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mber Series II. Lars Vogt & Royal Northern Sinfonia.
롯데콘서트홀. 8시
프로그램
2017-05-24 (수)
1.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1번 C장조, op.15
(1.allegro con brio 2.largo 3.rondo, allegro scherzando)
2.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2번 B장조, op.19
(1.allegro con brio 2.adagio 3.rondo, molto allegro)
3.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4번 G장조, op.58
(1.allegro moderato 2.andante con moto 3.rondo, vivace)
4.베토벤 교향곡 7번 A장조, op.92
(1.poco sostenuto-vivace 2.allegretto 3.presto-assai meno presto 4.allegro con brio)
2017-05-25 (목)
1.베토벤 교향곡 8번 F장조, op.93
(1.allegro vivace e con brio 2.allegretto scherzando 3.tempo di menuetto 4.allegro vivace)
2.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3번 C단조, op.37
(1.allegro con brio 2.largo 3.rondo,allegro)
3.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5번 E장조, op.73 "황제"
(1.allegro 2.adagio un poco moto 3.rondo, allegro)
베토벤을 무지무지 좋아한다, 제일 좋아하는 작곡가다 라고 말할 수 없는데 희안하게 베토벤 레퍼토리의 공연을 많이 보게 되네.
이유가 뭘까 생각해보면, 베토벤이 비교적 잡다히 레퍼토리가 섞이지않고 전곡 연주를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인 거 같애.
롯데 콘서트홀이 개관했다는 소식은 진작에 듣고 있었지만, 무슨 공연으로 구경을 갈까 해도 맘에 드는 공연은 시간이 안맞고, 시간이 되는 공연은 레퍼토리가 별로이고 해서 미루어지던 중, 적당하다 싶은 공연을 찾은 게 이거.
라르스 포그트라는 피아니스트, 로열노던심포니라는 악단은 생소했지만,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을 제대로 들어본 적이 없으니 이 참에...
어쩌면 공연 자체보다 굳이 새로 생긴 콘서트홀을 구경하려던 게 본 목적이었을 수도 있겠다.
콘서트홀이 있는 8층에 올라가니 로비 밖에 야외테라스가 있다.
문을 열고 나가면 한껏 고개를 꺾어들어야 그 끝을 볼 수 있는 거대한 롯데타워가 코 앞에 우뚝 서 있고, 저 아래로 바람에 일렁이는 초록물빛의 석촌호수가 보인다.
맛있는 커피 한 잔 들고 그 view를 즐길만했지만, 로비 간이카페에서 파는 커피란 게 어찌나 맛이 없던지 몇 모금 마시다 화장실에 버리고 커피가 고픈 채로 그냥 잠깐 머물다 말았다.
롯데콘서트홀은 들어가보니 내게는 커다란 방주같다는 느낌.
무대뒤로 웅장한 파이프오르간이 한 면을 채우며 서있고, 그 아래로 합창석, 그리고 무대 좌우에도 객석, 정면의 객석들도 무대에서 그다지 멀지 않아(가령 예술의 전당이나 세종회관 같은 곳은 저렴한 티켓을 사서 3층 꼭대기에 앉으면 마치 구름 위에라도 오른 듯하고 무대는 저기 아래 까마득하게 보이는 것에 비해) 둥그렇게 뚫린 넓은 공간이 마치 거대한 방주의 메인홀 같은 느낌이었다.
객석을 구분하는 공간들이 물결처럼 곡선으로 둘러지기도 하고, 작은 조각배 같은 공간이 만들어져있기도 하고 그래서 더더욱.
공연시간이 다가오고, 단원들이 등장하고, 수석 연주자가 피아노를 띵~, 누르며 다른 악기들의 조율을 유도한다.
엄마야, 조율을 위한 그 띵~하는 소리부터 벌써 좋네!...
공연시작 전 연주자들이 들어오고, 수선스럽던 객석들이 조금씩 조용해져가고, 악기들이 소리를 맞춰가고...
