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모장

두고 온 것들-황지우

바다가는길 2012. 12. 28. 19:29

 

두고 온 것들

                                                                                            

                                                                                     -황지우

 

 

 

반갑게 악수하고 마주앉은 자의 이름이 안 떠올라

건성으로 아는 체하며, 미안할까봐, 대충대충 화답하는 동안

나는 기실 그 빈말들한테 미안해.

창문을 좀 열어두려고 일어난다.

신이문역으로 전철이 들어오고, 그도 눈치챘으리라,

또 다시 핸드폰이 울리고, 그가 돌아간 뒤

방금 들은 식당이름도 돌아서면 까먹는데

나에게 지워진 사람들, 주소도 안 떠오르는 거리들, 약속 장소와 날짜들,

부끄러워해야 할 것들, 지켰어야 했던 것들과 갚아야 할 것들;

이 얼마나 많은 것들을 세상에다가 그냥 두고 왔을꼬!

어느 날 내가 살었는지 안 살었는지도 모를 삶이여

좀 더 곁에 있어줬어야 할 사람,

이별을 깨끗하게 못해준 사람,

아니라고 하지만 뭔가 기대를 했을 사람을  그냥 두고 온

거기, 訃告도 닿을 수 없는 그곳에

제주 風蘭 한 점 배달시키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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