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최재은 '오래된 시'전

바다가는길 2012. 10. 27. 18:34

 

전 시 명 : 오래된 시(국문) / -verse(영문)
전시작가 : 최재은 Jae-Eun Choi
전시일정 : 2012. 10. 25 - 11. 22
전시장소 : 국제갤러리 2관 (K2)

 

-국제갤러리는 일본과 독일을 거점으로 활발히 활동 중인 작가 최재은의 개인전 [-verse 오래된 詩]를 개최한다. 국내에서는 2007년 로댕갤러리 이후 5년 만에 갖는 개인전이다. 최재은은 오래 전부터 조각, 설치, 건축뿐 아니라 사진, 영상, 사운드와 같은 다양한 매체를 통하여 장엄한 스케일과 섬세하고 치밀한 조형성(造形性)을 구현해 왔다.

작가는 2010년 겨울 베를린 이주 후, 하늘을 촬영하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무한(無限)과 대면하게 된다.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Finitude는 해질 무렵부터 새벽녘까지 밤하늘의 움직임을 실시간으로 촬영한 영상과, 작가 자신의 걷는 행위를 사운드화하여 유한(有限)과 무한(無限)을 병치시키고 그 안으로 끊임없이 관객을 끌어들인다. 더불어 일출을 연속 촬영한 사진 Verse_Puglia, Italy, 2012를 통해 순환(循環)의 과정을 명료하게 보여주고 있다. 거리에서 주운 오래된 책의 여백에 일상에서 떠오른 단어와 시구(詩句)를 그려 넣은 작품 The Myriad of things는 각기 다른 종이결과 빛 바랜 세월의 흔적 위에 존재에 대한 사유를 담아내었다. 작업 전반에 걸쳐 시간의 무한한 흐름과 유한성 속에서 그것을 지각하는 인간의 시선, 그리고 삶의 순환에 대해 일관성 있게 다루어왔던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마치 명상과 같은 작업을 통해 인간의 실존에 대한 끊임없는 탐구를 오래된 詩(-verse)로써 가시화하였다-

 

finitude-

독일의 Storkow 밤하늘을 촬영한 세 개의 영상과, 작가가 돌로 뒤덮힌 거리를 걷고 있는 소리로 이루어진 작업.

해질 무렵부터 새벽녘까지 밤하늘의 움직임을 8시간동안 실시간으로 촬영한 영상과 작가 자신의 발자국 소리를 병치시킨 사운드작업은 우리가 인식하지 못한 감각을 일깨우고 귀 기울이게 한다. '유한성'이라는 제목처럼, 마치 진리를 찾아 떠나는 구도자의 발걸음 또는 별 밤을 걷는 방랑자의 그것과 같이 거대한 밤하늘을 대면하는 인간의 소소함을 반추할 기회를 제공한다.-

전시장 실내로 들어서면 발 밑이 안보일 정도로 깜깜한 실내에 입구쪽을 제외한 삼면의 벽에 각기 3mX5m 쯤의 커다란 밤하늘 사진이 걸려있다.

저렇게 많은 별들은 본적이 없는데, 와!... 하며 다가가보면 사진처럼 보이는 화면은 사실은 동영상이다.

나중에 읽은 작품설명처럼 실시간의 하늘을 그대로 찍은 영상.

황혼에서 새벽까지 8시간 촬영된 하늘이라니까 아무리 열혈관람객이라도 작품전체를 볼 사람은 없을 것 같다.

내가 갔을 때가 한 4시쯤이었으니 아침 9시반에 황혼으로 시작된 하늘은 그때쯤엔 아마 새벽으로 가는 한밤중의 하늘이었겠지.

정지화면같은 황홀한 밤하늘은 가만 보고있으면 여기저기 별들이 반짝반짝, 반딧불처럼 빛을 줄였다 늘였다하며 숨쉬듯 살아있다.

