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달도 넘게 전시회가 이어졌지만 미루다 미루다 전시회가 끝나기 얼마 전에야 겨우 시간을 내서 찾아가 볼 수 있었다.
세 군데 미술관에서 전시가 있었지만 시간이 모자라 토탈미술관 것 밖에 못 본 게 아쉽다.
이렇게 독특한 작품은 언제 이후로 처음이라고 말해야할까...와!..하는 마음을 속으로 죽이며 작품들을 봤다.
'봤다'라고 말하는 게 맞는 말인가? '봤다'기보다 '마주했다', 혹은 거기 '있었다'라는 표현이 더 정확할 것 같다.
제임스 터렐. 신문에서던가, 아니면 방송에서던가, 로드코의 그림같은 그의 작품전시소식을 보며 당장 혹해 꼭 봐야지 했었는데 나를 혹하게했던 로드코의 그림같은 작품, 로드코의 2차원그림이 3차원으로 변형된 것 같던 'tall glass'는 오룸갤러리에서 전시돼 미처 못봤다.
로드코의 그림을 보며 일개 물감이 참 묘한 느낌을 준다, 색이라기보다 빛 같다, 라고 생각했었는데 터렐은 빛을 그린다는 느낌.
터렐의 작품은 공간구분이 모호하다.
3차원 공간이 2차원의 회화같고, 2차원의 공간이 3차원으로 뻗어나간다.
거의 빛 밖에는 아무 것도 없다고 해야하는데, 그 앞에서 한참을 떠날 수가 없었다.
tiny town
-1976년 처음 선보인 타이니 타운(Tiny Town) 작업은 터렐의 다른 작업들과 마찬가지로 빛이 환영적으로 작용하여 가상의 공간을 창조합니다.
이 작업에서는 방이 두 개의 공간으로 나누어지는데, 방의 절반은 감각 공간으로, 나머지 절반은 지각 공간으로 구성됩니다. 캄캄한 방안에 들어서서 감각 공간으로부터 새어 나오는 희미한 빛을 지각하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며, 눈이 점차 어둠에 적응하게 되면 앞쪽에 희미한 사각형이 인지됩니다.
원거리에서 보면 그 사각형은 불투명한 표면으로 인해 2차원의 회화작품처럼 보이지만, 점점 다가갈수록 표면은 투명해지며 빛으로 가득 찬 무한한 공간이 모습을 드러냅니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거쳐 관객은 빛과 공간의 존재를 온전하게 체험하게 되며 이를 통해 무한한 경이로움을 느낄 수 있습니다.-
전시장에서 보게되는 첫번째 작품.
갤러리에 들어서니 가이드가 기다린다. 가이드의 안내에 따라 벽을 더듬으며 조명이 없는 검은 통로를 따라 들어가니 깜깜한 방이 하나 나오는데, 간신히 희뿌옇게 그 존재를 알리는 빛이 양쪽 벽에서 최소한도의 빛을 뿌릴 뿐 나머지는 완벽한 어둠. 그 어둠에 익숙해지지않은 눈은 아무 것도 보지 못한다. 눈을 감으나 눈을 뜨나 별로 달라지는 게 하나 없다. 뒤 쪽 어딘가에 의자가 있다고 거기 앉으라는데 통 공간에 대한 감을 잡을 수 없어 가만 서있자니 먼저 와있던 관람객이 내 손을 끌어 의자에 앉힌다. 그런 완벽한 어둠은 언제봤던가? 전시장 구석에 놓인 의자에 앉아 아무 것도 보이지않는 것을 보고있자니, 글쎄...눈이 아무 정보도 끌어들이지않으니 머리가 생각을 멈춘다. 어둠 속에서 왠지 편안히 고요해지는 마음.
그렇게 한동안 있으니 저 앞에 서서히 부염한 사각의 면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여전히 방은 깜깜하고 더디게 오는 새벽처럼 그 사각면은 좀체로 밝아지지 않는다. 그냥 아무 생각없이 그 사각면을 바라보고 있다가 그 정체가 뭔가 하고 다가가봤다. 사각의 판넬이라고 생각했던 그 면은 다가가보니 사각형으로 뻥 뚫린 공간이다. 그 속은 뿌연 안개속. 희부염한 빛이 어디서 오는지 알 도리가 없고 그 안의 공간의 크기도 영 가늠할 수가 없다. 만일 그 안으로 발을 들여놓으면 영영 이 세계로 돌아올 수 없을 것도 같은, 이승과 저승의 중간세계같던 공간.
그 뒤로 본 다른 작품들도 그렇고, 그의 작품은 공간자체다. 차원이 다른 세계. 미지의 세계를 창조한다.
Shallow Space
-섈로우 스페이스(Shallow Space)는 월 프로젝션(Wall Projection)작업에서 발전한 작품으로, 관객이 차지하는 공간을 보다 건축적으로 조작함으로써, 지각은 공간의 물리적인 한계에 구속되지 않음을 보여줍니다.
