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이건희컬렉션 특별전, 모네와 피카소 파리의 아름다운 순간들

바다가는길 2023. 5. 10. 20:45

 

 

--2021년 국립현대미술관에 기증된 이건희컬렉션에 포함된 마르크 샤갈, 살바도르 달리, 카미유 피사로, 클로드 모네, 폴 고갱,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 호안 미로의 회화 7점과 파블로 피카소의 도자 90점을 소개하는 전시입니다. 

이번 전시는 여덟명의 거장이 파리에서 맺었던 다양한 관계에 초점을 맞추어 구성했습니다...--

 

 

전시가 예약제로 운영되는 탓에 표를 예매하기가 얼마나 어렵던지.

수시로 예약페이지에 들어가도 매진, 매진.. 허탕치기를 거듭하다, 전시 막바지 무렵 혹시나 하고 들러보니 좀 여유가 생겨있어 겨우 겨우 예약을 할 수 있었다.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은 마지막으로 간 게 언젠지 까마득하다.

지하철에서 내려 이젠 위치가 바뀌고 제법 모습을 갖춘 셔틀버스 정류장에 앉으니 옛 기억들이 새록하다.

 

미술관은 왠지 퇴락한 옛집 같아져있다.

잔디 정원이랑, 노래하는 사람은 여전히 홀로 열심이고, 연못도 그대로고 건물도 그대로인데, 로톤다의 나선형 길을 열심히 오르내리며 기대에 차 전시를 둘러보았던 예전과 달리, 전시장들은 개점휴업 상태, '다다익선'도 화면이 다 꺼진 채로 죽어있고..

 

이건희 컬렉션전은 커다란 원형전시실에서 진행되고 있었다.

작가간의 관계에 초점을 맞추었다는 기획대로 여러 섹션으로 구획됐지만 여전히 난 내 맘대로.

그 중 특히 명불허전 모네와 샤갈, 그리고 피카소의 도자작품들이 좋았다.

 

 

 

 

끌로드 모네(1840-1926). 수련이 있는 연못. 1917-1918. 100X200.5cm

 

--인상주의를 대표하는 작가가 바로 모네입니다. 그는, 특정한 대상을 오랫동안 관찰하며 시간과 계절에 따라 달라지는 대상의 형태와 색채를 표현한 연작시리즈를 여럿 남겼는데 수련 연작도 그중의 하나입니다.

모네는 1983년. 파리 근교의 지베르니에 정착한 이후 세상을 떠날 때까지, 집 정원의 연못과 그 위에 핀 수련을 대상으로 40년 동안 약 250점의 연작을 그렸습니다.

처음에는 정원과 연못 주변의 모습까지 담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모네는 연못의 수면에만 집중하게 됩니다. 

화폭 안에는 오직 물과 수련, 그리고 물에 비친 하늘만 담기게 되죠. 

1917년에서 1920년 사이에 그려진 이 그림 역시 마찬가지인데요, 화폭의 왼쪽에는 수면에 비친 구름이 유유히 흘러갑니다. 마치 이 구름에서 점점이 떨어져 나온 듯 수련들이 떠 있고,그 주변에는 물에 비친 나무 그림자들이 드리워져 있습니다. 그런데 하늘과 연못, 구름과 수련이 뒤섞인 화면은 마치 평면처럼 흐릿하게 보이도록 그려져 있습니다. 

당시 모네가 백내장으로 시력을 상실해가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는 인상주의 미술을 통해 대상의 평면성에 대한 탐구를 꾸준히 이어갔던 작가이기도 합니다. 

20세기 초의 현대미술은 대상을 입체적으로 그리는 대신 평면적으로 그리면서 추상화해 나가려는 시도로부터 시작되었죠. 

이런 이유로 모네의 수련 연작은 현대회화, 특히 추상미술의 출발점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터치며 색채며 구성이며 역시 여전히 아름다워 그림 구석 구석을 훑으며 감탄으로 봤던 작품.  2m라는 꽤 큰 스케일이라 그림 앞에 서면 마치 그 연못 가에 있는 듯 했다.

 

 

 

 

마르크 샤갈(1887-1985). 결혼 꽃다발. 1977-1978.  91.5X72.8cm.

 

--파란 빛이 감도는 화면의 정중앙에, 붉은 꽃다발이 한 아름 담긴 꽃병이 놓여있습니다. 꽃병 오른쪽에는 결혼 피로연에 사용된 듯한 와인병과 과일 바구니도 보입니다. 왼쪽에는 이 결혼의 주인공인 한 쌍의 연인이 서로에게 기댄 채 흐릿하게 보이는 마을을 배경으로 서있습니다.

