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하루키,오자와 세이지 공저/권영주 역 | 비채 | 2014년 12월
-오자와 세이지가 식도암이 발병하여 음악활동을 잠시 쉬게 된 차에 자타공인 음악 애호가이자 그의 오랜 팬인 무라카미 하루키 기획으로 성사된 반가운 인터뷰 프로젝트이다. 일여 년에 걸친 시간 동안 무라카미 하루키가 가나가와 현 자택이나 도쿄 작업실로 오자와 씨를 초대하기도 하고, 오자와 씨가 주관하는 ‘스위스 국제음악아카데미’의 수업이 한창인 스위스 레만 호수 연안으로 직접 찾아가기도 한다. 콘서트와 콘서트 사이, 제네바에서 파리로 이동하는 특급열차에 몸을 실은 오자와 씨 옆좌석에 앉기도 한다...
주로 비범한 음악애호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묻고 마에스트로 오자와 세이지가 답하는 형식인데, 학창 시절은 물론, 사이토 기넨 오케스트라가 탄생한 근원점인 스승 사이토 히데오에 대한 추억, 뉴욕 필 부지휘자 시절 레니 번스타인과의 에피소드, 보스턴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빈 국립오페라극장 음악감독 재임 시절 이야기 등 거장 오자와 세이지의 음악 인생을 차분히 뒤돌아보면서 동시에 베토벤, 브람스, 말러 등 명곡 클래식의 음악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악보를 어떻게 읽고 어떻게 해석할까 하는 전문적 지식부터 오케스트레이션에 대한 세세하고 기초적 이해까지 프로 음악가는 물론이고, 전혀 문외한인 독자에게도 매력적인 독서체험을 선사할 것이다.-
매끈한 조약돌을 하나 호수에 퐁당 떨어뜨리면 거기서부터 동그란 파문이 무수한 겹으로 뻗어나간다.
브람스니, 베토벤이니, 말러니 곡을 하나 정해서 음반을 틀고 그걸 들으면서 거기서부터 파생되는 음악에 관한 갖가지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작곡가들부터, 곡의 구성, 그 곡은 어느 부분이 이러했고, 저러했는지, 오케스트라, 지휘자, 연주자들이 어떠했는지, 그 밖에 오자와 세이지가 지휘자로서 지내며 마주친 여러 이야기들이 재미있게 진행됐다.
내가 음악을 들을 땐 완성된 최종 결과물만 딱 접하게 되지만 그 결과물이 만들어지는 과정 중에 일어나는, 그리고 음악계 안에서 일어나는 그 안에 있는 사람이 아니면 알지 못할 여러 에피소드들이 있었다.
가령 굴드는 알려진 바대로 괴짜라 지휘자와 곡해석을 달리 해 자기 스타일로 연주를 고집하기 일쑤인데, 번스타인과 브람스협주곡을 협연할 때 굴드의 고집을 꺾지 못한 번스타인이 그 결과물에 대해 책임지지 않겠다는 듯, 연주 전에 청중에게 이 진행은 전적으로 굴드의 해석이라고 공지했다는 얘기, 아무리 의견이 달라도 청중앞에서 그런 이야기를 할 필요는 없지않았나 하는 얘기, 그 연주는 그래서 어느 악장 어느 부분에서 오케스트라와 피아노가 어긋나 삐걱댄다는 얘기, 그 곡을 유투브에서 찾아 들어보니, (실황음반이 있는데, 정말 공연 전 번스타인의 멘트까지 그대로 실려있다.) 설명을 듣고 들어보는 데도, 내 막귀로는 어디가 어색하다는 건지 하나도 모르겠고, 굴드의 연주는 마냥 좋기만 하고...
굴드는 항상 자기만의 해석이 있어서 거기에 도저히 동의 못하는 지휘자가 지휘를 포기해 부지휘자가 대신 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번스타인은 독일계라 그 정통성을 고집했지만, 아마 굴드는 캐나다인이라 독일 음악에 대한 해석에서 좀 더 자유로울 수 있었을 거라는 얘기...
카라얀은 카리스마있게 오케스트라를 장악하고, 번스타인은 그와 반대로 다른 이의 의견을 많이 따른다든가, 카라얀은 전곡을 암기해 눈을 감고 지휘를 했다든가, 베를린 필, 빈 필등은 자기 색깔이 확고해 어느 지휘자가 오더라도 그 유려함을 잃지 않고, 뉴욕 필이나 시카고 필 등은 소리는 거칠지만 대신 지휘자에 따라 같은 곡이 확확 바뀐다는 얘기...
말러가 얼마나 세세히 각 악기별로 악보에 지시사항을 적었는지, 도저히 연주가 불가능할 것 같은 프레이즈를 쓰고, 서로 어울리지 않을 여러 요소들을 곡 속에 집어넣는 등 그의 음악이 얼마나 혁신적이었는지, 또 그 밖에 사이토 기넨이란는 일반인들로 이루어진 오케스트라를 지도하며 발전시켜나가는 과정에 대한 얘기...
하루키는 재즈뿐 아니라 클래식에도 정통해 오자와 세이지와 함께 전혀 막힘없이 풍부한 이야기를 이끌어냈다.
