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보의 특강
-김추인
저런, 휘휙 스치는 봄 여름 가을 겨울
내 시간의 회전판은 어지럽고
간단없는 생의 행군은 코뿔소처럼 달리며 꿈 꾸었겠다
나무늘보처럼
세상 모든 느림을 불러 아주 천천히
늘보처럼 나무에서 졸린 눈 뜨고
늘보처럼 나뭇잎이나 질겅이고
내가 밥숟갈을 떠 넣으며 그에게 두 번 눈 흘기고도 모기를 철썩 때려잡는 사이
화면 속 나무늘보는
아직도 이 쪽으로 고개가 돌아오는 중이다
무심한 저 얼굴 한 송이 좀 봐
꽃송이 같지
늘보처럼 돌아보다
길도 잃고 시간표도 잊고
이제사 순금 꽃대를 뽑아 올리는
내 금화란도 좀 봐봐
늘보처럼 엉금엉금 사랑하다
가장 늦게 우리 돌아선다면 생강꽃 같은 이
별, 참 곱겠다
나무늘보처럼 그렇게
―시집 ‘전갈의 땅’(천년의시작) 중에서
동아일보 '이 아침에 만나는 詩'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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