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륭-평심

바다가는길 2006. 2. 3. 01:32


평심
박상륭 저
문학동네

 

박상륭 소설집.

산문집에서도 보이지 않던 그의 개인사의 일부가 오히려 소설에서 드러나는 듯 하다.

안도현의 시 '바닷가 우체국'을 읽고 새삼, 그렇지, 하고 무릎을 쳤던 일, 길은 땅 끝에서 바다를 만나 끝나는 게 아니라, 세상의 모든 길들이 우체국으로 모였다가 바다를 넘어, 산도 넘어 다시 뻗어나간다는 것 처럼, 씨는 자신의 서점으로 모여드는 개개의 인생을 잘 꾸려두었다가 정리한 다음, 수많은 이들에게 이야기로 그 인생을 전한다.

캐나다 밴쿠버 교외쯤 되는지, 한가로운 마을의 서점을 운영하면서 그 서점을 찾던 손님들의, 평범했을 수도 있고, 평범치 않았을 수도 있는 삶과 죽음을 관찰자가 되어 들여다 본 후 그것을 기록하고 있다.

모두 실재했던 인물들인지, 아니면 그런 삶의 유형, 혹은 죽음의 유형을 그려내기 위해 설정한 가상의 인물들일지 그건 알 수 없지만, 각기 서로 다른 독특한 이야기들.

 

그 중 '로이가 산 한 삶'

로이라는 남자는 삼백 몇 십 파운드의 거구, 비만으로 인한 여러 합병증을 달고 다니며 죽은 아버지의 유산으로 생활하는 어머니와 함께 살며, 나라로부터는 복지연금을 받아, 제 손으로 힘써 일해 돈을 벌어 본 적이 한 번도 없으면서도 집 서가에 삼천권의 책을 들일 수 있을 만큼 모자라지 않은 생활을 한다.

대학도 두 군데나 졸업했으면서도 그 배움을 한 번도 사회를 위해 써 본 적 없고, 사다 읽는 책은 그 내용을 물어도 제대로 설명하지도 못할 만큼, 그저 장식적 취미로서, 자신의 지적 허영을 위해, 그럴듯한 책을 어루만지는 만족감을 위해 사들이는 게 아닐까, 의심가는 그런 사람.

아무 것도 하는 일 없이 책이나 읽으며, 삶이라는 무대 위에 분명 한 구석을 차지하고 등장해 있으되, 그로부터는 아무 사건도 일어나거나 하지 않고, 그로 인해서는 그 무대에 어떤 변화도 만들어지지 않는 무위의 인간, 없는 거나 마찬가지의 삶을 사는 사람.

그러던 그가 별 정치적 신념도 없으면서, 자신도 생각이 있이 사는 사람이라는 걸 증명하고 싶어서였는지 어느 정당에 가입해볼까 하고, 그 당의 전당대회에 참석해 선두에서 깃발을 들고 행진하던 장면이 0.5초간 TV화면에 찍힌 것을, 얼굴이 상기될 정도로 환해져 이 서점 주인에게 자랑하게 되고, 그러다 여러 합병증으로 결국 36살의 나이로 죽고만다.

그래서 서점 주인이 생각하기에는, 그 아무 것도 아니었던 남자, 인간사회 안에, 그 제도의 틀 안에 있었으되, 한 번도 사회의 일원이 되어 역동적으로 살아보지 못한 사람, 이 세상에 물 위에 내려앉는 먼지 만큼의 영향조차 끼치지 못한 사람, 그 사람의 삶을 도대체 뭘로 증거할 수 있겠는가, 하다가 그가 36년을 있었으되, 진정 살았다고 할 수 있는 시간은, 그래도 그가 세상의 한 일원으로 깃발을 들고 TV화면을 스치던 그 0.5초간이 아니었겠나, 하고 결론 짓게 된다.

이 이야기를 읽으며 생각한다. 과연 로이라는 그 사람은 서점주인의 눈에 비친 그 모습이 전부였을까, 하고.

뒤뚱거리는 뚱뚱한 몸으로 이해도 못하는 책이나 마냥 사다 읽는 척하며, 땀 흘려 스스로 동전 한 푼 버는 일 없으면서도 유유자적, 부르죠아처럼 사는 무익한 인간, 그 누구에게도 그 무엇에게도 아무 의미가 없었던 인간, 36년 간 육체를 이 지구 상에 부려놓았으되 0.5초밖에 못 살고 간 인간, 그것 뿐이었을까, 하고.

사회에 아무 기여도 못하는 삶은, 그 일원으로 살지 못하는 삶은 무가치한가.

어떻게 보면 아무 댓가를 치룸없이 누리기만 하는 삶.

하지만 또 어떻게 보면, 이 세상의 삶 치고 댓가를 치루지 않는 것이 하나라도 있나, 싶다.

살아있다는 것, 살아간다는 것 자체가 기본적으로 수고인 것을.

로이라는 그 사람도 이 세상에 태어났어야 할 이유가 있었을 것이고, 또 그렇게 살다, 그렇게 죽었어야 할 까닭이 있겠지.

한 인간의 삶을, 그 당자가 아닌 어떤 다른 사람이 파악하고 이해할 수 있을까.

해설을 보면 로이는 비대해진 현대문명의 상징이라고도 한다.

 

또 '미스 앤더슨'이야기는 닫혀진 육체로부터 영혼을 새처럼 날려보내는 슬픈, 그러나 아름다운 이야기.

영화 블레이드 러너의 마지막, 앤드로이드의 죽음과 함께 새가 날아가던 그 장면이 생각났다.

그리고 '두 집 사이', 늙은 아해의 이야기는 어느 덧 노년에 이르러 가는 작가 자신의 이야기인듯 묘사가 더욱 더 섬세하고 절절하기가 그지없다.

 

그의 글들은, 문장은 씹으면 씹을수록 자꾸 단물이 나오고, 글은 읽으면 읽을수록 하염없이 생각에 잠기게 된다.

마음에 드는 구절을 찾아 책갈피를 접다 접다 포기하고, 아예 다시 읽기로 한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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