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은 생각도, 계획도 전혀 없던 차에 갑자기 일정이 잡혔다.
엔저로 일본여행비용이 싸진 관계로 일본행.
갈까 말까 잠시 망설이다 에이, 한 번 떠보자! 싶어 가족들과 고고. 편하게 패키지로.
해외로 나가본 지가 언제지? 마지막 여행이 한 십 년 전이었나?
나 인천대교 처음 건너보네, 이 다리가 언제 생겼더라?..
아침 비행기여서 새벽에 일찌감치 길을 나섰었다.
인천대교 처음 건너보느라 다리 양쪽으로 펼쳐진 풍경에 차창에 코를 박고 있는데, 아스라히 깔린 아침안개로 수평선이 사라져 바다와 하늘이 하나로 합쳐져있다. 현실이 아닌 것 같은 몽환적 풍경.
회색빛 안개 사이로 아침 해가 돋는다.
말갛고 빨간 홍시같은 해가 점점 오르며 동그래진다.
아, 카메라, 차 트렁크 속에 들어가있어, 이런 ㅠㅠ.
너무 너무 예쁜 해, 나 말곤 아무도 안쳐다본다, 저렇게 예쁜 해를...
공항에 대해선 로망이 있었다.
한가롭고 여유로히 살짝 심쿵하며 여행의 설레임에 젖기.
그건 아마 요샌 김포공항도 안될 것 같고, 비수기때 양양이나 청주공항 쯤에서나 가능할런지..
인천공항은 완전 북새통에 시장통, 공항이 지겹다는 그 말이 무슨 말인지 너무나 잘 이해되는 모습이었다.
화장실 한 번 다녀올래도 맘 먹고 나서는 동네 산책길 만큼을 사람떼를 뚫고서 지나갔다와야 하고, 짐 부치는 길디 긴 줄이며, 검색대며 미리 산 면세품 찾는데도 아수라장, 항상 긴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려야 하고, 이런 저런 경로를 거쳐 비행기까지 오르기가 왜 그리 멀고 수선스럽던지 채 여행 시작하기도 전에 벌써 피곤해지는 상황이다.
어쨌든 그 시간을 거쳐 드디어 비행기에 올랐다. 비행기 좌석은 또 왜 그리 좁아? 아유, 답답해...
비행기에서 내려다 본 인천. 바다 물길이 갯벌로 뻗어들어간 게 신기하다, 사진 상으론 시퍼렇지만 사실은 옥색의 물빛이 참 고왔다.
후쿠오카는 제주도보다 쬐금 더 먼 1시간 30분쯤의 비행거리. 금방 도착한다.
도착 즈음 비행기에서 보이던 후쿠오카 근처의 작은 섬 하나.
달랑 빨간 지붕의 집 한 채가 있는데, 방파제하며 배 접안 시설까지 잘 갖추고 있다. 저 집은 누구 집일까? 주인이 부럽네.. 소담스럽고 예쁘던 섬.
다자이후텐만구(太宰府天滿宮)
유명했던 시인이자 학자, 철학자였던 스가와라노 미치자네(845-903)를 학문의 신으로 모시는 곳.
그의 묘 위에 세워진 텐만구 신사는 1591년 건축된 본전이 중요문화재로 지정돼있다.
여행 첫 코스. 스가와라노 미치자네가 좌천돼 여기로 내려와 살다 죽었다고.
학자를 모신 신사이기 때문에 학업운과 밀접하다고 여겨진단다. 소 동상의 머리를 만지면 머리가 좋아진다는 설. 당연히 소의 머리는 사람들이 하도 만져서 반질 반질 윤이 난다.
너도 나도 만지며 그 앞에서 증명사진을 찍어 난 도저히 그 옆에 가 볼 짬도 내기 어려워서 그냥 먼 발치에서 구경만.
본전 건축이 참 아름다웠지만 그도 자세히 살필 시간 여유가 없어 증명사진 한 장 찍고 그냥 먼 발치서 잠깐 구경만.
