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오르세미술관전

바다가는길 2014. 5. 15. 02:04

 

 

 

 

 

 

지난 토요일의 오르세전. '근대도시 파리의 삶과 예술, 인상주의 그 빛을 넘어' 라는 주제 아래 다음과 같은 섹션으로 전개됐다.

 

 

1.인상주의와 그 이후

        눈에 맻힌 인상을 파스텔톤의 색채와 붓터치를 통해 표현하는 혁신적인 화풍이었던 인상주의는 1886년 ‘제 8회 회화 전시회’ 라는 전시를 마지막으로 새로운 미술사조의 등장을 예견했습니다.

 

         

양산 쓴 여인

클로드 모네 (1840-1926) / 캔버스에 유채 / 131 x 88 cm
 2.새로운 시각, 신인상주의
신인상주의의 회화기법인 ‘점묘법’은 캔버스 위에 색점을 병치시킴으로써 색상의 풍부함, 선명함, 견고함을 강화시켰습니다. 기존의 인상주의가 본능적이면서 즉흥성을 가졌다면, 신인상주의는 이성적이면서 질서정연한 측면을 추구했습니다.
 3.원시적인 삶을 찾아서,
          고갱과 퐁타방파
고갱은 산업화된 도시에서 벗어나 야생적이고 원시적인 삶을 갈망했습니다. 고갱을 따르던 화가들과 함께 고갱은 이국적이고 영적인 주제를 단순화된 형태와 강렬한 색면으로 표현했습니다. 
 
노란 건초더미 또는 황금빛 수확.
폴 고갱 (1848-1903) / 캔버스에 유채 / 73.5 x 92.5 cm
 4.반 고흐와 세잔, 고독한 천재들
반 고흐는 파리에서 2년간 머물면서 인상주의, 신인상주의를 접했으며, 30여점의 자화상을 제작했습니다. 창작활동 초기부터 정물화에 애착을 가졌던 세잔은 수평ㆍ수직 구조를 응용해 공간을 창조하는 기법을 터득해갔으며, 자연 속에서 영원성과 정신의 본질을 찾길 원했습니다. 
 시인 외젠 보흐
빈센트 반 고흐 (1853-1890) / 캔버스에 유채 / 60.3 x 45.4 cm
 5.파리, 아름다운 시절
“파리보다 더 흥미로운 곳은 없다. 파리 이외의 것은 그저 움직이지 않는 배경일 뿐이다”. 당대 파리의 사교계에는 춤, 오페라, 연극, 카페 콘서트 등이 성행했습니다. 세계 각지의 사람들은 빛의 도시 파리에서 일상을 벗어나 인생의 최고조를 만끽하기 위해 모여들었습니다. 
카르멘시타
존 싱어 사전트 (1856-1925) / 캔버스에 유채 / 229 x 140 cm
 6.세기 말의 꿈, 상징주의와 나비파
사실주의와 인상주의에 반하여 등장한 상징주의는 기계문명 및 과학에 지배되는 세계를 거부하며 다양한 예술 분야에서 개인의 생각, 내적 환상, 꿈 등을 표현했습니다. 상징주의와 함께 화단에 등장한 히브리어로 ‘예언자’를 의미하는 나비파는 평면적인 색채와 화면을 추구하였습니다.
뱀을 부리는 여인
앙리 루소/1907년, 캔버스에 유채, 167 x 189.5cm

 

인상파의 주요화가들, 모네, 르느와르, 고갱, 드가, 세잔, 쇠라 등등의 회화외에도 드가의 조각이라든가, 갈레, 라리크공방의 아름다운 유리조각의 화병이나 장신구들,  또 그때의 시대상을 보여주는 에펠탑 건축과정이 담긴 사진, 판화들, 살롱문화를 엿볼 수 있는 화려한 여인들의 초상화들등 재미있는 작품들 많았지만, 이번 오르세전 난 이거 하나로 됐어, 싶던 그림은 바로 이거...

 

 

런던, 안개 속 햇살이 비치는 의회당

클로드 모네.1904 / 캔버스에 유채 / 81 x 92 cm

원화의 느낌을 그대로 살린 사진자료를 구할 수 없어 아쉽다. 너무나 미묘하고 다채로운 색감의 붓터치 하나하나가 생생히 살아있던 색의 향연이었는데...

수요일과 토요일은 관람시간이 9시까지 연장되기때문에 느긋이, 보고싶은 만큼 충분히 보려고 일부러 토요일을 선택했지만 완전 잘못된 선택.

주말이라 사람이 너무 많아 30분도 넘게 대기했다가 겨우 들어가 사람떼에 밀려다니며 작품들을 봐야했다.

하지만 이 그림은 동선을 따라 그림들이 죽 걸려있는 벽의 반대편에 호젓이 따로 걸려있었는데,  왠일인지 그 앞에는 사람들이 그닥 붐비지않아 몇 몇 특별히 이 그림을 좋아한 사람들이 마치 무슨 동호회 회원들인냥  그 앞에 삼삼오오 둥그렇게 모여 말없이 그림에 다가갔다 멀어졌다 하며, 오른쪽으로 한 발, 왼쪽으로 몇 발 움직여가며 조용히 느낌을 공유했다.

화가가 무언가를 대상으로 삼아 그림을 그릴 땐 화가 자신이 그 대상에서 어떤 특별한 아름다움을 느꼈기 때문일텐데, 그림을 보니 그 안개 낀 풍경앞에서 그가 느꼈을 감탄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듯 했다.

 

요즘, 심란하기 그지없는 때.

문득 방문을 열었는데 구석구석 새까맣게 피어있는 곰팡이들을 발견한 것 같은 소름끼치는 기분, 언제 이렇게 됐지? 이걸 어쩌지...

뭔가 계속 찜찜하고 찝찝하고 불안하고, 해결되지않은 골칫거리들이 마냥 마음을 짓누르는 그런 기분.

이럴 때 어떤 아름다움이, 소위 예술이,  알랭 드 보통이 '영혼의 미술관'('art as theraphy')에서 언급한 것처럼 그 구정구정한 마음을 잠깐, 조금 정화시킨다. .

하나, 도저히 이해되지않는 일, 그가 열린 창문으로 얼비치는 햇빛에 뛰노는 사슴이나, 활짝 날개 펴고 나는 새들이나 파란 하늘, 뭉게뭉게한 흰 구름을 찍었을 땐 그 역시 그런 자연의 아름다움에 한없이 감탄하며 마음을 열었을텐데, 바로 그 마음 안에 어떻게 동시에 그런 탐욕과 사악함이 같이 깃들 수 있을까.

하는 이런 생각은 너무 naive한 건지...


 

 

클로드 모네, <양산을 쓴 여인>
1886년, 캔버스에 유채, 131x88cm

이 그림도 또한 감탄하며 한참 바라봤던 작품. 사진으론 잘 드러나지않지만, 저 햇빛, 모든 어둠을 다 물리칠, 어떤 습기라도 보송보송 다 날릴 너무나 맑고 밝고 따사로우며 투명한 순결한 햇빛, 먹구름같은 우중충한 마음을 충분히 치유할 그런  화창함, 평화로움과 안온함이 있었다.

 

 

이것도 내 기억으론 모네의 작품. 'frost'인가 그랬던 것 같은데...

색을 절제해서 오히려 온 세상이 하얗게 되도록 서리내린 그 서늘한 청명함이 잘 느껴졌었다.

 

예술작품들은 그것을 즐길줄 안다면 언제든 한 방울의 정화수가 되어준다. 마음의 오염도를 적어도 조금은 낮춰준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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