프로젝션(Projection) 작업과 마찬가지로 관객의 공간지각에 관한 문제를 다루지만, 프로젝션이 평면에서 공간을 이끌어내려고 한 반면, 섈로우 스페이스는 공간을 좀더 건축적으로 사용하여 3차원에서 2차원의 평면을 끌어냅니다.
이 작품은 막다른 벽면으로부터 다양한 거리를 두어 파티션 벽(partition wall)을 설치하고, 파티션 벽의 뒤쪽으로부터 흘러나온 빛이 방 전체로 퍼지도록 했습니다. 원거리에서 보면 기존의 벽과 파티션 벽 사이의 공간감은 사라지고 실제로 공간은 어느 각도에서 바라보아도 평편한 것으로 인식됩니다.
즉, 3차원의 공간에 빛을 비추어 2차원적인 구성을 시사하는데, 공간의 물리적인 한계에 따른 입체감이 환영적으로 작용하여 가상의 공간을 생성합니다.-
그 다음으로 보게 되는 또다른 방.
이번엔 좁은 입구로 들어서니 온통 푸른 빛으로 가득한 방이다.
푸르스름한 빛으로 가득하지만, 그 빛은 원래 푸른 것이라기 보다 너무 희어서 푸르러진 것 같은 푸름이다. 온 몸이 그 푸름에 물이 들 것 같다.
전의 작품에서 어둠에 잠겨있었다면 여기선 빛에 잠긴 느낌.
방 한구석에 가방 팽개치고 바닥에 앉아 한참을 있었다.
눈도 깜박이지않고 빛이 새어나오는 전면을 응시하다보면 눈의 착시로 그 화면조차 사라지고 푸른 공간이 무한히 확장돼나가기도 했다.
삼매에 든 사람의 머리 속 같던 공간.
Magnatron
-마그나트론(Magnatron)은 작은 직사각형 모양의 개방된 틈 너머로 뻗어 나오는 빛을 감상할 수 있는 작품입니다. 이 작품에서 사용된 광원은 다양한 프로그램이 상영되도록 조작된 텔레비전입니다.
표준 텔레비전 화면의 크기와 모양으로 절단된 틈 너머, 감각공간 안에는 바닥에 놓인 텔레비전에서 생성된 빛이 존재합니다. 관객은 일상생활에서 미처 자각하지 못했던 빛의 존재를 인지하게 되며, 각 프로그램이 고유의 독특한 색채의 빛을 발산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먼저의 두 방에 비해 상당히 작은 방. 앞에 모니터화면이 하나 있고 방 한가운데 덩그라니 의자가 놓여져있다.
의자에 털썩 앉아 또 망연히 앞의 화면을 응시한다. 그 화면에선 아무 영상도 뜨지않고 빛의 색만이 변한다. 텔레비전의 그 무수한 이미지들 다 사라지고 색조만 남아있듯 복잡다단한 우리의 '삶'이라는 것도 결국 어쩌면 그렇게 단순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
이것도 화면에 다가가보면 그건 사각으로 뚫린 공간이다. 그 너머는 또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안개의 공간.
Jadito
-빛과 공간에 대한 작가의 관심은 1960년대 후반, 어두운 공간의 벽면과 모서리에 프로젝터로 빛을 투사하여 기하학적인 형상을 보여주는 프로젝션(Projection) 작업을 통해 처음 선보였습니다.
프로젝션 작업은 모서리에 빛을 투사한 크로스코너 프로젝션(Cross-corner Projection) 작업과 벽면에 빛을 투사한 월 프로젝션(Single-wall Projection) 작업으로 구분되는데, 이번에 전시되는 "자디토(Jadito)" 는 월 프로젝션 작업입니다. 프로젝터의 빛으로부터 생성된 사각형은 바닥에 부유하고 있는 듯 보이면서도 한편으론, 벽에 베어 든 것처럼 보입니다.
흔들거리는 사각형은 관객으로 하여금 본다는 행위(seeing)에 집중하게 하며, 머지않아 작품을 바라보는 자신에게 집중하게 합니다.-
이번엔 붉은 공간. 노을같다.
Wedgework
-웨지워크(Wedgework) 시리즈는 섈로우 스페이스(Shallow Space)의 파티션 벽(Partition wall)을 축소시켜 방 중앙으로 이동시키면서 시작되었습니다.
파티션 벽의 한쪽 모서리를 비스듬히 다듬고 그 뒤에 형광등의 광원을 엇각으로 배치하여, 다듬어진 날의 뒤쪽으로부터 빛이 흘러나오도록 했는데, 이 빛은 방을 쐐기모양으로 분할하는 빛의 스크린을 만들어냅니다.
이번에 전시되는 "타프트(Taft)"에서는 방을 이등분하는 위치에 파티션 벽을 설치하고 빛의 스크린이 방의 절반을 대각선으로 분할하도록 했습니다. 이 빛의 스크린은 투명한 유리로 된 필름처럼 보이며 스크린 너머로 빛으로 가득 찬 미지의 공간을 암시합니다. 파티션 벽 뒤쪽에 어떠한 광원의 조합을 사용하느냐에 따라 관객은 매우 다양한 색의 스펙트럼을 지각할 수 있습니다. -
이 방도 참 묘했던 공간. 직사각으로 뚫린 공간에 대각으로 벽이 설치돼있고 그 뚫린 공간 저 안쪽에서 푸르고 붉은 어슴프레한 빛이 새어나온다. 그 벽은 길 같아 따라들어오라는 듯했고, 역시 그리로 들어서면 웜홀을 통과하듯 다른 세계로 빠져나갈 것 같은 느낌을 줬었다.
hologram
눈은 속는데 카메라는 속지않는구나.
