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남, 그리고 기억함

홍천 수타사, 은행나무숲

바다가는길 2017. 11. 1. 19:05


가는 가을이 아쉬워 그 끝자락이라도 잡아보려 나선 길.

멀리는 못가고 아무데나 가을이 남아있을 곳으로...

홍천은 예전, 산 넘고 물 건너 아주 아주 긴 길을 거쳐 어렵게 갔었던 것 같은데 지금은 서울에서 불과 한시간 반 거리.

여행사버스는 심지어 휴게소조차 들릴 일이 없다.

이렇게 가까운 거리였나?

예전 긴 시간 걸려 간 홍천에서 내 생애 가장 찬란한 별하늘을 봤었는데...

별들이 쏟아질듯 가득히 반짝이던 하늘은 지금도 기억에 생생해. 그 이후로 어디서도 그런 밤하늘을 보지못했다.


첫 코스는 홍천 은행나무숲.

어떤 한 개인이 아픈 아내를 위해 수십년에 걸쳐 만든 숲이라는 낭만적 스토리가 있는 곳.

나지막한 산길을 계곡을 끼고 조금 걸어들어간다.

오랜만에 듣는 물소리에 귀가 쫑긋.

계곡 사진, 보정 좀 했더니 이렇게 딱 맘에 들게 변환.


너른 은행나무숲. 줄지어 서있는 나무들 사이로 아침 햇살이 눈부시다.

이미 가을의 절정은 지나 은행나무들은 잎을 많이 떨궜다.




그래도 아직 물씬 가을을 입고 있는 나무도 있고.. 그 아래서 한껏 고개 들어 황금빛의 세례를 받는다.


숲을 걸어들어가다 보면 이렇게 귀여운 전망대와 어디서든 쉴 수 있는 벤치들이 있다.

그네 벤치에 앉아 다리를 덜렁거리며 빛 속에 숲을 오가는 사람들을 , 삼삼오오 모여 까르르대는 부신 웃음을 지켜본다.

아, 평화로워!...


조금 더 들어가면 단풍나무 숲길.

나 아직 여기 있어!, 가을이 붉게 붉게 타오르며 아름다운 자태를 보인다.

와! 와! 거리며 다들 그 따뜻한 불에 몸과 마음을 담그고 사진찍기 바빴던 곳.





붉은 단풍길을 지나니 저 아래쪽으로 내려가는 샛길이 보인다.

좁은 길을 내려가면 이런 호젓한 냇가가...

바닥돌이 다 보이게 물은 투명하고, 돌돌돌 거리는 물소리 외에 세상이 사라진 듯 사위는 고요하고...

물가에 앉아 오랜만에 하늘을 올려다보며 마음을 쉰다.





은행나무숲 입구에는 지역 농산물을 파는 텐트들이 줄지어 있었다.

홍천 잣, 땅콩, 옥수수, 더덕, 콜라비.... 기타등등들.

갓 볶아주는 땅콩도 너무 고소하고, 옥수수도 맛있었고, 모든 농산물들이 싱싱해보였지만 짐 들고 다니기 귀찮아 안샀더니 더덕 좀 살걸 그랬나, 잣 살걸 그랬나 나중에 후회.

지역주민일 상인들 표정도 너무 순해...

다음에 가면 제철 농산물들 사야지..



두번째 코스는 수타사.

절로 가는 길 입구에 이렇게 넓은 계곡이 펼쳐져있다. 와!

맑디 맑은 물에 고운 산이 그대로 자기 얼굴을 비추고, 물 속엔 사람이 오든 말든, 사람이 자기들을 지켜보든 말든 귀여운 송사리떼들이 무심히 자신들의 하루를 바쁜 몸짓으로 살아내고들 있다.

즐거운 몸짓들. 왜 아니겠어, 이렇게 아름다운 풍경속 청정한 물이 자기 집인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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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로 들어서기 전, 도저히 그냥 지나칠 수 없이 휘황한 황금빛이 있었다. 절 입구의 숲, 바닥을 다 뒤덮은 노란 잎들. 눈이 환해진다.

잎으로 뒤덮인 탁자, 앉을 자리만 살짝 잎을 치우고 앉아 바라보는 풍경, 황금 양탄자가 깔린 너머로 아름다운 계곡.. 황홀.

무한정 앉아있고 싶었지만 정해진 시간안에 수타사도 봐야하고, 생태숲도 봐야하니 아쉬워도 일어날 수 밖에.






수타사는 신라때 원효스님이 지었다는 유서깊은 절.

그냥 가을 길을 걷고싶었던거라 절은 슬렁 슬렁 둘러봐 잘 모르겠지만 기본적으로 느낌이 좋은 절이었다.

담장도 없이 대중에게 활짝 열려있는 느낌에, 외형만 크게 키워져있는 허세가 없이 소박하고 꾸밈없는 모습, 절 구석구석을 정갈히, 섬세히 보살피는 손길이 느껴졌었다.

가을이라 경내 곳곳에 노란 소국을 심어 향기가 가득.

단청이 다 벗겨져 시간의 흐름을 보이며 고색창연해진 흥회루도 좋았고, 석탑이며, 대적광전, 원통보전들을 기웃기웃.

