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3-11-16 ~ 2024-05-19 국립현대미술관
기하학적 추상미술은 기하학적 형태, 원색의 색채, 화면의 평면성을 강조하는 회화의 한 경향이다. 서구에서는 피에트 몬드리안(Piet Mondrian), 바실리 칸딘스키(Wassily Kandinsky), 카지미르 말레비치(Kazimir Malevich)의 작업을 통해 기하학적 추상이 처음 등장했고, 20세기 내내 현대미술의 주요한 경향으로 여겨졌다. 국내에서도 기하학적 추상은 1920~30년대에 처음 등장해 한국 미술사의 주요 변곡점마다 각기 다른 양상으로 존재해 왔고, 1960년대 말부터 1970년대 중엽까지는 기하학적 추상의 시기로 불릴 만큼 이러한 경향이 확산하기도 했다. 이에 비해 기하학적 추상에 대해서는 장식적인 미술이라거나 한국적인 정서와는 거리가 먼 예술이라는 평가가 늘 뒤따랐고, 그로 인해 한국 미술사에서 중요도가 다소 낮게 평가되어 온 측면이 있다.
«한국의 기하학적 추상미술»은 1920년대부터 1970년대를 중심으로 국내에서 전개된 기하학적 추상미술의 역사를 조망하고자 마련되었다. 특히 이번 전시에서는 기하학적 추상이 미술의 영역을 넘어 건축이나 디자인 등 연관 분야와 접점을 형성해 왔고, 당대 한국 사회의 변화와도 연동하면서 한국 미술의 외연을 확장하는 역할을 해왔다는 점을 부각해 소개하고자 한다. 추상은 외부 세계의 모습이나 사회적 현실과 무관한 미술로 알려져 있지만, 실상 한 시대의 산물이다. 기하학적 추상 역시 그것이 만들어진 당대 한국의 사회적, 역사적 상황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이번 전시가 기하학적 추상미술을 통해 당대 한국의 사회적, 역사적 상황을 되돌아보는 흥미로운 탐색의 시간이 되기를 기대한다. 이를 계기로 한국의 기하학적 추상미술이 지닌 의미와 독자성 또한 드러날 수 있기를 바란다.
1. 새로움과 혁신, 근대의 감각
1920-30년대는 서구의 기하학적 추상이 직간접적으로 한국에 유입되면서 미술과 디자인, 문화의 영역으로까지 확장된 시기.
당시 창작자들에게 기하학적 추상은 새로움과 혁신의 감각으로 인식되었다.
동시에, 순수미술과 디자인 사이에 위치한 경계선 위의 미술로 받아들여지며, 이를 둘러싼 여러 논쟁을 촉발하기도 한다.
전시장을 들어서자마자 관람객을 맞이해주는 김환기의 론도.
김환기. 론도. 1938. 61X71.5.
기하학적 추상미술의 컨셉에 맞춰 심플하고 정돈된 디스플레이들.
시인 이상의 디자인 작품들. 그는 시인이기 이전에 건축학도였다. 그래서 그렇게 시도 조형적이었나?
이상이 디자인한 김기림의 '기상도' 장정. 군더더기를 버리고 이렇게 심플하기가 쉽지않은데..
당대 최첨단이었을 백화점. 백화점 평면도? 투시도? 위에 그때의 그 장소의 사진을 전시해 당시의 시대상을 느껴볼 수 있게 하고, 이를 소재로 한 이상의 시를 싣고.. 이렇게 다면적인 관람경험을 제공하는 디스플레이가 좋았다.
..미츠코시 백화점 내외부의 기하학적 외형을 언어를 통해 묘사하는 이 시에는, 공간을 이동하는 화자의 시선이 반영되어 있다.
백화점에서 판매하는 비누, 양말, 향수 같은 상품들을 구경하다가 옥상정원에서 도시의 외경을 바라본 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와, 헤드라이트를 켠 채 달리는 자동차들이 즐비한 거리로 나서는 화자의 시선을 따라가는 듯한 이 시는, 백화점이라는 공간이 당대의 사람들에게 기하학적인 디자인과 건축을 입체적으로 체험할 수 있게 해주는 공간이었음을 알려준다.
1931년 창간된 국내 최초의 종합잡지, '개벽'이 강제 폐간된 후 '혜성'을 거쳐 '제일선'으로 재발간. 침체된 문예의 부흥을 위한 제일선이 될 것을 표방. 기하추상이 근대의 혁신적 이미지와 계몽의 이념을 시각적으로 전달하는데 적합하다는 판단에 기반해 잡지 표지로 기하추상의 이미지가 자주 적용됐다. 김규택 디자인.
