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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광기를 참고 견딜 길을 가르쳐 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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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에 무관심하지 않은 인간은 그의 육체=영혼을 하나 혹은 몇 개의 시의 추에 관통당하지 않고 살아나갈 수 없다.
인간이 명료한 의식을 갖춘 채, 눈 앞에 있는 자신의 육체=영혼의 죽음을 응시할 때, 그는 하나, 혹은 몇 편의 시를 내면에 안고서 쓰러질 게 틀림없다.
자신의 육체=영혼의 죽음이 실제로 지금 움직이고 있는 심장이나 뇌중추의 파괴와 함께 찾아오듯이, 그것은 또한 지금 자신의 내부에 있는 하나의 장기와 같은 시의 파괴와 함께 찾아온다.
시라는 것은 그와 같이 인간의 육체=영혼의 내부에 들어가 계속 기능하고, 그 실재감을 부어오른 간장보다 더욱 뚜렷하게 손가락으로 확인할 수 있다.
다 읽고 난 소설을 참호에 버린 채 일어나서 떠나간 병사들이 총알을 맞고 쓰러질 때, 그는 그 육체=영혼으로부터 떼어내기 힘든 시와 함께 죽었던 것이다.
병사는 아니지만, 이 뜻하지 않은 죽음으로 가득한 때를 살아가면서, 그러한 돌연한 죽음 앞에서 육체=영혼의 내부에서 나와 함께 죽어갈 수 있는 시를 확보함으로써 죽음에 대한 공포와 고통을 얼마간 완화시키고자 시를 구하고 있을 뿐, 그러한 시외에는 어떠한 화려한 말의 수식도 찾아내고싶지 않다.'
'소설에서는, 얇은 껍데기를 제거하고 말의 기능을 작동시킨 뒤, 즉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고 덮어놓은 소설책은 수북히 쌓인 땅콩껍질과 같다.
그런데 시는, 정말로 그것을 읽은 사람에게는 말의 실질과 기능이 그대로 한 덩어리의 추가 되어 육체=영혼 속에 단단히 파고들어가버린다.
그래서 시에는 다 읽었다는 것이 없다. 일단 인간이 시와 조우하면, 그 만남은 항상 진행중이다.'
'시는 육체=영혼에 박혀있는 가시, 불타는 가시이다.' -왜 시가 아니라 소설을 쓰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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