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렌 굴드 Glenn Gould : 피아니즘의 황홀경(양장)-현대 예술의 거장07
1932-1982
지금 전기들을 읽으면서 드는 생각은, 과연 인간이 다른 인간을 완전히 객관적으로 파악할 능력이 있을까 하는 것.
아니, 인간에게 절대적 '객관'이라는 게 가능한가 하는 것.
우리는 누구나 '나'라는 조건에서 한시도 벗어날 수 없고, 이 '나'라는 것은 쓰고있는 하나의 안경과 같아, 아니 아예 눈에 이식된 렌즈와도 같아 모든 나의 외부의 것들은, 아니 어쩌면 나 자신까지도 필연적으로 이 필터를 거쳐 왜곡될 수밖에 없다.
글렌 굴드의 전기를 읽으며 더욱 그런 생각이 들었던건, 저자는 십 수년간 글렌 굴드와 친분을 가졌던 사람인데 그의 글에서 굴드에 대한 애정과 함께 그에 대한 조소, 조롱이 느껴져, 과연 글렌 굴드가 그가 표현하는 만큼 그렇게 괴상한 사람이었을까 하는 의문이 들기 때문.
오히려 실제로 그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하는 궁금증이 인다.
굴드는 연주를 하다가 흥에 겨우면 자신도 모르게 멜로디를 같이 흥얼거리는 바람에 내가 갖고있는 시디에도 그의 웅얼거리는 목소리가 연주의 배음으로 깔려 살짝 짜증나게 하기도 하지만, 책에 의하면 그 외에도 그는 지독히 self-centered된 사람, 칭찬은 무지 좋아하지만 비판은 못견디는 사람, 늘 상황과 사람이 자기 뜻대로 갖춰지고 움직여줘야 만족하는 사람, 시도 때도 없이 맘 내키는대로 한밤중에 전화를 하면서도 그것이 상대방에게 방해가 되는지 아닌지 아예 생각조차 못하는 사람, 신체 접촉을 극도로 꺼리고, 손이 상할까봐 수영도 못하고, 심한 건강염려증으로 수시로 병원진료를 받고 항상 약을 한 웅큼씩 주머니속에 넣고 다니던 사람, 병이 옮을까봐 사람이 많은 곳에 있기를 지독히 싫어해 어머니가 위독하여 병원에 입원해도 돌아가실 때까지 병원으로 병문안조차 한 번 못갔던 사람, 항상 장갑을 끼고 긴 외투에 목도리를 칭칭 감고 다니던 사람, 아버지가 만들어 준 나무로 된 접이식 피아노의자를 평생 동안 어느 공연이나 들고 다니며 그 의자가 아니면 연주를 못해 나중엔 너무 낡아 가죽이 다 찢어지고 나무 뼈대만 남을 때까지도 의자를 바꾸지 못했던 사람, 자신이 필요한 사람은 곁에 두지만 필요 없어지면 가차없이 그 관계를 끊는 사람... 기타등등, 기타등등.
특히 이상하면서도 그보다 안타까웠던 건, 피아노 연주자로 늘 청중을 만나야하는 조건이면서도 그 청중을 자기를 헐뜯으러 오는 적으로 간주하고, 협주시에도 독주자와 교향악단 같은 다른 연주자들을 협력관계가 아닌 경쟁자로 여겼다는 것.
공연에 가는 건 당연히 연주자의 흠을 찾으러가 아니라 좋아하는 연주자를 지지하고 그가 전해주는 음악의 아름다움에 잠기고 즐기려는 거지, 누가 자기가 좋아하지도 않는 사람의 연주를 들으러, 혹은 그 연주자의 빈 틈을 찾아 공격하려고 굳이 시간과 돈을 들이는 수고를 할까.
아마 비판을 지독히도 못견뎌하는 굴드였기에 열 개의 칭찬은 당연하게 여기면서도 단 하나의 비판도 아파 온 청중을 적으로 느낀 게 아닐지.
자신의 연주를 들으러 온 청중들이 얼마나 그 연주를 좋아하고 그를 통해 기쁨과 만족을 얻는지를 알았다면 어차피 늘 하는 연주회를 고역이 아니라 행복으로 여길 수도 있었을텐데...
아니면 강박적으로 완벽을 꾀했던 그에게 연주회장이라는 공간과 알 수 없는 다수의 청중들은 어차피 자기가 일일히 컨트롤할 수 없는 존재여서 연주의 조건을 완전하게 갖추기 어렵고 따라서 자신의 연주에 스스로 만족 못할 어떤 결점이 생기고 그 틈을 누군가 눈치챌까 두려워했던 건지...
책을 통해 느껴지는 그라면 어쩌면 청중의 달콤한 칭찬을 기꺼이 사탕처럼 음미하면서도 사실 속으론, 니들이 음악을 뭘 알긴 알아? 뭘 제대로 알고 좋다고 하는 거야? 라는 마음이었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어쨌든 그는 그래서 연주회를 싫어했고, 음악을 듣는 가장 좋은 방법은 잘 만든 음반을 집에서 듣는 거라는 신념 하에 나중에는 공연을 중단하고 스스로가 엔지니어가 되어 음반녹음작업에만 몰두한다.
그 외 tv를 위한 다큐프로를 제작하기도 하고, 영화음악을 하는 등 다양한 경로로 자신의 재능을 펼쳤다.