부처님 진신사리가 모셔져있더라. 진주알 같은 사리도 구경하고.



절 뒤로 이어져있는 생태숲 산책로. 절에서 조성한 건지, 홍천군에서 조성한 건지?

공작산이라는 이름 그대로 공작의 깃같이 화려한 단풍으로 치장한 산봉우리 사이로 걷기 편한 잘 정돈된 산책로가 구비구비 이어져있다.

곳곳에 벤치와 정자, 전망대가 있어 조금이라도 힘들면 언제든 쉴 수 있고. 정자 안에 편리하게도 등받이가 있는 벤치가 들어있어 거기 앉아 마치 액자가 되어주는 정자 기둥 사이로 그림 같은 산봉우리를 바라보고 있자면 고요, 평화, 자족..

이러고 있느라 시간을 다 보내는 바람에 안내지에 그려진 길게 이어져있던 코스를 반 밖에 못가본 것 같애.







패키지여행은, 그냥 데려다주는 대로 버스 탔다 내렸다 하면 되니 참 편리한 대신에 내가 머물 곳의 시간을 맘대로 쓰지못하는 단점이 있다.

버스로 모일 시간에 늦을까 서둘렀더니 오히려 시간이 남네. 그렇다면 아쉽디 아쉬웠던 황금양탄자숲을 다시 가보자..



말 그대로 은행나무 침대.

다음엔 가을의 절정에 다시 와 여기 누워 한 숨 푹 자보도록 하자.

그 잠은 얼마나 깊고도 환할지..







풍경과 공기에 취해 절을 너무 대충 본 것 같아 나중에 검색해본 수타사.

내가 갔었던 곳이 어떤 곳인지 이런 기회에 알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대한불교조계종 제4교구 본사인 월정사(月精寺)의 말사이다. 708년(성덕왕 7)에 창건되어 우적산(牛跡山) 일월사(日月寺)라 하였으며 영서지방의 명찰로 손꼽혀 오다가 1568년(선조 2)에 현위치로 이건(移建)하면서 수타사(水墮寺)라 하였다.

그 뒤 임진왜란의 병화로 완전히 불타버린 뒤 1636년(인조 14)에 공잠(工岑)이 중건하였고, 1644년에 학준(學俊)이 당우(堂宇)를 확장하였다. 1647년에는 계철(戒哲)과 승가(僧伽)가 승당(僧堂)을 새로 건립하였고, 1650년(효종 1)에는 도전(道佺)이 정문(正門)을 세웠으며, 1658년에는 승해(勝海)와 정명(正明)이 흥회루(興懷樓)를 세웠다.

1670년(현종 11)에는 정지(正持)와 정상(正尙)과 천읍(天揖)이 대종(大鐘)을 주조하여 봉안하였고, 1674년에는 여담(汝湛) 등이 사천왕상을 조성하였다.

그 뒤에도 여민(汝敏)·지해(智海)·지행(智行)·성민(性敏)·찬징(贊澄)·선찰(善察)·성념(省念)·찬원(贊源)·상흘(尙吃) 등이 1683년(숙종 9)까지 계속하여 청련당(靑蓮堂)·향적전(香積殿)·백련당(白蓮堂)·송월당(送月堂) 등의 당우들을 차례로 중건하여 옛모습을 재현하였다.

현재의 이름으로 바꾼 것은 1811년(순조 11)이다. 그 뒤에도 1861년(철종 12)에 윤치(潤治)가 중수하였고, 1878년(고종 15)에는 동선당(東禪堂)을 중건하고 칠성각(七星閣)을 신축하였다. 1976년 심우산방을 중수하였고, 1977년에는 삼성각을 지었으며, 1992년에는 관음전을 지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대적광전(大寂光殿)을 중심으로 흥회루와 봉황문(鳳凰門, 또는 天王門)이 앞에 있으며, 좌측에 심우산방(尋牛山房, 또는 東別堂)이 있고 좌측에는 요사채가 배열되어 있다. 또한, 뒷편에는 삼성각(三聖閣)과 성황당이 있는데, 성황당이 있는 것은 특이하다.

이 중 대적광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에 팔작지붕의 다포집으로 1497년 공잠이 이건, 중창한 것이며,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17호로 지정되어 있다. 이 밖에도 보물 제745호로 지정된 『월인석보(月印釋譜)』 제17권과 제18권이 보존되어 있고, 기단부와 옥개석만이 남아 있는 강원도 문화재자료 제11호로 지정된 고려 말기의 3층석탑이 있다.

또한, 이 절을 거쳐간 고승 중 청송당(靑松堂)·기허당(騎虛堂)·서곡(瑞谷)·유화당(遊華堂)·중봉당(中峯堂)·홍파(洪波)·홍우당(紅藕堂) 등의 부도가 있으며, 사리탑비(舍利塔碑)는 서곡의 것만 남아 있다.

총 2,999평의 대지에 171평의 건물을 갖춘 이 절은 풍수로 볼 때 공작포란지지(孔雀抱卵之地)라는 명당이며, 주위는 동용공작(東聳孔雀)·서치우적(西馳牛迹)·남횡비룡(南橫飛龍)·북류용담(北流龍潭)으로 표현되는 포근한 골짜기에 있다.


-출처;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