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노수 그림의 인상은 맑음, 깨끗함, 청신, 고고, 고적, 침묵, 고요, 초연....
스스로의 내면으로 깊게 침잠하는 그림들.
배를 탄 소년은 낚시대를 들고있거나 뱃전에 걸쳐두고있지만 물고기를 잡을 생각은 없어보인다.다만 물결에 실려 강이 흘러가는 저 먼 곳을 바랄 뿐.
어쩐지 섬약해보이는 그림 속 다른 인물들도 대부분 저 편, 어디 먼 데를 보고있거나 가고있다.
그 인물들의 시선을 따라 화면 속으로 무한한 공간이 펼쳐진다.
눈에 보이는 건 소나무 몇 그루 잘 자란 언덕 위, 바위에 앉아 책을 읽거나 피리를 부는 소년, 산등성이 겹쳐진 높은 산마루를 말타고 넘어가는 사람, 매화 흐드러진 나무 아래 뒷짐을 지고 서서 먼데를 보는 선비들이지만 그들의 눈 앞으로 그들의 시선이 이어져있을 너른 공간이 화면 밖에서도 느껴져 크게 심호흡을 할 만하다.
화가에게 그림을 참 잘 그린다고 말한다면 실례겠지만, 묘사력, 소묘력이 뛰어나다.
과감한 생략으로 여백을 남기면서도, 한 없이 섬세하게, 선비의 두루마기 끈의 술 한 올조차 놓치지않는 솜씨.
구성도 아름답고, 색도 아름답고...
화려하게 채색이 돼있어도 어쩐지 담담한 그림들에 마음이 맑아진다.
팜플렛에 실린 이경성, 오광수씨의 그림평.
'그의 작품의 요체는 채색과 선조가 이루는 독특한 조형적 내면이다. 그것은 동시에 형식이자 내용... 서릿발 같은 선의 날카로움과 짙은 채색의 구성은 타협 없는 그의 조형의 졀대성과 더불어 풍부한 정감을 유감없이 피력....선과 채색이 따로 가는 것이 아니라 일체화됐을 때 그의 작품은 비로서 완성된다. 선은 골격이요, 채색은 살결...단아하고 고격한 품성이 날카로운 선획과 그윽한 채감에 묻어남...속세를 떠난 은자의 회한 없는 삶의 향기가 투명한 색채를 통해 은은하게 반향..세속을 멀리하는 선비의 청아한 기운...대상과 여백의 탄력있는 대비...북화적 색채감이 주는 장식성과 남화적 운필이 주는 시적 여운...관조적인 여유로움...'
바로 그대로.
이번 전시회는 그의 작품기증 기념전.
전시 디스플레이가 참 잘 됐다.
전시장 입구 전면에 높게, 크게 자리잡은 하얀 벽에 그려진 배 하나.
넓고 흰 여백이 그의 작품들의 이미지를 한 눈에 보여주는 것 같다.
전시장으로 들어서면 중앙에 자리잡은 커다란 스크린에서 아름다운 음악과 함께 그림을 모티브로 만든 에니메이션 동영상이 펼쳐지고, 온통 검은 벽에 걸려 더욱 선명해보이는 그림들은 유리같은 바닥에 다시 얼비쳐 환상적인 분위기를 만들었다.
오랜만에 본 포만감 드는 전시.
2월19일까지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전시장 풍경
취적
한여
유록
정호
소년
행여
소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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