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리 카르티에 브레송-현대예술의 거장9

바다가는길 2014. 8. 6. 19:30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 세기의 눈-현대 예술의 거장09

피에르 아술린 저/정재곤| 을유문화사 | 2006년 07월

 

 

1908-2004

 

 

전기들도 한 권, 두 권 읽다보니 은근 재미가 붙는다.

 

브레송 사진을 좋아하고, 감탄하고, 전시회가 열리면 전시장을 찾고 하면서도 미처 생각해보지 못한 점이 있었다.

그를 '포토그래퍼'로만 여겼지, 당연히 그가 '포토저널리스트'였을 것을 머리 속에 떠올려 본 적이 없다는 것.

그는 기자로서 수많은 역사적 순간의 최전방에 있었고, 심지어 종군기자로 전쟁에 나갔다가 포로로 잡혀 수용소 생활을 3년씩이나 하기도 했었다.

 

대대로 실공장을 운영하는, 거의 프랑스 100대 기업 중 하나에 들 정도로 부유했던 집안에서 은스푼을 물고 태어나 풍요로운 경제적, 문화적 혜택을 누리며 별 어려움없이 성장하고, 처음엔 회화로 시작했다가 우연히 사진을 접하고 그 길로 들어서서는 타고난 감각과 열정으로 또 별 어려움없이 명성을 얻고 성공을 하고, 후에 사진작가로서의 회의가 들어 잠깐 영화감독으로 전향하기도 하지만 이내 다시 본업으로 돌아와 은퇴하기까지 승승장구, (그 유명한 매그넘의 창설 멤버이기도 하고) 은퇴후 어릴 때 시작했던 데생으로 다시 돌아가  죽을 때가지 몰두했다.(그의 데생은 사실 별로...)

그는 태어나서 96세의 나이로 죽을 때까지 언제 게으른 순간이 있었을까 싶게 정말 에너지 넘치는 한 삶을 살아냈다.

전성기의 흑백사진들을 봐서인지 너무 옛날 사람처럼 느껴져 그가 불과 10년 전까지 살아있었다는 게 낯설다.

 

그가 찍어 낸 무수한 사진들, 정말 감탄해 마지않는 절묘한 사진들이 책을 읽어보니 그냥 나온 게 아니더라.

그는 항상 라이카 세 대를 목에 두르고 마치 자기 신체의 일부인 냥 언제 어디서건 한 시도 떨어뜨리지 않았단다.

그러니 어떤 순간을 만나도 놓치지않을 수 있었겠지.

그리고 한 장의 사진을 찍기 위해, 가령 그 유명한 웅덩이를 뛰어넘는 남자의 사진도 우연히 그 장면을 포착한 게 아니라, 그런 장면을 예상하고 기대하며 거의 하루 종일 그 자리를 지켜 찍는 식이었고, 사진 한 장을 찍기 위해 무수히 답사하고, 대상을 조사하고 파악하고, 스스로가 투명인간처럼 거기 녹아들 때까지 긴 시간을 투자했다.

아마도 모든 프로들이 그렇듯 작품이 될 만한 것들을 포착하고, 100분의 1초의 짧은 순간에도 완벽한 구도를 잡는 건 머리로 계산해서 되는 게 아니라 이미 내재화된 감각으로 이겠지.

그래서 공감되며 인상에 남는 말은, 이런 사진들을 어떻게 찍었냐는 질문에 '뭐, 그저 그렇게...' 라는 대답.

그 자신도 딱히 꼭 집어 어떤 노하우를 말해줄 수가 없었을 거다. 그냥 되는 거니까.

어쨌든 타고난 재능도 재능이지만, 거장이라 불리는 사람들에겐 보통사람이 따라갈 수 없는 엄청난 열정, 노력의 에너지가 있다.

 

뒤이어 자코메티편을 읽고있는데, 브레송과 자코메티는 서로 친구였고(그 유명한 자코메티의 초상사진을 브레송이 찍었으니 당연히..), 자코메티편을 보니 자코메티는 또 베케트와 절친에다가, 베케트의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의 나무를 조각해주기도 했단다.(잠깐 옆길로 빠지자면 베케트를 읽으며, 이 사람이 어떻게 죽을 때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는지가 늘 궁금했었는데, 자코메티와 절친이었다니 두 사람이 참으로 잘 어울린다는 생각..)

