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쉬 카푸어:1954, 인도 뭄바이출생.
성장과정을 통해 자연스럽게 동서양의 사상과 문화를 두루 접해 특정한 예술 형식을 좇기보다 보편적인 예술 개념과 정서를 작업에 담는다. 1970년대 후반, 특유의 근원적이고 명상적인 작업으로 시작된 카푸어의 예술에는 존재와 부재, 안과 밖, 비움을 통한 채움, 육체를 통한 정신성의 고양등 이질적이거나 상반된 요소들이 대비를 이루며 서로 공존, 소통한다.
1980년대 초, 주목받는 신인으로 등장해 1990년 베니스비엔날레 영국관 작가로서 프레미오 2000상 수상, 1991년 터너상을 수상하며 입지를 다진 그는 2002년, 테이트 모던의 <마르시아스>, 시카고 밀레니엄 공원의 <클라우드 게이트>, 뉴욕 공공조형물 프로젝트인 <하늘거울>, 2011년 파리 그랑팔레에서의 <리바이어던>, 2012 런던 올림픽기념 조형물 <오빗>등으로 역량을 발휘하고있다.-
cave: cor ten steel-551X800X805cm-2012
-늘 새로운 재료를 탐구하는 카푸어의 코텐스틸 시리즈 중 2012년 5월에 발표된 신작. 13톤에 이르는 거대한 타원형의 철구조물이 쇠막대 위에 얹혀져있다. 작품 앞에 선 우리의 머리위를 뒤덮는 어둠은 경이로움과 두려움을 동시에 안겨 주어, 다분히 거칠고 물질성 강한 작품임에도 미묘한 심리적 효과를 자아낸다.-
'머리위를 뒤덮는 어둠'이었으면 좋았을 걸, 실은 내부가 그다지 어둡진 않아 효과 반감. 커다란 매스가 신비롭긴 하다. 겉에서만 볼 게 아니라 그 내부로 들어가 있을 수 있으면 그 느낌이 더 확실했을 것을.
무제
직경 2M쯤의 오목거울. 오목거울은 상을 거꾸로 맺는다. 불균질한 표면은 상을 왜곡시키고, 그 앞에서 위치를 조금씩 바꿀 때마다 일그러진 형상들의 유희가 변화무쌍하다.
to reflect an intimate part of the red: 혼합재료와 안료-1981
-붉은 색의 은밀한 부분을 반영하기. 1979년 카푸어가 인도를 여행하며 힌두교 사원 근처의 의식과 축제에 사용하는 색색의 안료더미에 영감을 받아 만든 작품. 이 작품은 대표적 분말안료 작품으로, 강렬한 원색의 안료가 형상들과 그주변 바닥까지 뒤덮고있다. 마치 바닥에서 솟아난 듯 보이는 이 형상들은 빙산의 일각처럼, 보이지 않는 세계를 암시적으로 포괄한다.-
인도적인 느낌 물씬하던 작품. 사원의 스투파, 꽃봉오리, 해시계 같은 모습들. 그냥 오브제로 놓여있었으면 그저 그랬을 것 같은데, 주변에 안료들을 뿌려 그 오브제들이 땅으로 녹아드는 중이거나 솟아나는 중인 것 같은, 완성이나 정지가 아닌 과정, 시간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게다기 이런 순색들... 다른 색이 끼어들지않은 온전한 빨강, 온전한 노랑은 그 색이 주는 활기, 에너지가 있었다.
무제:섬유유리와 안료(fiberglass, pigments)-250X250X167cm each-1990
-1980년대부터 시작된 보이드 시리즈 중 하나로 조각의 오랜 관습을 벗어나 조각의 내부로 함몰된 음의 공간을 다룬다. 창조와 탄생의 공간을 은유하는 오목한 반구 형태는 여성의 자궁, 또는 어머니의 가슴을 암시하는 것일 수도 있다. 빛을 흡수해버리는 짙은 파란 색 가루 안료로 뒤덮인 내부는 깊이를 가늠하기 어려운 검푸른 심연을 만들어낸다. 이는 공간의 물리적인 깊이의 한계를 넘어 숭고함과 경외감을 일으키는 무한한 공간으로 확장되며 근원적 체험을 유도한다.-
이번 전시 중 개인적으로 제일 좋았던 작품. 줄 서서 기다렸다가 차례로 몇 명씩 들어가 보던 작품. 스케일을 보니 지름 2.5M, 깊이 167cm짜리 반구. 파란 안료로 칠했다는데 그 안료가 도대체 어떤 안료인지 무지 궁금해지던 작품이다. 반구 앞에 바싹 다가서면 지름 2.5M정도의 원의 면적이 거의 눈의 사각을 다 커버해 원만 보이는데 그 원 안은 완전 어둠이다. 어떤 안료이기에 그렇게 빛을 완전히 흡수해버리지? 분명 환한 전시장 안에 오픈된 채로 놓여있는데 어떻게 그렇게 한 톨의 빛도 거기 끼어들지 못하는 건지... 그 앞에 서서 원 안을 들여다보노라면 마치 작은 블랙홀을 보고있는 느낌이었다. 말 그대로 아무 것도 없는 게 아니라 어둠으로 꽉 찬 느낌. 꽉 찬 어둠이 마음을 텅 비게 한다.
