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3. 16.(목) 20시. 과천시민회관 대극장
프로그램
1.바흐-부조니:토카타, 아다지오와 푸가 c장조, BWV564
2.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8번 c단조, Op 13 '비창'
1: grave, allegro di molto e con brio 2: adagio cantabile 3: rondo, allegro
3.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14번 c#단조, Op 27/2 '월광'
1: adagio sostenuto 2: allegretto 3: presto agitato
4.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23번 f단조 Op 57 '열정'
1: allegro assai 2: andante con moto 3: allegro ma non troppo
오랜 만의 김선욱 연주회.
바흐-부조니와 베토벤 소나타들이라... 레퍼토리가 좋다.
하지만 '비창'과 '월광', '열정'소나타, 이건 많이 연주해 수월한 게 아니라 오히려 도전일 수 있을텐데...
어떻게 남다르게 그려낼 건가?
찾아들어 간 공연정보에 보니, 베토벤소나타를 재해석하려다 본 텍스트를 무너뜨리는 다른 연주자들을 보고 그 본질을 회복하고 싶었다는 동기가 쓰여있다.
김선욱의 느린 악장, 느린 소절들, 그리고 피아노, 피아니시모들은 내게 최고다.
이번 연주에서도 유난히 공간을 많이 둬 여백을 풍부히 만드는 부분들 너무너무 좋았고, 섬세하기 그지없는 여리디 여린 소절들도 너무 좋았다.
그 고요하고 낮은 음성들에 오히려 귀는 더 집중을 하고 마음이 빨려들어간다.
반면 전보다 강약이 분명하고 명암이 선명해진 연주는 훨씬 파워풀하고 드라마틱한 느낌이었다.
제법 들어본 곡들이라 혹시나 심상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는 어느새 사라지고 내내 집중해 곡을 들을 수 있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연주자에 따라 곡이 재미있기도 하고, 지루하기도 한 게 사실인데, 그의 연주는 항상 마음이 따라간다.
그의 손가락이 여기를 가리키면 여기를 보게 되고, 저기를 가리키면 저기를 보게 돼.
바흐-부조니는 집에 있는 백건우씨의 연주를 미리 들었었는데, 백건우씨의 연주는 울림을 많이 줘 정말 오르간의 느낌, 때론 온 음들이 함께 울려퍼지는 파이프 오르간의 느낌을 살리려 했다면, 김선욱의 연주는 음들이 차고 단단해 오히려 챔발로 같은 느낌이 났다.
그만의 해석인 것 같다는 생각.
역시 두번째 아다지오 너무 좋아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듣는 듯.
언젠가 바흐가 더 좋아지면 연주해주길...
그런데 이상하게 이번 연주회에서는 왼손의 소리가 특별히 잘 들렸었다.
오른손 메인 선율의 배경이 되주거나 보조를 하는 게 아니라 동등하게 나란히 서서 존재를 보인다는 느낌.
덕분에 곡이 더욱 입체적으로 느껴졌고, 미처 몰랐던 아름다움을 새로 보는 듯했다.
절정을 향해 치닫는 음들에, '도대체 어디까지?' 하며 덩달아 긴장하다가, 클라이맥스에서 빠,바,방! 그제서야 참았던 긴 숨을 휴, 하고 풀어놓으며 카타르시스. 과연 공연의 피날레로 딱 맞다 싶던 열정적인 마지막 레퍼토리 '열정'이 끝나고, 긴 박수에 응답해 들려준 앵콜곡들, 베토벤과 브람스라던가? 이젠 긴장을 풀고 여유로히 풀어내는 낭만적인 선율들은 살랑이는, 아름다운 음의 결들이 온 마음을 어루만지는 듯했다.
어느 사랑방에 도란도란 둘러앉아 듣듯 이런 레퍼토리들로만 연주회를 가져도 좋겠다는 생각.
과천대극장은 처음이라 소리가 어떨지 좀 걱정이었는데, 아주 나쁘진 않았지만 아마 더 좋은 공연장이었다면 더 풍성한 소리를 들을 수 있었겠지 싶다.
연말의 브람스, 그리고 드디어 메시앙!, 연주를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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