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마흔 살이 되기 전에 숲속 깊은 곳에서 살아보기로 결심했다.
나는 바이칼 호숫가, 북쪽 삼나무 숲의 곶 끄트머리에 위치한 시베리아식 오두막에서 6개월 동안 지냈다. 가장 가까운 마을은 100킬로미터 떨어져 있고, 이웃도 없고, 접근도로도 없으며, 때로는 방문하는 사람조차 없는 곳이다. 밤에는 기온이 영하 30도로 떨어지고, 여름에는 호숫가의 둔치에 곰들이 돌아다닌다. 한마디로 내게는 낙원이다.
나는 책과 시가와 보드카를 가져갔다. 나머지-공간과 침묵과 고독-는 이미 거기에 있었다.
...나는 호수와 숲을 마주하고서, 하루가 흘러가는 것을 지켜보았다. 장작을 팼고, 저녁거리를 위해서 물고기를 잡았으며, 많이 읽었고, 산에 올랐고, 창가에서 보드카를 마셨다. 오두막은 자연의 미묘한 떨림을 포착하기에 이상적인 관측 장소이다.
나는 겨울과 봄, 행복과 절망, 그리고 마침내 마음의 평화를 체험했다.
침엽수림 깊은 곳에서 나는 완전히 바뀌었다. 움직이지 않는 삶은 여행이 더 이상 주지 못했던 것을 주었다. 장소의 정령이 시간을 길들일 수 있게 도와주었다. 나의 은둔 생활은 이런 변화들의 실험실이 되었다.
매일, 나는 떠오르는 생각들을 한 권의 노트에 적어나갔다.
그 은둔 일기가 지금 당신의 손에 들려 있다.
그가 살았던 6개월의 공간과 시간은 내가 꿈에 그리는 바로 그것들이다.
당연히 다른 것은 나는 꿈으로만 그리고, 그는 저벅 저벅 그리로 가 그 시간을 살았다는 것.
그래도 영하 30도는 너무 춥겠지?
때는 마침 한 여름, 누군가가 전하는 한 겨울의 시베리아 숲은, 그의 말대로 떠올리는 이미지들만으로도 한 줄기 청량하고도 서늘한 바람이 되었다.
막 버무린 샐러드처럼 신선하고 아삭한 문장들은 마음에 하나 거슬림없이 책장을 넘기게 해서, 그가 누렸던 그 시간과 공간들, 탐나는 곳마다 책갈피를 바삐 접으며 지루할 틈없이 휘딱 읽어 버린 책이다.
마음 한 구석으로, 누구는 태어나 그런 시간을 사는데 나는? 하고 살짝 의기소침해지기도 했지만...
...마지막 궤짝은 책 궤짝이다. 왜 이곳에 파뭍힐 생각을 했느냐고 내게 묻는다면, 읽어야 할 책들이 밀려 있기 때문이라고 대답하리라...
...이제 트럭은 하나의 점이 되었다. 나는 혼자이다. 산들이 보다 준엄하게 보인다. 풍경이 비로서 그 강렬한 실체를 드러낸다. 갑자기 산하 전체가 성큼 눈 앞으로 다가온다. 인간이란 다른 인간의 주의력을 얼마나 독점해버리는지!... 고독이란 우리에게 사물들을 다시 즐길 수 있게 해주는 것, 우리가 정복해야 할 귀중한 것이다...
정적은 하얗고 조그만 부스러기들의 형태로 하늘에서 떨어진다. 홀로 된다는 것, 그것은 침묵의 소리를 듣는 것이다. 돌풍이 한소끔 인다. 싸락눈이 시야를 흐린다. 나는 목청껏 괴성을 지른다. 두 팔을 활짝 벌리고 차디찬 허공에 얼굴을 한번 쭉 내민다... 나는 내 삶의 부두에 닻을 내렸다...
..저녁 9시이고, 나는 창문 앞에 있다... 차 한 잔을 받쳐들고 창가에 앉아, 시간들이 우러나오도록 두면서 혹은 풍광이 펼쳐보이는 뉘앙스들을 발견해가면서, 더 이상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다가는, 문득 스쳐가는 생각이 있으면 수첩에 서둘러 적는다. 창문의 사용법? 아름다움은 들어오라고 청하고, 영감은 그대로 흘러나가게 할 것.
나는 반 고흐가 그린 가셰 씨와 같은 자세로, 한 손 위에 빰을 기대고 멍하니 허공을 응시한 채로 2시간을 보낸다...