꽃과 연인이라는 주제가 샤갈의 그림에서 처음으로 등장한 시점은, 아내이자 첫사랑이었던 벨라와 결혼하던 1915년이었습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벨라에게 꽃을 받았던 가난한 화가, 샤갈에게 꽃은 행복하게 빛나는 삶을 의미했죠. 하지만 사랑과 꿈, 환상의 세계를 다루었던 샤갈의 인생은 그다지 평탄치 못했습니다.

1차 세계대전과 러시아혁명을 겪어야 했고, 2차 세계대전때는 나치의 박해를 피래 미국으로 피신했습니다.

1944년에는 부인이자 뮤즈였던 벨라가 세상을 떠나고 말았죠. 

전쟁이 끝나고 파리로 돌아온 샤갈은 이런 수많은 고난을 뒤로 한 채 다시 몽환적이고 아름다운 삶의 순간을 노래하는 작품을 제작합니다.  특히 프랑스 남부 니스 근처 생폴 드 방스 지역에 정착한 뒤로는, 점점 더 크고 화려한 꽃들을 화면에 담아냅니다. 

눈부신 남프랑스의 햇살 아래 빛나고 있는 이 결혼 꽃다발은 말년에 되찾은 새로운 사랑과 행복의 순간을 담아낸 샤갈의 대표작입니다.--

 

 

말년작이라는 설명에 연혁과 작품 제작시기를 다시 보니, 그의 나이 거의 90세에 그린 그림.

아니 커다란 꽃다발이 화면 정중앙을 다 차지한 이 대담한 구도며 청청 발랄한 이 색감이 90세 노인의 그림이라고? 

전혀 나이 들지않은 여전한 그의 톤과 화풍.  그의 몸은 늙었으되 영혼은 벨라와 사랑을 나누던 때의 청년의 것 그대로였나보다.

 

 

 

 

피카소와 샤갈

 

--샤갈은 1910년 러시아를 떠나 파리의 몽마르트 언덕에 작은 작업실을 마련했습니다. 여전히 고향의 풍경과 사람들을 그리면서도 샤갈은 당시 파리에서 유행하던 입체주의 미술을 받아들여 화면을 기하학적인 형태로 분할하는 구성법을 시도하며 그 운동을 주도했던 피카소를 직접 만나고 싶어 했지만 이들의 만남은 성사되지 않습니다.

1차 세계대전의 발발과 러시아 혁명의 여파로 샤갈은 10년간 고향에 머무르게 되는데, 피카소를 만나지 못한 아쉬움을 달래고자 ' 피카소를 생각하며'라는 작품을 그리기도 했습니다, 2차 세계대전 기간 동안 나치를 피해 미국에 머물던 시기에 피카소에게 보낸 편지 덕에 두 사람은 전쟁 종료후인 1940년대 말 피카소가 도자기를 제작하던 남프랑스의 발로리스에서 조우해 함께 도자기를 만듭니다.  

샤갈의 회화에는 염소나 물고기 같은 동물들, 꽃과 정물, 악기를 연주하고 춤을 추는 사람들이 뒤섞여 만들어내는 몽환적인 풍경들이 가득합니다. 이러한 주제들은 피카소의 도자에서도 찾아낼 수 있습니다. 인간, 동물, 자연이 함께 하는 삶의 아름다운 순간들이야말로 피카소와 샤갈이 자신들의 작품을 통해 궁극적으로 보여주고자 했던 가치였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들 외에도 모네와 르누아르는 절친으로 함께 야외로 그림을 그리러 다녔고, 피카소와 미로(1893-1983), 달리(1904-1989)는 같은 스페인 출신 작가로서 먼저 파리에 정착해 성공을 이룬 피카소가 미로의 파리 활동을 도우며 평생의 친구가 됐고, 달리가 처음 파리에 왔을 때도 미로가 피카소를 소개해주고 초현실주의 작가들과의 만남도 주선하는 등 서로의 성장을 도왔단다.  이런 맥락을 지니고 모네와 르누아르의 그림을 함께, 미로와 피카소의 도자기를 가까이, 그런 식으로 전시공간이 짜여졌었다.

정말 당대의 파리는 예술의 중심지여서 내노라하는 쟁쟁한 예술가들이 모두 모여들었었구나... 