when I am pregnant:혼합재료-180.5X180.5X43cm-1992
이거 전시장에 있었나? 난 못 봤는데 팜플렛엔 실려있다. 역보이드. 블랙홀에 대한 화이트홀. 한 차원에서의 탄생은 다른 차원에서의 죽음, 한 차원에서의 죽음은 다른 차원에서의 탄생.
yellow:섬유유리와 안료-600X600X300cm-1999
-6m정방형의 샛노란 표면은 모노크롬 회화이면서 네거티브 형태의 조각이고, 미술품이면서 건축물의 일부로 벽면과 동화되어 있다. 빛을 발하는 거대한 색채 앞에서 우리는 예술의 관습화된 경계를 넘어서는 새로운 인식의 세게를 체험하는 동시에 경이로움과 숭고함을 느끼게 된다.-
가로, 세로 6M의 크기. 앞에 서면 어마어마하다. 또다시, 이 안료는 어떤 안료라는 거지? 전혀 빛반사가 없이 너무나 부드럽게 스며들어있는 색이다. 폭 들어간 동그란 공간은 거기서 만물이 탄생할 신의 배꼽같다. 태양같은 노랑. 한없이 따스한 힐링에너지.
전시장에 있던 작품은 이와 유사한데 다만 'ㄷ'자 형으로 내부가 파여있던 작품. 제목은 모르겠고, 이 역시 그 파인 공간안으로 들어가야 제대로 작품을 느낄 것 강았는데 밖에 선을 그어 막아놓아서 아쉽던 작품.
the healing of saint Tomas-1999
예수의 옆구리를 찔러 보고서야 그 실체를 믿은 도마이야기. 너무 즉물적 묘사라 그저 그럼. 아니면 상처 또한 하나의 보이드로 본 건가?
the earth:섬유유리, 안료-D65X100cm-1991
바닥의 검은 원은 그려진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바닥 밑으로 뚫려있는 깊이를 가늠하기 어려운 어둠의 공간이다. 보이드 작업인 이 작품은 작가의 말처럼 '텅 빈 어두운 공간이 아니라 어둠으로 가득 찬 공간'이다. 첫 작품, <동굴>이 머리 위로 쏟아지는 어둠이라면 수미쌍관처럼 갤러리 끝에 위치한 <땅>의 바닥이 보이지않는 구멍의 깊은 어둠은 추락의 불안감으로 발끝을 예민하게 한다.
이것도 정말 정말 공간이 보이지 않았다. 스케일 설명을 보니 1m나 파였다는데 도무지 깊이를 볼 수가 없던 작품.
my red homeland:왁스, 유성물감, 철구조물, 모터-1200cm-2003
-시계바늘처럼 천천히 한 바퀴를 회전하면서 붉은 왁스 덩어리를 긁고 지나가는 거대한 해머의 궤적을 따라 작품의 형태가 유지된다.
마치 파괴와 창조가 공존하는 순환적인 우주 질서를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듯하다. 이 작품은 '자가생성- auto generation'시리즈의 하나로, 작품이 스스로 생명력을 가진 듯 만들어지는 작업이다. 문자 그대로 붉은 대지와 같은 이 작품은 단순히 모국 인도에 대한 은유라기보다느 ㄴ보편적인 고향으로서의 대지, 탄생의 장으로서의 땅을 은유한다고 볼 수 있다.-
이 붉은 색도 참 인도스러운 색이었다. 엔트로피의 반대처럼 시계추같은 해머가 아주아주 천천히 돌면서 무질서한 공간을 평평히 닦는다.
my body your body:섬유유리, 안료-254X124.5X188.3cm-1999
-오브제 상태로 존재하던 보이드가 벽면으로 삽입된 이 작품은 나의 몸이 곧 너의 몸인 것처럼 벽면과 일체화되어 있다. 붉은 표면의 중심은 깔때기같이 좁고 깊은 구멍이 되어 벽 속으로 들어간다. 서서히 빠져들게 되는 중심부 구멍의 깊고 검붉은 어둠은 우리 몸의 내부로 통하는구멍들, 몸 안의 장기들을 추상적이면서도 강렬하게 상기시킨다.-
그의 보이드들은 구멍이면서 통로같다.
laboratory for a new model of the universe:아크릴-101.6X101.6X99.1cm-2007
이건 그 중 별로...
tall tree and the eye:1500X500X500cm-2009
-2009년 처음 발표된 이 작품은 작가가 애독하던 릴케의 시집<오르페우스에게 바치는 소네트>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되었다. 오르페우스의 신화를 소재로 한 릴케의 시는 삶과 죽음, 이승과 저승, 현실과 이미지로 가득하다. 이 작품은 그 풍성한 시적 이미지들을 담고 있으며, 나무가 높이 솟아오르게 할 만큼 빼어난 오르페우스의 리라 연주를 칭송하는 릴케의 시 구절을 제목으로 차용했다.
