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의 집

바다가는길 2006. 2. 2. 00:58


낭만의 집
김지원
작가정신

 

 

'세상이란 감정의 바다, 우리는 그 바다에 던져진 작은 물고기'

 

'인간이 겪는 고통은 근본적으로 커다란 기쁨의 바탕이 되는 것이오, 온갖 번뇌는 곧 빛나는 깨달음의 씨앗.'

 

 

참 이상한 작가다.

스폰지가 물을 빨아들이듯, 자아가 있는 듯 없는 듯, 세상을 있는 그대로 쏙쏙 빨아들이는 것 같은데, 막상 그 자신은 언제나 하얗게, 솜털처럼 보송보송히 남아있다.

어째서 그렇게 소설이 하얗게 느껴지나, 생각해봤더니 소설 속에 나쁜 사람이 하나도 등장하지 않은 것 같다.

악이라는 걸 모르는 순진무구한 어린아이 눈에 비치는 세상처럼 모든 게 사랑과 연민으로 둘러싸여 있다.

 

소설은 낭만아파트라는 데 사는 딸이 다섯인 한 가족의 얘기다.

그녀의 소설이 늘 그렇듯 좀 몽환적인, 꿈 꾸는 듯한 분위기의 각자의 내면에 비치는 세상이야기, 아니면 세상을 겪는 내면 이야기.

그녀의 어투를 따라 조곤조곤 읽어가다 문득 마주치는 뜻밖의 결말.

이 소설의 화자라고 할 수 있는 막내딸이 이유없이 갑자기 죽는다.

그런데 소설은 그녀가 죽기 바로 전 크리스마스 이브로 시간적 끝을 맺는다.

편지의 추신처럼, 부언처럼, 그 이후의 일들을 궁금해 할 독자를 위한 서비스인 것처럼, 그후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은 1월 며칠, 막내 누구는 갑작스런 복통으로 병원에 실려가던 중 사망하고, 실연당했던 세째 누구는 몇 살이 되던 어느 해 어디서 옛 애인과 조우하고, 누구는 어떠어떠하게 되지만, 아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크리스마스 이브, 그들은 모두 따뜻한 불빛 아래 모여 행복해하고 있었다, 이런 식으로 소설이 끝이 난다.

크리스마스 이브에 엄마와 아버지, 출가한 딸들과 사위, 외국에 나가있던 딸까지 귀국하여 온 식구가 모인 즐거운 자리, 그로부터 불과 한 달 뒤 식구 중 하나가 세상을 떠날 지 아무도 모른 채 행복한 그 시간.

그 시간이 행복해보이면 보일수록, 곧 닥칠 미래의 일들에 대한 철저한 무지가 슬퍼진다.

그렇게 아무 것도 아니라는 듯 담담히 소설 속 인물들의 미래를 풀어놓는 작가, 소설은 이미 끝났는데도...

그래, 지금 이 순간, 그에 대해 아무 것도 알 수 없는 미래라는 것이 그렇게 낱낱히 이미 앞에 좍 펼쳐져 있을지도 모른다는 자각이 불현듯 들었었다.

우리 모두는 한 발 앞이 절벽인지도 모르고 깡총대는 어린아이들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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