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라는 직업 : 고통에 대한 숙고
"기쁨은 항상 삶이 성공했다는 것을, 삶이 제 터전을 얻었다는 것을, 삶이 승리했다는 것을 알려준다. 모든 큰 기쁨에는 개선장군 같은 억양이 깃들여 있다....."
-Henri Bergson, L'Energie spirituelle
"모든 날 중에 가장 망한 날은 웃지 않은 날이다."(-Chamfort)
......나는 인간의 실존이라는 커다란 일터를 탐험하는 도전에 나섰습니다. 남자든 여자든 사람이라면 누구든 자기 몫의 고통을 감내해야 하고 이 몸을 지닌 채 살아야 하며, 남들의 시선을 감당해야 하고, 참으로 존재하기 위해 '남들이 뭐라 할까'라는 염려를 떨쳐버려야 합니다... 우리는 모두 바닥의 바닥까지 내려가 그곳에서 평화와 기쁨, 사랑을 찾아내야 합니다. 이 길을 떠나기 위해 짐을 싸거나 거추장스러운 물건들을 챙길 필요는 전혀 없습니다. 그저 날마다 앞으로 나아가겠다는, 그리고 지금 있는 수단만 갖고 나아가겠다는 마음만 있으면 됩니다......
<전도서>에는 우리가 인간 조건을 감당하는데에 소중한 열쇠가 되는 훌륭한 글이 들어 있습니다. "헛되고 헛되고 모든 것이 헛되다"라는 유명한 구절을 모두 기억하실 것입니다. 오랫동안 나는... 이 말이 부담스럽고 숨막히고 슬프다고 여겨왔습니다. 그러나 세상 모든 것은 약하고 덧없고 언젠가 무너진다는 것을 받아들이면서 가벼움과 참된 기쁨을 향해 나아가는 지금의 내게는 이 구절이 도움이 됩니다. 숱한 부정과 정신적 외상과 상처가 고비마다 우리를 기다리는 이 세상에서 기쁨이라는 이삭을 주우려면 삶의 기술을 제대로 그려나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인감됨의 끝까지 가고 일상의 우여곡절을 감당하려면 우리에겐 삶의 기술이 필요합니다. 삶의 기술이란 즐거운 금욕이며, 바로 여기서 커다란 물음이 나옵니다. "어찌 하면 좀더 낫게 살 것인가?"...
... 여기서 나는 이유 없는 삶, 즉 왜냐고 묻지 않는 삶을 살아보려 진심으로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유 없이 산다는 것은 차츰차츰 '남들이 뭐라고 할까'라는 부담을 벗는 것이며, '훗날'이라는 것의 독재에서 풀려나 나 자신을 온전히 현재에 내어주는 것이며, 쓸데없는 목표 같은 것을 줄이고 유보조건 없이 인간이라는 직업에 몰두하는 것입니다...
인간이라는 직업은 악착스런 집착과 비극을 부정하려 진을 빼거나 결핍을 지워버리고 피치 못할 고통 곁을 그냥 지나치느니 차라리 불완전한 점들을 그대로 지닌 채 이 세상을 살아가라고 우리에게 권합니다. 고통을 두려워하면 할수록 점덤 더 괴로워진다는 잔인한 법칙이 있습니다. 이건 불행한 일이지만, 나는 행복에 손을 뻗어 그 행복을 테두리 속에 가두고 나라는 존재와 내가 하는 행위 속에서 행복을 느끼고 싶어합니다. 그래서 내 삶의 먼지를 탈탈 털어내고 모든 집착을 벗고 매일매일, 매번의 숨과 삶을 새로운 눈으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큰 삶 속으로 태어나고 날마다 죽어서 우리를 가로막고 붙들고 짓누르는 모든 것을 타파할 수 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손에 열쇠를 쥔 채 고통을 감당할 수 있고 실존의 문제를 단번에 해결할 수만 있다면, 고통이든 기쁨이든 순간순간 우리에게 닥쳐오는 것에 대해 "예"라고 말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인간이라는 직업을 수행하는 것은 아마도 아주 단순한 일, 순간순간 '예'라고 답할 엄두를 내는 일일 터입니다.......
인간이라는 직업을 직접 살아낸다는 것은 인생의 우여곡절을 감내할 수 있게 돕는 삶의 기술을 체득하여 늘 좀더 깊이 기쁨을 향해 나아가는 것입니다, 산다는 것은 피치 못할 시련을 당해내고 역경에 맞부딪치고 불확실성을 감당하는 일입니다. 우리의 약함이 꼭 중압이나 장애만은 아니며 놀라운 풍부함의 장소가 될 수 있다는 것, 그것을 깨닫기가 얼마나 어려운지요!
...전투다! 나는 삶에서 이득을 얻어내고, 기쁨을 찾아내야만 한다. 안 그러면 망한다. 하지만 어떻게, 대체 어떻게?
