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히로시 스기모토-사유하는 사진

바다가는길 2014. 1. 10. 21:08

 

 

-일본현대미술의 가장 중요한 작가 중 하나이자 현대사진의 거장으로 평가되는 히로시 스기모토(1948~)는 40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장인적 사진기술, 형식적 간결함, 개념적 • 철학적 깊이로 무장한 심도 있는 연작들을 발표해왔다.

 삼성미술관 Leeum의 이번 전시는 한국에서 처음 열리는 스기모토의 개인전으로, 70년대 후반부터 현재까지의 대표적 사진연작들과 설치, 영상을 아우르는 확장된 작품세계를 선보인다.

 디오라마 (Dioramas)〉, 〈극장 (Theaters)〉, 〈바다풍경 (Seascapes)〉, <초상 (Portraits)>, 〈개념적 형태 (Conceptual Forms)〉 <번개 치는 들판 (Lightning Fields)〉 등 주요 흑백사진 연작들은 각 연작에 담긴 복잡다단한 시간의 층위를 추적하고, 미술 • 역사 • 과학 • 종교 • 동서양 철학을 넘나드는 작가의 폭넓은 관심과 사유의 깊이를 확인할 수 있다.

사진 • 설치 • 영상으로 구성된 <가속하는 불상 (Accelerated Buddha)> 연작을 통해 소멸을 향해 가속해가는 현대문명에 대한 반성적 성찰과 의식의 기원을 찾아 정신적 깨달음에 도달하고자 하는 염원을 시각화한다.

시각 이미지가 범람하고 실재와 가상의 경계를 넘나드는 다양한 디지털 조작사진이 현대사진의 큰 축을 형성하고 있는 오늘날, 스기모토는 스스로를 시대착오주의자라 부른다. 그러나 시대와 지역을 초월하여 역사와 의식의 기원을 탐구하고 정신성의 회복을 촉구하는 스기모토의 사유하는 사진은 현대사회의 현기증 나는 속도전에 지친 우리에게 근원에 대해 숙고할 수 있는 귀한 시간을 선사할 것이다.-


 

Lightning Fields Composed 012 (Detail), 2009 -149.2×716.3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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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년부터 현재까지 제작되고 있는 최근작 〈번개 치는 들판〉 연작은 40만 볼트의 전기를 금속판에 맞대는 위험천만한 실험을 통해 만들어진 인공번개 이미지이다. 스기모토는 초창기 사진의 발명가 W.H.F. 탈보트가 사진 뿐만 아니라 정전기와 전자기 유도를 실험했다는 사실에서 영감을 얻어 탈보트 평생의 연구 주제였던 ‘사진’과 ‘정전기’를 결합한 새로운 사진을 창안한다. 보이지 않는 추상적 영역을 가시화하려는

과학분야의 다양한 실험들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는 스기모토는 이와 같이 19세기의 삶을 크게 변화시킨 다양한 역사적 실험들을 현재

불러와 과학적 발견과 예술적 창조를 연결시키는 사진을 만들어내었다.-

인공적으로 번개를 만들어냈다는데, 그 전기가 일어나는 순간을 어떻게 잡았는지? 자연의 번개가 그렇듯 전기를 일으킬 때마다 하나도 같은 형태가 없이 무수히 다르게 뻗어나갔을 맥들이 경이롭다. 스케일에서 알 수 있듯 7M가 넘는 거대한 사이즈의 작품들 곳곳에 배치된 전기의 흔적들은 때론 나무 같아 빛의 나무가 곳곳이 서있는, 제목대로 들판이기도 했고 또 때론 꽃같고 풀같기도 했다.

순간 사라지는 현상의 경이로움을 기록하고 싶었다는 생각.

 

 

 황해, 제주 -111.9×149.2cm

 북대서양-cape Breton

인도양-bali

 tyrrhenian sea

mediterrenian sea


-하늘과 물이 수평선을 중심으로 나뉜 〈바다풍경〉(1980- ) 연작의 지극히 추상적인 바다는 스기모토가 전 세계의 바다를 찾아 다니며 담아낸 풍경이다. 〈황해, 제주〉처럼 각 작품의 제목은 사진 속에 담긴 풍경이 각기 다른 장소에서 촬영되었음을 알려주지만, 사진 속에서는 사람, 등대, 배 등 장소와 시간을 특정하는 그 어떤 요소도 찾아볼 수 없다. 대신, 빛, 바람, 안개, 수증기 등 기후환경의 변화에 의해 시시각각 발생하는 수평선 주위의 미묘한 변화들이 각 풍경의 차이를 보여준다. 시간성과 장소성이 사라진 바다의 초월적인 이미지는 우리의 시야를 스스로의 존재 너머로 넓히고, 의식의 기원에 대해 생각해보게 한다. 스기모토는 이 연작 속의 바다들을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은 ‘태고의 바다’에 비유한다.-

사진 속 바다들은 다 다른 곳의 바다지만, 황해든 대서양이든, 인도양이든 그 어디든 무슨 상관이 있을까. 바다는 바다일 뿐.

