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 25개 사막을 홀로 건넌, 아킬 모저가 들려준 인생의 지혜와 감동의 기록.
...마침내 페스, 라바트, 카사블랑카 그리고 마라케시를 지나 모로코 남부에 이르렀다. 내 눈 앞에 모래와 암석의 광야가 펼쳐진다. 평생 그 순간을 잊지 못할 것이다. 눈이 시리게 짙푸른 하늘 아래 물결치는 황갈색 모래언덕, 그 끝없는 광야를 마주한 순간, 그건 내게 차라리 신의 현현이었다. 눈 닿는 곳까지 이어진 모래, 멈추지 않는 바람에 장엄한 풍경으로 거듭나는 황금의 바다는 아무리 독창적이고 대담한 환상이라도 결코 지어낼 수 없는 그림이었다.... 바람은 지극히 섬세한 무늬와 호화로운 모래의 선을 그려냈고, 다양한 크기와 형태의 모래파도가 넘실넘실 밀려가 지평선 너머에 닿아 있었다. 부드럽게 흐르는 모래바닥 위로 바람의 날개가 스치고 지나면 출렁이는 모래파도 위로 연기가 피어나듯 칼날처럼 날카로운 사구의 빗질이 시작된다.
모래파도의 색깔은 그것이 태양을 마주하고 섰는지 등지고 섰는지에 따라 오묘한 변화를 일으키며 아른아른 빛났다. 나를 둘러싼 세상이 현실이라기보다 오히려 꿈처럼 보였지만, 그래도 그건 꿈이 아니었다. 모든 것이 실재하는 존재였다. 모래도, 사구의 바다도, 광야도, 새파란 하늘도......
그 순간 벼락에 맞은 것처럼 차고 넘치는 행복감이 몰려왔다. 나는 이미 내 존재 바깥에 서 있었고 온 몸을 휘어감는 흥분을 느꼈다. 그런 감정은 쓰나미처럼 한순간에 전신을 덮쳐왔다... 모래의 바다는 환상적이었다. 너무 큰 매력이었다... 한순간 나는 이성은 물론 영혼마저 빼앗긴 느낌이었다. 위대한 사랑을 인식하는 순간처럼 충만한 감정이었다.
더할 나위 없는 행복 앞에서 스스로를 잃어버린 나는 모래의 높은 언덕 위로 달려 올라가 배낭을 팽개치고 소리쳤다. 미친 소리를 내질러가면서 아무 이유없이 모래 위를 달리고, 터벅터벅 걷다가 미끄러지고 넘어지고 모래언덕을 떼굴떼굴 굴러 내려갔다. 그러다 다음 언덕이 나오면 다시 기어 올라갔다. 숨이 턱 밑에 차올라 쓰러져 한 걸음도 옮길 수 없을 때까지 나는 모래 위를 달렸다....
..경이로움의 극치!...
그때 나는 그 순간의 느낌을 결코 잊지 않으리라 굳게 다짐했다.
머리는 맑았고 모든 것은 밝고 청명했다. 모든 것을 내던진 느낌. 모든 것을 저들 뜻대로 내버려둔 느낌,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 느낌, 다시 한 번 모든 것을 시작하는 느낌......
책을 통해 알고 동경만 해오던 사막을 아르바이트로 모은 돈으로 처음 직접 여행한 건 그가 17살 때였다든가? 그후 그는 사막여행 중독자가 되었다.
헤어나오지 못한 그 중독의 기록들이 여기 있다. 책에서 그 기록은 2008년으로 끝나있지만 아마 그는 지금도 어느 사막을 묵묵히 걷고 있는 중인지도 모르겠다.
이게 그림이라면, 얼마 전 읽은 ''희망의 발견-시베리아의 숲에서'와 대련으로 걸고 싶은 마음.
하나는 떠돌기를 멈추고 겨울 숲에서 한 철을 나는 이야기, 또 하나는 타들어가는 열기 속을 끝없이 떠도는 이야기.
다르지만 같은 맥락. 그 둘이 만나다면 얼마나 할 얘기들이 많을까.
묘사가 선명해, 그동안 영상으로 봤던 사막의 모습들을 함께 떠올리며 마치 내가 그 곳, 그 순간에 있는 듯 간접체험을 할 수 있었다.
무수한 이국적인 이름들이 나에게도 동경을 불러 일으키고, 각 지역마다 그 지역의 역사와 거기 살고 있는 사람들과 지금의 현실들을 보여줘 몰랐던 사실들도 많이 알게돼 흥미진진, 재미있게 읽은 책이다.
가볼 수 없는 곳, 이렇게라도...
나에게도 사막이 필요하다.
중가리아 사막과 투르판 분지. 중국. 1991
별안간 지평선이 지워져버렸다. 누군가 지우개로 지운 것처럼. 모래가 만든 장벽이 점점 더 크고 넓어지면서 지평선을 삼켜버렸다. 먼 데 어두컴컴한 자리에서부터 내게로 달려오는 모래의 장벽이 미친 수도승처럼 춤을 춘다. 믿을 수 없는 속도로 다가오는 강력한 먼지와 모래의 장벽은 어느새 높이가 수백 미터로 높아지면서 해를 가린다. 빛이 약해지는가 싶더니 뿌연 어둠이 찾아온다. 쏴쏴 몰아치는 소리, 으르렁으르렁 고함치는 소리가 세상을 가득 메우고, 장거리 전화의 선이 망가지기라도 한 것처럼 치직치직 탁탁 하는 소리가 간간이 끼어든다.
숨이 턱턱 막히고 머리털이 곤두선다. 나침반의 바늘은 회전목마처럼 빙글빙글 돌기를 멈추지 않는다. 무언가를 잡으면 정전기가 스파크를 일으킨다. 바람이 옷을 찢을 듯 잡아채고 날카로운 모래알이 얼굴을 때리면 수천 개의 바늘에 찔린 듯 피부가 화끈화끈 달아오른다...
몇 분이 지나지 않아 장화가 묻힐 정도로 모래가 쌓였다. 텐트를 설치하려고 시도한다. 간신히 기둥을 세우고 텐트 지붕을 덮었지만 곧바로 텐트가 풍선처럼 부풀어올랐다. 바람때문에 불룩 배가 불러 사나워진 용처럼 텐트 옆면이 무섭게 펄럭거린다. 텐트를 묶을 수가 없다. 어떻게든 묶으려다 그만 바닥에 쓰러진 나는 황급히 텐트를 있는 힘껏 부여잡았다. 용으로 변한 텐트가 하늘로 힘찬 날개짓을 하자 나는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모래바닥에 질질 끌려갈 수밖에 없었다. 포효하는 모래장벽이 나를 덮쳐왔다. 메마른 공기가 내 목을 조이자 숨이 차올랐다. 누군가 손아귀에 힘을 잔뜩 주어 내 입을 막고 있는 느낌. 나는 한 조각 숨 쉴 공기를 찾아 발버둥쳤다...