어느 동네에 가면 저런 하늘을 볼 수 있다는 거지?... 나는 지금 저 별하늘 밑에 있는 거야... 마음 속에서 스크린의 테두리를 지우는 자기최면을 걸며 별하늘을 만끽하다보니 어!, 하늘 한 귀퉁이로 별 하나가 휙, 눈송이처럼 희게 지기도 한다. 그리고는 또 한 구석에선 꼬물꼬물 별 하나가 화면을 대각으로 세로질러 가다 어느 지점에서 문득 사라지기도한다. 어라, 저건 뭐야? 인공위성인가? 비행기인가?

이 화면이 8시간 실시간 촬영된 실제 하늘이라더니 작가가 뭔가 후작업을 한 건가?

별하늘에 빠져있는 관람객들한테, '여러분, 이건 실제 하늘이 아니라 전시장에 걸려있는 스크린작품일 뿐입니다' 하고 환기시키기 위해?

명상적인 화면과 달리 전시장안은  뚜벅뚜벅, 커다란 발자국 소리로 가득하다. 왜 저렇게 화면과 어울리지않는 시끄러운 소리를 깔았을까? 의도적인 어깃장인가? (소위 말하는 낯설게 하기?)싶었었는데, 설명을 보니 구도자, 방랑자의 발걸음이라니... 그렇게 분주하고 바빠서야 도의 끝자락이라도 잡을 수 있으려나...

혹은 이 광대무변한 공간과 시간속에서 인간의 그 쉴 새 없는 잔걸음들의 덧없음을 얘기하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마음같아선 거기 안락의자라도 갔다놓고 편안히, 무심히 그 하늘을 몇 시간이건 바라보고 있고 싶었다.

이 작품의 예술적 의미, 가치, 그런 건 잘 몰라도 분명 내가 정말 보고싶던 바로 그것이었으니.

어쩌면 전시회 끝나기 전에 다른 시간의 하늘을 보러 또 전시장을 찾을지도 몰라.

 

 

역시 하늘을 찍은 동영상. 희디 흰, 보송보송한 구름 천천히 모였다 흩어지기를 반복한다.

구름의 희디 흼, 보드라움에 몰두했다가, 그 뒤 하늘의 푸르름에 몰두했다가...

그냥 아무 생각도 없이 바라보다보면 뭉쳤던 마음이 풀어지는데, 며칠 전 본 김수자의 작품도 그랬지만, 이렇게 자연의 어느 한 부분을 무심히 보여주는 그런 비슷한 컨셉의 작품들이 많네.

김수자씨의 작품이라고 해도 그런가보다 했을텐데... 누가 먼저 시작한 건가? 누가 누구를 벤치마킹한 걸까?

김수자의 작품 중엔 또 터렐과 비슷한 작품이 있더니만...

 

 

 

 

 

 

 

verse-Puglia,Italy,2012

칠흑같은 밤하늘에서 새벽에 떠오르는 일출의 태양의 모습을 1분 간격으로 촬영한 50장의 사진.

죽음으로 상징되는 암흑의 공간에서 생명 탄생의 공간으로의  전환을 표현하는 이 작업은 우주의 질서 속에서 반복과 회귀를 통해 생성과 소멸을 거듭하는 '순환'의 순간을 가시화한다-

 

 

 

 

 


verse- Puglia, Italy, 2012

푸른 하늘의 무한 공간을 찍은 사진.

쪽빛.. 김환기의 파랑.. 이우환의 파랑.. 이브클라인의 블루.. 잉크블루..

색이 너무 예뻐 사진속으로 들어갈듯이 코를 박고 보니, 거기 뭐가 있어요? 누가 묻는다.

아니, 하늘이요^^...