읽고 있는 몇 권의 전기의 주인공들이 서로를 언급하는 게 신기하다 싶었지만, 생각해보니 동시대 예술계의 거장들의 활동무대라는게 파리 아니면 뉴욕, 고만고만한데서 서로 부대꼈을테니, 모두들 서로 알고 친밀한 게 당연하다는 걸 새삼 깨닫는다.

 

브레송은 있는 그대로의 사진을 주장해서 대상이나 상황, 사진 자체에 어떤 인위적 조작을 하기를 거부하고. 컬러사진도 거부하고 심지어 플래시를 쓰는 것조차 반대했다는데, 원본이라는 것의 의미가 별로 없을 정도로 보정되고 조작되고 조합되고... 무수한 테크닉으로 변형되는 지금의 사진을 그가 봤다면 어떻게 생각했을지?

아무런 인위적 첨가없이 카메라와 필름이라는 도구만으로 있는 그대로 찍은 그의 사진들은 세기를 넘어 지금 보더라도 여전히 아름답다.

 

이 책은 모처럼 문장이 좋고 번역도 좋아서 술술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그러니 나머지 브레송에 대한 감상은 책을 인용하는 걸로 대신.

 

 

'그는 인내심을 전혀 갖지 못한 사람.. 호기심 그 자체,.. 분개하고 뜨겁게 달아오르며, 분노로 똘똘  뭉쳐진 사람, 광신적 명상가인 그는 한 자리에 잠시도 잠자코 있지 못하고 폭발하는 성질을 이지기 못하는 사람... 마치 진정한 삶은 끊임없이 움직이는 데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

요컨대, 그는 예술가이다, 그의 삶을 추적하고 그의 작품을 재차 감상하는 일은 곧 한 시선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듣는 일...'

 

'태초에 기하학이 있었다... 이보다 앙리의 마음을 드세게 뒤흔든 말은 존재하지 않았을 듯하다. 즉, 세계의 거대한 혼돈 속에 감춰진 질서의 참모습을 찾아내고, 가장 적합한 체계에 조형적 감동을 부여하는 것이다.'

 

'"나는 이 사진을 보면서, 사진이란 순간을 영원히 고정시키는 일이란 사실을 대번에 깨달을 수 있었다. 이것은 나에게 유일하게 영향을 주었던 사진이다. .거기엔 강렬함과 솔직함, 삶의 환희, 경이가 담겨 있어서 오늘날까지도 눈이 부실 정도이다. 형식의 완벽함, 삶의 의미, 남다른 전율감..., 나는 어떻게 이런 사진을 기계로 찍을 수 있었을까 신기할 따름이었다..."

한 사진작가가 본의 아니게 다른 사진작가의 길을 인도해준 셈이다. 사진 한 장이 한 사람의 인생을 결정했다... 나중에 가서 수많은 사진의 거장들이 카르티에 브레송의 이러저러한 사진들을 놓고 똑같은 말을 반복하게 된다.'

 

'인간과 기계, 하나의 영혼과 장치 사이에 이토록 혼연일체를 이루고 완벽한 상호침투를 보인 예는 없었다. 마치 한 쌍의 연인들을 놓고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채워준다고 말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카메라와 사람은 서로를 위해 존재하는 듯... 카메라는 사진 찍는 사람의 시각을 자연스레 연장시켜줌으로써 사람과 한 몸이 된다.'

 

'인간 내면의 침묵을 포착하려면 소리를 내어서는 안된다... 얼굴 표정이 아니라 영혼의 떨림을 붙잡아야 한다. 한 사람이 자기 자신과 완전한 합일을 이루는 모습을 보여주는 내밀한 그 무엇을 포착해야 한다... 인물의 시선이나 주름, 움푹한 부분, 주름살에도 언제나 생경하고 무한한 호기심을 발동해야 한다. 신비는 이런 부분들도 비켜가지 않기 때문... 개개인이 모두 다르듯이, 한 사람의 얼굴은 그 자체로 하나의 우주이다. 깊은 진실을 캐내려면 생명 자체에서 뭔가를 이끌어내야 한다... 사람을 꿰뚫어보고, 하나의 생각을 가지고 접근하고, 그 사람과 맞닥뜨릴 각오가 되어야 한다...