...은둔자의 사치는 아름다움이다. 그의 시선은 어디로 향하든지 더없는 아름다움을 발견한다. 시간의 흐름은 끊기는 법이 없다. 그는 기술이 창조하는 욕구들의 굴레에 갇히지 않는다.
'숲에의 호소'라는 악보는 한정된 수의 연주자에 의해서만 연주될 수 있다...
...이 날 들의 일초 일초는 전적으로 나의 것이다. 그것들을 가지고 무엇을 하든 내 자유이다. 빛의 장을 만들 수도, 잠의 장을 만들 수도, 아니면 우울의 장을 만들 수도 있다. 이런 삶의 흐름에 아무도 끼어들 수 없다...
나는 암벽에 매달린 클라이머의 수직적 현기증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 발 밑의 아찔한 허공을 내려다보면 간담이 서늘해진다. 나는 광활한 평원에서의 수평적 현기증도 기억하고 있다. 끝없이 뻗은 소실선들은 정신을 멍하게 만든다... 지금 나는 은둔자의 현기증을 발견하고 있다. 그것은 시간적 허공이 주는 두려움이다...
...거울 같은 빙판 위에 하얀 눈줄기들이 우아하게 구불구불 이어진다. 결빙하여 다시 봉합된 균열들을 따라서 터키옥빛의, 산호초 바다색의 빙판이 이어진다. 그리고 아열대의 간주곡에 뒤이어 거무스름한 유리의 긴 얼룩이 나타난다. 태양은 빙판 속의 깨진 틈에 허연 알부민을 불어넣는다. 공기방울들도 얼음 속에 갇혀 있다. . 마스크의 열린 틈 사이로 해저의 이미지들이 물결치듯이 흔들인다. 그리고 눈을 감으면 나의 망막에 인쇄되어 남는다...
...저녁이 되니, 하늘이 숨을 쉬고 기온이 내려간다. 나는 흰 옷으로 몸을 칭칭 두른 채, 나무 벤치 위에서 더없이 행복한 1시간을 보낸다...
...이따금 아무 것도 하고 싶지 않은 순간이 찾아온다. 1시간 전부터 나는 의자에 앉아 햇살이 탁자 위를 천천히 나아가는 광경을 지켜보고 있다. 빛은 그것이 건드리는 모든 것을 고귀하게 만든다. 나무, 책들의 단면, 칼자루, 얼굴의 곡선, 그리고 흘러가는 시간의 곡선, 심지어는 공중에 떠 있는 먼지 알갱이까지도. 이 세상에 먼지 알갱이 하나로 존재한다는 것도 결코 사소한 일이 아니다.
이제, 내가 이렇게 먼지에까지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3월은 무척 긴 시간이 될 것이다...
...나는 시간을 쫓아 달렸다. 그것이 지평선 저 끝에 숨어 있다고 믿었다. "시간이 너무도 급히 흘러가는 것을 그것의 강렬한 사용으로 보상할 것(몽테뉴 수상록)", 이것이 내가 달아나는 시간에 대응하는 방식이었다.
자유로운 인간은 시간을 소유한다. 공간을 지배하는 인간은 단순히 강할 뿐이다. 도시에서 분과 시간들과 해들은 우리를 피해 달아난다. 그것들은 시간의 상처를 통해서 빠져나간다. 반면, 오두막에서는 시간이 진정된다. 그것은 착한 늙은 개처럼 당신의 발치에 엎드려 있고, 어느 순간 당신은 그것이 여기에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게 된다. 내가 자유로운 까닭은 나의 날들이 자유롭기 때문이다...
...흘러가는 하루하루는 전날의 거울이고, 다음날의 스케치이다. 시간마다 달라지는 하늘의 색깔, 문득 왔다가 가버리는 새들, 그리고 깨닫고 분간하기 힘든 수많은 뉘앙스들...
...빙판 위에서의 하루. 호수를 덮은 얼음외투의 무늬들에서 눈을 뗄 수가 없다. 빙판 속의 쪼개지고 갈라진 면들은 이 얼어붙은 물 속에 겹겹이 풀어놓은 천들, 찌릿한 전류를 방사하며 너울거리는 옥빛 천들처럼 보인다. 선들은 수축하여 다시 합쳐지다가 또다시 갈라져나가기를 반복한다.. 몇 차례의 굉음이 정적을 깨뜨린다.. 폭발음이 그물처럼 얽힌 혈관들을 타고 흘러나간다.. 햇빛이 굴절된다. 실타래가 환해진다. 빛은 이 터키옥빛의 혈관들을 비추며, 금빛으로 그들을 수정시킨다. 얼음이 경련한다. 얼음은 살아있고, 나는 얼음을 사랑한다.. 세계가 어떤 미지의 문자를 보여준다...