...신장자치구는 인도 절반의 크기...육중한 산맥들에 둘러싸여 중가리아사막, 투르판 분지, 타클라마칸 사막을 품고 있는 곳.
1700만명의 주민이 살며, 위구르족이 주류를 이루고, 700만의 한족과 그 밖에 키르키스족, 카자흐족, 몽골족들이 소수민족을 구성한다.
'위구르 독립공화국'이었으나 1949년 중국에 점령, '신장'이라 불렸다. 신장은 러시아,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타지키스탄, 아프가니스탄, 핵보유국인 인도, 파키스탄과 접경을 이루는 중앙아시아의 교두보. 중국은 신장지역을 점령함으로써 그들 지역과의 완충지대와 힌두교, 이슬람교 사이의 갈등에서 중요한 위치를 확보했다.
중국은 그곳에 사는 유목민들에게 아무런 통보나 경고없이 투르판 분지를 핵실험장으로 사용하고 있다. 20만명 이상 방사능에 노출됐을 것으로 추정하지만 어떤 조사도 이루어지지 않고있다...
...내가 원했던 장소에 도착했고 그래서 너무나 행복했지만 이 행복한 감정이 어떤 느낌인지 누구에게도 설명할 수 없다. 무언가 위대한 것을 만나는 순간의 느낌... 무르툭 강 건너편에서 한 무리의 유목민들이 무겁게 짐을 진 낙타들을 이끌고 북쪽 방향으로 이동하는 모습을 보았다. 마치 꿈속에서처럼 대상의 무리는 서서히 그리고 소리없이 적갈색 모래의 파도를 뚫고 긴 고개를 올라갔다. 바람의 남녀, 빛과 밤의 남녀들이 긴 외투로 몸을 감싸고 공중을 떠가는 듯 그들의 다리 사이에서 고운 모래 안개가 피어올랐고 가벼운 바람이 그들의 머리 위를 스쳐갔다. 보이지 않는 흔적을 쫓아 저 너머 무의 세계로, 도달할 수 없는 지평선으로, 저녁이면 태양이 다가서서 몸을 감추는 그곳을 향해 걸음을 옮기는 사람들. 광야는 그런 것이다, 라고 나는 생각했다. 이 사람들이 살기 위해 필요로 하는 것, 그리고 매번 나를 다시 유혹하고야 마는 것이라고.
오다다흐라운 사막. 아이슬란드.1983
폭풍이 향하고 있는 광야 위로 옅은 안개가 거대한 박쥐처럼 날아간다. 광야는 먼지처럼 고운 검은빛 화산재 모래와 사람 크기만 한 바위들 그리고 모굴 경기장 같은 울퉁불퉁한 눈덩이들로 이루어져 있다. 금방이라도 갈라져 터질 듯 균열이 보이는 화산 분화구들, 퉁명스럽고 무뚝뚝해서 오만한 느낌을 주는 그것들은 때때로 용암이 굳으면서 만들어낸 기괴한 형상들을 보여주기도 했다. 과거에 현무암 화산에서 무엇이라도 녹여낼 듯 뜨거운 열기와 시뻘건 빛을 내뿜으려 솟구쳤던 용암의 흐름을 느낄 수 있다... 오다다흐라운, 바로 '악인의 사막'이다...
...오래전부터 이 지역은 거대한 원형 함몰지형으로 유명한 아스캬 화산이 지배해온 곳이다. 마지막 화산 폭발에서 750미터 길이의 균열을 통해 분출한 용암이 400미터까지 치솟았고, 용암과 슬래그가 강을 이루어 흐르다 환상적이고 기이한 모양으로 굳어버렸다...
눈 닿는 곳이라곤 굳어버린 용암뿐이었다. 우리는 용암 위를 걸었고, 용암 위에 앉았고, 용암 위에서 잠을 잤다....
...조금도 손대지 않은 자연의 무대에 익숙해질수록 그 무대가 지닌 신비함은 더욱 커져갔다... 가장 먼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부터 적응시켜야 했다. 풍경이 너무나 낯설어서, 너무나 원시적이고,너무나 거칠고 황량해서, 너무나 아름다워서...... 반짝이는 검은 가죽처럼 비현실적인 기괴함으로 치장한 원시의 광야에서 시선을 떼는 건 쉽지 않았다...
하루 하루 검은 모래평원이 거대한 돌밭과 번갈아 나타났다... 때때로 우리는 빙하가 녹아 흐르는 작은 개울을 건너야 했다...
도보 여행에서 맞닥뜨리는 수많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생각은 다르지 않았다. 이 낯선 세계를 제대로 체험하기 위해서는 직접 발로 디디고 걸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서서히 그리고 조심스럽게 걷는 길만이 영혼과 함께 하는 시간이 될 수 있었고, 광야의 모든 것을 호흡하기 위한 올바른 자리, 올바른 시간을 찾아왔다는 느낌을 전해 받을 수 있었다. 재고 따지지 않는 광야, 무언가 낯설고 동시에 행복한 그것이 나에게 속삭인다. 때때로 나는 여행을 끝내고 나면 이 광야가 없는 삶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막막한 기분이 들었다. 차라리 여기서 사라지고 싶다.
그냥 그대로.
...나는 백일몽에 빠져 완전한 자유를 만끽하면서 하늘을 따라 생각을 흘려보냈다. 그러다 보면 하늘에 양떼구름이 환상적인 양탄자를 깔아주기도 한다. 젖은 종이 위에 떨어진 수채화 물감처럼 섬세하고 부드럽게 펼쳐진 구름, 저녁이면 깊은 보랏빛으로 타오르는 구름의 띠를 본다. 때로는 너덜너덜 해진 깃털구름, 때로는 하늘 깊이 걸려있는 쌘구름, 또 어떤 때는 콜리플라워 모양의 뭉게구름이 다가올 날씨를 알려준다. 아이슬란드에서 구름을 빼면? 그럼 더이상 아이슬란드가 아닐 것이다.
