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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침묵의 세계'라는 제목대로 침묵에 관한 여러 단상들을 모은 것이지만 역설적이게도, 침묵이 더이상 살아남지 않은 현대, 침묵을 더이상 품을 줄 모르게 된 인간들에 대해 토하는, 혹은 침묵의 '덕'에 대해 토하는 열변들이 참 수다스럽다, 내게는 수다스럽다고 느껴진다.
그래도 말 너머의 세계인 '침묵'을 어떻게든 말로 잡아보려는 노력의 흔적으로 제법 그럴듯한 정의들이 많다.
내가 가없는 바다나 들판, 사막, 하늘, 거대한 산에서 이상하게 편안해지는 마음을 보며, 왜일까?, 무언가 특별한 이 느낌은 뭘까, 늘 궁금해했던 것, 그것이 침묵의 힘이었음을 비로서 깨달았다.
'침묵은 효용의 세계 외부에 위치한다. 침묵은 비생산적이다. 그때문에 침묵은 가치없는 것으로 여겨지지만 그것은 사물들 속에 들어있는 만질 수 없는 어떤 것을 강력하게 하며, 사 물들이 이용당함으로써 입는 손실을 줄여준다. 그것은 사물들을 분열된 효용의 세계로부터 온전한 현존재의 세계로 되돌려보냄으로써 사물들을 다시금 온전하게 만든다. 침묵은 그 자체가 성스러운 무효용성이다. 사물들 속에 깃든 신적인 것의 자취는 침묵의 세계와 연관됨으로써 보존된다..'
'모든 소음은 태고의 짐승, 침묵의 드넓은 등에 붙은 벌레들의 울음소리에 불과하다..'
'침묵은 이름할 수 없는 천가지의 형상속에 그 모습을 드러낸다. 소리없이 열리는 아침 속에, 소리없이 하늘로 뻗어있는 나무들 속에, 남몰래 이루어지는 밤의 하강 속에, 말없는 계절들의 변화 속에, 침묵의 비처럼 밤 속으로 떨어져 내리는 달빛 속에, 그러나 무엇보다도 마음 속의 침묵 속에...'
'진정한 말은 침묵의 반향'
'음악의 소리는 말의 소리처럼 침묵에 대립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침묵과 평행한다. 음악은 꿈꾸면서 소리하기 시작하는 침묵이다. 음악 속에서 영혼은 멀리까지 떠돌 수 있고 그러면서도 그 어디에서나 보호받고 그리하여 다시 안전하게 돌아온다..'
'오늘 날 침묵은 더이상 독자적인 세계가 아니다. 그것은 다만 소음의 중지일 뿐. 작동하지않는 소음이 침묵이다. 이제는 더이상 여기에 말이 있고, 저기에 침묵이 있는 그런 것이 아니다. 다만 여기에 말해지는 말이 있고, 저기에 아직 말해지지않은 말이 있을 뿐이다. 그 아직 말해지지않은 말들은 쓰여지지않은 연장들처럼 주위에 서있다. 위협적으로 혹은 권태롭게..'
'침묵하는 실체 속에는 서로 대립되는 것들을 위한 충분한 공간이 있다. 그러한 때의 삶은 신앙과 지식, 진리와 미, 생명과 정신으로 따로 분열되지 않는다. 양극적 개념이 아닌 온전한 실체가 인간 앞에 놓이게 된다. 인간의 현존재는 이것이냐, 저것이냐의 날카로운 양자택일 속에서가 아니라 그 중재 속에서 움직인다'
'모든 대상은 그 대상을 표현하는 말보다도 훨씬 먼 곳에서 기원하는 실체의 토대를 자신의 내부에 가지고 있다..'
'형상은 말하는 침묵..'
'동물은 인간을 위해 침묵을 지고 다닌다. 동물은 침묵을 끌로 인간과 말의 세계를 횡단하면서 인간 앞에 언제나 침묵을 가져다준다. 인간의 말이 헤적여놓은 많은 것들이 동물의 침묵으로 다시 평온해진다. 동물들은 말의 세계를 뚫고 나아가는 하나의 침묵의 캐러반이다..'
'우리는 침묵한다. 서로 충분히 사랑하며 서로 기쁘게 하길 원하며, 서로를 충분히 알고, 서로를 충분히 이해하며, 각자 나름대로 충분히 함께하며, 충분히 같 고, 서로 나란히 오랫동안 고요한 거리를 따라 걷는 두 친구, 그들은 행복하여라. 함께 침묵할 줄 알만큼 서로를 사랑하는 두 친구는 행복하여라..' -샤를 페기-
'자연의 사물들은 다만 침묵이 있는 곳을 보여주는 표지..'
'인간은 침묵을 잃고도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 이전에 침묵이 있었던 곳에 이제는 사물이 빼곡하다. 예전에는 침묵이 한 사물 위에 놓여있었지만, 이제는 한 사물이 다른 한 사물 위에 놓여있다. 예전에는 사상은 침묵에 덮여있었는데, 이제는 수천가지 연상들이 그 사상에 달려들어 그것을 파묻어버린다. 오늘 날 침묵은, 말을 할 수 없다는 무능력, 축소된 소극적인 것, 지속적인 소음의 흐름에 생긴 구조적 결함에 불과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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