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미술관 개관 10주년 기념전을 가보려 했던 건, 사실 서울미술관의 컬렉션보다는 석파정이라는 공간에 대한 궁금증때문이었다.
고즈넉하고 한가로운 숲.
가보니 석파정은 기대한 대로 단아한 한옥과 너무 어렵지않은 그러나 제법 숲 느낌나는 조용한 산책길로 도심 속에서 만나는 모처럼의 안식처여서 와! 감탄사를 뱉으며 공간을 만끽할 수 있었지만, 더 놀랐던 건, 개인소장자의 수집품이 뭐 별거있겠어? 하던 의구심과 달리 평소 좋아하던 대작가들이 망라돼있는데다 그들의 처음보는 작품까지 볼 수 있는, 의외로 너무 알찬 컬렉션이었다는 거다.
전시디스플레이도 짜임새 있어 좋았고, '수집가의 문장'이 더해져있어 그림수집에 대한 에피소드와 그에 대한 애정을 느낄 수 있었다.
큰 기대없이 갔다가 포만감을 얻고 온 전시.
그녀 나이 23세때의 초기작. 이미 내공이 차있고..
처음 보는 듯한 작품.
천경자, 라는 이름을 처음 알고 처음으로 좋아했던 그녀의 작품. 화집으로만 봤었는데 여기 있었구나..
왠지 허술하고 그리다만듯 보여 위작 아냐? 싶던..
색의 마술사.
그림 앞을 이리로 저리로 다가갔다 물러섰다 코를 박다 하며 색이 향취를 만끽했던 작품들.
움직이는 산, 은 처음 보는 듯도 싶고.
깔끔한 원본이미지를 찾을 수도 있었겠지만 전시회때 느낌을 간직하고 싶어 찍어온 사진들을 그대로 올렸다.
이대원의 그림들은 하나같이 가득 열매 열린 사과나무처럼 풍성하고 풍요로웠다.
인생 뭐 있어? 즐겁게 살아가는 거지! 하는 낙관.
환기의 초기작. 이것도 처음 보는 그림이었다. 형태와 색에 운율이 느껴진다.
10만개의 점. 따로 방을 두어 저만치, 관람객들에게서 한 3m? 정도 떨어져있게 전시돼있었다.
이거 예전에 환기미술관에서 봤던 거 같은데.. 그땐 늘 하던대로 코를 박고 봤던 그림인데.. 바싹 다가가 서면 마치 푸른 우주속에 든 듯했었는데.. 하며 이젠 값어치가 너무 높아져 오히려 거리를 둬야하게 된 것을 아쉬워했다.
또 한사람의 낙관주의자. 이왈종의 늘 그렇듯 마냥 즐거운 그림은 볼 때마다 유쾌하고..
이 섹션에는 강익중 외에도 사진인지 그림인지 헛갈리게 정밀묘사된 고영훈의 달항아리와 손석의 달항아리가 있었다.
이배, 라는 생소한 작가. 어쩌면 하찮은 숯이라는 재료를 이렇게 아름답게 끌어낸 게 이채로웠다.
탈대로 다 타고 난 후 오히려 빛을 머금는 신비로움.
그리고 이우환.
이것 역시 처음 보는 작품. 아, 이런 작품도 했구나, 놀랍던, 일필휘지, 기운생동이 좋았던 그림. 제목이 뭐였더라?
'바람과 함께' 1989.
이밖에도 이중섭, 박수근, 김창열, 김흥수, 안병석, 권영우, 김태호, 최영림 기타등등에 커다란 고려불화도 한 점, 작품이 상할까봐 조도를 너무 낮춰 제대로 보기 어려웠지만 거대한 스케일과 정밀한 묘사들, 천 년이라는 시간의 무게가 느껴지던 작품도 있었다.
이게 전부가 아니겠지? 나머지 소장품들이 궁금해져 이 전시 끝나고 상설전시할 때 다른 작품보러 다시 와야겠다 마음 먹게 한 알찬 전시였다.
미술관앞 소품샵. 둘러 볼 시긴이 없었던 게 아쉽.
그리고 비 오던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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