그러나 막상 머리 위로 악천후 전선이 밀려오고 무겁게 내리누르는 먹구름이 사막에 그림자를 드리울 때는 헛기침 한 번 하지않고 바로 격렬한 폭풍을 불어댔다. 그러곤 곧장 대홍수라도 일으킬 것처럼 폭우가 몰아쳤다. 텐트를 치는 일은 언감생심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일, 쏟아지는 빗물에 눈이 가려진 채로 우리는 미끄러운 돌 위에서 넘어지기를 반복하면서 비를 피할 바위 밑자리를 찾았다.
잠시 후에 원시의 힘을 담은 뇌성벽력이 폭발하기 시작했다. 번개가 어둑한 구름 위로 강렬한 빛을 비추자 세상이 움찔한다. 광야가 유령의 옷을 걸쳐 입는 순간 가까운 화구봉 위에 빛의 창이 떨어졌다. 대지가 부들부들 전율을 일으키고 있는 사이 우르릉 천둥이 울어댄다. 천둥벼락의 신 토르가 그의 전차를 이끌고 검은 하늘 위로 질주하면서 망치 묠니르를 휘두른다.
폭풍우의 분노는 밤새 이어졌지만 다음날 아침은 마치 영화를 보는 듯했다. 갑자기 세상이 밝아지고,우윳빛 안개 사이로 빛이 퍼지는가 하면, 공중에 그려진 그림자 형상이 사방을 날아다니고, 잿빛 구름에서 환한 맥주 거품처럼 노란 빛이 쏟아져나왔다. 점차 풍경이 제 모습을 찾아가면서 하늘은 파랗게 변했고, 너무 파란 하늘 색은 보는 이를 취하게 했다.
발아래는 여전히 안개에 덮여 있었지만 갑자기 대지는 그의 회백색 외투를 광야 너머로 벗어던지고 기괴한 모양의 암석들을 깨워냈다. 우리는 순간 환상 속에 젖어들었고, 바람의 목소리가 다가와 부서지는 용암 바위 사이로 속삭일 때 황량한 대지에선 동화 세상의 온갖 피조물들이 주고받는 말소리가 수증기를 타고 은은하게 울려퍼진다...
아스캬는 상자라는 의미다. 그 이름은 상자 모양으로 함몰된 분화구 모습과 관련이 있다. 1875년 3월28일과 29일 이곳에서는 상상을 초월하는 화산 폭발이 있었다. 하늘을 무너뜨릴 듯 격렬한 폭발은 상공 300킬로미터까지 연기 기둥을 쏘아올렸다. 폭이 100미터도 넘는 분화구 위에서 거대한 칠흑의 증기구름이 뭉게뭉게 피어올랐다. 폭발 이틀 후에도 대기권 높이 날아간 화산재가 스웨덴과 노르웨이까지 이동하여 화산재의 비를 뿌렸다...
남부 사하라 사막. 말리 1980
세상에서 쫓겨난 것처럼 팀북투는 황갈색 사막 한가운데 덩그러니 놓여 있다. 진흙과 모래의 도시, 열기가 번뜩이는 텅 빈 광야에 둘러싸인 도시, 전설이 숨쉬는 이 도시...
'팀북투'는 투아레그 언어로 '커다란 배꼽을 가진 수호자의 샘'을 의미한다.... 14세기에 이르러 활짝 꽃을 피우고 서아프리카의 종교적 문화적 중심지가 된다...1591년 모로코에 점령...
...길고 헐렁한 옷을 입은 그들은 언제나 그래왔듯 매력적인 모습으로 시선을 잡아끌고 한 때 가장 거칠고 사나웠던 사막의 전사들로서 '푸른 사막의 기사'라는 전설에 가까이 다가간다.
수백년 동안 그들은 사하라의 우주를 지배했다. 대상단을 조직하여 모로코, 모리타니, 니제르, 알제리, 리비아를 오가면서 갖가지 향신료, 대추야자, 소금, 차, 황금 그리고 노예를 운반했다. 세계 최대의 사막에서 그들이 모르는 길은 없었다. 태양과 별과 황량한 풍경 속 놀라운 지점들이 그들의 이정표가 되어 있었다...
투아레그 족은 스스로를 '이모학'이라고 부른다. 대략 '자유로운 존재' 혹은 '독립인'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오늘 날 투아레그 족은 더이상 자유롭지 않다. 그들의 자부심과 용기는 이미 오래전에 하루하루의 생존경쟁에서 닳아 뭉개져버렸다... 산업화, 비행기, 도로와 우회로의 건설은 투아레그 족에게서 사하라 횡단 무역이라는 존재의 토대를 앗아갔다...
투아레그 족을 정착시켜 농업에 종사하게 하려던 정부의 노력은 거의 실패로 돌아갔고..."우리는 바람을 따라 오고 간다."..그들은 이렇게 말하며 수천 년을 이어온 유목민의 전통을 고집했으나... 내전에 휩싸여 정부군에게 무참히 살상되고... 그 사이 100만 가량의 투아레그 족이 네 개의 사헬 국가들(말리, 니제르, 알제리, 리비아)에 나뉘어 살게 되었다. 그렇지만 투아레그족이 자기들의 국가를 갖는 일은 어떤 아프리카 정부도 용인하지 않고 있다.
...길을 가다보면 매시간 매일 눈앞에 새로운 지평선이 펼쳐진다. 아무리 눈을 떼지 않고 보고, 아무리 쉬지 않고 내 길에 동행했어도 어느새 바뀐 지평선.. 먼지는 줄곧 내 옷가지를 파고든다. 뚫린 구멍만 있으면 무조건 들어와 앉는 탓에 긴 터번으로 얼굴을 둘러메고 있어도 눈꺼풀 위에 먼지가 수북하다..
정작 나를 괴롭히는 건 압도적인 황야의 모습이다. 깊은 분지, 메마른 강바닥, 기괴한 모양의 암석 언덕 그리고 희뿌옇게 펼쳐진 초원이 번갈아 나타나며 하나같이 나의 의식을 마약에 취한 듯 몽롱하게 만든다. 어느 순간 나의 '자아'는 이별을 고하고 떠나버린다. 그 사이 겪은 고통과 고난이 나의 자아에게 너무 힘들었기 때문이다. 이제 남아서 나의 내면을 가득 채우는 것은 엔돌핀의 폭발적인 힘과 걷고 있다는 황홀한 만족이다. 발은 나는 듯 가볍게 움직이고 무엇보다 머리는 명상을 즐기고 있다. 나는 이 황야의 표현하기 힘든 광활함 안에서 아주 작은 존재가 되는 것이 즐겁다. 기쁨과 감격을 느낀다. 때로는 경외감과 두려움이 솟구치기도 하지만 그것은 그리 놀랄 일이 아니다. 광야는 천국이며 동시에 지옥이니까.