...우선 그 사람의 작품을 이해하고 평가하며 자기 것으로 소화한 다음, 이 모두를 잊는다...인물이 쓴 책을 읽고, 그가 그린 그림을 보고, 그가 작곡한 음악을 들어봐야 한다. 뒤적거릴 뿐만 아니라, 직접 보고 들어봐야 한다. 그런 다음 이 모든 것을 내던지고, 그 인물이 처한 삶을 함께 살아보고 호흡하며, 마침내 그의 존재를 잊고 환경에 젖어들어야 한다. 결코 직선적이어서는 안 되며, 포즈를 강요해서도 안된다. 이상적으론, 사진을 찍고 나서야 비로소 사진을 찍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나는 사람들의 얼굴과 거기 담긴 의미를 좋아합니다. 모든 것이 담겨 있으니까요.... 제가 찍는 사진들을 제 일기입니다. 제 사진들은 보편적 인간성을 반영합니다."

 

파인더 너머로 무엇을 찾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말로는 표현하지 못하는 무엇이지요. 만일 말로 표현할 수 있다면 저는 작가가 되었겠지요."

 

'대수롭지 않아 보이는 디테일을 기념비적 순간으로 변모시킬 줄 아는 힘을 가진 예술가... 아름다움은 창조하기 때문이 아니라, 아름다움을 보지 못하게 하는 부분들을 걷어낼 수 있게 하는 사람...'

 

'사진에 관한 여섯 범주... 르포, 주제, 구도, 색채, 테크닉, 고객'

 

'결정적 순간이란 현실, 그리고 우리가 어린 시절부터 우리 내면에 간직하는 순수에의 꿈에 이르는 조준선이 불꽃을 튀기며 만나는 순간이다.

만일 카르티에 브레송으로부터 은총이 떠난다면, 그는 더 이상 카르티에 브레송이 아닌 셈이다. 이런 순간은 굳이 찾으려 하지 않을 때라야만 마주칠 수 있는 것으로, 일종의 유연성이라고밖에 이름 붙일 수 없다. 은총의 순간이란, 굳이 이해하려 애쓰지 않으면서도 이미 이해했다는 사실을 이해한 순간이다.'

 

'요컨대 그는 잠시도 쉬지 않고 세계를 누볐다. 자진해서 하는 취재이거나, 매그넘 에이전시를 위한 취재였다. 직업의식이었을까? 차라리 카르티에 브레송의 천성, 또는 삶의 태도나 세계관이라고 말하는 편이 보다 적합하다. 그의 소명의식인 셈이다, 무엇에 대한 소명의식인가? 바로 시선이다.'

 

'그는 지난 시대의 우아함을 풍기는 인물..트위드 재킷을 입은 품은 완연한 영국인.. 대화할 때에도 'small talk'와 'understatement'를 즐긴다. 의상에서도 그만의 개성과 품격이 느껴진다. 넥타이는 꼭 필요할 때만 착용한다... 그는 오래되고 곰팡이가 앉은 옛것을 좋아하며, 번쩍거리고 현시적인 것과 졸부를 싫어한다. 천재성을 가진 사람이나 작위적인 사람은 가급적 피한다. 내적 필요 이외의 다른 동기로 행동하는 것만큼 가식적이고 부자연스런 일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삶, 오로지 삶'. 카르티에 브레송이 결코 쓰지는 않겠지만, 만일 그가 저서전을 쓴다면 채택할만한 제목이기도 하다.

 그는 시종일관 변함이 없는데, 이는 한시도 가만히 있는 적이 없다는 의미이다... . 잠시도 한 자리에 붙어 있지 않으며, 도대체 철이 들지 않았다. 몸도 마음도 한 자리에 머물러 있으려 하지 않는 그를 보노라면, 무작정 앞만 보고 도피하려는 성향이 있음을 짐작하고도 남는다. 그는 조상의 종교를 버렸고, 공부를 접었고, 아버지가 경영하는 공장을 포기했고, 부모님 댁을 뛰쳐나왔고, 포로수용소를 탈출했고, 유명세와 사진이란 구속을 벗어던졌다.