그런데 색감이, 전시 뒷부분의 기하학적 추상 섹션의 그림들도 그렇지만 너무 정제되지 않은 원색들의 조합이어서 촌스럽다는 느낌. 이런 색조합을 한국적이라고 생각한 걸까? 오히려 왜색 느낌이 나는 것 같은데.
그에 비하면 동시대의 김환기는 이미 얼마나 세련된 색을 구사하고 있었나 새삼 감탄.
2.한국의 바우하우스를 꿈꾸며, 신조형파
화가와 건축가, 디자이너들이 연합해서 만든 신조형파는 건축을 기반으로 순수미술과 응용미술, 예술과 기술을 통합하고자 했던 독일의 건축예술 학교 ’바우하우스‘를 모델로 삼아 1957년에 만들어졌다.
바우하우스가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새로운 시대를 여는 과정에서 미술가, 건축가, 디자이너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점을 인식했던 것처럼, 신조형파 작가들 역시 한국전쟁 이후 파괴된 나라를 다시 세우는 과정에서 미술과 건축, 디자인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를 모색하려 했다.
이런 이들에게, 과학과 기술이 발전한 현대사회에 어울리는 미술은 합리적인 기준과 질서를 바탕으로 하는 기하학적 추상미술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작품을 단순한 미술품으로 전시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산업 생산품에도 적용해 경제적 이익을 창출하고자 했다. 이를 통해 전쟁 복구에 여념이 없었던 국가의 발전에 이바지하는 것이 신조형파의 최종적인 목표였다고 할 수 있다.
신조형파의 규약들. 그들의 고민과 다짐이 느껴진다. 이런 자료들이 남아있다는 게 신기.
변영원. 생-오브제-직기공장의 백주. 제1회 신조형파전 출품작.
황규백, 변희천. 제1회 신조형파전 출품작들.
메조틴트의 황규백이 초창기엔 이런 작품을 했구나..
왼쪽부터 김충선, 조병현, 이상욱
변희천. 1960. 89X79.5
1세대 추상미술가. 신조형파 결성을 주도. 주로 풍경을 평면화, 단순화하며 추상을 만들어갔다.
마치 조각보같은 작품. 면분할과 색의 구성이 좋아 한참을 본 작품.
이기원. 투영. 1975. 160X130
류경채. 축전 91-9. 1991. 128.5X151.5
축전이라는 제목이 맞나? 달 같고 해 같은 심플하면서도 꽉 찬 구성과 잔잔한 마티에르감, 색감이 좋았다. 고요하면서도 충만한 느낌.
류경채. 날. 1979.
하나는 색면을 채우고 하나는 색면을 지워 비운, 그림이 변화하는 과정을 볼 수 있어 재미있다.
유영국의 초기작들. 마침 도슨트의 설명이 있었는데, 대부분의 화가들이 구상에서 시작해 점차 추상으로 넘어가는데 비해 유영국은 오히려 완전 추상에서 시작해 점차 반추상으로 변모한 드문 케이스라고.
부조 작품들은 제대로 보존된 게 없어 자료를 바탕으로 딸인 유리지가 재제작한 것들.
3.산과 달, 마음의 기하학
작품. 1974. 136X136.5.
산. 1972. 133X133.
같은 섹션의 김환기의 작품들.
유영국, 김환기, 보고 또 봐도 또 보고 싶은 언제나 반가운 작품들.
전성배. 광배 만다라. 1991. 139X96.5.
아슴 아슴, 저 내면에서 빛이 배어져나오는 듯한 그림. 그는 전형필의 아들이라네.
간송 전형필의 아들이기도 한 그는, 미국으로 미술 유학을 떠났던 1세대 화가.
1934년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대 미대에 다니던 중 터진 전쟁 때문에 부산으로 피난을 갔다가 그곳에서 미국 대사관이 주최한 유학생 시험에 합격해 미국으로 떠난다.
밀즈 칼리지에서 석사 과정을 밟던 중, 대학의 만다라 컬렉션을 접하고, 만다라가 지닌 정신적이면서도 우주적인 의미에 매료돼 이후, 5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만다라라는 주제 아래 자연과 인간, 우주의 신비를 펼쳐낸다.
기하학 문양이 대칭적으로 반복되는 일반적인 만다라 그림과는 달리, 스밈과 울림을 강조하면서 동양적인 철학을 표현했고 특히, ‹색동 만다라› 시리즈는 색동이라는 한국적인 전통적 색감을 만다라의 기하학적 조형 속에 녹여내고 있다.
4. 기하학적 추상의 시대
1960년대 후반부터 1970년대 중반까지 한국의 기하학적 추상은 청년 작가부터 기성 미술가에 이르기까지, 세대와 관계없이 전방위적으로 퍼져나갔다.