며칠을 걷는 동안 완전히 혼자라는 외적인 사실은 종종 내면적 고독감으로 발전한다. 낮에는 내게 날개를 달아주지만 밤이면 때로 영혼을 짓누르는 무거운 짐이 되기도 한다. 그러면 주위세계와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은 저 멀리 밀려나고 아무런 움직임도 없는 극도의 정적 속에서 침울한 절망이 나를 사로잡는다. '도망칠 것'을 찾을 가능성조차 없다면 이런 시간은 견디기 힘든 나락이 되기 십상이다. 다음날 아침 다시 길을 갈 수 있어서 나는 기쁘다.
...마침내 수 킬로미터에 이르는 반디아가라의 웅장한 고원과 절벽이 시야에 들어왔다. 테라코타의 붉은 빛과 삼베의 갈색과 황토의 노란 빛이 어우러진 산줄기가 사뭇 장엄하다. 기이한 형태의 암벽과 바위와 봉우리들이 보인다. 바위들을 하나하나 직접 손으로 만져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자연이 어떻게 이처럼 환상적이 조형물을 깎고 다듬어 낼 수 있는지, 그건 내게 최고의 수수께끼 중 하나다. 가끔씩 멀리에서 차르륵 덜거덕 하는 소리들이 들려온다. 작은 돌들이 바위 틈을 타고 굴러내리면서 내는 소리다. 그 소리에 가만히 귀를 기울이면서 나는 자연에 대해 말없이 경외감을 느낀다. 그리고 깨닫게 된다. 생명은 마법과 같다는 것을.
...북쪽 줄기가 홈보리산과 맞닿아 있는 반디아가라 산지는 오늘 날까지도 도곤족의 땅으로 인정받고 있다... 사하라 사막을 지나 니제르 강변에 자리를 잡고 살던 도곡족은 10세기경 강력한 모시 제국의 습격을 받아 반디아가라 산지로 피해, 암벽 높은 데 만들어놓은 동굴에서 살던 피그미족의 선조로 알려진 작은 키의 텔렘족을 밀어내고 그곳을 새로운 보금자리로 택했다...
...도곤족이 멀고 먼 옛날 상상할 수 없는 과거부터 천문학에 대해 그토록 해박하고 특수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지식은 천문학자들과 천체물리학자들이 19세기에 들어와서야 망원경과 또 다른 발전된 기술을 이용해 알게 된 사실들이다. 도곤족은 옛날부터 토성의 고리와 목성의 네 위성과 달 표면의 상태에 대해서도 알고 있었다. 나아가 인간의 눈으로 관찰이 불가능한 시리우스 B 행성까지 알고 있었다. 그것은 큰개별자리의 머리에 해당하는 시리우스 별의 동반성으로 지구로부터 8.7광년 떨어져있다.
...도곤족의 마을에 오래 머물수록, 그들이 울리는 야성적인 북소리와 고대의 노래와 전통 탈춤의 수수께끼 같은 깊은 세계에 깊이 빨져들수록 그들의 모습은 점점 더 신비해져만 갔다. 그리고 도곤족을 숭고하고 고귀한 힘과 접촉하도록 만들어준다는 신비한 몽환여행에 대해 들었을 때 나는 멀고도 낯선 시간 속에서 나 자신을 잃어버린 느낌에 사로잡혔다..
...존재의 상실이라는 비극이 점점 더 심화되어가는 유럽의 대도시에서는 다시는 가질 수 없는 것들을 이곳에서 나는 발견했다. 점점 확장되는 산업사회의 강철과 콘크리트, 유리와 아스팔트 사이에서는 영원히 사라지고 찾을 수 없게 된 것, 대지와 자원의 무차별적 소비와는 아무런 관련도 없는 것, 자꾸만 커지는 부에 대한 기대와는 정반대의 것, 우리 내면 깊숙이 놓여있는 절망과 감사의 느낌과 관련되어 있는 것.
이날 저녁, 몇 번이고 반복해서 꾸밈없는 지평선을 바라보면서 거대한 건조 평원의 부드러운 곡선을 따라 시선을 흘려보냈던 그 때, 장작이 타닥타닥 타들어가는 소리에 귀 기울이고, 딱 터지며 튀어오르는 불티의 여행길을 따라가보고, 완전히 넋이 빠져 모닥불의 불꽃을 응시하고, 세상의 움직임에서 완전히 나 자신이 벗어나 있다고 느끼던 그 때, 나는 물었다. 이 사막 혹은 다른 어떤 곳에서 과거에 도곤족의 선조들과 마주쳤던 무언가가 세계의 광야 속에 살아 숨쉬고 있는 건 아닌지.
고비사막. 중국. 1986.
밤, 바람 그리고 반짝이는 별들, 텐트 앞에 얄따란 메트 한 장을 펴고 앉아 나는 달빛 밝은 광야의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모래의 산들 사이를 쉴 새 없이 쓸고 지나는 바람의 휘파람과 노래소리가 들려온다. 쏜살같이 날아다니는 악마들이 공기를 뚫고 사냥에 나선 듯 들리는 소리, '밍사산', '소리를 울리는 모래의 산'이라는 뜻이다. 여기엔 사악한 정령들이 똬리를 틀고 깃들어 있다.
사방으로 바람이 지어낸 모래언덕들이 펼쳐져 있다. 맹렬한 어둠의 형상들처럼 보인다. 많은 사구들이 바람을 타고 모래 연기를 피워올린다. 바람이야말로 수천 년 동안 이곳에서 지형을 바꾸는 유일한 힘이었다. 어떤 모래언덕은 혓바닥을 떠올리게 만들고 또 어떤 언덕은 그 끝이 허공으로 잇닿은 알프스의 눈 덮인 산줄기를 닮았다. 칼날처럼 날카롭게 빚어놓은 언덕 꼭대기 모래 알갱이들은 누가 거기게 붙여놓았을까 싶을 만큼 단단하게 자리 잡고 있다. 모래가 만들어낸 둥그런 빗살무늬는 멀리서 보면 현실을 뛰어넘는 추상적인 아름다움이 되고, 가까이 다가가보면 현란한 구성의 아름다움이 된다. 모래로 만들어내는 다양한 무늬의 극한이며 그림책에 그려진 사막이다...