그가 보여주는 바다들은 한없이 고요하구나, 파도 한 자락 일어나지 않는구나, 조용히 명상에 든 바다... 내 마음 속 원형으로서의 바다.

 

 

샘 에릭, 펜실베니아 1978 111.9×149.2cm

 

 

 

-스기모토의 초기 작업 중 대표작으로 손꼽히는 〈극장〉(1975- ) 연작은 보이지 않는 시간을 시각화한다.

작가는 미국 전역에 흩어진 1920-30년대의 아르데코식 극장들과 1950-60년대의 씨네마 홀과 자동차 극장들을 찾아 다니며 이 연작을 찍었다. 그의 주된 관심은 한 편의 영화를 사진 한 장에 담아내는 것, 즉, 흐르는 시간을 하나의 프레임에 응축하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스기모토는 카메라 렌즈의 조리개를 영화 상영시간 내내 노출시켰고, 그 결과 영화의 이미지들은 모두 사라지고 스크린에는 빛나는 백색의 공백만 남았다. 이와 동시에 영화가 상영되는 동안 어둠에 가려져 있던 부수적 존재인 극장의 내부구조가 홀연히 모습을 드러내면서 중심과 주변의 관계가 역전되는 것을 볼 수 있다.-

흐르는 시간들은 응축되어 '空'으로 남는다. 모든 변하는 것들은 모여 그렇게 무화한다.

하얀 화면을 지닌 한 장의 사진에서 시간을 본다.

하지만 이 사진의 히스토리를 아니까 그렇지, 그 시간의 흐름을 경험치 못하고 결과물만을 보는 관객들에게 이 작품은 얼마의 가치를 가질 수 있을까? 하는 의문.

 

 

5원소 2011: 황해, 제주 (1992)-7.6×15.5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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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ke Superior 

japan sea, Rebun island 

tyrrehenian sea,Priano 


 -〈5원소〉는 우주의 기본 5원소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일본의 전통 오륜탑(五輪塔, Gorintō)의 형태를 차용한 작품이다. 여기서 토(土), 수(水), 화(火), 풍(風), 공(空)의 5원소는 각각 정육면체, 구(球), 삼각뿔, 반구(半球), 그리고 물방울 모양으로 된 여의주의 형태로 나타난다. 스기모토는 이 오륜탑을 카메라 렌즈의 재료인 광학유리로 만들어 마치 성스러운 유물과 같은 모습을 띄게 하고, 물을 상징하는 구(球)의 내부에는 그가 30년이 넘도록 사진에 담아온 바다풍경들을 안치해 놓았다. 즉, 신성함이 사라지고 종교적 도상들이 관광명물이 되어가고 있는 이 물질만능의 시대에 바다를 의식의 기원으로 새로운 마음의 은신처처럼 담아낸 것이다. 바라보는 이들의 눈 속에서 펼쳐지는 바다는 정신적 안식을 찾아주는 내면의 바다가 된다.-

제일 마음에 들었던 작품. 가격이 얼마나 할까, 하나 갖고싶다 생각했던 작품.

작은 유리탑이 한, 몇 개인지는 정확히 모르겠고, 한 20개 넘게 죽 늘어서 있는 작품. 하나 하나의 탑도 아름답고, 죽 늘어서 서로를 비추는 군상의 모습도 아름다웠다.

하나 하나의 탑속엔 영화 '맨 인 블랙'에서의 고양이 목에 걸려있던 우주가 들어있는 방울처럼 지름 6,7cm의 작은 유리구 속에 온전히 한 바다가, 한 하늘이, 한 우주가 들어있다. 마치 신이라도 된 듯 거대해져 유리알 속에 갇힌 세상을 들여다보는 기분, 이 우물 안이 전부인냥 복닥거리며 살고있는 우리의 세계를 좀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게 하는 작품이었다.

탑 하나마다 다 다른 바다가 들어있어 천천히 가만가만히 그 바다를 보는 것도 좋았고, 카메라 렌즈를 만드는 재료라는 유리는 너무 맑고 투명하고 견고한 게 수정같아서, 놓이는 장소마다 그 장소를 투영하며 끝없이 변할 그 모습도 참 궁금하다 싶었다.

한없이 경외하는 바다를 마치 부처의 사리를 모시듯 그렇게 모신 작품.

 

'사유하는 사진'이라는 부제처럼 여러 생각을 하게 하는 사진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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