원래는 판넬 앞을 천천히 움직여가다보면 화면 속의 빛이 3차원공간으로 튀어나오거나 평면속으로 쑥 들어가보이는 작품.
어떤 원리인지는 모르겠지만 마술같던 작품.
Tall Glass
-톨 글라스(Tall Glass)는 설치된 조명 빛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서서히 변화되도록 만들어진 작품으로, 빛의 미세한 색채와 강도의 변화를 통해 빛의 존재를 인지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커다란 사각형의 표면에서 발산되는 다양한 색깔의 빛은 마치 빛으로 그려진 회화작품 같은 인상을 줍니다.
여러 색으로 서서히 변화하면서 드러났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하는 그 추상적인 빛 그림을 모두 감상하려면 세시간 가량이 소요됩니다. 약한 빛의 강도와 느린 색채 변화로 인해 관객의 눈은 실제로는 보이지 않는 색을 지각하게 되며, 이를 통해 '지각'이란 단순히 눈에 보이는 것을 인지하는 것 이상이라는 것을 체험하게 됩니다 -
꼭 보고싶던 작품이었는데 아쉽다...
raetro ll.
Skyspace
-쉼박물관에 설치된 스카이스페이스(Skyspace)는 일본의 나오시마와 뉴욕 PS1에 설치된 작품들과 같은 시리즈의 작품으로 내부로부터 개방된 천정을 통해 시시각각 변화하는 하늘의 모습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이 작품은 하늘(sky)이라는 공간(space)을 천장의 개방된 틈과 동일한 평면으로 가져 옴으로써, 내부 공간과 외부 공간의 연결을 다룹니다. 이 개방된 틈 너머의 정의할 수 없는 공간은 하늘의 상태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다양한 모습으로 변화하며, 그 변화 양상이 최고조에 이르는 시점은 낮에서 밤으로 바뀌는 순간입니다. 기존 작업의 한정된 공간을 하늘과 대기로 확장함으로써 대자연을 예술로 끌어들인 작품입니다.-
이 설명을 읽고서야 안도 타다오의 나오시마미술관의 터렐의 작품이 무엇인지 알게됐다.
사진을 보고, 작가 제임스 터렐이라고 돼있는 걸 봤으면서도 천정이 뚫려 하늘이 보이게돼있던 그 구조가 원래 안도타다오의 디자인으로 건축물 자체디자인인 줄 알고있었으니까...
두, 세시간쯤 빛외에 아무 것도 없던 그의 공간안에 머물다 미술관 밖으로 나오니 새삼 눈에 보이는 인간세상이 왜 그렇게 번다하고 잡다하던지...
정말 특별했던 경험.
[James Turrell Statement and short Biography]
P:S-작품설명들은 오룸갤러리 홀페이지에서... www.oroomgallery.com
1943
Born May 6, 1943, Los Angeles, California
1961
Graduated Pasadena High School
1965
BA Psychology, Pomona College
1965-1966
Art Graduate Studies, University of California, Irvine
1973
MA Art, Claremont Graduate School
He currently lives and works in Flagstaff, Arizona.
"My work is about space and the light that inhabits it. It is about how you can confront that space and plumb it. It is about your seeing, like the wordless thought that comes from looking in a fire." James Turrell
James Turrell is an internationally acclaimed light and space artist whose work can be found in collections worldwide. Over more than four decades, he has created striking works that play with perception and the effect of light within a created space. His fascination with the phenomena of light is related to his personal, inward search for mankind's place in the universe. Influenced by his Quaker upbringing, which he characterizes as having a 'straightforward, strict presentation of the sublime', Turrell's art prompts greater selfawareness though a similar discipline of silent contemplation, patience, and meditation.
Turrell began his artistic career in California in the early 1960s as one of the leaders of a new group of artists working with light and space. Over the past two decades, his work has been recognized in exhibitions in major museums around the world, including the Guggenheim Museum, Whitney Museum of American Art in New York;Museum of Contemporary Art, Los Angeles, San Francisco Museum of Modern Art, California and the Panza di Biumo Collection, Varese, Italy.
Whether harnessing the light at sunset or transforming the glow of a television set into a fluctuating portal, Turrell's art places viewers in a realm of pure experience. His large-scale, motion across expanses of ocean, desert, and city. The recipient of several prestigious awards such as the Guggenheim and MacArthur Fellowships, Turrell currently resides in Flagstaff, Arizona, in order to oversee the completion of his most important work, a monumental land art project at Roden Crater, an extinct volcano the artist has been transforming into a naked-eye celestial observatory for the past 33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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