신사 내의 나무들이 너무 아름다웠다. 저절로 감탄사가 나오는 몇 백년을 살았을 거대한 나무들이 그 자체로 신성하고 경외로워 신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그들이 신 같았다.
잘 정돈 된 오래 된 숲이 있는 신사는 시간의 깊이가 느껴지는 아름다움이 있었지만 충분히 돌아 볼 시간이 없어 아쉬웠다.
우리도 기복신앙이 강하지만 일본도 만만치 않아 보인다. 여기서 점을 치고 나쁜 점괘가 나오면 그 점괘가 적힌 종이를 나쁜 운이 따라오지 못하도록 여기에 묶어두고 간단다. 여기저기 소원이 적힌 나무패들하며 이런 종이 묶음들이 이색적이다.
신사 앞 거리. 양 옆으로 이런 저런 상점들이 늘어서있다.
일본 단체관광가이드는 깃발을 들고, 중국 가이드는 이렇게 번호판을 든다고. 중국 관광객은 워낙 대단위로 오기때문에 이렇게 1번팀, 2번팀 하는 식으로 나눠야 한단다. 여긴 15번 팻말, 도대체 몇 명이 왔다는 거야?
스타벅스. 베이징 새둥지 경기장을 닮은 exterior. 와, 누구 거지? 싶었는데 구마겐코 작품. 안도 타다오는 값싸고 튼튼한 재료로 오래도록 변치않을 콘크리트를 선택했지만, 반대로 구마겐코는 시간과 함께 변하며 시간에 따라 소멸할 재료를 선택했다는 설명을 책에서 읽은 기억이 난다. |
음식점 앞 디스플레이가 참 일본스럽고 예뻐서. |
요런 가게들이 양 옆으로 좍 늘어서 있었는데 한 군데도 들어가 볼 짬이 없었다. 그냥 아이스크림 하나 사들고 눈으로 겉만 훑어야하는 아쉬움.
후쿠오카 캐널시티
존 저드라는 미국 건축가가 설계했다는 복합 쇼핑몰.
강렬하고 활기 찬 색, 구불 구불한 건축의 선과 건물 사이에 수로를 만들어 자연을 들인 게 좋다.
곡면으로 돼있어 위치마다 다양한 모습을 보이는 풍경이 좋았고, 수변에서 삼삼오오 모여 담소를 나누는 현지인들의 모습이 평화롭고 여유있어 보였다.
쇼핑몰 자체는, 세계 어디를 가도 마찬가지겠지만 도시의 풍경은 어디나 비슷해서 우리나라 멀티플렉스들과 별 다르지 않고, 잘 꾸며진 내부의 가게들도 거의 우리와 대동소이. 특히 눈에 익은 자라니 유니클로니 H&M이니 하는 브랜드 로고들로 여기가 한국인지 일본인지 헛갈릴 정도.
franc franc이었던가, 인테리어 편집숍에 이쁜 물건들이 많아서 뭔가 기념 될 만한 거 하나 꼭 사고 싶었지만 아무리 둘러봐도 별로 살 만한 게 없다.
예전엔 캐릭터 상품도 그렇고 일본 디자인이 특이하고 이쁜 게 많았지만, 지금은 우리나라에서 훨 좋은 상품을 훨씬 싼 가격에 살 수 있으니 굳이 거기서 뭘 살 게 없더라.
아사히 맥주공장
사진촬영 금지라 사진이 없다.
공장 복도에 맥주 원료와 제조과정이 간단히 디스플레이 돼 있고 안내원이 한국어로 설명을 해 준다.
디스플레이는 너무 평면적이라 재미없었지만,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공장 시설들, 두툼한 파이프라인이 이리저리 연결된 채 빼곡하고, 뭔가 알지못하는 기계장치들이 움직이고 있는 공간이 멋졌다. 거의 자동화돼있는지 그 넓은 공간에 시설을 움직이는 인력은 한, 두명 정도에 불과하다.