'고비'라는 이름은 이미 고대부터 인간의 환상에 날개를 달아주었다. 몽골어로 이 단어는 '물이 없는 장소'를 의미한다. 정확히 말하자면 아주 많은 '고비들'이 있는 것이다.암석질 평원에 검은 빛 자갈이 즐비하게 깔려 있는 모습의 '검은 고비'가 있다. 표면이 갈기갈기 찢기고 미로처럼 얽혀 있는 '붉은 고비'가 있고, 마지막으로 '샤모(모래바다)라고 불리는 '노란 고비'가 있다...
오늘날 지도에 그려진 고비 사막은 가운데 너비가 약 2천 킬로미터에 이르는 타원 형태를 하고 있다. 이 거대한 불모의 공간 한 가운데로 몽골과 중국의 국경이 지나고 있다.
걷고 걷고 또 걷는다. 풍경이 지나간다. 지나가는 풍경을 보자 압박하고 옥죄는 공간에서 벗어남을 느낀다. 한 걸음 한 걸음 내가 태어난 별을 떠나는 느낌., 낯선 행성의 표면을 딛고 선 느낌, 고요와 광야의 행성이다. 나는 바싹 마른 초원의 풀과 검은 모래탑을 지난다. 굵고 가는 자갈들이 쓸려내려가는 동안 따라가지 못하고 남겨진 모래 더미. 밀가루처럼 고운 모래땅이 나왔다가 바위조각들이 널린 평원과 자리를 바꾼다. 구름이 나타나더니 가까이 다가가면 저만치 뒤로 물러선다.
걷고 걷고 또 걷는다. ...
걷고 걷고 또 걷는다. 빛과 고요로 가득한 미지의 영역을 지난다. 판판한 널판지처럼 수백만 수천만 개의 돌이 뿌려져 있는 평원이 하나 지나면 또 하나 펼쳐진다. 출렁임이 없는 돌의 바다를 건너간다. 혹시 진짜 바다? 아니, 이건 바다가 아니다. 물 위로 떠오른 바다의 바닥이다. 수백만 년 전 지각변동의 힘으로 솟구쳐올라 물을 흘려버린 바다의 대지다. 돌과 잔해만 남아 있다. 열과 추위에 깨지고, 모래바람에 갈린 괴이한 얼굴을 하고 있다.
사막에서 3일을 지내자 어김없이 그것이 찾아왔다. 바로 단순한 삶을 위한 진짜 느낌. 근본적인, 보통은 아주 단순하지만 사람을 행복하게 만드는 느낌. 모든 존재하는 것들이 근원적인 것, 말하자면 호흡하고 냄새 맡고 바라보는 그 느낌으로 축소되면서 다가오는 행복. 그리고 앞으로 꾸준한 전진에 적응해가는 육체에 대한 자각도 빠뜨릴 수 없는 선물이다.
한 걸음씩 내딛는 '조심스런 발걸음'에서 나는 다시금 드넓은 사막을 딛고 서서 사막의 거친 환경과 하나가 되어가는 나를 느낀다... 하루하루 살아가며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모든 일들이 어딘가 모래 속에 파묻혔든지 아니면 모래바람에 날아가버렸다. 그토록 나를 매혹시키는 무언가가 사막에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그건 아마 자기 존재로 가득 채워지는 순간의 장엄한 공허, 오로지 '여기 그리고 지금'에 의해 결정되는 지금 이 순간의 광야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먼 곳을 향한 동경과 꿈들이 내 발바닥을 받쳐주고 다리를 움직인다. 그 사이 두뇌는 점점 더 사막과 광야에 맞추어 변한다. 하루에 걷는 시간은 열 시간에서 열네 시간이다. 생각은 거의 다음 내디딜 발걸음, 바로 다음에 할 일, 바로 다음의 광야가 보여주는 광경에 집중된다.
대개 한 시간에 5킬로미터를 전진한다. 때로는 더 갈 때도 있다. 순순하게 걷는 데서 행복을 느끼는 시간과 날들이 있다. 그런 때 내게 사막의 의미는 침묵하는 무한함에 있다. 나라는 인간이 얼마나 하찮은 존재인가를 비춰볼 수 있는 거울과 같다. 이곳 사막의 황량함 속에서 나는 바쁘고 복잡한 우리 문명 속에서 느끼기 힘들었던 시간의 가치, 그리고 그것과 연결된 인생의 가치를 보다 쉽게 인식하게 된다. 쉼 없이 앞으로 내딛는 발걸음은 내게 명상의근본적인 행태가 된다.
하루하루 거의 모든 날들 동안 대지의 색깔, 대양처럼 드넓은 광야, 하늘의 푸르름, 스쳐가는 모든 풍경들은 나를 삶의 기쁨에 흠뻑 젖어들게 만든다. 발걸음의 리듬이 이름 모를 마약처럼 작용해서 어둠이 밀려들 때까지 결코 놓아주지 않는 도취의 상태가 된다.
밤이면 나는 부드러운 모래 위 침낭 속에 들어가 누워 조금씩 검은 빛으로 물들어가는 하늘을 바라본다. 시간이 흐르면서 은하수가 반짝거림을 더해간다. 지극한 환희와 행복감에 겨운 나는 완전한 고요에 귀를 기울인다. 그러면 모래알처럼 수많은 별들이 어둠 속 반짝이는 광휘의 마법을 펼친다. 때때로 손을 길게 뻗으면 손가락 끝에 반짝반작 신호를 보내는 하늘의 전령들이 만져질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하늘의 전령들, 실제로검푸른 광야를 건너가야 하는 많은 밤에 그 별들이 하늘의 좌표가 되어 내가 가야할 방향과 나의 위치를 알려준다.
