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루 찬차마요市 정흥원]
딸 잃고 아르헨, 아들 잃고 페루로… 이웃돕기 15년… 월급도 거의 기부
등 떠밀려 시장 출마해 재선까지… 도로·정수장 등 기반시설에 총력
페루 후닌주(州) 찬차마요의 시장(市長)이 서울시 상수도사업본부를 찾았다. 찬차마요는 아마존 발원지임에도 상하수도 설비가 없어 주민은 오염된 물을 마신다. 주민 80%가 커피 농사를 짓는데, 비만 오면 엉망인 비포장길 탓에 생두 값만큼 운송비가 붙는다. 시장은 방한 기간 보름 내내 도로포장 업체, 쓰레기 처리 시설, 커피 원두 구매처를 찾아다녔다. 수출입은행으로부터 인프라 구축 차관 도입도 성사시켰다.
그는 한국인 정흥원(68)이다. 2010년 남미에서 한인으로 시장에 당선됐고, 지난해 재선됐다. 월급은 물론 사재까지 털어 가난한 이를 돕는 외국인 시장으로 유명하다. 중앙 정치인들도 그에게 관심을 기울인다. 2012년 페루 대통령이 방한해 정상회담할 때도 그가 동석했다.
"6·25 후 부모님은 청계천 하꼬방(판잣집)에 사셨죠. 저는 초등학교만 졸업했어요." 고생 끝에 작은 스웨터 공장을 차렸고, 결혼해 1남2녀를 뒀다. 그런데 열네 살 큰딸이 쓰러졌다. 몸에 구리 성분이 쌓이는 희귀 질환이다. 치료법을 찾아 동분서주했지만 빚만 늘었다. "병원비 벌려고 1980년 이라크 건설 현장에 갔어요. 이란·이라크전이 한창인 때죠. 거기서 딸이 하늘나라로 갔다는 전보를 받았어요."
1986년 떠난 딸을 잊으려고 아르헨티나로 이민 갔다. 순탄했다. 스웨터 사업이 잘돼 돈도 좀 벌었다. 그런데 막내인 10대 아들도 큰누나와 같은 증세가 나타났다. 아들도 잃었고, 아내는 신장병이 생겼다. 아르헨티나도 살 수 없는 곳이 돼버렸다.
페루로 이민 간 것은 1997년이다. 수도 리마에서 자동차 부품 사업을 하며 정착했다. 그런데 아내 병이 악화돼 둘째 딸이 사는 미국으로 요양 갈 참이었다. "휴가차 안데스 넘어 찬차마요에 갔다가 뭔가에 끌리듯 주저앉았어요. 산세가 꼭 한국 같고 사람들도 순박해요." 찬차마요는 쿠스코와 더불어 페루의 대표적 관광지이지만 생활수준은 현저히 떨어진다. 병원·도로·상하수도가 거의 갖춰지지 않았다. 라디오를 틀면 어려운 사람들이 나와 도움을 호소하는 프로그램이 수두룩하다. "아이를 병원에 가게 해달라며 울부짖는 엄마의 절규를 들었어요." 그는 방송국에 찾아가 치료비를 건넸다. 그렇게 하나둘 돕다 보니 '마리오 정'(현지 이름)에게 가면 도와준다는 소문이 돌았다. "자식 둘러업고 산길을 넘어와 초인종 누르는데 어떻게 돌려보내요."
산사태로 집 잃은 사람에게 음식을 보내고, 여행 못 가본 학생들의 수학여행비를 지원했다. "내 나이면 돈 쓸 일이 별로 없죠. 나머진 이웃에게 써요. 그렇게 살다 보니 제게도 다시 기쁨이 찾아오더군요."
찬차마요 10년, 정치권에서 출마를 제의해왔다. "계속 사양했는데, 정당 사람들이 라디오까지 나와 '마리오 정을 출마시키고 싶다'고 하는 거예요. 그러자 사람들이 저를 '알칼데(Alcalde·시장)'라고 부르데요." 등 떠밀려 나간 선거에서 공약은 "시장이 되든 안 되든 가난한 이웃을 돕겠다"는 것 하나였다. 2010년 그는 3선 시장을 두 배 이상 표차로 누르고 당선됐다.
이후에도 달라진 건 없다. 집무실에는 늘 가난한 이웃이 그를 기다리고 있다. 직원들의 부패도 격감했다. 찬차마요의 시급한 과제는 상하수도·쓰레기장·도로 등이다. 정 시장은 3년 전 방한 때 서울시로부터 조그만 정수장 건설을 약속받아 공사하고 있다. 코이카(KOICA) 지원으로 병원 건립도 추진하고 있다. 어렵잖게 재선됐다. "몸이 힘들어 3선은 못하겠어요. 임기인 2018년까지 매년 1000㎞씩 포장하는 게 목표예요. 전 찬차마요에서 죽을 겁니다."
- 김충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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