똑바로 서서 방향을 유지하는 기술은 분명히 보다 행복한 지평이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이 진전을 방해하는 것은 고통도 아니고 실패도 아니다. 그것은 바로 절망이다. 희망하기를 멈추는 것. 그건 도전해보지도 않고 패배를 인정하는 일이며, 우리 노력 하나하나를 헛되게 하는 것이다. 인격이 형성되는 독특한 출발점은 우리를 완전히 벗어버리는 것이다. 즉 자신이 취약하며 개선의 여지가 있음을 다시 인정하는 일이고, 불확실한 땅에서 살아가고 있음을 인식하는 것이며, 왜 싸우는지, 왜 기쁘게 싸우는지를 알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인간은 꾸어다 놓은 듯 어색한 수습생, 아찔하고 난해한 의무 앞에 서 있는 수습생...자신의 삶을 작품으로 만들 의무, 실존 전체를 온전히 감당할만한 인성을 벼리어낼 의무......
... 환상과 냉소주의의 양자 사이에서, 모든 건 앞으로 쌓아나가야 할 상태로 남아 있다. 선택의 여지는 없다. 본보기도, 해법도, 정답도, 사용법도 손에 넣을 수 없다. 각자 더듬더듬, 실패를 겪고 또 만회해가며, 폐허에 건물을 다시 지어가며, 그렇게 해나가는 것이다...
절망의 미묘한 해독제인 가벼움,... 가벼워지는 것, 그건 자신의 그림자를 말살하기 위해 온갖 시도를 다 해본 뒤에 겸손히 운몀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대가 없고 부조리하고 의미 없는 고통보다 더 나쁜 건 없다는 체험... 대가도 결실도 없는 고통은 영영 지워지지 않는다. 그런 고통은 우리에게서 자유를 앗아가버린다... 고통은 오직 앎에 쓸모 있을 뿐이며, 앎을 벗어나면 실존을 악화하는 데만 쓸모가 있을 따름... 사람은 고통의 포로인지라 필요한 희망도, 힘도 잃기 쉽다. 그리고 각자 하루하루 더 깊이 가라앉을 수 있다... 싸우다보면 진이 빠져 결국 죽는다는 것, 그걸 이해야만 할까?... 고통 그 자체는 여전히 정당화할 수 없다! 고통 받는 존재일 뿐인 사람에게 고통은 아무것도 가르쳐주지 않는다...
고통으로 망가진 얼굴에 그려진 기쁨의 지고함, 이것이 치료제다! 설령 내가 세상 모든 걸 다 가졌다 하더라도 만약 이 기쁨이 내게 낯선 것이 된다면, 나는 미완성의 존재일 터이다. 베르그송을 읽으면서 나는 명철하게 확인된 사항을 발견했다. "기쁨은 항상 삶이 성공했다는 것을, 삶이 제 터전을 얻었다는 것을, 삶이 승리했다는 것을 알려준다. 모든 큰 기쁨에는 개선장군 같은 억양이 깃들어 있다......"
...'고통을 통한 앎'은 나를 짓누르는 시련이 나를 없애지는 못할 거라는 고집스러운 희망이다. 나는 시련에 맞서 저항할 의무가 있고,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내 자유가 행사되는 것을 따르고 무릎 꿇지 않을 의무가 있다... 고통이 실존을 악화한다 해도, 고통은 또한 가르침도 준다. 그러나 내 차례가 되었을 때 어떻게 '고통을 통한 앎'을 실천할 것인가? 약한 사람들은 보여준다. 고통에서 뭔가 이익을 끌어내는 것은 우선 삶을 누리고 유익하게 쓰는 것임을...
...가장 멋진 무기는 아마도 자신에 대해 웃어넘기는 것, 자신의 약점을 경멸하는 이들에게 허를 찔리지 않는 것...
...역경에 빠졌을 때 선 채로 버티는 법을 배우는 것....
군중 속에 나 혼자 있을 때, 내 동작 때문에 주변에 웃을이 터질 때, 나는 깨닫는다. 시선이라는 게 얼마나 결정적인지를. 타인은 나를 압박한다. 타인의 존재는 무게가 된다. 조롱으로 번득이는 두 눈을 어떻게 바꾸겠는가? 타인이 오직 나의 우스꽝스러운 측면만 보고 내 삶에 덜컥 침입하는 것을 어떻게 너그러이 참아 넘기겠는가?...
주변인의 체험, 다름을 드러내는 자로 있어야 할 의무, 비정상으로 분류된 자로 살아야 할 의무, 이런 것은 복잡한 문제제기를 축약한다. 일생 내내 그는 특수성을 받아들이려고 애써야 하며, 특히 그 특수성을 하나의 장점으로 이용하려고 애써야 한다... 내 삶의 토대인 타인이 나에게 장애라는 명찰을 붙이는데, 그 심상찮은 결과는 오래오래 상처를 남긴다...
