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롭게 얻은 컨셉트가 구체화되어 세상에 나타나면, 우리 삶의 지평은 그만큼 확장된다. 그로 인해 둔했던 감각을 일깨우고, 고정된 생각에 융통성을 갖게 되어 자유롭고 해방된 나를 느낄 수 있다.
발상의 전환이 참신한 작품은 그에 대한 감상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우리의 일상과 연관하여 묻혀있던 삶의 의미를 드러낸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이 오늘날 현대미술이 지향하는 방향이다.
이 책의 저자가 작가를 선정한 기준, 책제목 그대로 '발상의 전환'
그의 말대로 의식의 지평을 확장시키고 새로운 의미를 드러내는 일.
우리가 감동하고 찬탄하게 되는 모든 예술의 공통점이 아닐까.
저자가 선정한 모든 작가의 발상들이 다 공감이 되는 건 아니어서 모르던 작가들은 여전히 몰라도 좋은 작가로 남았지만, 원래 좋아하던 여러 작가들은 그들에 대해 더 자세히, 혹은 새로운 사실들을 알게 돼서 재미있었다.
한 작가마다 부록처럼 프로필과 그간의 활동내역들이 실려 예전에 전시를 보고 기억에 남았던 작가들이, 가령 서도호, 김수자, 아니쉬 카푸어나 올라퍼 엘리아슨들이 여전히, 활발히, 어떤 활동을 하고 있는지 아는 것도 좋았고..
예전부터 궁금했던 점, 작가들은 서로서로 아이디어를 벤치마킹한다는 느낌. 가령 초콜렛이나 비누로 조각상을 만들고 그게 마모돼는 과정을 작품으로 삼는 거, 김아타나 구본창에게서도 비슷한 작품을 봤었는데 누가 가장 먼저 시작한 걸까, 하는 생각..
터렐이 경비행기로 하늘을 날기를 좋아했다는 걸 아니 비로서 그의 발상의 맥락이 이해가 돼, 빛으로만 가득찬 허공의 표현..
또 호크니가 아이패드로 그린 꽃을 매일 아침 지인들에게 보낸다니, 나도 그런 꽃선물 받으면 얼마나 좋을까, 이거야말로 신선한 발상 아냐? 싶고..
허스트의 작품을 좀더 이해하게 되고.. 그런데 그가 말하는 아름다움을 더 아름답게 하는 끔찍함, 추함 불편함을 오히려 드러내어 아름다움이라는 좁은 틀을 깬다는 해석, 왠지 하고싶은대로 다 하고, 아주 정갈한 솜씨로 죽음과 폭력을 전시하고 나중에 부언하는 핑계같다는 느낌..
아니쉬 카푸어는 파리 그랑팔레에서 열리는 '모뉴멘타'전에 2013년 대표작가로 선정돼 '리바이어던'이라는 설치작품을 전시했는데 무려 38억이 들었다나? 저자 역시 '인정하기 싫지만'이라고 말하지만 더 좋은 작품을 하려면 더 많은 돈이 필요하다는 현대미술의 이면..
오랜만에 보는 리처드 세라의 담백한 작품도 좋았고..
책은 문장이 번역문처럼 껄끄럽고, 왠지 모르겠는데 작품을 사진이 아니라 누군가 실사로 그린듯한 그림, 별로 맘에 안드는 그림으로 실어 그 작가에 대한 흥미조차 떨어지게 만들고, 여러 작가들을 개괄식으로 한 번 훑는다는 느낌이지만(신문에 연재됐던 글을 모은 거라니 뭐 그럴만도 하고.), 오히려 그래서 부담없이 눈에 띄는 이 작가, 저 작가편을 찾아 가볍게 읽은 책이었다.
그는 매일 아침 싱싱한 꽃을 그려 지인들에게 보낸다. 동시에 15명에서 20명까지 보낼 수 있는데, 이렇게 아침의 꽃을 즉시 배달 받은 친구들의 산뜻한 기쁨을 상상할 수 있다.주로 꽃, 실내 정경, 풍경들을 모티브로 하는 호크니의 아이폰 드로잉은 이전에는 생각지도 못한 창의적 발상이다. 테크놀로지를 이용하여 순수미술의 예술성을 공유하는 셈이다.
그는 제한을 환영한다. "제한은 정말 당신에게 좋은 것이다. 그것은 자극제다. 만약 5개의 선이나 100개의 선을 사용해 튤립 한 송이를 그리라고 한다면, 5개의 선을 사용할 때 당신은 훨씬 더 발명하려 들것이지 않는가"
-데이비드 호크니편-
"나는 빛을 가져와서 물질화한다."
터렐이 왜 끊임없이 빛에 대한 열망을 가져왔는가를 알기 위해서는 그의 개인적 배경을 참고해야 한다. 그는 항공엔지니어였던 부친의 영향을 받아 일찍이 비행기 조종을 배웠다. 경비행기를 타면서 경험한 다양한 감각은 빛에 대해 남다른 인식을 하는 계기가 되었다. "빛이 물질이 되고 공간을 만든다."
-제임스 터렐편-
오늘 날 미술의 핵심은 '자본'이라는 점을 예시하는 작업이다. 인정하기 싫지만, 미술의 흐름에서 자연스러운 귀결이라고 봐야한다. 관람자에게 온몸으로 체험할 수 있는 미적 감동을 제공하기 위해서는 작업의 규모가 커져야 하고, 그럼 건축과 연계되기 때문에 자본이 더 투입될 수밖에 없다. 20세기 중반까지 모더니즘 시대에는 관람자의 눈만 감동시키면 됐다. 오늘날 포스트모더니즘 미술은 관람자가 공감각을 느끼도록 한다. 더 크고 더 많은 자본이 만들어내는 건축적 설치작업은 관람객을 점점 더 압도하고 침잠시킨다.
-아니쉬 카푸어편-
"삶에서 끔찍한 것은 아름다운 것을 가능하게 하고, 또 더 아름답게 한다."
현대미술에서 대중이 가장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아름다움의 문제이다. 일반 대중은 미술이 여전히 미를 다루는 것이라 믿지만, 허스트의 작품은 그럴 필요가 없다고 단언한다. 미술이 삶과 더 가까워지기 위해서는 아름다움을 포기해야 할지도 모른다...
작가들은 아름다움이라는 좁은 범위에서 벗어나 다양한 삶의 양상을 표현한다. 그런 맥락에서 허스트를 이해하면 된다. 그는 아름답지 않은 작품이 나타내는 불편함과 두려움, 혹은 공포감을 개인적이기보다 보편적이라 생각한다.
-데미안 허스트편-
극도로 단순하고 지극히 산업적인 그의 설치작품이 우리를 사로잡는 이유는 무엇인가? 전시공간을 대담하게 차지하는 건축적 크기, 그리고 철덩어리와 철판 구조물의 산업재료가 주는 강력한 물성등은 이제까지 보지 못한 작품의 속성이다. 아름다움과 거리가 먼 그의 강철 작업들, 공간을 단호하게 자르기도 하고 부드럽게 연결하는 구성은 감탄을 자아내는 현대적 멋을 발한다.
-리처드 세라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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