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의 미술관-알랭 드 보통

바다가는길 2014. 1. 19. 21:47

알랭 드 보통의 영혼의 미술관 Art as Therapy

 

 

...유쾌함은 멋진 성과이고, 희망 축하할 일이다. 낙천주의가 중요하다면, 이는 우리가 낙천적이기 위해 얼마나 노력하는가에 따라 많은 결과들이 좌우되기 때문이다. 이 노력은 성공의 중요한 요인이다...우리의 운명은 재능의 부족이 아니라 희망의 부재가 결정할 수 있다. 오늘날의 문제들을 보면 세상을 너무 밝게 보는 사람들 탓에 생긴 건 거의 없다. 그리고 세상의 고민거리가 끊임없이 우리의 주의를 들깨우는 탓에 우리의 희망적인 성향을 지켜낼 도구가 필요하다...

...삶이 고단할수록 우아한 꽃 그림은 우리를 더 깊이 감동시킨다... 우리가 우아하고 사랑스러운 예술을 싸잡아 감상적이고 부정적이라 비난다면 이는 큰 손실이다. 사실 그런 작품이 우리를 감동시키는 까닭은 현실이 대개 어떤지 우리가 잘 알고 있어서다. 예쁜 미술 작품의 쾌감은 불만족에 기인한다. 만일 인생이 고되지 않다고 느낀다면, 아름다움은 현재와 같은 호소력을 갖지 못할 것이다...

...우리는 이상적 이미지를 일반적인 현실의 잘못된 묘사로 간주하지 않고 즐길 줄 알아야 한다... 좋은 것을 전략적으로 과장하는 방법은 우리가 인생의 고난을 헤쳐나가는 길을 그릴 때 그에 필요한 희망을 증류하고 농축하는 매우 중요한 기능을 수행할 수 있다...

 

예술이 우리에게 주는 의외로 중요한 기능들 중 하나는, 고통을 보다 잘 견디는 법을 가르쳐준다는 데 있다... 우리는 수많은 예술적 성취를 예술가의 '승화된'슬픔이라고 보고, 관객도 작품을 접하며 슬픔을 승화시킨다고 본다...최악의 경험에서도 존엄을 지키려 할 때 도움이 필요하다면, 예술은 그런 경험을 사회적으로 표출하도록 해주기 위해 우리 곁에 존재한다...

예술은 인간의 조건인 고난을 웅대하고 진지하게 볼 유리한 관점을 제공한다. 낭만주의적 의미로 숭고함을 지닌 작품들...별이나 대양, 거대한 산맥이나 대륙.. 그 앞에서 우리는 즐거운 공포에 휩싸이고 영원의 존재 양상에 비해 인간의 불행이란 게 얼마나 사소한지 느끼면서 인간의 보잘것없음을 깨닫고, 모든 삶에 스며들어 있는 이해할 수 없는 비극에 더욱 기꺼이 고개를 숙이게 된다. 이 지점에서부터 일상의 초조와 근심은 무력화된다...

예술은 믿을만한 기초 위에서 유용한 경험을 이끌어내는 도구이며, 그래서 우리가 슬픔에 잠겨 있다가도 고개를 들 수만 있다면 언제나 숭고의 경험에 계속해서 다가갈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예술의 한 역할이 우리의 정서적 균형회복시켜주는데 있다는 생각은, 왜 사람들의 미학적 취향이 그렇게 다른가라는 질문에도 답이 되어줄 법하다. 왜 어떤 사람은 미니멀리즘 건축에 이끌리고, 어떤 사람은 바로크 건축에 이끌릴까? ...예술작품 하나하나에는 특별한 심리적, 도덕적 분위기가 스며있다... 우리는 자신의 내적인 나약함을 보완해줌으로써 우리를 생존의 평균치로 되돌려놓는 예술작품을 갈망한다. 어떤 작품이 우리가 잃어버린 가치를 채워줄 때 우리는 아름답다고 말하고, 우리를 위혐하거나 사전에 압도해버리는 느낌의 분위기나 모티프를 강요할 때 추하다고 일축해버린다... 예술은 이미 충분하다고 섣불리 추정해서는 안되는 균형과 선함을 시의적저하게 본능적으로 깨닫게 해줌으로써 우리의 시간을, 삶을 구원한다...

 

우리는 자기 자신을 투명하게 알지 못한다. 우리에겐 직관, 의혹, 육감, 모호한 공상, 이상하게 되섞인 감정이 있으며, 이 모두는 단순명료한 판단을 방해한다. 여러 기분을 느끼지만 그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지 못한다. 그러다가 이따금 예전에 느꼈지만 명확히 알지 못했던 어떤 것을 정확히 파악한 듯 보이는 예술작품들과 우연히 마주친다. 알렉산더 포프는 시의 한 핵심 기능을, 우리가 어설픈 형태로 경험하는 생각들을 붙잡아 거기에 명료한 표현을 부여하는 것이라 규정했다...나 자신의 생각, 나 자신의 경험이면서도 쉽사리 사라지고, 파악하기 어려운 부분을 붙잡아 예전보다 더 좋게 다듬어 나에게 돌려줄 때, 우리는 스스로 더 명확히 알게 되었다고 느낀다...

예술은 자기 인식을 누적시켜, 타인에게 그 결실을 전달하는 훌륭한 수단이다...

예술에는 우리 자신을 이해하고, 그런 뒤 내가 누구인지에 대해 타인과 소통하게 해주는 능력이 있기 때문에, 대체로 우리는 주변에 어떤 예술작품을 둘 것인가에 신경을 많이 쓴다... 우리는 아트 오브제들을 단지 좋아하기만 하지 않는다. 소중하게 여기는 것들의 경우 우리는 그것들과 약간 닮아있다. 그런 오브제들은 자기 자신을 알게 하고 타인에게 우리의 진정한 모습을 더 알릴 수 있게 하는 매개체다...

 

...잠재적으로 위협을 느끼는 대상 앞에서 어떻게 나 자신을 견고하게 유지할지 깨달을 때 우리는 성장한다. 성숙함은 대처 능력을 소유한 상태로, 예전 같으면 우리의 발목을 잡아 비틀거리게 했을 대상을 가볍게 건너뛸 수 있음을 의미한다...

처음에 낯설게 느껴지는 예술작품의 가치는, 그런 예술을 통해, 익숙한 환경에서는 쉽게 접할 수 없지만 우리 인류와 충분히 교류하려면 반드시 알아야 할 생각과 태도를 만날 수 있다는 데 있다... 우리의 틀에 박힌 일상은 대체로 우리 자신의 중요한 부분을 일깨우지 않으며, 예술계가 찌르고 치근대고 좋은 의미로 도발할 때까지 내처 겨울잠을 잔다. 이질적인 예술 덕분에 나는 내 안의 종교적 충동, 내 상상력이 허락하는 한에서의 통과의례를 경험하려는 욕구를 발견하며, 그런 발견은 내가 누구인가라는 의식을 확장시킨다.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이 모든 장소, 모든 시대에 우리 앞에 진열되어 있진 않다. 이질적인 것과의 연결점을 발견할 때 비로서 우리는 성장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