 그대의 덕이다, 오 자연이여!' -워즈워드-
'이 수많은 풍경들이 내 마음 앞에서 둥둥 떠다니는 지금 이 순간, 내 평생 단 하루도 이 이미지들로부터 행복을 얻지 못하고 지나가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생각에 큰 기쁨이 밀려온다...
우리의 삶에는 시간의 점이 있다.
이 선명하게 두드러지는 점에는
재생의 힘이 있어......
이 힘으로 우리를 파고들어
우리가 높이 있을 땐 더 높이 오를 수 있게 하며
떨어졌을 때는 다시 일으켜 세운다.' -워즈워드-
'우리가 넘을 수 없는 장애와 이해할 수 없는 사건들과 마주쳤을 때, 숭고한 풍경이 그 웅장함과 힘을 통해 우리가 원한을 품거나 탄식하지 않고 그 사건을 받아들이도록 상징적 역할을 한다...물리적으로 인간을 넘어서는 자연의 요소들이 위축된 인간의 기운을 북돋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숭고한 장소들은 우리를 부드럽게 다독여 한계를 인정하게 한다...자연의 광대한 공간은 우리를 넘어서는 것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일깨워, 우리 삶을 힘겹게 하는 사건들, 필연적으로 우리를 먼지로 돌려보낼 그 크고 헤아릴 수 없는 사건들을 좀 더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데 도움이 된다.'
'가보았지만 제대로 보지 않았던 곳 또는 무관심하게 지나친 곳들 가운데 어떤 곳들이 가끔 눈에 번쩍 띄면서 우리를 압도하거나 관심을 갖게 만드는 경우가 있다. 그런 곳들은 서툴게나마 아름다움이라고 부를 수 있는 특질을 소유하고 있다...여기서 우리가 아름답다고 말하는 것은 우리가 그 장소를 좋아한다고 말하는 또 하나의 방법일지도 모른다.'
'사람에게는-그가 진정한 사람이라면-느리게 움직이는 것이 해가 되지 않는다. 사람의 기쁨은 결코 가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존재하는 데 있기 때문이다' -존 러스킨-
'당신의 예술은 당신이 사랑하는 것에 대한 찬양이어야 한다. 그것은 조개껍질이나 돌멩이에 대한 찬양일 수도 있다.' -존 러스킨-
'나는 보는 것이 그림보다 더 중요하다고 믿습니다. 나는 학생들이 그림을 배우기 위하여 자연을 보라고 가르치기보다는, 자연을 사랑하기 위하여 그림을 그리라고 가르치겠습니다.' -존 러스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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