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물은 인간의 생각과 세상의 물질이 만나 만들어진 결정체로, 많은 자본이 드는 만큼 여러 사람의 의견이 일치할 때만 완성되는 그 사회의 반영이자 단면이다. 그렇기에 건축물을 보면 당대 사람들이 세상을 읽는 관점, 물질을 다루는 기술 수준, 사회 경제 시스템, 인간에 대한 이해, 꿈꾸는 이상향, 생존을 위한 몸부림 등이 보인다. 이 책은 건축가 유현준이 감명받거나 영감을 얻은 30개의 건축물을 소개한다. 이 작품들을 설계한 건축가들은 수백 년 된 전통을 뒤집거나 비트는 혁명적인 생각으로 건축의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 저자는 이 건축물들을 통해 건축 디자인이 무엇인지 배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말하며, “이 건축물들을 통해 독자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또 하나의 시각을 만드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는 말과 함께 건축물들을 소개한다.--
저자가 감명받은 세계 각지의 30개의 건축물 소개.
이미 알고있던 건축가, 건물이지만 새로운 사실과 관점을 주는 글도 있었고, 처음 들어보는 건축가를 소개받기도 했었고, 유현준씨는 건축가의 시각으로 감탄, 감탄을 하지만 내 눈엔 그저 그런 건축도 있었고, 그의 관점에 동의하며 와! 한 건축들도 있었고..
나도 그중 특히 감명깊었던 건축들을 따로 기록해보자.
모두 건축사적으로 너무너무 중요한 작품들이었지만, 난 그냥 내 주관적인 느낌으로.
책에 소개된 순으로 적어보자면..
롱샹 성당-르 꼬르뷔지에-프랑스
'젊어서 파리 시내 중심부의 건물들을 때려부수고 콘크리트 고층 아파트를 지어 새로운 도시를 만들려던 사람이 나이가 들어서는 말라비틀어진 나뭇가지를 줍고, 모래사장의 소라를 주워서 그 모양을 감상하는 사람이 되었다. 그는 말년에 자연이 만들어 낸 형태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었다. 건축가의 감성이 바뀌면 디자인도 바뀐다. 차가운 직육면제의 빌라 사보아를 디자인하던 사람이 말년에는 직선이라고는 찾아보기 힘든 곡면의 롱샹 성당을 디자인했다.-
롱샹성당은 워낙 유명해 여기 저기 소개된 자료들을 전에도 봤었지만, 하얀 두터운 둥치에 커다란 회색지붕을 인 꼭 버섯처럼 생긴 건물에, 특히 인상적이던 건 크고 작게 뚫린 여러 개의 창이었었다. 그 비정형의 배치가 참 독특하면서도 재미있다 싶었었는데, 이번에 새로이 감탄한 건 그 창들이 내뿜는 내부의 빛이었다. 제각각의 모양의 제각각 위치해있는, 간혹 스테인드글라스가 끼워져 있기도 한 그 창들은 하나하나가 마치 미술관 벽에 가득 붙어있는 작품들 같았다. 게다가 천장과 벽 사이에, 벽과 벽 사이에 틈을 두어 그 사이로 빛이 들어오게 한 디자인. 건축물은 외부에서 보이는 형태도 중요하지만, 결국은 그 내부의 공간을 사용하게 되는 거 아닌가. 그의 디자인이 만든 생동감 넘치는 빛의 유희에 감탄.
또 하나의 르 꼬르뷔지에의 작품, 피르미니 성당
고깔모양의 공간에, 천정에 커다란 원형의 창, 그 살짝 아래 옆으로는 약간 도드라진 정사각의 창, 벽과 지붕 사이엔 길고 얇은 누운 직사각의 연이은 창들, 게다가 압권은 벽에 구멍을 뽕뽕 뚫어 그리로 들어오는 빛이 꼭 밤하늘의 별처럼 보이던 것.
그냥 조도를 확보하기 위한 창이 아닌 빛을 그리는 디자인.
-르 꼬르뷔지에는 창문, 경사로, 천창, 색깔, 공간나눔, 바닥의 기울기, 제단 제기의 디테일, 음의 잔향, 공간의 형태 등 등 건축가가 다룰 수 있는 모든 요소를 현란하게 사용하여 사람의 마음을 디자인하는 경지에 이른 공간 교향곡의 작곡가라는 느낌-
브루더 클라우스 필드 채플-페터 촘토어-독일
평평한 넓은 초원에 생뚱맞게 정면은 좁고 옆면은 긴 직육면체의 커다란 매스가 턱 하니 자리잡고있다.
창하나 없이 건물 사방은 모두 막혀있고, 정면 하단에 고깔을 수직으로 자른 모양의 긴 삼각형의 문 하나가 있다. 왜 삼각형의 문일까. 나중에 보니 그 삼각형은 내부 공간의 모양과 연계돼있었다.
이 건물은 브루더 클라우스라는 15세기 스위스의 성인을 기리기 위해 지역 농부들이 2년간 직접 지은 것이란다.