이들의 스토리를 기억하고 싶어 적다보니 새삼 알게 되는 것, 모두들 참 장수하셨네.

당대에 인정을 받고 성공을 이루어서인가?

 

 

 

 

 

피카소의 도자

 

피카소는 파리에 온 첫해였던 1900년, 고갱의 도자작품을 처음 본 뒤 도자예술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합니다.

1940년대 말 남프랑스 발로리스의 도자 제작소 마두라 공방을 방문한 것을 계기로, 불을 이용한 제작, 흙을 빚어 형태를 만드는 조각적인 속성과 도기 위에 그림을 그리고 채색하는 회화적 속성이 결합돼있다는 점에 매료돼 도자기를 제작합니다.

도자기는 판화처럼 같은 형태의 도기를 여러 점 제작하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에, 피카소는 이런 특성을 이용해 도자 에디션을 제작합니다.

1947년부터 1971년 사이, 총 633점의  '피카소 도자 에디션'이 만들어졌는데요, 각각의 에디션들은 적게는 25개에서 많게는 500개까지 제작됐습니다. 

피카소는 이런 작업을 통해 회화, 조각, 판화 등 장르의 경계를 넘나드는 조형적 실험을 도자에까지 이어나갑니다.--

 

재기발랄한 피카소의 도자기들을 흥미롭게 보던 중, 어 이런 건 피카소치곤  너무 정돈돼있는데 하며 의아하던 생각이 설명문을 읽고서야 아하.

디자인을 하고 제작감수를 다 했겠지만 몇 백점의 에디션 작품들에 오리지널한 손 맛이 일일히 담기기는 어려웠겠지.

자신의 작품을 좀 더 많은 사람이 누릴 수 있길 바래 도자 에디션을 만들었다던가? 하지만 솔직히 말해 경제적 이유가 더 크지 않았을까? 

어쨌든 절로 미소를 부르던 도자 작품들.

 

 

염소머리 시리즈.

 

 

얼굴시리즈.

네모난 눈의 얼굴. 1959.

 

얼굴 197번. 1963.

 

얼굴 157번 1963.

 

얼굴 111번. 1963. 25X25.

 

검은 얼굴. 1948. 23.5X23.5.

 

 

꽃다발이 있는 풍경. 1956. 25x25x2.5.

 

 

사과와 꽃다발. 1956. 24X24X2.

 

 

 

 

 

원형정원 프로젝트: 달뿌리-느리고 빠른 대화.  2원형전시실 내부. 황지해.

 

--국립현대미술관 과천의 지리적, 환경적 특성을 반영하여 자연과 조화하는 예술 형식인 '정원'을 기획...

원형 정원에 조성된 식물 군락은 건축으로부터 분절된 주변 생태와 과천관을 연결하고 자연과 자연, 인간과 자연, 인간과 인간을 이어주는 화합의 장으로 확장될 것이다--

 

하늘이 열려있는 야외 공간에 자생식물군으로 정원을 꾸몄다. 군데 군데 놓인 베드소파에 깊숙히 앉아, 화려하진 않지만 어느 들녘의 것처럼 정겨운 식물들 사이에서 하늘을 보는 시간, 평화로웠다.

 

 

원형정원을 둘러싼 둥그런 공간. 흙길을 재현한 듯 구불구불한 황토빛 길이  느긋한 산책을 이끌고,  창가마다엔 벤치가 놓여있어(게다가 여러 개의 쿠션들까지), 걷다가 힘들면  앉아 밖의 하늘이며 정원 바라보고, 한 쪽엔 자유롭게 읽을 수 있게 비치된 정원관련 책들이 전시돼있어  책 한 권 들고 또 느긋이 창가에 앉고..

여기까진 사람들이 안 올라와서인가, 이 또한 참 고요하고 평화로운 공간이었다.

 

 

 

 

옥상정원에서 본 풍경. 

전에 왔을 때만 해도 잔디밭을 가로 질러 가 호수가를 산책할 수 있었는데, 이젠 주변을 빙 둘러 펜스를 쳐 진입을 막아놨네. 한참이나 입구를 찾다가 도저히 못 찾고 물어보니 거긴 이제 서울대공원 영역이라나? 

맘에 들던 공간 하나를 잃었다.

 

여기 언제 다시 와보게 될까? 왠지 굳이 오고싶을 만큼의 전시가 내겐 그동안 없었다. 

참 좋은 공간인데...

꼭 다시 오고싶어지는 좋은 기획들이 많이 펼쳐지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