... 아포리즘이나 잠언 같은 것들에 대한 나의 사랑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전체보다는 자기 중심주의를, 집단보다는 개인을 선호하는 경향은 대체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내 이름? 테송, 즉 사금파리, 무엇인가 존재했던 것의 깨진 조각. 사금파리는 잃어버린 통일성에 대한 향수에 이끌려, 절대적 전체와 다시 이어지려고 애쓰는 존재이다. 내가 이곳, 이 숲속에서 술에 취해가면서 하고 있는 일이 그것이다...
...속박 없는 삶에 필요한 두 가지 요소, 즉 고독과 광활한 공간...
... 그들이 떠나자 나는 비로서 숨을 내쉰다.
다시 정적이 찾아온다. 소음의 부재가 아닌 모든 대화상대가 사라진 거대한 정적이다. 사슴들이 뛰노는 이 숲, 물고기들이 가득한 호수, 새들이 가로지르는 이 하늘에 대한 사랑이 내 안에 차오른다...
...은둔자는 자연 앞에 홀로 서있다. 현실을 응시하는 것은 오직 그뿐이다. 그 혼자서 세계의 재현이라는 무거운 짐을, 인간의 눈에 계시된 현실이라는 그 무거운 짐을 지고 있다...
..루소는[고독한 산책자의 명상]에서 이렇게 말했다. "혼자 있으면 나 자신의 성분만을 먹고 살아야 하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것은 결코 고갈되지 않는다..."..
...바람은 남쪽에 붙잡혀 있다. 아직은 눈이 내리는 날씨이다. 흰색이 모든 소리를 흡수한다. 천지는 희귀한 정적에 잠겨 있고, 날씨는 온화하다. 온도계는 영하 15도를 가리킨다..
...여전히 눈이 내린다. 나는 아직도 꼼짝하지 못한다. 지금까지 나는 화살을 떠난 시위처럼 세상을 돌아다녔다. 이제는 땅에 박힌 말뚝이다. 참으로 나는 식물화되고 있다. 나의 존재는 뿌리를 내리고 있다...
...오늘 아침에는 감히 침대에서 일어나지 못한다. 나의 의지는 순결한 날들의 들판에서 해방되었다. 앞에 펼쳐진 새하얀 공간을 응시하며 나는 "아, 이렇게나 자유롭다니!" 라고 중얼거리며 밤이 올 때까지 마비되어 있을 수 있은 것이다.
다시 눈이 내리기 시작한다. 아무도 없다. 여기에서는 오직 시간만이 지나간다...
...오늘 저녁, 나는 삼나무 잎사귀 아래의 나무 벤치에 앉아서 호수를 바라본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눈 앞에 펼쳐진 아름다운 풍경이다. 그 다음에는 모든 문제가 해결되고, 삶은 다시 시작될 수 있다...
...눈이 내린다. 나는 호수 위를 걸으며 얼굴을 쳐들고 입을 벌린다. 이렇게 하늘의 젖을 물고 눈송이들을 마신다..
...호수 위에 자욱한 안개가 내려앉는다. 지평선은 더 이상 보이지 않는다. 나는 옷을 껴입고 호수 가운데의 드넓은 빙판으로 떠난다. 2킬로미터 정도 걷자 시야에서 기숡이 사라진다. 그렇게 2시간을 걷는다. 발자국만이 나를 오두막과 이어준다. 나침반도 가져오지 않아서, 바람이라도 일면 발자국이 다 지워져서 길을 잃고 말 것이다.. 나는 무 속으로 깊이 들어간다. 그렇게 2시간 정도 지났을 때 문득, "이제 됐어"라고 중얼거리고 성큼성큼 돌아가기 시작한다. 2시간 후, 하얀 베일 뒤로 산이 나타나고, 나는 오두막에 이른다...
...은둔의 유혹이 생기려면 반드시 어떤 주기를 거쳐야한다. 숲 속 빈터의 연기가 피어오르는 오두막에서 살기를 열망하기 위해서는 먼저 도시의 한 가운데서 소화불량으로 고통을 겪어야 한다.순응주의라는 굳기름 속에서 온몸이 경직되고, 안락함이라는 돼지기름 속에서 정신이 곪아터져야 비로소 숲의 부름이 귀에 들린다.
정오에 나는 귀로에 오른다. 빙판이 고운 눈가루로 덮여 있어서 신발바닥이 미끄러진다...안개가 산비탈을 뿌옇게 덮는다. 호수가 창조되고, 또다시 창조된다...
