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베를린 천사의 시

바다가는길 2006. 2. 25. 21:22

 

'아이가 아이였을 때 팔을 휘저으며 다녔다. 시냇물은 강이 되고 강은 바다가 된다고 생각했다.

아이가 아이였을 때 자신이 아이란 걸 모르고 완벽한 인생을 살고 있다고 생각했다.

아이가 아이였을 때 세상에 대한 주관도 습관도 없었다. 책상다리를 하기도 하고, 뛰어다니기도 하고, 머리가 엉망이었고, 사진 찍을 때도 억지 표정을 짓지않았다.

아이가 아이였을 때 질문의 연속이었다. 왜 나는 나고 네가 아닐까, 왜 난 여기에 있고 저기엔 없을까, 시간은 언제 시작됐고, 우주의 끝은 어딜까, 이 세상에서 사는 것은 꿈이 아닐까, 악이 존재하나? 정말 나쁜 사람이 있을까? 내가 내가 되기 전에는 대체 무엇이었을까? 언젠가는 나란 존재는 더이상 내가 아닐까?

아이가 아이였을 때, 사과와 빵만 먹고도 충분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아이가 아이였을 때 딸기만 손에 꼭 쥐었다. 지금도 그렇다.

덜 익은 호두를 먹으면 떫었는데 지금도 그렇다.

산에 오를 땐 더 높은 산을 동경했고, 도시에 갈 땐 더 큰 도시를 꿈꾸었는데, 지금도 그렇다.

버찌를 따러 높은  나무에 오르면 기분이 좋았는데 지금도 그렇다.

어릴 땐 낯을 가렸는데 지금도 그렇다.

항상 첫 눈을 기다렸는데 지금도 그렇다.

아이가 아이였을 때 막대기를 창날 삼아 나무에 던졌는데 창은 아직 거기에 꽂혀있다네.'

 

아름다운 이야기.

역사 이전부터 세상에 존재해 사람들의 삶을 지켜봐왔던 천사가 천사도 알지 못하는 새로운 날개를 얻기 위해 지상으로 하강하여 사람이 된 후 천사도 알지 못하는 한 가지, 사랑을 찾는 이야기.

육체를 지닌 존재들은 그 껍질이 무거워 질질 끌고다니며 정신만으로 자유로울 것을 꿈꾸는데, 정신만을 지닌 존재들은 그 육체의 무게를 동경하여 육체를 입고 온갖 고통과 기쁨을 느껴보고 싶어지는 걸까.

인간이 이 세상에 존재하기 시작했을 때부터 인간을 지켜봐 온 천사가 있다면 그 수많은 세월 동안의, 인간이 저지르는 모든 시행착오들을 보고서도 인간이 되기를 꿈꾸게 될까.

대단한 낙관주의.

세상을 폐허화하는 전쟁과 개인들의 일상 속의 슬픔, 아픔, 미움, 절망, 허무들을 다 보여주면서도,그래도 인간이기에, 인간만이 누릴 수 있는 희망과 사랑이 있기에 천사조차도 인간이 되기를 꿈꾸리라는 작가의 생각.

 

 

 

 

 

 

 

 

베를린 천사의 시 Wings of Desire (1987)

 
감독: 빔 벤더스
시나리오: 빔 벤더스, 페터 한트케
촬영: 앙리 알르캉
출연: 브루노 간츠, 솔베이그 도마틴, 오토 산더
흑백&칼라 / 12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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