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정말 정말 오랜만에 당일치기 여행으로 강원도를 다녀왔다.
바다 본지도 너무 오래됐고, 산에 간 지도 너무 오래됐고.
산과 바다는 사실 그대로였지만, 사람이 망쳐놓은 그 주변때문에 거의 화가 날 지경.
소금강 계곡은 여전히 맑은 물 힘차게 아름답게 흐르고, 숲 울창했지만 예전과 다르게 계곡에 접근할 수 없게 산길을 따라 죽 펜스가 쳐져있었다.
너무 많은 탐방객들로부터 계곡을 보호하려는 마음은 이해하지만, 그 펜스라는 게 주변 경관과의 어울림을 전혀 고려하지않은 무슨 국도변 낡은 가드레일같은 쇠판으로 돼있으니...
정동진도 공사판 가림판같은 양철판이 바다를 가리고, 바닷가로 접근할 수 없게 감옥창살같은 철문이 해변을 두르고있고, 정체를 알 수없는 조각물들 두서없이 여기저기 서있었다.
정동진을 마지막으로 갔던 게 언제였나, 거의 10년은 된 것 같은데...
그 때 기차를 내리자마자 몇 그루 잘 생긴 소나무 사이로 시야를 가리는 아무 것도 없이 눈 앞에 좍 펼쳐져있던 바다와, 와! 탄성을 내뱉으며 타박타박 바다를 향해 해변으로 내려갔던 그 바다가 더이상 아니라서 이 바다를 왜 이렇게 망쳐놨어 하는 마음에 너무너무 실망감이 컸다.
그래도 예전의 정동진을 모르는 사람들은 그나마도 좋다고, 아무렇게나 서있는 조각들, 표지석들 앞에서 신나게 사진들을 찍더라.
아무 꾸밈없이 정갈하고 아름답던 옛날 정동진이 너무 그립다.
주문진항에서 유람선을 탔다.
해안을 따라 죽 내려갔다가 올라 오는 1시간 반 남짓의 항해. 저 멀리 보이는 산등성이들이 설악이려나?
유람선에서 보는 동해바다는 여전히 아름답다. 흐린 날씨에 하늘인지 바다인지 모르게 아련해져있는 넓디 넓은 바다. 한없이 바라보며 심호흡
관광객들이 던져주는 과자를 받아먹으려 배 주위를 맴도는 갈매기떼.
물 위에 드리워진 낮게 나는 갈매기들이 만드는 그림자가 어느 명필이 일필휘지한 초서처럼 날렵하다.
정동진 주변은 엉망이지만 그것도 정동진 바다자체에는 아무 흠을 낼 수 없지. 여느 동해바다와 달리 여리여리한 바다빛은 여전하다.
흐린 날 구름때문에 먹먹해져있지만 그럼에도 무수한 회색과 푸름의 변주를 보이는 바다빛에 한참 넋을 잃었다.
또 하나 변함없던 건 정동진의 소나무.
실망을 했거나 어쨌거나 오랜만에 본 바다와 산은 좋았지만, 주말에는 그런 유명관광지를 갈 게 아니라는 걸 뼈저리게 느낀 하루.
난 방해없이 산을 보고싶은데, 바다와 있고 싶은데 그걸 허락치않는 사람떼.
시장바닥처럼 와글와글한 사람들과 그들이 만드는 소음들이 나를 질리게 한다.
우리는 언제쯤 먹고 마시고 떠드는 대신 조용히 자연을 대면하고 음미하는 여행을 할 줄 알게 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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