미술계 내부적으로는 앵포르멜 이후의 미술을 모색하면서 그 대척점에 있는 기하학적 추상이 부상하게 되며, 산업과 건설, 과학의 발전을 통해 나라를 부강하게 만들고자 했던 이 시대의 열망이 기하학적 추상이라는 표현 양식과 맞아떨어지면서, 시대적 상황을 반영하는 미술로 떠오르게 된다.
재미난 사진. '행동하는 화가', '국립미술관 하나 없는 한국', '보십시오 무료입장' 등 등의 문구들.
1967년 개최된 '한국청년작가연립전' 전시 당일 이루어진 피켓 시위. 설명에, 기성 미술을 타개할 대안으로 오브제 미술, 해프닝, 기하학적 추상등이 상정됐다 한다. 전시장 모니터에, 우산 끝에 초를 달고 그 초를 다같이 불어 끈 다음에 우산을 밟아 부수는 해프닝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이태현. 공간 70-1.1970. 139.5X129.5.
너무 원색적이어서 거슬리던 이 섹션의 작품들 중 좋았던 모노톤의 작품 . 규칙적인 듯 불규칙한 듯, 정교한 듯 어수룩한 듯한 화면이 왠지 마음을 끌었다
윤형근, 상파울루 비엔날레 출품 사진.
윤형근은 김중업이나 김수근 같은 당대의 대표적인 건축가들과 교류하며 미술과 건축의 관계성에 주목했다.
홍익대 서양화과를 졸업한 그는, 1969년 «제10회 상파울루 비엔날레»에 ‹69-E8›라는 기하학적 추상 작품을 출품,
1960년대 그의 작품은 밝은 색채의 추상화였으나 1973년, 중앙정보부에 끌려가 고초를 겪은 뒤, 청다색의 어두운 색조에 기반한 표현적인 추상 작품이 주로 제작되기 시작한다. 하지만 1960년대 말에 그려진 기하학적 추상 작품은 이후 그의 대표작이 등장하는 데 있어 밑바탕이 되었다는 점에서 매우 의미 있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윤형근. 제10회 상파울루 비엔날레 출품작. 1969.
도슨트의 설명. 비엔날레에 출품한 사진은 있는데 오랫동안 실재 작품은 행방이 묘연했단다. 얼마 전 화가의 집을 정리하던 중 구석에 둘둘 말려있던 그림을 발견해 이번 전시회를 통해 최초 공개하는 거라고. 아직 구김도 덜 풀려진 상태.
내가 아는 윤형근의 그림은 묵묵한 그림들인데 그도 초창기엔 이런 그림을 그렸던 걸 처음 알게 된다.
박서보.
초창기엔 이런 그림이었구나, 싶다.
대가로 살아남기 위해선 얼마나 큰 도약들이 있어야 됐나. 윤형근도 그렇고 박서보도 그렇고 초기작보다 지금 그림들이 훨, 훨 낫다.
여긴 또 얼마 만에 오는 거더라? 전에 왔을 땐 뭔가 휴업상태처럼 썰렁하다 느꼈는데, 화장실도 리모델링 됐고, 조경도 정성스레 잘 돼 정원도 너무 이쁘고, 신록이 한창인 계절 탓인가? 활기차고 생생한 느낌.
여전히 다다익선은 꺼져있고, 이 좋은 공간에 1층에서만 전시가 이루어지는 게 아쉽다 싶기는 했지만.
로툰다를 따라 오르면 하늘이 열려있는 토종식물 정원이 있고, 정원을 둘러싸고 도넛처럼 동그랗게 동그라미 쉼터가 있어 편안히 거닐며, 쉬며 마음의 여유를 가질 수 있고, 또 옥상에 오르면 사방 전경이 확 트이는 시원한 전망을 얻을 수 있다.
잔디 잘 깔린 조각 공원이며, 잉어들 몰려드는 연못은 앉아 물멍하기, 산멍하기 얼마나 좋은지..
사람이 붐비지 않아 너무 좋기는 하지만, 이 아름다운 공간이 사람들에게 많이 쓰이지 않는 게 아깝기도 하다.
시간이 없어 사진전 못봤으니까 핑계김에 내가 또 와야지..
옥상에서 본 풍경들.
한창 아름다운 신록을 배경으로 쿠사마 야요이의 노란 호박이 더 귀엽네.
비 그친 후 청명한 대기, 어느 덧 해가 어슷해지고 데크에 고인 물 속엔 또 다른 세상이 열렸다.
자연을 능가할 인간의 작품이 있을까? 바람에 일렁이는 물빛에 풀린 저 초록은 사람은 만들 수 없는 색. 커피 한 잔 들고 벤치에 앉아 산 빛 , 물 빛 바라보자면, 세상이 마냥 이러했으면 하는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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