앞으로 전개될 음악에의 기대가 차오르는 그 순간이 참 좋다.
또 인터미션 때, 집중해 음악을 듣던 관중들 휴식을 위해 자리를 비우고, 움직이기 귀찮은 귀차니스트들만 남아 미처 못읽은 프로그램을 읽거나, 크게 기지개를 켜거나,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거나 하는 시간, 무대 뒤에선 맥락없는 악기들의 소리가 멀리 들리고, 이번 공연같은 경우는 인터미션 때 하루는 바순 연주자가 무대에 남아 다음 곡의 연주를 점검하고 있었고, 그 다음 날은 또 팀파니 연주자가 둥, 동, 작은 소리로 팀파니를 점검하더라..., 그런 연주자를 무심히 보고있자면 세상이 온통 평화롭게 느껴지고, 이 안의 모두, 저 밖의 모두한테 아무 일도 없이 온 지구가 평안할 것만 같은 착각에 빠진다.
그렇게 마음이 고요해지는 순간이 참 좋았다.
라르스 보그트는 제법 이야기꾼.
그는 피아노 연주자이면서 지휘자를 겸했는데, 능란하게 곡을 이끌었다.
초기 피아노협주곡은 베토벤이 10대, 20대였을 때 작곡된 곡들, 모짜르트 스타일을 모방했다고 하고(모방이라기 보다 오마주?), 유투브로 들어봤을 때도(누구 연주로 들었었는지?) 모짜르트 풍이 완연해 난 별로였지만, 이번 공연의 연주는 그다지 모짜르트스럽진 않아 좋았고, 특히 인상깊었던 건 곡마다 들어있던 긴 피아노 독주 부분.
원래는 즉흥연주로 독주자가 마음껏 자기를 뽐낼 수 있는 부분이라는데, 베토벤의 악보대로 연주한 건지, 자기의 즉흥연주를 한 건지 모르겠지만 곡마다 그 긴 피아노의 독주를 기다렸었다.
피아노 독주 부분 외에도, 제일 싼 티켓을 샀더니 무대 측면자리인데 어찌나 무대와 가까운지 연주자들의 얼굴까지 또렷히 보이고 어떤 악기가 어떻게 연주되는지 너무 자세히 보여 음악을 '듣는' 것 뿐 아니라 악기별로 각각의 연주를 '보는' 재미가 있었다.
자리가 관악기와 가까워서인지, 아니면 마이크가 관악기군 위에 설치돼있어서인지 현은 좀 멀리서 들리는 듯하고 관악기들의 소리가 선명했
다.
협주곡은 현대음악으로 치자면 재즈밴드 음악같다는 느낌.
때론 홀로, 때론 여럿이, 혹은 다같이 이러저러한 조합을 이루며 서로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긴 대화를 나누는 모습.
한 악기가 주제를 던지면 거기에 다른 악기들이 이야기를 보태고, 화답하고, 그러다 또 다른 악기가 다른 멜로디를 꺼내면 거기에 또 다른 악기가 합류하고...
음악 듣는데 방해돼 원래는 연주 모습을 보지도 않는데, 이번엔 아, 플루트네, 어머, 오보에 소리가 참 따뜻하다, 바순소리는 저렇구나, 아, 현 군들..., 팀파니는 수시로 스틱을 바꾸네, 하며 분주히 연주자들을 따라다녔다.
피아노만은 잘 듣고 싶어 여전히 먼 산을 보며 들었고.
수많은 악기들에 역할들을 부여하며 악기들끼리의 무수한 이런 저런 조합을 통해 주제를 세우고 이야기를 전개시키고 변주하고 풀었다 모았다하며 클라이맥스로 이끌어 결국 큰 그림을 완성하는 그 구성력.
위대한 소설가의 작품에 감탄하듯 베토벤에 감탄할 뿐.
'밥'과 무관한 이런 시간들.
삶이 하찮아 견디기 어려울 때 풍랑이 몰아치는 밖을 피해 방주에 안온히 들 듯, 이런 시간이 잠시 우리를 구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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