대담집이라 둘이서 음악을 들으며 대화하는 식으로 내용이 담겨, 마치 내가 그 옆에서 같이 그 음악을 들으며 둘의 얘기를 듣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오랜만에 먹고 사는 얘기 말고 편안히 한껏 여유로운 대화의 장소에 있던 기분.
문외한으로써 거의 다 처음 알게된 얘기들이라 흥미진진.
예를 들자면 이런 식의 이야기들...
무라카미 : 오케스트라가 브람스와 잘 맞는다는 건 음색이라든지 울림 같은 것 말씀인지요?
오자와 : 아니, 울림이라기보다...... 뭐랄까, 주법이 그러니까 활 쓰는 법, 올리고 내리는 게 그런 프레이즈를 만드는 방식, 표정을 내는 방식이 브람스에 잘 맞지 않을까 하는 거...
.........
무라카미 : 기술적인 문제는 잘 모릅니다만, 브람스의 오케스트레이션은 베토벤에 비해 상당히 복잡하지 않습니까?
모자와 : 아니, 악기 편성으로 보면 별 차이 없어요. 가령 더블 바순은 베토벤 시대엔 그다지 일반적이지 않았지만, 나머지는 비슷하거든. 오케스트레이션도 아주 약간만 다르죠.
........
무라카미 : 하지만 귀로 듣는 인상은 베토벤과 브람스가 꽤 다른데요.
오자와 : 다르죠. ...... 그게 말이죠, 베토벤도 9번에서 달라지거든요, 9번으로 가기 전까진 오케스트레이션에 꽤 제한이 있었어요.
무라카미 : 제가 받은 인상으로, 브람스는 악기 편성에 별 차이가 없어도 베토벤에 비해 음과 음 사이에 음이 또 하나 들어오는 듯한 한층 농밀한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그래서 베토벤 쪽이 그만큼 음악의 구조가 더 잘 보인다고 할지......
오자와 : 그건 물론 그래요. 잘 보이죠. 베토벤이 관악기와 현악기의 대화가 더 잘 보여요. 브람스는 그걸 섞어서 음색을 만들어가고.
심지어 브람스 심포니 1번도 그런 특징이 명확하죠. 그래서 다들 그러잖아요. 브람스 1번은 베토벤 10번이라고. 연결점이 있는 거예요.
오자와 : 결국 말러는 굉장이 복잡하게 쓰여 있는 것처럼 보이고 또 실제로 오케스트라한테는 꽤 복잡하게 쓰여 있지만, 말러 음악의 본질은 말이죠, 감정만 실리면 상당히 단순하거든.......
무라카미 : 음 그렇지만 그건 말이 쉽지, 실제로 하려면 굉장히 어렵지 않습니까?
오자와 : ... 그렇지만 내용을 확실하게 읽어나가면, 일단 감정이 실리고 나면 그렇게 복잡하게 뒤엉킨, 뭐가 뭔지 알 수 없는 음악이 아니라는 거예요. 그저 그게 몇 개씩 겹쳐서 온갖 요소가 동시에 나오고 하니까 결과적으로 복잡하게 들리는 거죠.
무라카미 : 전혀 상관없는 모티브가, 경우에 따라서 정반대의 방향성을 지닌 모티프가, 동시 진행으로 나오고 그러죠, 거의 대등하게.
오자와 : 그게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 근접하게 진행되니 난해하게 들리는 거예요.
무라카미 : 듣는 쪽도 들으면서 곡의 구조 전체를 명확하게 파악하려고 하면 상당히 어렵습니다. 분열적이라고 할지.
오자와 : 맞아요, 메시앙의 음악을 들어도 그 언저리가 같습니다. 단순한 멜로디를 세 개쯤, 전혀 무관하게 동시 진행으로 넣어버린단 말이죠.
한 부분만 떼서 보면 그 자체는 비교적 단순하거든요. 감정을 싣기만 하면 꽤 간단하게 할 수 있어요. 그 말은 즉, 어느 한 부분을 연주하는 사람은 오직 그 부분만 열심히 하면 된다는 뜻이에요. 다른 부분을 연주하는 사람은 그쪽하고 상관없이 자기 부분을 또 열심히 하고, 그리고 그 둘을 동시에 맞추면 결과적으로 그런 소리가 나온다, 요는 그런 겁니다.
무라카미: 지금도 계속 변하고 계시는 군요?
오자와: 이만큼 나이를 먹어도 역시 변해요. 그것도 실제 경험을 통해서 변하죠. 그게 어쩌면 지휘자란 직업의 한 특징일지도 모르겠어요. 다시말하면 현장에서 변화하는 거예요. 우리는 오케스트라가 실제로 소리를 내주지 않으면 아무 소용 없거든. 내가 악보를 읽고 머릿속에서 음악을 하나 만들어내서 그걸 오케스트라하고 같이 실제 소리로 만들어가는 건데, 그러면서 생겨나는 게 이것저것 있어요. 인간과 인간의 현실적 문제가 있는가 하면, 음악의 어느 부분에 중점을 둘 것이냐 하는 음악적 판단도 있죠. 긴 프레이즈로 음악을 바라볼 때가 있는가 하면, 반대로 세세한 프레이즈에 구애될 때도 있고 그럼 몇 가지 작업 중 어디에 중점을 둬야 할지 그것도 판단해야 해요. 우리는 그런 여러 가지 체험을 통해 달라지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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