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 에반스-현대예술의 거장

바다가는길 2014. 7. 23. 21:00

 

빌 에반스 : 재즈의 초상(양장)-현대 예술의 거장01

피터 페팅거 저/황덕호| 을유문화사 |

 

1929-1980

 

 

이동진의 '빨간 책방'을 듣다가 을유뮨화사에서 '현대예술의 거장'이라는 주제로 시리즈물이 발간됐다는 걸 알게됐다.

히치콕이니 누구니 하고 언급되는데, 재미있겠다 싶어 인터넷서점 검색해보니 와! 흥미로운 사람들이 많이 망라돼있다.

빌 에반스를 서두로 피아졸라, 토스카니니, 마일즈 데이비스, 브레송, 굴드, 피나바우쉬, 자코메티 등등등.

어느 날, 도서관에 들러 우선 빌 에반스와 글렌 굴드편을 빌렸다.

둘 다 내가 좋아하는 피아니스트들.

빌 에반스는 브루벡과 함께 제일 좋아하는 재즈피아니스트이고, 굴드는 내가 좋아하는 바흐를 잘 연주하는 피아니스트이고.

빌 에반스편을 먼저 읽다보니 우연치않게도 굴드 역시 빌 에반스의 팬이었고, 앞서거니 뒷서거니 같은 스타인웨이 피아노로 같은 녹음실에서 녹음을 하기도 했단다. 또 에반스는 브루벡을 존경하여 그의 곡을 편곡해 녹음하려하기도 했고.

역시 '프로'들은 서로 통하는 건가?^^

 

빌 에반스는 예전에 황동규씨의 어느 책에선가 이 트리오를 극찬한 글을 통해 알게 된 후 한동안 빠져들었었지만, 생각해보니 꽤 오래 그의 음악을 듣지않고 있었던 참.

그래서 오랫만에 만나는 반가운 마음으로 책을 펼쳤다.

그런데 자기가 좋아하는 누군가의 전기를 읽는 것이, 그래서 그라는 사람의 인생의 내력을 아는 것이 그 작품들을 향유하는데 도움이 될까, 안될까.

 

빌 에반스의 재즈는 꽤나 지적이고 현학적인 느낌(전기를 읽으니 그는 원래 클래식 전공이었단다. 그 대목에서 아하! 어쩐지 그래서!)에다 시디자켓의 사진도 아주 조용하고 내성적인 학구적인 타입의, 완벽주의자 같은 모습이었는데, 전기를 읽어보니 그는 내가 전혀 상상치못한 그런 삶의 부분을 가졌더라.

재즈피아니스트로 20대에 데뷔한 후, 죽을 때까지 어울리지않게도 마약중독자였다는 것.

 

클래식을 공부하긴 했지만 어려서부터 어쩐지 jazzy한 것데 매력을 느꼈던 그는 10대 때부터 수업을 빼먹고 재즈연주를 들으러 다니고 학생밴드의 피아니스트로 무슨 무슨 파티니 하는데서 신나게 아르바이트를 하고, 졸업후에 바로 사이드맨(세션맨을 이렇게 부르나봐)으로 여러 밴드의 피아노를 맡고 여러 곡들을 녹음하고,  그 빼어난 실력 덕에 곧 그 당시 최고의 밴드인 마일즈 데이비스 퀸텟에 들어가게 된다.

모두 흑인인 멤버사이에서 유일한 백인으로서 그들과 동화되길 원해서였는지, 아니면 지병인 간질환때문이었는지, 아니면 많은 아티스트들이 그렇듯 환각을 통해  영감을 얻기 위해서였는지 거기서 동료로부터 헤로인을 배우고(책을 다시 읽다보니 당시 재즈음악계는 마리화나나 헤로인같은 마약이 거의 문화화 돼있던 환경, 그 역시 마리화나로 시작해 밴드에 들어가기 이전에 이미 헤로인에 빠졌다),  때때로 약을 끊기 위해 재활기관에 들어가는 등 노력을 하지않은 건 아니지만 말년엔 코카인까지 손을 대는 전형적 중독자였다.

서른 쯤 그 유명한 빌 에반스 트리오를 만든 후 곧바로 대중의 인정과 명성을 얻고, 그 후로 그래미를 몇 번씩이나 수상하는 등 한번도 최고의 자리에서 내려온 적 없지만, 또 연대기별로 세세히 적힌 그의 활동을 보면, 일 년에 10달을 공연여행을 다니고, 국내에 머물 땐 클럽에서 하루에도 몇 회씩 연주를 하고, 음반을 녹음하고, 방송을 하고, 작곡을 하고, 자기 음악세계를 끊임없이 연구하고..., 이 사람은 언제 쉬나 싶게 워커홀릭처럼 열심히 일했지만, 어느 땐 약값을 대느라 월세를 못낼 정도로 경제적 어려움에 빠져 살던 집에서 쫓겨나기도 했었다.

