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이것들을 어떻게 하지?
백날 둬봤자 쓰지도 않을 거지만 그렇다고 멀쩡한 물건인데 버리자니 아깝고...
그렇다고 또 그냥 두자니 자리만 차지하는 짐덩어리고...
물건이 차고 넘치는 시대라 소위 '정리의 기술'이 생활의 지혜가 되었다.
해마다 한 번 입지도 않은 채 서랍에서 꺼냈다가 도로 집어넣었다가를 반복하는 옷들, 예쁘다고 사놨지만 결국 안쓰게 된 인테리어 소품이나 장신구들, 왠지 불편해 안 신는 신발들...
버리긴 아깝고 두자니 쓸데없는 물건들이 세월과 함께 많이도 쌓였다.
그냥 확 버릴까? 한 상자 모아 아름다운 가게에 기증할까...
벼룩시장 같은 데 나가서 팔아 얼마라도 건질까?
이런 저런 궁리 중에 서초벼룩시장에 대한 정보를 알게됐었다.
홈피에 들어가 참가방법을 검색하니 월요일날 참가신청을 하면 목요일날 추첨을 통해 참가여부가 결정된단다.
(서울시민뿐 아니라 타지역민에게도 개방돼있고 참가신청도 따로 회원가입없이 간단하고 쉽게 할 수 있도록 돼있다)
검색을 해놓고도 막상 월요일날마다 참가신청하는 걸 깜박하는 바람에 한참을 그냥 보내다가 지난 월요일 문득, 드디어 기억이 나길래 얼른 신청을 했었다.
그래놓고도 또 잊고있었는데 이런, 떡하니 당첨됐다는 문자가 왔네^^
벼룩시장은 토요일날 열리는데 9시30분까지 참석확인을 하지않으면 참가가 취소된다.
커다란 여행가방에 팔 물건들이랑 돗자리랑 햇빛 가릴 양산, 모자랑 챙겨 아침부터 go go.
사당역근처 시장에 이르니 벌써 사람들로 장사진을 이루고 있다.
사무소에 출석체크를 하고 받은 번호는 500번대. 640번대까지 있는 걸 보니 640여명이 참가를 했다는 얘기다.
자리번호판이 바닥에 붙어있지만 사람들이 그 위에 돗자리를 깔고 있기때문에 그냥 먼저 앉아있는 사람들에게 몇 번인지를 물어 대충 내 자리를 찾아가야한다.
자리를 찾아가보니 이미 누가 와있네? 어라.
물어보니 장사하시는 분인데 간혹 빈자리가 나면 그 자리를 찾아 옭겨다니며 장사한단다. 새벽 4시부터 나와 있는다니... 와우.
시장에 가보니 순수하게 나처럼 집에서 쓰던 물건을 들고 나온 일반인보다 중고물품을 파는 전문 장사꾼들이 더 많아 보였는데, 아마 중고물품을 다루는 한 일반인인건 장사꾼이건 별 제약은 없나보다.
그리고 벼룩시장이 열리는 날 유동인구가 꽤나 많아 장사가 제법 되기 때문인지 중간에 자리를 팔고 그냥 가라는 제안을 받기도 했었다.
어쨌든 금방 비켜주셔서 돗자리 펼치고 주섬주섬 가방에서 물건들을 꺼내놓자니 옆집들에서 난리, 빨리빨리 팔 물건을 펼쳐야 누가 사든지 말든지 하지, 처음 나와 서툴다며 여기저기서 훈수들을 두신다.
장터는 그냥 아스팔트 맨 바닥에 돗자리를 깔고 앉아있어야한다.
햇빛을 가려주는 아무 장치도 없고 말 그대로 노점상.
쓰던 물건 누가 살까 싶었었는데, 오며가며 그래도 사람들이 꽤 관심을 보인다.
팔고사는 사람들끼리 이런 저런 얘기들을 나누며, 깎아달라느니 안된다느니 즐거운 실랑이도 하며(어차피 버릴 생각도 했던 물건들이라 깎아달라면 그냥 깎아주게 되더라. 그리고 사는 사람도 깎는 걸 당연시한다. 몇 번 참가했었다는 사람의 충고를 들으니 깎아줄 걸 미리 생각해서 가격을 좀 올려 불러야한다고.), 나는 물건의 내력을 얘기하고 사는 사람은 왜 사는지를 또 얘기하며, 모르는 사람들과 꽤나 수다를 떨었다.
시장은 3시까지였지만 바닥에 앉아있기 힘들어 한 2시쯤에 난 철수.
(사실은 한 시간쯤은 아까 내게 자리를 팔라던 장사하는 분께 자리를 양보하고 싶어서...)
몇 시간 고생한 것 치곤 그래도 꽤 짭잘한 수익을 얻었다.
이 정도를 고생이랄 수도 없지.
아마도 매 주말마다 거기 나와 장사를 할 사람들, 거기에 생계를 기대고 있을 사람들, 내 옆자리에서 씩씩하게 사람들을 부르며 명랑하고도 힘찬 목소리로 장사를 하던 예쁜 아가씨, 너무도 성실하고 열심이어서 더 예뻐보이던 아가씨, 속으로 앞으로 꼭 성공하세요, 돈 많이 버세요 빌어주고 싶던 그런 사람들을 두고 이걸 고생이라고 하면 안되지.
첫 참가에서 제법 소득이 있었으므로 날 선선한 가을에 다시 한 번 안쓰는 물건들 챙겨 나설까 생각 중이다.
이러다가 벼룩시장에 맛들이는 거 아냐?
벼룩시장은 대략 이런 모습.(홈피에 오른 사진. 지난 3월거라 옷차림들이 두껍다.)
집에 버리긴 아깝지만 쓰지않는 물건들이 있다면 이렇게 벼룩시장에서 새 주인을 찾아주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그나저나 쓸데도 없는데 버려지지도 않는 머리속 잡다한 것들은 어디에다 부려야하나...
물건정리보다 그게 더 급한데...
*벼룩시장 홈피: http://www.seocho.go.kr/site/fm/index.j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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