 

 

 

 

나는 종이로서 만족한다-

 

내가 나무였을 때, 내가 의자였을 때, 내가 열매를 맺었을 때, 내가 치유됐을 때, 내가 뒤로 그림자를 드리웠을 때, 내가 대지를 껴안았을 때,...내가 불이 되어도, 종이로써, 나는 만족한다.-

의자와 종이를 통해 나무의 일생을 되돌아본다. 그래, 이 의자도, 이 종이도 그 언젠가엔 잎들 바람에 나부끼며 땅 위에 굳건히 서 하늘을 숨쉬며 살아있던 한 그루 나무였겠구나... 새삼 깨닫기.

핀조명이 비추는 가운데 어디선가 똑 똑 똑... 명징하게 떨어지는 물방울 소리 들린다. 의자 주의를 천천히 돌아보며 아무도 없는 고요한 전시장에 울려퍼지는 물소리를 감상했다.

 

 

 

 

 

 

  

the myriad of things-
거리에서 주운 낡은 책에서 얻은 종이 위에 작가가 작업하는 동안 떠오른 단어와 문장을 짧은 시구처럼 그려서 보여주는 드로잉.

각기 다른 종이결과 빛 바랜 세월의 흔적들 위에 존재에 대한 사유와 작가의 제스처를 직조하여 만들어낸 이 드로잉들은 종이를 통해 축적된 시간을 보여주는 동시에 인생의 덧없음을 노래한다.-

A BOOK OF WISDOM FULL OF SMALL LETTERS, BLACK PEA HIDDEN UNDERNEATH THE SOIL, SKY OF DCTOBER IN SEOUL, 그 밑에 SUNSET IN THE GARDEN, CROCODILE WITH ITS LEATHER BEHIND, 그 옆에 CLOTHE LIGHT AS A SOUL, JEALOUSY OF THE MOON, A POET THINKING THE RIVER FROM A DEWDROP, PAPERBOX SATISFIED AS A PAPERBOX, DISSOLVING SELF, PUPPIES AND RELICS IN THE BATTLE FIELD, BUDDHA IN AWAKENING, MYRYAD CREATURES CONNECTED WITH THREAD LIGHT AS A FEATHER...기타등등의 뜬금없는 문구들.

그 뜬금없는 문구들을 가볍게, 재미있게 읽어나가며, 아마도 추상을 견디지못하는 나는 버릇처럼  그 문구들을 머리 속에서 구체와 시켰다.

가령, 서늘한 가을 저녁 정원에 앉아있기도 하고, 흙 속에 숨은 까만 콩을 떠올리기도 하고, 악어와 낙타와 거북이, 전쟁터의 해골과 그 옆에 피어나있는 양귀비, 이슬방울에서도 강을 보는 섬세한 시인을 떠올리고, 질투에 눈 먼 붉은 달을 하늘에 띠우기도 하고...

당당한 모습으로 액자 속에 자리잡고있는 문장들은 마치 신처럼 말로써 사물을 창조하려 하는 것 같기도 했다.

이 작품은 전시장 가운데의 '나는 종이로서 만족한다'하는 작품과 마주하고 있었는데, 그래서 그건 그 의자가 하는 생각같기도 하고, 그 의자에 앉아 누군가가 한 생각 같기도 하고...그랬었다.

그 의미가 무엇이든, 소박한 액자와 그 안의 색바랜 담담한 종이들이 만드는 구성자체도 아름답다는 생각.

 

그런데 작가의 사유의 깊이와 오랜 탐구, 고민의 시간을 모르는 나는 이런 종류의 작품들, 너무 날로 먹는 거 아냐?(농담) 하는 발칙한 생각도 솔직히 살짝 들었다는 후기.

 

작품설명은 갤러리 홈피와 전시장에서 준 작품설명지에서 발췌.

 

 

 


'미술' 카테고리의 다른 글

Anish Kapoor전  (0) 2013.01.02
home&table deco fair 2012  (0) 2012.12.09
김수자-to breathe전  (0) 2012.10.16
김환기전.  (0) 2012.02.05
이철수 판화전  (0) 2011.07.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