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남, 그리고 기억함

계족산, 장태산

바다가는길 2019. 5. 28. 22:30


요즘 잘 살펴보면 지자체들의 지원을 받아 저렴한 비용으로 다녀올 수 있는 여행프로그램들이 많이 있다.

맘에 드는 곳에서 맘껏 시간을 보낼 수 없다는 단점이 있지만, 알아서 곳곳에 데려다주니, 버스 타라면 타고, 내리라면 내리면서 여행준비 신경 쓸 것 하나없이 지갑 하나 달랑 들고도 하루 여행을 다녀올 수 있다.

봄 숲, 막 새잎들 돋아 각색의 초록향연을 벌이는 계절, 그 초록들을 숨쉬려 어디 숲에라도 가고싶다, 4월 잎 돋을 때부터 벼르다가 4월 그냥 다 보내고, 지난 5월 초 가깝고도 여행비 저렴한 계족산, 장태산 프로그램에 따라갔었다.

다행히 날씨 너무 좋고, 사람없고 한적해 오랜만에 숲산책을 만끽했었는데, 사진 한 장 안찍은 게 후회되고 다시 그 숲의 고요함을 누리고 싶어 날 너무 더워지기 전에 한 번 더 그 숲으로.

지난 번에 더 머물고 싶었던 곳에서 시간을 보내고, 지난 번에 안 가본 쪽 길을 걸어봤다.

메뚜기 뛰듯 여기 갔다 저기 갔다 하는 스케줄은 여전히 맘에 안들지만 그게 싫으면 단체여행이란 걸 가지말아야겠지.



계족산 입구, 어디서 장 닭이 길게 운다. 오랜만에 듣는 시골 소리. 길 가다보니 무슨 미니어처 인형들처럼 닭 세마리가 나란히 길 가에... 카메라 꺼내는 사이 대열이 흐트러졌다.

계족산은 이런 황토길을 꾸며 관광객을 모은다. 맨 발로 걷는 오른 쪽 황토가 깔린 길. 맨 발로 흙을 밟는 느낌도 좋았을 텐데, 발 벗고 씻고 하기 귀찮아 그냥 왼쪽 길로.

숲이 터널을 이뤄 햇빛을 가려주어 모자니 선글라스니 하나 필요없이 간편히 산을 오르내렸다.



황토길을 오르다 왼편으로 살짝 나 있는 오솔길로 들어서면 깜짝 선물처럼 나타나는 조그만 호수? 연못?

지난 번에 이곳이 너무 좋았었다. 뒷편 산 길 윗쪽으로  시끌시끌 한바탕 사람들 지나는 소리 잦아들면 찾아오는 고요...

새소리, 바람 소리, 나뭇잎 소리, 그리고 고요... 저기 아래쪽 다리 너머에서 한없이 신선한 바람이 불어 오고, 그 바람에 몸을 맡기고 가만히 있으면 어느 새 나는 사라지고 거기 호수만 고요...

좁은 나라에 사람은 많으니 어디든 사람없는 곳 찾기 힘들고 24시간을 소음속에서 살아야 한다. 이런 조용한 공간, 시간이 얼마나 그리운지...

오늘은 여기서 맘 껏 머물리라...





고요한 물에 산그림자 그대로 담긴다.

다리 밑에서 쉬던 자라, 물그림자 흐트러트리며 유영 중.

전에 왔을 때는 없던 연꽃들이 피어있네..




물 위로 과자를 던지니 어디선가 몰려드는 물고기들. 어린 새끼들을 많이 거느렸다. 여기 너의 세계였었구나...






더 있고 싶지만 시간에 맞춰 버스로 돌아가야 하니 아쉬움을 털고 일어나야지.

계족산은 황토길 외에 숲 속 나무데크길도 좋았었다.



다음 코스 장태산.

장태산은 개인이 메타세콰이어를 심고 숲을 가꾸던 걸 대전시가 인수해 지금의 휴양림으로 꾸며 운영하는 거라고.

개인이 어떻게 이런 숲을 조성했을까?



숲으로 들어서는 다리 위에서 왼 쪽을 보면 이 풍경,

오른 쪽을 보면 이 풍경. 바람이 어찌나 좋은지 자리를 떠나고 싶지가 않았었다.

계곡물도 맑고 자세히 들여다보니 어린 물고기들이랑 보호종이라는 도룡뇽도 물 속에서 분주하더라.





메타세콰이어는 몇 십, 몇 백미터까지도 자란다는데 쭉쭉 뻗은 나무들이 장쾌하다.

휴양림이라 곳곳에 쉴 곳도 많고, 아예 누워 숲을 바라보게 침대형 S자벤치가 있길래 나도 잠시 누워 맘중한.



숲 길 위쪽 펜션 근처  길가에 詩비들이 죽 놓여있다.




메타세콰이어는 엄청나게 크게 자라는 나무인데 나무 간격이 너무 좁아서 가지들이 사선으로만 뻗었다. 미스코리아 자세.

맘껏 사방으로 가지를 펼치지 못하는 나무들이 안되보이네..

여기 숲 길말고 메타세콰이어 나무들 사이로 조성한 스카이타워(120m높이라네..)가 유명하지만, 지난 번에 가봤으니 오늘은 패스.


계족산도 그렇고 장태산도 그렇고 등산이랄 것도 없이 그냥 산책 코스라 한들거리며 숲구경하기 좋다. 숲의 푸르름과 향기로운 공기, 온갖 새소리도 힐링이지만 자동차소리 같은 인공적 소음이 없는 것 만으로도 얼마나 마음이 편해지는지 모른다.

그 속에 한 일주일만 푹 잠겨있을 수 있었으면...하는 마음.


여기저기 바쁘게 뛰는 와중에도 대전시장에서 보내는 점심시간은 아주 길다. 시장에서 돈을 많이 써달라는 얘기.

우체국 옆길로 들어서 다들 먹자골목을 찾아 오른쪽 길로 가는데 왼쪽으로 들어서 블록 맨 끝에 가면 청년몰?, 이름을 잊었네, 건물 3층에 청년(?)들이 운영하는 푸드코트같은 식당가가 있다. 햄버거, 비빔밥, 반상, 초밥, 돈까스, 피자, 기타등등 제법 다양한 음식점들이 모여있었다.

뭐 먹을까 고민하다 치즈돈까스를 주문했는데, 와우, 기대이상으로 너무 맛있어서 대만족.

크림으로 예쁘게 하트를 그려준 카페라떼도 맛있었고, 대체적으로 음식에 정성이 들어 간 느낌이다.

시장은 좀 한산해보여 걱정스럽기까지 했는데 이 식당가는 만석으로 북적거려 다행이라는 마음.


다음에 대전가면 다시 가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