시음장에서 서, 너가지 맥주를 시음할 수 있고 술을 못마시는 사람들은 일반 과일 음료수를 먹어볼 수 있었다.
우리가 사먹는 맥주는 생산 후 시판되기까지의 시차로 제 맛을 느끼기 어렵지만, 여기서 마시는 맥주는 맥주가 가장 맛있게 숙성돼 있는 상태란다.
원래 술을 안 마시는데 호기심에 한 번 마셔보니, 와! 진짜 맛있네?
톡 쏘는 시원한 맛, 알콜의 싫은 냄새가 없고 보리(보리 아닌가?맥아?)의 구수한 맛이 살아있다. 내가 마셔 본 맥주 중 최고.
관광지도 관광지지만 버스 타고 지나는 일본의 시골 풍경, 나무 울창한 숲과 너른 들에 얌전히 자리 잡은 일본의 마을...
집의 형태고 그렇고 산림도 그렇고 뭔가 우리랑 살짝 다른 느낌의 이런 안온한 풍경이 마음에 와닿는다.
아소산
일본 규슈[九州] 구마모토 현[熊本縣]에 있는 화산.
높이 1,592m에 이른다. 이 산에는 남북으로 27km, 동서로 16km, 둘레 길이 114km로 세계에서 가장 큰 분화구가 있다. 화산폭발로 지반이 함몰하여 생긴 사발 모양의 칼데라에는 활화산 나카다케 산[中岳]과 수많은 온천이 있다. 분화구 안에는 사람이 살며 철도와 도로도 나 있다. 기슭의 초원에서는 소를 기르거나 낙농을 한다. 아소 국립공원의 중심을 이룬다.
아소산은 한라산이나 백두산 처럼 한 덩어리의 큰 산이 아니라 거의 한 지역이다. 분화구 안에 다섯 개의 산이 다시 솟아있단다.
우리가 간 곳은 나카다케 분화구. 작년 11월에 폭발해 지금도 하얀 연기가 하늘로 끊임없이 치솟는 중.
엄청난 양의 수증기가 쉴 새없이 뿜어지기 때문에 항상 기상이 변화무쌍해 구름에 싸여 아예 산이 보이지 않을 때가 많다는데, 우리가 간 날은 몹시도 화창, 연기를 뿜는 화산을 처음으로 볼 수 있었다.
가는 길, 저 멀리 검은 연기... 화산지대라 그런가 주변 지형도 참 독특하다.
화산이 안정적일 땐 분화구 가까이까지 가서 안을 볼 수 있었던 모양인데, 지금은 전망대에서 멀리 바라 볼 수 있을 뿐이다.
왠지 황량해 보이는... 거의 무채색에 가까운 풍경이 스산하면서도 매력적이다.
이런 자연 현상은 인간에겐 재앙일 수 있지만, 그, 인간에게 재앙이라는 점을 배제한다면 그 자체는 너무도 장엄하고 아름답다.
분화구가 보이는 언덕을 오르기 전 초원지대. 여기 들어서자마자 모든 소리가 잠든다. 고요~~하다. 마음 속으로 저절로 '아, 조용해, 살 거 같다'고 뇌어진다. 그렇게 조용한 순간이 언제였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새소리만 삐삐거리는 그 고요가 너무 너무 좋았다.
개미만 해져 저 멀리서 걸어오는 사람들이 있는 걸 보니 저 산등성이 너머까지 트레킹을 할 수 있는 모양이다. 말을 타는 사람들도 있었고...
나도 그 너른 풀밭을 마음껏 걸어보고 싶었지만, 1시간 드릴게요, 50분 드릴게요, 하는 가이드의 말에 급히 언덕을 올라 증명사진 한 장 찍고 오는 걸로 만족해야했다.
주위는 화산재에 덮여 어지러운 발자국들이 난무한다.
재에 덮여서도 꽃은 피고, 지고...
오늘의 일정은 이렇게 마무리, 후쿠오카의 호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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