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맞이 꽃에 대한 명상

바다가는길 2006. 2. 20. 18:43


달맞이꽃 명상
최승호 저
아침바다

'누에- 누에는 隱修者같다. 자승자박의 흰 동굴로 들어가 문을 닫고 조용히 몸을 감춘다.

혼자 웅크린 번데기의 시간에 존재의 변모는 시작된다. 세포들이 다시 배열되고 없었던 날개가 창조된다.

이 신비로운 변모가 꿈의 힘 없이 가능했을까.

어느 날 흰 동굴이 열리면서 해맑은 아침의 얼굴이 나온다.

괴저처럼 고통스러웠던 연금술의 긴 밤을 지나, 비로서 하늘백성의 날개짓이 시작된다.

밖에서 구멍을 뚫어주는 누에의 왕은 없다.

누에들은 언제나 자신들이 벽을 뚫어야 하며, 안 쪽에서 뚫어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꿀- 이 황갈색의 꿀은 낮놀이 하던 꿀벌들의 뱃 속에 들어있었다.

1cc의 꿀을 모으기 위해 한 마리의 꿀벌은 대체 몇 송이의 꽃들을 옮겨 다녀야 하는 것일까.

이 황갈색의 꿀은 벌떼들을 인연으로 모인 끈적한 物이자, 꽃들의 화엄으로 빚어진 妙香, 또는 산의 즙이다.

따사로운 햇볕과 청명한 바람과 골짜기를 흘러내리는 맑은 물이 꿀샘의 질료가 되어주었다.

그리고 꿀벌들의 성실함과 검약이 이 귀한 저장물로서의 황갈색 꿀을 벌통에 남게하였다.

꿀에서 피어오르는 緣起론의 향기, 텅 비었던 벌통에 들어차는 꿀을 들여다보면, 그 수 만 송이의 꽃들을 넘나들며 꿀을 나르는 벌들이 있고, 꽃과 벌의 아름다운 相生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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