...겨울은 도무지 끝날 줄을 모른다... 눈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내린다. 떨어지는 눈송이들의 겁에 질린 소리가 들린다. 나는 하루 종일 오두막 안에서 지낸다.. 시간이 천천히 지나가는 것이 창문으로 보인다. 약간 지루하다. 오늘, 시간은 꽉 잠그지 않은 수도꼭지에서 한 방울 한 방울 똑똑 떨어져내린다. 지루함이란 구닥다리 친구와도 같다. 지루할 때, 시간은 대구 간유의 맛처럼 느껴진다. 그러다가 이 맛이 사라져버리면서 더 이상 지루하지 않게 된다. 시간은 다시 존재를 통해서 자신의 길을 가는, 그 가볍고도 보이지 않는 행렬이 된다...
...하늘은 미쳤다. 맑은 공기에 깜짝 놀라고, 빛에 얼이 빠진 것일까? 강렬한 아름다움을 가진 이미지들이 튀어나오고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어떤 신의 출현이 이러할까?..
...저 멀리 햇살이 구름을 뚫고 나오고 있다. 낙원은 바로 이곳에 있어야 했다. 경치는 더없이 아름답고, 알몸으로 사는 것은 불가능하므로 뱀도 필요없고, 또한 어떤 신을 만들고 앉아 있기에는 할 일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 이제 나는 해발 1000미터의 능선에 올라와 있다. 바위에 등을 기대고, 나지막한 무고소나무 가지 위에 앉아, 다리를 허공에 늘어뜨리고서 아래를 내려다본다. 발밑에는 황금색 낙엽송들이 줄지어 서 있고, 더 아래 저 멀리에는 안개가 기슭에 와닿는 것이 보인다. 안개는 푹신한 롤러처럼 밀려와서 숲의 언저리에 부딪힌다...
..아무튼 아무 것도 소유하지 않는다는 생각으로 삶을 꾸리면, 조금도 부족함이 느껴지지 않을 것이다...
...하루는 어떤 솔페지오를 이루는 박자들로 정확하게 끊긴다. 아침 8시에는 새들이 도착하고, 9시 반에는 한 줄기 햇살이 왁스 천을 쓸고 올라가며, 해 저물 무렵에는 개들이 장난을 친다. 오후 중간 쯤에는 물개들이 나타나고, 밤에는 양동이에 담긴 물에 달빛이 비친다. 완벽한 메카니즘이다. 이 하찮은 일들은, 그러나 숲속의 삶에서는 엄청난 대사건들이다. 나는 이런 것들을 기다리고 희구한다. 그리하여 이런 것들이 찾아오면, 나는 알아보고 반가이 인사한다.. 이제 행복은 아주 단순한 것이 된다. 행복은 도래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는 무언가를 기다리는 것이다. 시간은 이런 신비한 출현들의 놀라운 조정자가 된다...
...오후에 또 비가 내린다... 이 나무관에 산 채로 갇힌 나에게 저녁과 함께 무시무시한 시간들이 찾아온다. 유령들과 회한들이 어스름을 틈타서 슬그머니 가슴속으로 들어오는 것이다..
용기 있는 태도는 사물을 직시하는 것이리라. 나의 삶과 나의 시대와 기타 다른 것들을 똑바로 쳐다보아야 할 것이다. 낭만적인 사람들은 향수와 우수와 몽상이 어떤 의로운 도피라는 환상을 품는다. 이것들은 세상의 추함에 대한 멋진 저항의 수단들로 간주되지만, 실은 비겁함을 숨기는 가리개일 뿐이다. 나는 누구인가? 세상에 겁을 먹고, 숲속 깊은 곳 오두막에 숨어든 비겁자일 뿐이다. 자기 시대의 광경을 보지 않으려고, 모래톱을 거닐다가 자신의 양심과 마주치는 일을 피하려고, 조용히 술에 취하는 겁쟁이일 따름이다...
...나는 그렇게 산꼭대기에 서 있는다. 그리고 저 산들을 경외한다. 저들은 모든 것에 초연하고, 그저 존재하는 것으로 만족하며, 그저 저렇게 서 있다. 헤겔의 'So ist(그러하다)'는 머리로 헤아릴 수 없는 것 앞에서 우리가 내놓을 수 있는 가장 똑똑한 말일 것이다.. 나는 불안한 비탈들과 위태로운 협로들을 지난 끝에, 해발 1600미터 정도의 훌륭한 평탄지에 이른다. 무고소나무들이 자란 이곳에서 개와 호수와 우듬지들, 그리고 모닥불에서 피어올라 밤하늘에 박혀 있는 그들의 자매들을 만나러 올라가는 불똥들 사이에서 나는 더없이 행복한 하룻밤을 보낸다...
