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파정은 과연 내 기대를 져버리지않았다.
단정하고 고즈넉한 공간.
그다지 크지않은 숲엔 이리로 저리로 길이 나있고, 어느 길로 들어서든 그 길은 언제든 다른 길을 만나 돌아올 수 있었다.
길 곳곳엔 색색의 벤치가, 그 튀는 색이 그닥 밉지않은 벤치들이 놓여있어, 그냥 일 없이, 별로 다리가 피곤하지않아도 앉아주세요, 하고 거기 있으니 앉아서, 하늘을 가리고 있는 나무잎들, 아 좀 있으면 단풍이 너무 이쁘겠네 하며 한참 바라보고, 바람이라도 불라치면 후두둑 후두둑 사방으로 튀며 떨어지는 도토리 소리에 귀 기울이고, 어디선가 빼꼼 나타나는 다람쥐, 청설모를 서로, 걔는 나를 나는 걔를 구경하고..
서울 복판에 이런 공간이 있다니...
가옥도 어찌나 정갈히 보존 관리되고 있던지. 조경수들도 너무 잘 가꾸어져있고, 담장 옆엔 색색의 꽃들이 정감을 더하고, 천년송이라는 소나무는 얼기설기 얽히며 뻗은 가지들이 긴 긴 세월의 굴곡을 보여주며 청청히 서있었고,
그 집 툇마루에 앉아보는 전경은 또 얼마나 시원하던지.
센스있는 안내원이, 오늘은 비가 오니까 청각에 집중해보세요, 하던 말대로 또각 또각 떨어지던 빗소리도 듣고, 야외니까 마스크 벗고 비냄새, 나무냄새 맡고..
오랜만에 너무 여유로운 시간과 마음을 누렸다.
미술관 조각정원. 탁 트인 전망이 시원하다.
미술관 가기 전, 미술관 근처 맛집을 검색해 세검정 돈까스(창가 자리 전망이 좋다. 벽을 둘러 마치 북카페처럼 책들이 놓여있고 편안하고 따뜻한 분위기. 돈가스 종류별로 먹어봤는데 다 맛있었어..)에서 맛있는 점심을 먹고, 거기선 커피를 팔지않기에 어디서 커피 한 잔 마셔야하는데 하며 두리번 거리며 미술관을 향해 가다보니 왼편 언덕길 위에 웬 분홍 간판이. 어, 카페네, 저기 가자.
가파른 계단을 오르자마자 비에 촉촉히 젖은 꽃덤불 우거진 자그마한 정원, 와, 여기 좋다 하며 들어선 카페는 감탄에 감탄을 자아내기 충분했다.
아기자기 너무 예쁘게 꾸며진 공간 공간들과 곳곳을 가득 채운 '아트콜렉션'들, 쥔장이 공예가신가부다..
들어서자마자 앉을 생각을 못하고 이리저리 구경하기 바쁘게 만들던 곳이었다.
게다가 창 밖의 테라스와 그 너머로 보이는 산등성이, 비만 오지않았더라면 거기 앉아서 차 마시면 참 좋았을 것을..
커피는 또 얼마나 예쁘게 플레이팅해 내오시던지. 조그만 유리그릇 속 달콤한 초콜렛 한 조각까지.
초콜렛과 함께 마시는 커피는 너무 맛있었다.
예쁜 공간과 맛있는 커피와 창 밖 비내리는 풍경.. 거기에 뭘 더하랴.
비내리고 눈 내릴 때 다시 오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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