-둔황 석굴. 고대문서에 따르면 서기 366년 경 처음 만들어지기 시작해 수백 년 동안 페르시아, 인도, 아라비아에서 온 상인, 수공업자, 농부들, 순례자들이 암벽에 수많은 동둘을 파내고 여러 가지 장식을 했다. 후에 비단길을 이용하는 대상들이 안전을 기원하기 위해 사원을 건립하며 비단길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소, 환상적인 예술적 보물들이 창조되는 천 개 이상의 석굴을 가진 중요한 불교의 성지가 되었다... 14세기 명 왕조가 서방과의 교역을 중지하며 이 루트가 빛을 잃고 융성하던 불교도 쇠퇴, 천 개의 불상이 있었다는 천불동은 망각속으로 사라지고 사구들 속에 파묻혔다...1899년 선지자들의 흔적을 찾아 중국 서부를 순례하던 도교 승려 왕위엔루에 의해 재발견돼 발굴작업 진행, 빼어난 벽화와 조상, 장식들과 함께 벽으로 막혀있던 비밀서고에서 3세기에서 11세기에 걸쳐 제작된 5만여종의 문서, 다양한 언어로 기록된 불교, 유교, 도교, 마니교, 네스토리우스파에 관한 경전과 기록들, 고대의 민담, 예금증서, 달력, 편지 등 가치를 측량하기 어려운 귀중한 자료들이 발견됐다. 발굴 당시 그 문화유산의 가치를 미처 모른 탓에 유럽의 연구자들에게 헐값에 넘겨지거나 몇 톤씩 탈취당했다.
카이스투 사막. 케냐. 1996
...머릿속에서 모든 게 뒤죽박죽 뒤섞이고 여러 가지 생각들이 바람 속의 연처럼 펄럭거린다. 갑자기 체험했던 모든 일들이 하나의 그림으로 합쳐진다. 사막의 적갈색 대지, 끝도 없이 굽이치는 사구들, 밤마다 들려주는 바람의 속삭임, 멀고 먼 과거에 돌이 된 나무들, 일정한 리듬으로 이어지는 행군의 기쁨, 사자의 울부짖음, 투르카나 사람들의 순박한 몸짓, 타닥거리는 모닥불 가에 검댕이 잔뜩 묻은 찻주전자, 낙타의 울컥거리는 소리, 모든 어려움을 이겨낸 피로에서 느껴지는 환희, 그바니와 카마이로니의 환하게 웃는 얼굴, 황혼 속의 장관들, 이름 붙여 말할 수 없는 색깔들과 분위기들...... 그 모든 것들이 돌아가는 순간 더 이상 내 곁에 남아있지 않을 것이다.
그런지만 무언가는 남게 될 것이다. 카이수트의 장엄한 자연으로부터 한 조각 잘라내 내 안에 심어 지니고 가는 것, 내 내면의 사막이다. 현실의 소음이 나를 덮쳐와 광야와 고요로 내 배터리를 재충전하고 싶을 때 그것은 나를 위한 피난처가 될 것이다. 몇 마리 낙타의 고삐를 쥐고 나는 길을 떠날 수 있다. 모래와 돌로 이루어진 고대의 광야를 지난다. 눈 닿는 끝에서 지평선과 광대무변의 하늘이 하나로 녹아든다. 상상 속의 여행이다. 한 걸음씩 광야는 나와 함께 걷는다. 붉은 모래가 낙타발굽의 소리를 삼킨다. 그리고 어느 순간 머리가 다리처럼 걸어가는 즐거움에 젖어들면 나는 꼬리를 물고 불쑥불쑥 솟아나는 생각의 고리를 놓고...... 그리고 잠겨 든다...... 광야로.
코벅사막. 알래스카. 1999
알래스카 최북단 툰드라와 숲의 한가운데 곱게 빻아진 빙하 모래가 겹겹이 뻗어, 이동하는 모래 언덕을 만들어냈다. 길게 뻗쳐 장관을 이루는 사막. 2만년 전 '최초의 인디언들'이 이 땅에 도착했다. 그들은 아시아 내륙을 떠나 오래전에 바다속으로 가라앉은 육지, '베링의 다리'를 건너 알래스카에 도착했고 마침내 아메리카를 정복했다. 콜럼버스보다 훨씬 더 먼저.
...인디언들에게 흙은 단순한 흙이 아니다. 인디언들은 흙을 조심스럽고 겸허하게 대한다. 흙을 자기 자신의 일부라고 여긴다. 언젠가 그들도 흙이 될 것이므로.
단순한 삶을 살아가는 것. 함께 소유하는 것. 다른 사람을 위해 무언가를 하고, 스스로를 위해 '성스러운 공간'을 만들어내고, 식물 하나에도 이 시간, 이 자리에 함게 있어줌을 감사하는 것, 또 다른 현실을 행해 마음을 열어놓기 위해 때때로 합리적인 사고의 보호막을 거두는 것. 눈먼 일상의 존재를 넘어서서 동물과 나무와 바위와 모래언덕 혹은 폭풍으로까지 자기 자신을 변화시키고 자기 자신과 진지한 대화를 시도하는 것. 이런 생각들 뒤에 인디언의 영적 가치가 숨어 있다. 물질의 영역 뒤에 숨겨진 영적인 존재의 인지, 이것이야말로 하이테크 인간들이 점점 멀어지고 있는 존재의 가치를 아는 생활방식인 셈이다.
시나이 사막. 이집트. 1987. 2004
...사막의 검은 하늘 위로 밝은 달이 높이 걸려 있다. 내 위로 은하수가 내뿜는 거대한 섬광이 믿을 수 없이 가까이 뻗어 있어 때로는 혹시 내가 그리로 빠져들까 겁이 날 정도다. 별똥별들이 이집트 시나이 사막의 음산한 광야를 향해 비처럼 쏟아진다. 공기는 수정처럼 맑다. 공기를 흐릴 습기조차 없다. 광야의 어둠과 고요는 종종 함께 어우러져 두려운 진공의 함정을 자아내기도 한다. 하지만 바로 이 자리에서 나를 휘감는 어둠과 고요는 내가 그리도 동경해왔던 성스러운 순간을 창조했다.
2285미터 높이의 모세산 정상.
서로 다른 종교의 신봉자들이 오늘날 까지도 자기 믿음의 고향이자 서로를 연결해준다고 여기는 장소, 유대교도와 기독교도와 이슬람교도의 공동 연결고리, 시나이 사막.
-모세는 기원전 1120년에 60만 명의 헤브라이 사람들을 이끌고 무려 40년 동안 시나이 반도를 떠돌았고... 그 이전 기원 전 3000년에서 1100년에 이르기까지 이미 이집트의 캐러번들이 사막을 누볐다... 당시 세 갈래의 대상로가 시나이 반도를 가로질렀다. 지중해를 따라서 달려가는 '군대의 길'이 가장 북쪽에 놓여 이집트 사람들을 메소포타미아와 연결해주었으며 로마 사람들은 후에 이 길을 '비아 마리스', '바다의 길'이라고 불렀다. 그 아래로 나일강에서 예루살렘으로 이어지는 '파라오의 길'이 있다. 그리고 잘 알려진 ' 순례자의 길', 미틀라 고개와 아카바를 지나서 메카에 이르는 이 루트는 오늘날까지도 이집트와 사우디아라비아 사이에서 동서를 잇는 가장 중요한 연결로이고, 이슬람 순례자들이 주로 이용하는 길이다.