또한 거울같은 수십 개의 스테인리스 스틸 공으로 이루어진 이 작품은 그 자체로 하나의 눈이 되어 이미지를 한없이 반영하며 더욱 풍성하게 한다.-
전시회 가기 전 날 눈이 왔었다. 밤 새 내린 눈 깨끗한 채로 밖 정원에 작품 위에 그대로 쌓여있고 아침 햇빛에 녹은 눈이 고드름 되어 매달려 덕분에 참 희안한 작품 구경했다. 눈으로 씻긴 하늘은 얼마나 청명한지, 그 새파란 하늘을 하나하나 다 담고있는 구들은 그러고 보니 무수한 눈들이 세상을 바라보며 말없이 세상을 담고 있는 것도 같고, 또는 무수히 존재할지도 모르는 평행우주들 같기도 했다.
vertigo:220X500X90cm each-2012
-무한의 깊이를 추구하던 보이드 작업은 1995년에 처음으로 시작된 스테인리스스틸 작업을 통해 더 다양한 층위를 갖게 된다.거울 같은 광택을 가진 스틸표면은 인간의 나르시스적 본능을 자극하며 우리를 작품 속으로 끌어들임과 동시에 우리의 공간으로 침투한다. 특히 오목거울에 비친 이미지는 뒤집히거나 분열되면서 보는 이의 시공간을 해체하는데, 이 순간 작품의 물질성은 사라지고, 작가가 말하는 'non-objet'의 상태에 이른다.-
서로 마주 보고있는(아니 등을 대고 있다고 해야 하나?) 거울같은 표면은 서로가 비춘 영상을 깊이로 깊이로 무한반복한다.오목한 면은 영상을 거꾸로 맺고, 볼록한 면은 영상을 바로 맺고... 하나의 외부가 조건에 따라 이렇게 저렇게 다르게 비춰진다. 투명한 표면에 비치는 이미지 자체들은 너무 깨끗하고 아름다웠지만, 거울은 마음의 상징으로 말해지기도 해서인가, 자꾸 우리의 인식의 오류에 대한 비유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나는 또 작품보다도 그 주위에 쌓여 차가운 스틸표면에 되비치며 빛을 발하는 희디 흰 눈에 더 혹해서 언 손을 녹여가며 셔터를 눌렀다. 자연을 능가하는 인간의 작품이 있을 수 있을까?
sky mirror:280cm-2009
하늘 한 조각을 뚝 잘라 앞에 갖다놓았다. 하늘 쳐다보느라 목 아프게 고개 젖힐 필요없이 의자라도 있다면 거기 앉아 턱 괴고서 거꾸로 흐르는 하늘을 바라보고 있으면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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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쉬 카푸어가 인지도가 덜 한 작가였으면 좋을뻔 했다. 아니 아예 무명작가였으면 좋을 뻔 했다. 그래서 어느 신생갤러리의 눈 밝은 큐레이터가 작정하고 기획한 첫 전시면 좋을 뻔 했다. 길을 가다 문득, 처음 보는 갤러리 벽에 붙은 포스터를 보고 '어, 뭐지?"하고 무심히 들어가 본 전시였으면 좋을 뻔 했다. 전시장에 들어섰을 때 데스크 매표원겸 안내원 하나 자리를 지키고 전시장은 텅 비어있으면 좋을 뻔 했다.
전시는 올 2월까지 이어지지만 왠지 지난 해, 해 넘기기 전에 봐야한다는 강박때문에 30일날 리움을 찾았었다. 하필 일요일, 전시장은 사람들로 아글바글했다.
카푸어의 작품은 가보니 보는 작품이 아니라 경험해야하는 작품이다. 조용히 간섭받지않고 천천히 그 하나하나와 대면해 그 앞에 나를 두어봐야했었는데, 와글거리는 사람들을 헤집고 다녀야하고, 또 뒷사람을 위해 한 작품 앞에서 나만의 시간을 오래 가질 수도 없고(내가 작품의 시야를 방해하게 되니), 심지어 언젠가 뉴스에서 본 것처럼 무슨 명품매장 세일 때 입장하듯 줄 서서 기다리다 안내원이 들어오라면 그제서야 들어가 볼 수 있는 작품도 있었다. 그나마 죽 줄 서있는 다른 사람들 때문에 역시 맘껏 감상할 수도 없었고.
그래도 전시는 좋았다. 처음 보는 새로운 컨셉의 작품. 어라, 와!... 여긴 뭔가 있다... 생각을 부르는 작품들.
한 사람이 태어난 배경은 참 커다란 자원이다. 아마도 인도인이기에 가능한 발상들이다 싶다.
미니멀함이 오히려 맥시멈을 품고 있는 작품들이었다.
p.s: 인터넷 검색해보니 공식 홈피가 있는데 그동안의 작품이력이 잘 담겨있다. 차차 차근히 봐야지.
홈피에 들어가보니 아마 한국전시를 위해 준비했나? 싸이의 말춤 패러디영상이 있네.ㅎㅎ.
http://www.youtube.com/watch?v=tcjFzmWLEdQ&feature=youtu.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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