...세상의 무질서를 제압해볼 생각으로 자기 식대로의 기하학을 고집할 만큼 뚝심이 있기도 하다... 세심하면서도 불안정하다. 인생을 새로 시작하고 싶어하기도 하고, 지금 성격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다른 일을 해보고도 싶어한다. 인생을 그저 들은 풍월로 주워섬기는 사람하고는 전혀 상대하지 않는다. 천성적으로 화를 잘 내며, 반항아 기질을 가졌고, 즉흥적으로 행동하는 기분파이다. 언제나 본질을 생각하고, 매 순간 촉각을 곤두세우며, 결코 경계심을 풀지 않는다. 스스로의 힘으로 행동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이룰 수 없다고 깊이 확신한다...'

 

'그는 신도 믿지 않고 악마도 믿지 않으며 오로지 운수, 그리고 또 은총과 같은 의미인 우연의 일치를 믿는다.'

 

'이 많은 사진들을 도대체 어떻게 찍으셨나요? 뭐, 그저 그렇게......

그는 여기저기를 걷가가 순식간에 사진을 찍고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또 다시 걸음을 걷는다. 그는 무의식적으로 사진을 찍을 만하다는 감이 들면 주위를 무용가처럼 펄쩍거리며 맴돈다. 그러고 나면 그 내면의 펜싱선수가 바통을 이어받고는 즉시 일격을 가한 다음 현장에서 물러난다... 사진작가는 소매치기이다. 그는 드라마의 현장에 슬그머니 잠입해서 생생한 모습을 포착한 다음, 자기가 영혼을 빼앗은 사람들에게서 떨어져 뒷걸음친다. 그러기 위해서는 조심성 그 자체인 카르티에 브레송처럼 행동해야 한다. 그는 심지어 정물사진을 찍을 때조차 발끝으로 살그머니 접근한다.

...예컨대 친구 한 사람이 브레송과 함께 거리를 걷다가, 오른쪽으로 여자가 지나가는 모습을 힐끗 쳐다본다. 이내 고개를 돌려 원래 걷고 있던 방향으로 시선을 옮기면, 어느새 카르티에 브레송은 뭔가를 발견하고 뒤를 좇아 파드되 동작을 하면서 사진을 찍고 나서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제자리로 돌아와 대화를 이어나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는 육감이 아니라 제3의 눈을 가진 사람이다. 그렇기 때문에 쉽사리 대상들과 한 몸이 되고, 장면을 꿰뚫어볼 줄 안다.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하는 곳에서 인간의 비참함을 감지해내기도 한다. 카르티에 브레송은 바로 이런 능력때문에 세계를 누비며 생생한 현장을 카메라에 담을 수 있었다. 그것도 본인 말대로, 감미로운 방식이 아니라 예리한 시선으로 말이다.

그는 다른 사람에게 모습을 보이지 않으면서 본다. 이것이 그만이 비밀이다.

시간을 고정시키는 기계인 카메라는 그에게 눈의 연장 수단일 따름이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사실 현장을 포착하는 것은 그의 눈이지 카메라가 아니다. 현실을 곧바로 번역하고 형태를 부여하는 것은 바로 눈이다.

본능에 따라야 하기 때문에, 숙고란 없다. 반사신경이 번쩍 하고 움직여야 하기 때문에, 계산에 의해 구도를 정할 짬이 없다. 하지만 이 반사신경이란 것도 알고 보면 예술적 교양을 폭넓고도 완벽하게 자기 것으로 소화했기에 가능한 일이다. 카르티에 브레송은 순식간에 창조의 극에 달한다... 이런 일은 그의 자각력과 종합능력 때문에, 그리고 셔텨를 누르는 순간이 오래 전부터 내면에 입력돼 있는 이미지와 순간적으로 합일을 이루기 때문에 가능하다... 그는 분위기에 젖어들고 장소의 영혼과 결합할 줄 아는 사람이다. 그는 섬세한 감광판 그 자체이다.

뛰어난  사진은 기적이라기보다, 차라리 한 단어가 다른 단어와 처음 조우할 때와도 같은 시적 순간이라 할 수 있다. 조화로운 만남이야말로 기적과도 같은......우연의 일치로 만들어진다.