(유투브에서 동영상 찾다가  생전 빌 에반스와 지인이었다는 사람이 남긴 댓글을 읽게 됐는데, 그 글에 의하면 심지어는 빌 에반스가 아끼는 피아노를 전당포에 잡히고 자기 어깨에 기대 흐느껴 울기도 했었다고.. 피아니스트가 피아노를 전당 잡힌다는 건 정말 갈 때까지 갔었다는 얘긴데, 다시 한번 한 인간으로서의 빌 에반스에 연민이...)

 

게다가 그는 살면서 여러 번의 큰 상실을 겪는다.

처음 결성된 빌 에반스 트리오. 피아노의 빌 에반스와 베이스의 스캇 라파로, 드럼의 폴 모티앙, 이 전설적 세 멤버들은 만나자마자 서로가 서로의 知音이 되어 말이 필요없는 환상적 호흡을 이룬다.

그런데 그 중 베이시스트 스캇 라파로가 밴드 결성 후  2년 후에 교통사고로 사망하고 만다.(모티앙도 그렇지만 라파로의 베이스는 절대 밴드의 조연으로 머물지않고 둥. 둥. 둥. 둥 울리는 소리가 오히려 피아노보다 더 귀를 사로잡을 정도여서 신기해하며 들었었는데, 그때 그의 나이 20대 초반, 어디서 그런 표현력이...)

단순한 한 멤버가 아닌 서로가 서로의 분신같던 이의 죽음은 얼마나 큰 충격이었을지...

그리고 또 사랑했던 연인의 자살과 소울메이트 같던 형의 자살.

가장 사랑했던 사람들을 한 번도 아니고 그렇게 여러 번 비정상적인 방식으로 잃을 때 그 고통이란 어떠할까.

평생 병과 약 중독에 시달리고, 소중한 사람을 잃은 마음의 상처를 지니고 살았다는 사실에 새삼 놀라는 건, 그의 음악에 그런 아픔들이 잘 드러나지 않기 때문.

음악이 감정에 치우쳐 균형을 잃는 걸 싫어했기 때문일까.

그가 말하길,  

"원칙과 자유는 섬세하고 창조적으로 섞여야하며 정말로 훌륭한 결과를 낳아야 한다. 난 모든 음악이 낭만적이라고 믿고 있다. 하지만 그것이 극단적인 감상주의에 빠지면 낭만성은 방해받게 된다. 반면에 원칙에 의해 운용되는 낭만성은 가장 아름다운 미적 상태이다."

 

그는 결국 약물중독으로 피폐해진 몸과 형을 잃은 충격으로 1980년, 51세라는 너무 이른 나이에 죽음에 이르고 만다.

 

 

책을 통해 새로운 사실을 많이 알게됐었다.

(그는 재즈뿐 아니라 클래식도 소화하는 드문 피아니스트였고, 피아노 외에 플루트, 바이올린도 연주하고, 음악 외에도 그림과 글에도 재주가 있었고, 스포츠에도 능했고... 한 마디로 다재다능.)

 

선물처럼 주어진, 음악에 대한 타고난 재능과 열정과, 모자람없는 음악적 성취를 기쁘게 누리고 즐기기만 하면 좋았을 걸, 삶의 균형을 맞춰줘야겠다는 듯 고통 또한 딱 그만큼 주어진 것 같으니 한편으로 안타까운 마음이  들기도 한다.

 

이 책에서 아쉬운 건, 연대기별로 시시콜콜히 나열된 그 무수한 팩트들을 수집한 저자의 노고는 분명히 인정을 해야겠지만, 이 전기 자체를 하나의 작품(츠바이크가 쓴 전기들처럼)으로 만들지는 못했다는 것, 그리고 번역문이 어색해 읽기 불편했다는 것.

그래도 빌 에반스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하나의 좋은 참고서가 되줄 수는 있겠다.

(정말 꼼꼼히도, 언제 어디서 누구들과 어떻게 만나 어떤 곡들을 연주하고, 녹음하고 했는지, 또 각 곡과 음반들이 만들어지는 배경과 그의 음악의 테크니컬한 부분들이 설명되고 묘사돼있다.)

 

그의 음악을 오랜만에 다시 듣는 중.

앨범을 다 갖고있던 게 아니라 전에 못 들었던, 몰랐던 곡들도 mp3로 저렴히 다운 받았는데, 역시!.

수많은 어마무시한 명곡들을 감탄 속에 듣고있다.

'israel', 'moon beams'. 'conversations with myself', 'alone' 같은 앨범들. 뒤로 갈수록 훨씬 서정적이고, 삶의 얘기를 들어서인가, 어쩐지 애상도 느껴지고, 솔로 피아노곡들도 너무 좋고...

음악을 듣고 책을 다시 읽으면 아마 책속에 쓰여진 내용들이 더 생생히 다가오겠지..

 

그 중 유튜브에서 몇 몇곡들 뽑아보자면...

