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설. 능청스러운 자조. 비틀린 웃음. 슬픔을 먹고 피어난 까만 꽃. 베케트류.
한 부랑자가 임종 직전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며 되는대로 뇌까리는 회색빛 독백.
자신은 태어난 적이 없으므로 산 적도 없고 죽는 적도 없다는, 존재의 의미에 대한 전면적 부정.
그건 작중 인물이 자신은 작가에 의해 상상된 허구의 인물임을 자각하는 조건에서 토해지는 언명일 수도 있지만, 세상이나 우리 자신 또한 실은 그런 허구일 수도 있다는 가정하에 진실의 일면일 수도 있다.
역설이 주는 쓸쓸한 유머들. 어울리지 않는 형용사와 그 형용사에 의해 어울리지 않게 형용되는 명사의 서로 어울리지 않는 결합들. 현란한 은유.
삶이나 존재함, 죽음, 사물과 세상의 의미에 대해 많이 생각해본 사람만이 떠올려낼 수있는 표현들.
썩 괜찮은 문체. 그런데 썩 괜찮게 잘 쓰여진 이 소설을 읽고나서 떠오르는 생각은, 회색빛 그 마음이 언제건 환한 빛을, 밝고 투명하고 화사한 그런 빛을 만났으면 좋겠다, 하는 그런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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