건물이 지어진 방식이 독특했다. 내부에 112개의 통나무를 꼭대기를 모아 기울인 형태, 고깔 모양의 거푸집을 세우고, 외부에 직사각형 거푸집을 세워 그 사이로 콘크리트를 붓는데, 주민들의 수작업으로 짓다보니 한꺼번에 콘크리트를 붓지 못하고 그때 그때 한층을 붓고 다지고 그 위에 또 한 층을 붓는 식이어서 외부의 벽면이 퇴적층의 모양을 띈다. 다 굳힌 후에 내부의 통나무 거푸집을 빼내야 하는데 사방이 막힌 콘크리트 벽이니 나무를 뺄 공간이 없어 통나무를 태운 후 부숴 잔해들을 문으로 빼냈다. 그 덕에 내부는 나무의 탄 재와 기둥 무늬가 그대로 남은 검은 벽이 만들어졌다. 내부의 통나무 거푸집과 외부의 거푸집을 가느다란 파이프를 꽃고 그 사이로 끈을 넣어 묶었는데 나중에 그 파이프 구멍에 유리 구슬을 밖아 작은 창들을 만들었다. 삼각형의 문을 열고 들어가 어둑한 좁은 통로를 지나면 동그랗고 천정이 높은 작은 공간이 나타난다. 이 공간은 여러 사람이 모여 예배를 드리는 공간이 아니라 한 두 사람이 조용히 기도하기 딱 좋은 그런 공간이다.
페터 촘토아라는 처음 들어보는 이름의 건축가는 어떻게 이런 디자인을 생각해냈을까?
어떻게 시골의 농부들이 이 평범치 않은 예배실의 디자인을 허락했을까?
꾸밈없는 공간이 그들의 소박하고 진실한 신앙심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페터 촘토어(이 이름은 나중에 보니 피터 줌터, 혹은 페터 춤토르라고 돼있네.)는 나만 몰랐지 유명한 건축가인 모양이다. 유현준씨의 소개로는 재료의 물성을 잘 이용하고 시공의 정밀도가 높은 완성도 있는 건축을 하는 스위스의 건축가. 책에 그의 다른 작품들, 성 베네딕트 채플(경사면에 원통형의 건물을 세우는데 경사면을 이용하는 게 아니라 수평으로 바닥을 깔아 경사면과 바닥 사이의 삼각형의 공간을 그대로 남겼다. 이유는 땅의 소리를 듣기 위해서라고. 내부는 벽과 바닥 사이에 틈을 둬 밑의 땅과 연결되게 했다.), 발스 스파(알프스 산지의 호텔에 스파건물을 새로 짓는데, 건물을 지상 대신 지하로 넣어 스파의 옥상이 호텔의 정원처럼 보이게 해 알프스의 경관을 그대로 살린 디자인)가 소개됐는데, 하나같이 겉치레없이 소박하면서도, 자연 지형을 단순히 이용하는 게 아니라 이해하고 존중하고 경외하는 마음으로 디자인한 게 느껴지는 좋은 건축들이었다.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프랭크 게리-스페인
말해 무엇하랴, 하지만 책을 보니 그는 처음부터 건축가로 두각을 나타낸 게 아니라 조명 디자인, 조형물 디자인을 하다가 건축에 이르렀다. 빌바오 구겐하임은 물고기를 모티브로 했다고. 왜? 물고기를 좋아하니까. 어릴 적 명절마다 할아버지가 생선요리를 해주셨는데 욕조에 넣어둔 물고기가 움직이는 형태며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비늘에 매료됐었다고. 조명, 조형물도 물고기 모양인데, 종이나 철판을 일일히 잘라 붙여 비늘을 표현했었다. 건축으로 스케일이 어마어마하게 커졌지만 점차 형태가 추상화 되고, 재료와 기법이 첨단화되는 외에 기본 제작방법의 맥락은 동일하다. 그리고 재미난 디자인 방법, 마음에 드는 형태가 나올때까지 종이를 구겨 던져놓고 그 꼭지점들을 스캔해 컴퓨터 상에 모델링한 다음에 그걸 수정해 최종안을 만든다고. 그 데이터를 가지고 철골틀을 설계하고 공장으로 보내면, 이리저리 휘어진 곡면을 잘게 잘게 2차원 평면조각으로 바꿔 정밀하게 조각들을 제작한 후 현장에서 조립하는 방식. 항상 그게 궁금했었다. 디자인, 그림이야 어떤 희안한 형태든 그려낼 수 있지만 그걸 어떻게 실제 건축물로 구현해내나 하는 것. 첨단 기술과 재료들이 없었으면 게리의 디자인은 디자인에 머물고 말았겠다.
시티그룹 센터-휴 스터빈스,에머리 로스 앤 선스-뉴욕
뉴욕 한 복판의 오피스 빌딩. 개발업자가 확보하려는 부지에 오래 된 교회가 있었는데, 이 교회가 이전을 거부했단다. 여기서 재미있는 점은 교회를 회유하거나 억지로 쫓아내지 않고 교회 위의 공중권을 사들여 교회를 보존한 채 그 위로 건물을 지은 것. 필로티 구조처럼 교회 높이만큼 건물을 띄우고 빌딩 아래의 빈 공간을 공공이 모두 사용할 수 있는 휴식 공간으로 만들었다. 이렇게 모두 윈윈할 수 있는 방법론을 생각해 낸 게 대단하다.