...물은 승리를 거듭한다.. 바람이 얼음의 뗏목을 드넓은 호수 가운데로 몰고 간다. 기슭은 아직 그늘에 잠겨있는데, 그 잔해들은 햇빛에 빛난다. 아침 햇살이 오두막에 들어와 바닥에서 춤을 춘다. 세상에 이보다 더 즐거운 광경은 없으리라.. 눈이 낮 동안에 이런 이미지들을 수확해놓으면, 몽상이 나중에 요리할 것이다...
...릴케는.. 편지에서 이렇게 썼다. "당신의 일상이 빈곤하다고 해서, 일상을 탓하지 마시오. 충분히 시적이지 못하여 일상의 풍요로움을 불러내지 못하는 당신 자신을 탓하시오."
만일 우리의 삶이 따분하다면, 그 책임은 온전히 우리에게 있다. 세상이 칙칙한 잿빛이라면, 그것은 바로 우리가 무미건조하기 때문이다. 삶이 창백하게만 보인다면? 삶의 방식을 바꾸어보라. 오두막에 가보라. 만일 숲속으로 들어갔는데도 여전히 세상이 칙칙하고 주변 사람들이 견딜 수 없이 느껴진다면, 판결은 명확하다. 당신 자신이 끔찍한 것이다! 그렇다면 필요한 조처를 취하라...
...나는 해먹에 누워서 구름의 형태들을 연구한다. 관조, 그것은 약은 사람들이 자신의 게으름에 갖다붙이는 이름이다. "활동적인 사회 안에서 만인이 제자리를 찾기"를 원하는 근엄한 사람들의 눈에 게으름을 정당화하기 위해서...
...내가 누리는 사치? 그것은 매일, 내 욕망의 처분만을 기다리며 펼져지는 24시간이다. 시간들은 나를 섬기기 위해 햇빛 속에서 일어서는 순백의 처녀들이다... 숲속의 고독한 인간에게는 사랑의 대상이 둘 있으니, 하나는 시간이고, 다른 하나는 공간이다. 첫 번째 것은 그가 마음대로 채울 수 있고, 두 번째 것은 그가 이 세상 누구보다 잘 안다...
..."나는 떠나네. 그리고 길 옆에 늘어선 어린 느릅나무들 중에서 아직 첫 번째 나무도 채 지나지 못했네......."
나는 끝까지 버틸 힘이 있을지 모르는 채로 여기에 왔지만, 이제 떠나면서는 언젠가 다시 돌아오리라는 것을 알고 있다. 나는 침묵 가운데 사는 것이 영원한 젊음의 샘이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 아무 표시도 되지 않은 순수한 시간은 보물과도 같다... 우리의 눈은 아름다운 광경에 결코 질리는 법이 없다. 사물은 우리가 더 깊이 알면 알수록, 그만큼 더욱 아름다워진다..
나는 자유로웠으니, 타자가 없으면 더 이상 자유를 제한하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나는 산들의 시를 관조했고, 호수가 장밋빛으로 물들고 있을 때 차를 마셨다. 나는 미래의 욕망을 죽였다. 나는 숲의 숨결을 호흡했고, 달의 운행을 좇았다. 나는 눈 속에서 고생을 했고, 산봉우리에 올라 그 고생을 잊었다. 나는 나무들에 경탄했고, 박새들을 길들였으며, 아름다움에 대한 경의가 없는 모든 것은 헛되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건너편 기슭에 눈길을 한번 던졌다. 나는 소리 없이 눈이 내리는 몇 주일을 경험했다. 나는 눈보라가 맹위를 떨치고 있을 때 훈훈한 오두막 안에 있는 것이 정말 좋았다. 나는 돌아온 태양과 야생오리들에게 경의를 표했다... 나는 창문 앞에 앉아 있는 법을 배웠다. 나는 내 왕국에 녹아들었고, 이끼 냄새를 맡았고, 야생마늘을 먹었으며, 곰들과 조우했다.. 나는 도시의 지하묘지를 떠나 타이가의 성당에서 여섯 달을 살았다. 하나의 완전한 삶으로서 여섯 달을 살았다.
저기, 이 세상의 어느 숲에 삶의 행복과 아주 멀지 않은 무엇인가가 가능한 오두막 한 채가 있다는 사실은 알아둘 필요가 있다.
...죽음의 맛을 느끼는 아침이다. 출발의 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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