하지만 사람들이 오랫동안 믿었던 것처럼, 카르티에 브레송이 우연의 혜택을 누렸던 사진작가라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말하자면 우연은, 평생토록 우연 앞에서 경이로움을 잃지 않았던 사람에게 좀더 관대할 수 있었던 셈이라 할 수 있다. 어쩌면 우연만이 무질서한 이 세사에 최소한의 질서를 부여해주는지도 모른다. 우연은 자신을 받아들일 준비가 돼있고 그럴 만한 마음가짐과 여유를 가진 사람에게 유독 미소를 짓는다. 마찬가지로, 남자가 물웅덩이를 건너뛰는 순간이 담긴 <생라자르 역 뒤, 유럽 다리>에서 보듯이, 머리 속에서 얼핏 본 그 장면을 포착하려고 카르티에 브레송이 한 자리에서 24시간을 꼼짝 않고 기다리고 있었다는 사실을 굳이 환기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의 사진작품들에선 언제나 예리함이 느껴지고, 나른한 시선을 용납하지 않는 성향이 엿보인다. 그가 보이는 집중력은 타고난 것이 아니라 훈련에 의해서 얻어진 것이다. 그는 재능보다는 노력을 믿으며, 다재다능한 재주꾼을 불신하는 사람이다.

...그는 순간적으로 형태를 포착하는 데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사진이 그 자체로 충만하고, 형태의 엄격성이 내용과 공명한다는 느낌이 들 때 그는 성공을 직감한다. 빛에는 경쾌한 기하학적 느낌을 주고자 할 때만 신경 쓴다. 인물 초상사진을 찍을 경우, 인물의 표정이나 태도가 아니라 내면의 침묵을 포착했을 때 성공했다고 느낀다. 이를테면 순간과 영원 사이에 가로놓인 무의 상태라 할 수 있다. 그가 찍은 사진들은 때론 전혀 뜻밖의 형태를 보여주기도 한다. 형태가 전통적 조형언어의 한계를 넘어설 때면, 우리는 미지에 맞닥뜨린다는 느낌을 갖게 된다. 이런 종류의 사진은 테크닉도 예술도 아닌, 그야말로 신비 그 자체이다. 주석을 시도할 수도 없고, 보는 사람으로부터 굳이 찬사를 이끌어내려 하지도 않는다. 그에게 비평가의 입을 다물게 만들 때보다 더 기쁜 적은 없다. 이런 사진에 직면하게 되면 지성은 무기를 내려놓고 그저 바라보기만 할 따름이다. 우리의 의식적 노력을 뛰어넘어 우리에게 뭔가를 보여주려 하는 이런 면이야말로 걸작만이 지니는 특성이 아니겠는가?

...그에게 사진을 찍는 행위는 일종의 절대 행위이다. 결과는 부차적일 따름이다. 오로지 사진을 찍는 행위, 최고의 장면에 이를 때까지 이어지는 긴장감만이 중요하다... 바로 그 순간..."... 맞아, 바로 이거야"

... 카르티에 브레송도, 자잘하고 하찮아 보이는 것들로 이루어진 구체적 현실과 접하고 있을 때라야 비로소 살아 있다는 느낌을 갖는다. 가장 파장이 긴 진실은 바로 이런 자잘한 현실의 편린들로부터 뿜어져 나오는 법이다... 조각 난 현실, 현실, 오로지 현실, 모든 현실... 착각이나 혼동 없이, 또 그 어떤 대체수단이나 사기술도 배제한 채로 대상들을 포착하는 것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위대한 발명들을 송두리째 합한 것보다도 더욱 고귀하다...'

 

"사진이란 감각과 정신이 즉각적으로 작용하는 행위이다. 사진은 시각적으로 표현된 세계이며, 끊임없는 추구이자 질문이다. 동시에 사진은 1초도 되지 않는 짧은 순간에 이루어지는 확인 행위이며... 카메라는 삶을 제시되는 그대로 포착하는 놀랄 만한 도구이다"

 

'그의 사진들은 시대적 개별성을 뛰어넘어 인간에 내재하는 덧없는 순간을 영원히 고정시킨 모습이다. 출현했다가 이내 사라져버리는 순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