소크 생물학 연구소-루이스 칸-미국 샌디에이고
소크 생물학 연구소는 소아마비 백신을 만든 조너스 소크가 설립한 연구소다. 연구소는 태평양을 바라보는 사막의 절벽 끝에 위치해있는데, 두 개의 큰 건축물이 좌우 대칭으로 놓여있고 그 사이에 직사각형 모양의 중정이 있다. 중정은 가운데 좁은 수로가 있고, 나무 한 그루없이 대리석으로 포장돼있다. 사선으로 열 지어 서있는 건물들도 창문 하나없이 벽면만 보여 아무 장식도 없는 극도의 심플함이 마치 어느 미래 도시를 보는 듯 한데, 원래 초기안은 나무가 우거진 숲정원을 조성해서 직원들의 휴식공간을 만드는 거였다고. 그러다 멕시코의 건축가 루이스 바라간을 초청해 건축 현장을 보여줬는데 그의 말이 "중정에서 숲을 없애면 당신은 하늘을 건축 입면으로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와우! 신의 한 수. 루이스 바라간의 대단한 통찰력. 덕분에 누구도 억지로 설계할 수 없는 시시각각 변하는 하늘이라는 아름다운 입면을 갖게 됐다. 바다쪽을 바라보는 방향에선 도열한 콘크리트 벽과 대리석 바닥만의 심플의 극치를 보여주지만, 바다에서 반대쪽으로 보면, 누구든 바다뷰를 가질 수 있게 층층히 칸칸히 배치한 열린 창들이 재잘대는 모습. 이렇게 한 건축물이 바라보는 위치에 따라 완전히 반대되는 풍경을 만드는 경우도 흔치 않을 것 같다. 비록 사진으로만 접하는 거지만 소크 연구소의 명품 하늘 입면은 하루 종일 바라보고 있어도 질리지 않을 것 같다.
빛의 교회-안도 다다오-일본 오사카
벽면을 뚫어 십자가를 만든 아이디어. 예전부터 감탄했었지만, 책을 통해 알게 되는 또 한 가지. 내부에선 뚫린 공간으로 빛이 들어와 하얀 십자가가 만들어지지만, 외부에선 상대적으로 조도가 낮은 실내때문에 검은 십자가가 된다는 것. 그건 미처 생각 못했었다. 그리고 안도 다다오 건축의 시그니처인 진입로가 사실은 일본의 전통 건축기법이라는 것. 미국같이 땅이 넓은 곳에선 공간의 가치보단 시간이 가치를 지녀 최단 시간을 끌어낼 수 있는 직선적인 설계가 많지만, 일본은 좁은 공간에 이리저리 골목을 만들어 시간을 지연시켜 실제보다 공간을 크게 느끼게 유도한다고. 안도 다다오는 일본건축의 전통을 차용하면서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평면의 우회로에 더해 높이의 우회로, 계단을 만들어 오르고 내리게 함으로써 더욱더 공간을 다변화했다.
아주마 하우스-안도 다다오-오사카
-좁고 기다란 대지 위에 두 개의 작은 방이 대지의 양 끝에 위치하고 있고, 그 사이를 외부 계단과 다리가 연결해 주고 있다. 마당은 중정형인데, 황당하게도 방에서 식당이나 다른 방으로 갈 때마다 외부 공간을 거쳐서 가야 한다. 추운 날에는 옷을 껴 입고, 비라도 오는 날이면 우산을 들고 나가야 한다. 이렇게 디자인한 이유는 사람을 자연과 더 만나게 하려는 의도다.-
여기서 감동적인 건, 이런 불편한 설계를 기꺼이 건축주가 동의했다는 것, 그 건축주가 50년 가까이 아직도 거기 살고 있다는 것.
이외에도 철망에 자갈을 넣어 벽을 만든(개비온이라고 한다네) 도미누스 와이너리, 그 자갈틈으로 들어오는 햇빛의 무늬, 혹은 빛을 투과시키는 대리석으로 벽면을 세워 대리석 무늬 현란하던 바이네케 고문서 도서관, 압도적인 규모의 장 누벨의 루브르 아부다비, 카타르 국립 박물관등 등, 모두 인상 깊은 건축들이었다.
거의 5백페이지 가까운 제법 두께가 있는 책이지만, 모두 너무 훌륭한 건축물들인데다, 종횡무진하는 박학다식한 이야기들에, 실제 건축물 사진외에 입면도, 평면도들, 설명하고 있는 세부에 대한 사진들까지 자료들도 꼼꼼히 실려있어 저자가 말하는 내용을 쉽게, 잘 이해할 수 있었고, 내용도 흥미진진했지만 글 자체도 걸림없이 술술 읽혀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도 지루하지않게 재미있게 읽은 책이다. 이렇게 적다보니 한 번 더 읽어보고 싶어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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