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은 나날이 깊어가고, 왠지 일상은 답답하고, 마음은 밖으로만 돌아 가지도 않을 여행정보들을 공연히 검색하고...
우리 어디 한 번 가자! 주말엔 어디나 사람들로 아글바글일테니 좀 이라도 한적하게 주중에 떠나는 여행프로 없나?
이리저리 검색을 하다보니, 세상에! 9900원짜리 여행이 있네.. 단돈 만원? 그렇다면 그리로 Go!
호핑투어라는 말이 있지. 만원짜리 여행 해보니 말 그대로 호핑투어다.
메뚜기 뛰듯 여기 저기, 잠깐 이 풀잎 끝에 앉았다가 금새 훌쩍 또 다른 풀잎으로 날아드는 여행일정.
가는 곳을 진득히 음미하며 즐길 순 없었지만, 단돈 만원인데 어떠했든 뭐가 불만일까? 그냥 버스 타고 무심히 창 밖 너른 가을 들판들 보며 오고 간 것만으로도 충분했다는 생각.
코스는 충남 서천. 춘장대 해수욕장과 문헌서원, 그리고 신성리 갈대밭.
가을 바다, 게다가 주말도 아니라 그대로 텅 비었다.
사정없이 몰아치는 바람에 파도가 높이 일고, 아직 겨울도 아닌데 손이 꽁꽁 얼 정도로 춥지만 휑하니 빈 너른 바다에 가슴이 탁 트인다.
뜻밖의 센 바람과 추위에 사람들 대부분 바다 가까이 갈 엄두도 못내는데 그래도 누군가는 이 바다가 너무 좋아서...
서해의 너른 갯벌. 갯벌에 들어서보니 여기선 걸음을 멈출 수 없다.
멈춰 서면 스르르 갯벌로 발이 잠겨들어간다. 발이 빠지지않으려면 서둘러 발걸음을 계속 옮겨야 해. 마치....
뽕 뽕... 수없이 나있는 구멍들. 여기 텅 비어보여도 무수한 누군가들이 살고있구나...
멀리 떼지어 철새들 날아 떠나고...
걔 중 누구가 깃털 하나 인삿말처럼 남겼고...
짧은 시간, 돌아나오기 아쉬워 다시 바라다 본다.
여기 모래는 너무 고와, 손으로 잡으면 거의 밀가루 같아서 이렇게 펜스를 쳤는데도 그 안으로 모래가 더미더미 쌓였다.
여름 해수욕철에 오면 넓은 갯벌과 결 고운 모래사장이 참 좋을 것 같다.
바다, 본 듯 만 듯... 그래도 잠깐이라도 이렇게 눈 앞에 두고 큰 숨 한 번 쉬었으니 그 내음 내 안에 들었겠지.
여행상품 가격이 이렇게 싼 이유는 관광유치를 하려는 지자체에서 보조금을 받기 때문인데, 그래서 점심 먹을 겸해서 하는 서천시장 방문시간이 관광지 자체에서 보내는 시간보다 훨씬 길다.
시장이 있는 거리가 아마 그 동네에서 가장 번화한 곳일텐데 역시 자그마한 소읍이라 번화가라 해도 끝에서 끝이 눈에 보일 정도.
버스 정류장에 옹기종기 앉아있는 촌로들이며, 시장에 펼쳐져있는 소소한 이런 저런 물건들이 정겨우면서도 왠지 짠해보이던 곳.
수산물센터에서 회나 매운탕을 먹어도 좋지만, 시간이 널널했던 관계로 동네구경을 해보니 큰 거리 뒤쪽으로도 이런 저런 가게들이 있었고, 특히 멋지게 지어진 여성회관 내 카페에서 따뜻한 햇빛 쪼이며 책 구경하며 마셨던 커피 한 잔이 참 맛있었다.
두 번째 코스 문헌서원.
한산 이씨들의 조상신위를 모신 곳. 특히 고려말 문신인 이색 일가의 묘가 있다.
묘에서 본 서원풍경. 서원은 최근에 개보수돼 옛스런 맛은 덜하다.
그 지역 가이드의 설명에 의하면 이 묘자리가 기린이 물을 마시는 형상의 명당이라 일부러 그 기를 받으려, 와서 한참 머무는 사람들도 있다고.
와보니 아래로 펼쳐진 전경은 좋으나 아무래도 묘라서 그런가 난 왠지 괴괴하다는 느낌.
세 번째 코스, 신성리 갈대밭.
영화 'JSA공동경비구역'을 여기서 찍었단다. 강 가 너른 갈대밭 사이사이로 미로처럼 산책길들이 나있다.
사람키를 넘기는 갈대숲 사이를 이리저리 거니는 것도 좋겠지만, 어디건 멈춰서 가만히 듣는 갈대소리. 스스스스...... 스스스스스...... 스스스...
조용히 듣다보면 헝크러진 마음 마당을 떨어진 낙엽 하나 없도록 정갈히 쓸어준다. 고요를 만드는 소리, 고요를 부르는 소리, 그 소리가 좋다.
안타깝게도 갈대밭 어디서든 피할 길 없는 시끄러운 트로트 소리때문에 자체 필터링이 필요했지만.
원래는 이렇게 하얗게 갈대꽃이 피어야하지만 금강이 오염돼 꽃이 잘 안피었다는데...
솟대들이 있는 길. 여행자..
갈대밭 사이로 이런 저런 이름의 산책로를 만들고, 데크를 깔고, 포토존을 설정하고, 관광지의 면모를 갖추려고 나름 노력한 흔적이 있지만 아직 개발의 여지가 많다는 느낌.
누군가 안목을 지닌 디자이너가 사람들이 즐길 만한 세련된 공간과 놀 꺼리들을 만들어줬으면 하는 마음이다.
아직까지는 여기 저기 세워진 조형물이며, 사진들, 정자, 벤치들등 여러 장치들이 어설프고 촌스러워 보여 안타까웠다.
하루라는 짧은 시간 동안 폴짝거리며 버스 내렸다, 탔다를 반복했지만 뭐 만원에 이 정도 구경했으면 됐지... 싶던 여행.
여행상품은 http://korea.lottetour.com/tour/product.asp?menuCode=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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