 Peace Piece http://www.youtube.com/watch?v=Nv2GgV34qIg&feature=player_detailpage

Jade Visions (take 2) http://www.youtube.com/watch?feature=player_detailpage&v=09LgkX6_ebU

Blue in Green http://www.youtube.com/watch?feature=player_detailpage&v=mW_7gRH7ASE

B Minor Waltz (For Ellaine) http://www.youtube.com/watch?feature=player_detailpage&v=ZelS5XJmStM

Summertime http://www.youtube.com/watch?feature=player_detailpage&v=VcPGtJB6_D8

I Loves You, Porgy http://www.youtube.com/watch?feature=player_detailpage&v=qiub38ys-FA

The Peacocks http://www.youtube.com/watch?v=-BIlJRa-1pw&feature=player_detailpage

What is there to say? http://www.youtube.com/watch?feature=player_detailpage&v=7Fq1R-e5xiA

We will meet again (for Harry) http://www.youtube.com/watch?feature=player_detailpage&v=IVXsfzl-9wM

In Love In Vain http://www.youtube.com/watch?feature=player_detailpage&v=YyYdQdwqAHA

Quiet Now http://www.youtube.com/watch?feature=player_detailpage&v=6iNxFOmTlF0

N.Y.C.'s no Lark http://www.youtube.com/watch?feature=player_detailpage&v=y_PTS_T78o8

Midnight Mood http://www.youtube.com/watch?feature=player_detailpage&v=v5JMZkk62_E

 

 

그리고 빌 에반스 트리오의 라이브 연주와 인터뷰...

Bill Evans Trio on Jazz 625 FULL http://www.youtube.com/watch?feature=player_detailpage&v=xqCBFC1Jr0w

Nardis http://www.youtube.com/watch?feature=player_detailpage&v=kcMWov0_TAE

I Do It For Your Love (tune2) http://www.youtube.com/watch?v=WDhvCLYJfX8&feature=player_detailpage

 

 

 

'지성과 스윙감, 세련미와 시성사이의 완벽한 균형감.., 음색의 무한한 음영.., 느낌은 있으되 결코 눈물에 호소하는 법은 없다.., 화음의 풍미, 탄력.., 탁월한 해석, 완전무결한 틀로 짜여진 사운드.., 절제의 전형.., 깊은 생각에 잠긴 듯한..,  '

 

 '빌, 스콧, 그리고 폴 모티안이 함깨 하면 그들은 무얼 할 것인가를 미리 알고 있는 듯했으며, 즉석에서 만들어진 사운드를 갖고 있었다. 그것은 즉각적인 신뢰감이었다'

 

 '...라파로, 모티안, 그리고 에반스는 모두 각자의 독특한 스타일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동시성을 갖고 연주했다. 각각의 연주자는 늘 자신의 깊은 내면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듯 보였지만 음악을 전체적으로 듣고 있었으며, 마치 고도의 유기체처럼 나머지 두 명과 상호작용을 계속해나갔다..."

 

"사람들이 재즈를 지적인 이론으로 분석하려고 할 때 난 당혹스럽다. 그건 아니다. 재즈는 느낌이다."

 

'어떤 음악을 재즈라고 부를 수 있는가? 변함없이 명료하게, 그는 고전음악에서 실종된 즉흥 예술에 대해 언급하면서 그것을 재즈라고 불렀다.'

 

"재즈는 내게 있어서 '어떻게'이다. 그것은 정서적인 것 혹은 특별히, 음악적인 것은 물론이고 선율과 내용에 관한 실질적인 설정없이 이뤄지는 연주이다"

 

'그는 종종 자신의 예술에 대해 전망, 구성, 색채를 언급하면서 화가의 그것에 비유하곤 했다. "하지만 화가는 그림을 그리는 순간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야 한다. 그래서 그의 작품에서 보여주게 되는 것은 그의 인간적인 측면이다. 그 점은 내게도 정확하게 일치한다. 난 기술적인 개념으로 생각하지만 내가 연주하는 것은 인간이다"..'

 

'무엇보다 우선했던 그의 생각은 자신이 만족하는 음악을 연주하는 것이며, 그 길 가운데서 청중과 만남이 이뤄지길 기대했던 것이다..."완벽하게 개인적이며 내면의 귀를 위해 음악을 연주하고픈 강렬한 욕망과 자신 안에서 그러한 음악이 발견되었다는 환희를 표현하고픈 강렬한 욕망 사이에서 갈등하는" 에반스 특유의 딜레마...'

 

"내 삶에 있어서 가장 커다란 기쁨의 시간은 아마도 나의 피아노 연주 능력이 완벽하게 표현된 음악적 매개체가 되었을 때.... 오로지 음악과 함께 혼자 있었던 수많은 시간들이 내 삶이 나아가야 할 에너지를 한데 모아줬다는 생각이 든다. 홀로 연주하면서 혼자 있다는 느낌에 도달했을 때, 음악의 기술적이며 분석적인 측면들은 하나의 적극적인 진실이 되어 내게 다가온다. 그 진실은 음악을 가장 심오하게 이해한다는 것은 그 음악을 잘 감상했을 때만이 가능하다는 사실... 나는 직업연주자임에도 특이하게 청중이 없는 곳에서 연주하는 것을 더 좋아한다. 의사소통하는가 하지않는가는 내게 별로 중요한 문제가 아니며, 오히려 훈련과 집중력을 통해 나의 자아의식을 극복하는 것이 문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