시나이 반도의 최초 거주자들은 이집트 제 1왕조의 유목민, 이들 고대 유목민들은 '모래의 지배자'라고 불렸다... 오늘 날 시나이에는 약 7만 명의 베두인이 반은 유목을 하며, 반은 해안가에 정착해 살고있다.
..낙타 한 마리는 15분 만에 200리터의 물을 들이키고, 그렇게 한 번 마신 물로 30일을 버틸 수 있다. 낙타도 덥고 건조한 상황에서 많은 물을 사용하지만 25 퍼센트의 탈수에도 혈액의 양이 변함없고 심장도 정상적으로 움직인다. 혹에 들어있는 지방은 추가적 에너지원이 된다.
낙타는 땀을 흘리지 않는다. 외부 온도가 36.5도를 넘어가면 낙타는 체온을 42도까지 끌어 올리고 밤이 되어 기온이 내려가면 다시 34도까지 체온을 내려 땀으로 인한 수분의 상실을 막는다..
...식사 후에 밤이 깊어 하늘이 검은 우단 옷으로 갈아입고 저만치서 낙타들이 되새김질을 할 무렵이면 우리도 모래 위에 편안히 몸을 눕힌다. 이 고요한 시간에 나는 종종 일기장을 집어들고 사막에서 겪은 또 하루의 경험을 다시 한 번 찬찬히 되돌아본다.
걷거나 낙타를 타고 인적 없는 광야를 지났다. 비슷한 세기로 꾸준하게 부는 바람, 수천 년 전부터 풍경을 변화시키는 힘을 가지고 산과 계곡을 그려냈던 바람이다 . 보는 이를 흠뻑 취하게 만드는 새파란 하늘, 식물 한 점 찾아볼 길 없는 황무지, 땀, 먼지, 숨이 턱턱 막히는 건조한 공기, 색 바랜 그림처럼 밝은 빛, 한 조각 그림자가 그리운 마음, 줄이는 것이 얻는 것이므로 필요한 것을 최소한으로 줄이는 일, 귀중한 물 한 방울의 즐거움, 지친 사지를 축 늘어뜨리고 원기가 회복되는 것을 느깰 때, 타닥타닥 소리를 내며 타는 모닥불 가에서 식사를 할 때, 하늘 아래 탁 트인 대지 위에서 잠이 들 때...... 야영지의 행복을 미리 꿈꾸는 기쁨.
이 모든 순간들을 통해서 우리는 하루하루 삶의 단순함이 주는 의미와 보람을 되찾고 이 절대적인 경험들에 대해 깊은 감사를 느꼈다. 반대의 상황을 앞서 몸으로 느끼지 않는다면 괴롭고 지친 몸의 안락과 이완, 그것이 주는 기쁨을 어떻게 느낄 수 있을까? 아마 이 원칙은 삶의 모든 영역에서 똑같이 적용될 것이다. '삶의 행복'은 오랜 시간 절대적으로 필요했던 것을 소중하게 여기는 법이니까.
사하라 사막 횡단. 대서양에서 나일강까지. 모로코, 알제리, 튀니지, 리비아,이집트.2008
-사하라, 그 이름의 울림부터가 다른 세상을 향한 동경을 일깨운다...
아라비아의 사막 주민들은 이 황무지를 '에스-사흐-라', 노랗고 붉은 모래 색이라고 부른다. 그들은 이 숨막히게 아름다운 광야를 알라의 정원으로 여기고, 알라신이 우리 인간으로 하여금 이 삼라만상의 진정한 존재와 가치를 인식하도록 하기 위해 모든 불필요한 것들을 없애버린 땅이라고 생각한다. 서쪽에서 동쪽으로 사하라는 약 5500킬로미터에 이르고 북쪽에서 남쪽으로의 거리는 대략 1600킬로미터 이상이다.900만 평방킬로미터의 넓이를 지닌 사하라 사막은 가히 바다처럼 거대한 자연 공간이다...
1억 5천만년 전에는 열대 숲이 울창하고 늪과 호수가 곳곳에 자리하고 공룡이 활보 하던 곳... 니제르의 '공룡의 계곡'에서 수백 개의 공룡의 뼈가 발굴... 오늘날의 사하라에는 모든 생명의 기본 요소인 물이 없다...
이 공간의 탐사를 최초로 시도한 것은 고대 이집트, 이후 기원전 300~400년 경 페니키아 인들이 뒤를 잇고, 14세기에 아랍의 여행가 이븐 바투타가 사하라을 횡단했다.
초기 캐러밴들은 메마른 광야 사하라를 바르벨라 마, 즉 '물 없는 바다'라고 불렀다. 배를 타고 바다를 여행하듯 그들은 낙타를 타고 사막의 모래파도를 헤쳐갔다. 무거운 짐을 싣고 모로코와 말리 사이를, 니제르와 알제리 사이를, 리비아와 이집트 사이를 오갔다. 긴 세월을 오가면서 차츰차츰 그들은 풍경의 특징들과 태양과 별을 보고 방향을 찾는 법을 익혔다. 당시의 캐러밴들은 밤하늘의 별을 그들에게 보내준 알라신의 선물이라고 여겼다. 그런 이유에서 모든 중요한 별들은 아라비아 이름을 갖게 되었다...
...드디어 내게 시간이 생겼다. 사막을 위한 시간, 나 스스로를 위한 시간이다. 조심스럽게 한 발을 다른 발 앞에 놓는 사이에 신경의 말단과 심장이 기대감에 두근두근 따끔따끔 설렌다. 나는 멈추지 않는 똑같은 리듬으로 앞을 향해 나아간다. 마치 마음을 비우고 묵주의 구슬을 하나하나 세는 자와 같다. 그러는 사이 15킬로그램의 배낭은 어께에 편안하게 얹히고, 10센티미터 넓이의 허리띠가 탄탄히 받쳐주었다...
