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간직하고 싶은 이야기

약탈 대신 양보… 정부는 미숙해도 국민은 성숙했다-네팔 카트만두

바다가는길 2015. 5. 6. 16:46

 

 
정부는 미숙(未熟)했지만 국민은 성숙했다. '신(神)들의 땅'을 '통곡의 땅'으로 바꿔놓은 대지진이 일어난 지 열하루째, 네팔의 수도 카트만두는 시민의 힘으로 빠르게 일상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5일(현지 시각) 오전에도 카트만두 시내 중심부 천막촌엔 어김없이 긴 줄이 세워졌다. 대부분 주민이 천막을 접고 집으로 돌아갔지만 아직 줄은 대지진의 여운만큼이나 길었다. 경찰 단 8명이 이재민 수천명에게 구호품을 전달하고 있었다. 2명은 구호품 앞을 지켰고, 2명은 긴 줄을 돌아다니며 주민을 통제하고, 4명이 구호품을 나눠줬다. 이재민들은 질서정연하게 구호품을 받고는 다시 자신의 천막으로 돌아가 죽을 끓이고, 못다 한 빨래를 했다. 여전히 퍼지는 여진(餘震)의 괴담 속에서, 누구도 새치기를 하지 않았고 구호품을 가지고 다투지도 않았다. 천막촌의 경찰은 마치 비스킷 하나만 더 달라며 우는 아이를 달래기 위해 존재하는 것처럼 보였다. 천막촌에 고성(高聲)은 오가지 않았다.

 

생수와 맥주, 음료수 따위를 파는 천막촌 주변의 한 구멍가게 주인은 "지진 이후 5일 정도 문을 닫았다가 다시 열었다"고 띄엄띄엄 영어로 말했다. "사재기나 약탈은 없었느냐"는 물음에 그는 고개만 갸웃거릴 뿐 대답하지 않았다. 그런 일이 없다는 것인지, '사재기'란 단어를 알아듣지 못한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의 뒤로 먼지가 내려앉은 생수와 과자들이 박스째 쌓여 있었다.

네팔 정부가 손놓다시피한 카트만두 외곽 시골마을에도 하나둘 구호품이 전달되고 있다. 소요 사태를 우려한 구호단체들은 권총으로 무장한 현지 경찰과 동행해 벽지(僻地)를 찾고 있지만, 이 권총이 발사된 적은 없었다.

지난 2일 구호단체 '기아대책'은 이번 지진으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신두팔촉(Shindupalchowk)의 바레가웅 마을을 찾아 주민 750여명에게 쌀과 천막 등을 지원했다. 마을 사람들은 식량과 천막을 실은 트럭에 앞다퉈 몰려들다가도, "물품은 충분하니 기다려라" 한마디에 다시 물러섰다. 산 정상에 있는 이 마을 주민들은 5일째 아무것도 먹지 못한 채 추위와 굶주림에 시달리고 있었다. 15년째 네팔에서 활동하고 있는 문광진(45) 기아대책 봉사단원은 "네팔 사람들이 순박하긴 하지만, 이처럼 약탈이나 폭력 행위가 없을 거라곤 예상하지 못했다"고 했다. 이 마을 누구도 도덕 교육을 받지 않았다. 초등학교를 졸업한 이는 마을 안에 한 명도 없다.

무정부(無政府) 상태가 꼭 무질서를 의미하진 않는다는 걸 네팔 국민은 보여줬다. 아이티나 칠레 대지진 등 참사 현장에 어김없이 나타나 도시 재건을 가로막던 무장 강도들은 찾아볼 수 없었다. 네팔을 찾은 외국인들은 재난 상황에도 도시 전역을 홀로 오갔다. 시민들은 네팔 재건을 위해 자발적으로 움직였다. 최근 카트만두 타멜(Thamel) 지역엔 '네팔 국민을 도와달라'는 전단과 함께, '도움을 원하는 사람은 우리 페이스북 페이지에 가입하라'는 내용의 전단이 곳곳에 붙고 있다. 밤만 되면 잔잔한 음악이 거리를 감싼다. 한 거리 악단이 '슬픔에 빠진 네팔을 위해 기부가 필요하다'는 종이가 붙은 조그만 상자를 가져다 두고 자선 연주를 하는 소리다. 현지 언론 1면엔 '지진 때문에 망가진 집을 무료로 고쳐주겠다'는 네팔 기술인 협회의 광고가 며칠째 실리고 있다.

영어를 할 줄 아는 네팔 청년들은 취재진과 구호단체의 가이드를 자청했다. 기자의 취재를 돕느라 며칠간 동행한 네팔 청년 아윱씨가 갑자기 어디론가 사라져 그의 지인에게 물었더니, "이번 지진으로 벽에 금이 간 집을 고치러 갔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무너진 자신의 집을 돌보다 말고, 자국의 상황을 외신(外信)에 알리기 위해 밖으로 나온 것이다. 그는 "늦게까지 돌아다녀서 미안하다"는 기자의 말에 이렇게 대답했다. "It's my duty(이건 나의 의무다)."

지진 발생 열흘째인 4일 밤, 카트만두 남쪽 바이시파티(Bhaisepati) 지역의 한 사거리에선 촛불이 타올랐다. 행인들은 초에 불을 붙이고 10분 정도 묵묵히 땅을 내려보다 각자의 갈 길로 갔다. 절망에서 추모로 분위기가 변하고 있지만, '선한 네팔인의 비극'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수도 카트만두를 벗어나면 아직 구호는커녕 시신 수습도 이뤄지지 않은 지역이 많고, 네팔이 자랑하는 주요 관광유산이 무너져 경제 역시 10년 이상 후퇴했다. 5일, 사망자는 7500명을 넘어섰다. 귀국을 하루 앞둔 5일, 카트만두는 종일 맑았다. 대지진 이후 며칠간 추적추적 내리던 비는 완전히 그쳤다. 한국에서 볼 수 없는 수많은 별이 네팔 밤하늘에 빛났다. 지난해 네팔의 1인당 GDP는 699달러로 한국의 40분의 1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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