저자가 정신분석의였기때문에 글렌 굴드를 정신분석적으로 해석하고 싶어했다는 느낌이다.
그의 글들로 받는 느낌으론 글렌 굴드는 어머니와의 애착관계를 끊지 못한, 어머니의 무한 사랑과 간섭에 스포일드된 자라지못한 영원한 아이 같다.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그는 천재적 피아니스트.
책 속에서 안드라스 쉬프가 말하듯, 그 이전엔 없었던 그만의 바흐 해석으로 명성을 얻었고, 항상 누구와도 다른 톡특한 그만의 음악을 하길 원했다.
악보에 레가토로 부드럽게 연주하라는 부분은 스타카토로 끊어치고, 반대로 스타카토 표시가 된 부분을 레가토로 연주하고, 리듬이며 박자도 자기 식대로 늘였다 줄였다하기 일쑤이고, 오케스트라와의 협연때면 악단, 지휘자와 곡해석을 놓고 논쟁을 벌이는 게 다반사였단다.
(그 정도면 거의 재즈적 감수성인데... 문득 클래식도 재즈처럼 한 곡을 해석을 달리 해 여러 버전으로 연주해도 재미있겠다는 생각.)
하지만 그렇게, 좋게 말하면 독창적이고, 나쁘게 말하면 제멋대로인 곡해석과 연주가 결과적으로 훌륭했으니 대중의 인정을 받을 수 있었겠지.
뭐 연주의 테크니컬한 부분은 말할 것도 없고.
너무나 영롱하고 선명한 소리. 너무나 명징하면서도 섬세한 감수성.
아, 그런데 음반으로 듣는 그의 연주가 곡의 처음부터 끝까지 당연히 한 번에 이루어졌다고 여겼던 건 너무 순진한 생각이었나?
거의 준 엔지니어였던 그는 당시 개발된 다트랙 녹음방식에 힘 입어, 물론 만족스러울 때까지 그 스스로 수십번의 녹음을 했지만, 그 중 가장 좋은 어느 한 테이크를 고른 게 아니라 수 십번의 녹음 중 각기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부분을 한 마디씩, 심지어는 한 음씩 따와 편집해서 한 곡을 완성시켰단다.
어쩐지 삑사리 하나없이 마냥 또록또록 하더라니...
그의 연주력이야 의심할 나위가 없다는 건 어쨌거나 변함없지만.
굴드의 전기를 읽으며 새삼 생각해보는 것은, 어떤 것에든 있기 마련인 간과된 이면.
명성과 부를 누리며 세계를 누비는 음악가들, 연주자들 일지라도 사실은 얼마나 고단한 일상들을 견뎌야하는지 하는 것.
늘 집을 떠나 낯선 곳을 떠돌아야 하고, 항상 전과 다른, 전보다 더 나은 연주를 하기 위해 노력해야하고, 늘 남의 비판을 신경써야하고...
그래서 바라는 것은, 내가 지지하는 연주자들이 글렌 굴드와 같은 함정에 빠지지말고 부디 자신의 음악활동을 스스로 즐기고 행복했으면 하는 것.
"나만이 그를 비판할 수 있었지요. 그는 천재이자 괴물이었어요-스튜디어에서는 완전히 구제불능이었지요.... 모든 것이 자기 뜻대로 진행돼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힌 사람이었습니다. 날씨도 온도도, 약도, 그리고 다른 음악가들까지. 그러나 내 생애를 통틀어 만나본 음악가들 중 가장 상상력이 풍부하고 믿을 수 없을 정도도 재능 있고 유능한 음악가였습니다."
'캐나다의 한 젊은이를 소수의 위대한 세계적 예술가의 반열로 밀어올린 것은 이처럼 바흐의 잘 알려지지 않은 작품을 특별하게 녹음하고 잘 홍보한 미디어 이벤트였다. 이로 말미암아 글렌의 생은 주술에 걸렸고, 그가 죽기 바로 전에 <골드베르크 변주곡>의 마지막 버전을 녹음할 때까지 이 주문은 계속되었다. 그의 죽음으로 이 작품은 또 하나의 목적을 완수하게 되었으니, 그를 불멸의 피아니스트라는 영역으로 이끌어 준 것이다.'
'사람들이 괴팍하다고 말하는 나의 개인적인 습관때문에 사람들이 내 연주를 제대로 보지 못하게 되는 것을 나는 바라지 않는다. 내가 생각하기에 나는 절대로 괴짜가 아니다. 내가 평소 장갑을 한두 켤레씩 끼고 다니며, 건강에 신경을 좀 많이 쓰고있는 것은 사실이다. 또 신발을 벗고 연주하기도 하고, 공연 중에 셔츠 자락이 빠져나오는 것도 모른 채 넋이 나간 상태로 연주하기도 한다. 친구들이 놀리듯이 피아노를 코로 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내가 개인적으로 유별나게 굴려고 해서 그런 것이 아니다-그것은 단지 주관적으로 몰두하다 보니 생긴 일일 뿐이다.'
'내가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예술이란 인간의 가슴에 불을 당기는 내적 연소지, 천박하게 밖으로 드러내서 대중에게 과시하는 것이 아니라고 믿기 때문이다. 음악의 목적은 아드레날린을 순간적으로 분비하는 것이 아니라 평생에 걸쳐 경이롭고도 고요한 상태를 점진적으로 구축해 나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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