느긋하게 풀어진 연청색 하늘 아래서 건조한 모래평원과 돌멩이가 울퉁불퉁한 암석 지형과 바싹 말라버린 와디 줄기를 따라 걷고 또 걸었다. 황량한 풍경의 멋과 향취가 온몸으로 스며들어 나를 흠뻑 적신다. 서너 시간마다 한 번씩 광야에 목표점을 찍는다. 그러고 나면 그곳이 나의 제2, 제3의 캠프가 된다. 각각의 점에 이르면 내가 지나온 길을 지도 위에 표시했다. 축척이 1:200,000인 지도다. 그렇게 1킬로미터, 1킬로미터 줄이 길어진다. 현실 곳 사막에서도, 지도 위 사막에서도...
아그즈와 타자린을 지나면서 나는 하루에 20~40킬로미터를 걸었다. 고독이 지배하는 낯선 별의 대지 위를 나 혼자, 철저하게 혼자가 되어 걸었다. 과거에 고독은 무척이나 나를 두렵게 했다. 그렇지만 그 사이 고독은 순수한 행복으로 내게 다가왔다. 고독은 나의 내면에 숨겨진 많은 비밀들을 열어 보여주고, 나라는 존재에 관한 문제들에 답을 해주었다...
은빛 달의 광채가 황량한 평원을 마법의 빛으로 물들이고 반짝이는 별빛으로 방향을 잡을 수 있는 날이면 언제나 나는 밤에도 행군을 이어갔다. 그러다 어느 날 하늘에 별 한 점 떠 있지 않는 완전한 어둠이 찾아와 옴짝달싹 못하고 텐트 안에 갇혀 있게 되면... 친구였던 사막은 어느 새 무서운 적이 되고 만다.
절대적인 어둠 속에 꼼작없이 내던져졌다는 느낌이 소스라치게 폐부를 찌르고 들어서면 울퉁불퉁한 돌밭과 부스러지기 쉬운 와디의 바닥을 걸었던 긴 행군의 피로보다 더욱 견디기 힘들게 된다.. 고립으로 인한 정신의 아픔이 거의 육체의 고통으로 느껴질 정도다...
밤새 나는 내 생각의 미로를 방황하며 떠돌았다. 그러다 어느 순간 잠이 나를 사로잡았다. 새로 시작되는 하루의 첫 햇살이 부드럽게 모습을 보이면...한결 마음이 놓이고 편안한 기분이 되었다. 기쁨은 처절한 밤의 고난을 잊게 해주었고, 무겁게 축 늘어진 사지도 삶의 환희에서 금세 힘을 얻었다. .. 나는 다시 사막 걷기에 몸과 마음을 맡겼다...
...기다란 진주목걸이의 알맹이 하나하나를 쓰다듬듯이 나는 여행 루트 상에 위차한 리비아의 마을과 도시들을 하나하나 지났다. 가리야트, 시와이리프, 수크나, 훈, 화단. 거대한 건조지대를 지나고 황량한 고원을 넘고, 메마른 암석 지대를 걸어갔다. 바위 사이를 달려가고, 길게 이어진 산마르를 타넘었다. 멀리서 보면 산등성이 들이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며 지평선까지 뻗어나간 실처럼 보였다. 며칠 동안 내 몸에는 그저 눈밖에 없었고, 내 주위를 스쳐가는 모든 것을 놓치지 않았다. 무언가 움직이는 것이라면 더더욱 주의를 기울였다.
날이 저물고 이 거대한 사막 한가운데를 걷고 있노라면 나는 사막을 완전히 다르게 체험한다, 달과 별이 쏘아대는 빛은 대지의 실루엣을 또렷하게 보여주고, 대개는 딱딱하게 갈라진 땅바닥이거나 뼈처럼 말라붙은 와디 혹은 광대한 돌의 평원인 내가 가야 하는 길을 환하게 비춰준다...때때로 밤에 걷다 보면 누군가 나를 따라오는 느낌이 든다. 무슨 소리인지 알 수 없지만 바스락거리거나 투덜대거나 속삭이는 듯한 소리도 들린다...아마 그건 환청일 것이다. 단조로운 내 발걸음 소리와 내 움직임이 생각을 멍하게 만들고 전혀 존재하지 않는 소리까지 듣고 있다고 느끼게 만드는 것일 게다. 지평선이 너무 멀리 있어서, 너무 많이 외로워서.
밤이 늦어 참닝과 방수매트 위에 편안하게 누워 쉴 때 나는 완전히 긴장을 풀고 깊은 고요를 즐긴다. 그리고 그 고요는 이 세상에 오로지 나 혼자라는 느낌을 일깨운다. 아무런 방해물도 없이 나는 수십억 개의 불빛들이 암청색 하늘의 대지에서 반짝이는 불타는 하늘을 들여다본다. 사막이 아니고선 그 어디서도 이렇게 많은 별을 볼 수 없을 것이다. 별빛이 유난히 밝은 이곳 아프리카의 하늘에선 때때로 은하수가 거대한 반지처럼 보인다. 그러면 나는 시간의 차원을 이해하는 모든 감각을 잃어버리고, 내 작은 캠프는 우주의 일부가 된다...
어느 순간 이 선사시대 풍경이 자아내는 슬픔과 황량함이 내 지친 뼛속으로 스며들었다. 이 거치고 메마른 땅은 감동적이면서도 동시에 무섭기가 한량없는 데다 그 차원을 측정할 길이 없고 그가 지닌 단조로움을 가지고 최면을 건다. 영원히 똑같은 곡선을 그리는 모래와 돌의 평원 외에는 그 어떤 것도 눈앞을 가로막지 않는다. 크기 감각을 잃게 된다. 기가 빠져 쓰러지지 않기 위해서는 집중력을 있는 대로 동원해야만 한다. 내가 완전히 지쳤다는 것을 분명히 느낀다. 그사이 내 안의 공허와 하나가 된 텅 빈 공간을 뚫고서는 단 1킬로미터도 더 갈 수 없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불안감이 스며들고 코스를 유지하기 위해서 자꾸만 다시 나침반의 프리즘을 통해 방향을 확인하고 목표를 조절해야 했다. 다른 어떤 곳에서보다 더욱 또렷하게 나는 느꼈다. 리비아의 사막이 아무 것도, 어느 누구도, 나조차도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것을. 사막은 자기 자신만으로 충분하다.
...지금 나는 붐비는 카페에 앉아 신문을 뒤적거리면서 사막을 생각한다...
...배낭을 메고 걸어가는 내가 보인다. 걷고 또 걷고, 그렇게 계속 걸어 가는 내 주위로 보이는건 오로지 모래와 하늘 뿐이다. 그리고 광야의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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