일상에서 감당하는 상처로부터 나타나는 싸움과 기쁨은 끊임없이 외친다. 다시 시작하라고, 노력을 계속하라고, 다시 행진하라고, 허약함 위에 뭔가 쌓아올리라고. 거듭거듭 사람들은 그 상처가 극복되길 바란다... 그러나 상처는 다시 나타나 실존을 꿰뚫는다. 그리고 나는 무거움의 정신에 맞서 싸워야만 한다...
알량한 인간이라는 직업. 나는 기쁘게 싸우면서, 내 취약함도 내 조건의 허술함도 결코 시야에서 놓치지 않고 주시해야만 한다. 한 걸음 한 걸음을 만들어내야 하고, 내 취약함으로 강해져서 투쟁의 원천이 될 힘을 모든 것을 동원해 찾아내야 한다. 분명 예감컨대 이 싸움은 내게 버거운 싸움이다. 그러나 내가 싸우다 죽지는 않을 것이다...
요컨대 의지는 포기를 금지한다. 의지 없이는 전투도 승리도 볼 장 다 본 것이다! 그렇지만 난점들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사라지다니, 어림도 없다. 덕지덕지 쌓인 상처들이 나를 기진맥진하게 하고, 나는 종종 속수무책에 무장해제 상태가 된다. 극도로 들볶이다보니 의지는 위축되고, 죽어버릴 위험까지 있다. 의지는 왕성하지만 그를 채울 양식이 없다보니 추동력이 되지 못한다. 두려운 요구 사항이고 괴로운 일상이지만 항상 투쟁해야 한다.
실존의 비극적 측면은 무엇을 환기하는가? 경축하고 경축받을 일들은 기쁜 마음으로 축하해야 한다는 것이다. 연민과 슬픔이 함부로 힘을 발휘하는 그곳에 기쁨을 부여하는 것, 삶을 위해 투쟁하는 것, 경멸 속에 푹 잠겨 절어버리지 않는 것, 우리 조건의 소소한 기쁨들에 의지하는 것. 인간이라는 직업, 심각한 주제, 때로 엄중한 이 주제는 그러므로 지속적인 참여를, 세상에 새로운 시선을 던지고자 하는 경쾌함을 요구한다...
"모든 날 중에 가장 망한 날은 웃지 않은 날이다." 여기서 웃음이란 기쁨과 함께, 낙담에 대적하는 무기가 된다. 웃음은 조롱과는 달라서, 모든 것을 모으고, 합치고, 좀더 강하게 만들어 준다.
궁극의 과감함인 웃음은 일상의 틀을 깨고 시련으로부터 거리를 두게 한다... 어떤 어려움이 닥쳐도 상포르의 기준에 따르면 '망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삶은 유머 덕분에 달콤해진다. 웃음과 전투가 우리 삶을 구원한다. 만약 이 둘이 함께 한다면, 둘이 서로 꼭 같이 간다면 어떻겠는가?
모든 상황이 말도 안되는 고역을 요구할 때, 노력 앞에서 지탱하는 것은 오직 확신뿐이다. 인간이라는 직업의 소명. 그것은 모든 것에 대적하여, 유머와 함께 집요해진다. 그러니 전투에 나서라. 가벼움과 기쁨으로 모든 것을 쌓아나가야 하지 않겠는가!
1975년 스위스, 트럭운전사 아버지와 가정부 어머니 사이에서 목에 탯줄이 감긴 채 태어났다.
질식사 직전에 기적적으로 살아났으나 뇌성마비가 되었다.
3살부터 20살까지 요양시설에서 생활, 장애로 인한 수많은 난관으로 인식에 대한 갈증을 갖게 되고 철학에 빠져 문과대학 진학, 지금까지 철학과 저술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태어날 때부터 뇌성마비, 그 삶이 어땠을지 어찌 감히 추측이라도 할 수 있을까.
한 숟가락 음식을 입에 집어넣기도 지난한 일일텐데...
손가락, 발가락 하나 움직이는 것도 전투이며, 늘 시선의 폭력에 시달리며, 남들이 함부로 부여한 장애인이라는 명칭을 견뎌야하는 평범치않을 그 하루하루들이 어떨지 감히 상상이 되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유난히 그의 글들에 싸움, 투쟁이라는 단어가 많이 쓰인다.
하지만 그는 그 싸움에서 절대 지지않는다.
그는 늘 웃을 수 있는 자, 승리하는 사람이다.
솔직하게 토로되는 몸으로 살아 낸 삶의 얘기와 그런 삶의 조건을 이겨내는 그의 철학이 감동이었다.
그가 어려움에 처할 때마다 주변에 전례로 삼을 사람을 찾았듯, 나도 그를 배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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