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남은 그림들-파란의 시대를 산 한국 근현대 화가 37인의 작품과 삶
-한국 근현대미술의 대표적인 미술가 37인과 우리 곁에 남은 작품들을 한 권의 책으로 만난다. 미술 현장에서 십수 년 동안 일한 지은이는 학술적·전문적 분석 대신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쉬운 언어로 그림의 아름다움을 조곤조곤 들려준다. 화가들의 치열했던 삶과 그들이 살았던 시대상까지 생생하게 그려내는 이 책과 함께라면 한국 근현대미술이 더 이상 낯설게 느껴지지 않을 것이다. -
굳이 이 책에 대한 독후감을 남기고싶다 생각이 든 건, 읽다가 나도 모르게 픽 웃어버린 구절 때문이었다.
이 책의 부제는 '근현대 화가 37인의 작품과 삶'
책은 한국 근현대 미술사에 한 획을 남길만한 각 화가들의 작품과 그 작품에 대한 저자의 감상문, 또 화가의 연혁에 이어 그의 삶의 에피소드들로 이어진다.
그 중 윤형근 편을 읽던 도중 너무 재미있는 구절을 읽게 됐다.
책을 통해 알고보니 윤형근 화백은 바로 김환기의 사위였는데, 그가 장인의 작품에 대해 한 말, "김환기의 그림은 잔소리가 많고 하늘에서 노닌다."
맞아, 하며 절로 웃음이 났다.
그림마다 사물과 자연과 사람과 삶에 대한 애정이 얼마나 넘치는지.
피난열차, 판자촌 그림조차 누추하지가 않으니..
윤형근 본인의 그 묵묵한 화풍을 생각할 때 장인의 그림은 너무 수다스럽고 귀족적이라고 느꼈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런 윤형근도 초기작을 보니 색감이랑 구성이 살짝 장인과 닮아있기도 했더라.
하지만 거목인 장인의 화풍에 휩쓸리지않고 그는 그만의 독특한 묵직한 작품세계를 이루었다.
그밖에 기억나는 에피소드, 산 그림이 호쾌한 박고석은 아마 사정이 어려운 지인들을 많이 거두었던 모양인데, 평양 태생이 부산으로 피난 내려가 부인이 식당을 하며 생계를 유지했던 넉넉치않은 형편에, 중섭이 방에 불 좀 넣으라, 는 남편 말에 화가 난 부인이 이중섭 방의 은박지그림, 편지들을 아궁이에 다 쓸어넣어 불을 땠다는 얘기, 뿐만 아니라 고은씨의 시원고도 그 집 화장실 휴지로 쓰였다는 얘기..
에고, 더 많은 이중섭 작품과 고은의 시를 볼 수 있을 뻔 했구나, 싶었고.
건축가 김수근이 그의 처남이라는 것도.
남관 화백은, 환기 블루가 있듯 남관의 푸른 색도 참 인상깊은데, 명성을 뒤로하고 간 파리에서 생계 유지를 위해 몽마르트에서 초상화를 그려야했을 만큼 힘들었지만 1966년 망통회화비엔날레에서 피카소, 타피에스, 뒤뷔페들을 제치고 대상을 받았었다나.
그들은 그때 피카소니 타피에스 들과 겨루었구나..
색의 마술사인 유영국은 일본에서 이중섭과 같이 수학하고, 김환기의 절친이었다는 얘기, 그는 특이하게 가장으로서의 책임을 위해 생애 중간 중간 화가이기를 접고 사업을 하기도 했었다.
장욱진이 얼마나 가족을 사랑했고 평생 가족과 그림 밖에 몰랐더란 얘기.
그밖에도 오지호, 권옥연, 서세옥, 박수근, 김창열, 권영우, 박서보, 이우환, 이상범 등등이 망라돼있다.
글이 참 편하게 잘 써져서 술술 읽히는 데다 책에 언급된 대부분의 화가들이 다 관심있고 좋아하던 화가들이라 그들의 미처 몰랐던 에피소드들을 통해 공적으로 드러난 화가로서의 모습 외에 일상을 살아가던 한 인간을 볼 수 있는 게 무척이나 흥미로웠다.
소소한 에피소드들도 참 재미있었지만 식민지 후, 전쟁 후 그 척박한 환경에서 어떻게 그들이 스스로의 작품세계를 개척하고, 우리의 미술사를 구축해나갔는지를 책을 통해 알 수 있었다.
책을 꼭 처음부터 차례대로 정독할 필요는 없다.
목차를 보며 좋아하는 화가들를 찾아 먼저 읽어도 좋고, 관심없는 화가편은 미안하지만 그냥 스킵해도 좋다.
아, 이 사람은 이랬었구나, 저랬었구나, 이런 일이 있었구나, , 이런 시대를 지나고 겪었구나, 아, 이 사람과 저 사람이 이렇게 저렇게 관계형성이 됐었구나, 하며 재미있게 읽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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