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젖은 눈 장석남 | 솔 |
그믐
나를 만나면 자주젖은 눈이 되곤 하던네 새벽녘 댓돌 앞에
밤새 마당을 굴리고 있는가랑잎 소리로써머물러 보다가말갛게 사라지는그믐달처럼
인연
어디서 봤더라어디서 봤더라오 그래,네 젖은 눈 속 저 멀리언덕도 넘어서달빛들이조심 조심 하관하듯 손아귀를 풀어내려놓은그 길가에서오 그래, 거기에서
파꽃이 피듯파꽃이 피듯.
무인도를 지나며
사랑의 최종점,사랑의 열락, 꽃봉이, 타오름, 에사람이 살지 않듯아무도 없으나그러나 저사랑의 아슬아슬한 자세!
이 세상 모든그리움이 새파란물이 되어옹립하는
사랑의 변주
초생달에서
어스름 막 지난 때노란 불을 하나 켜서 맞는마지막 저물어가는 하늘빛 속으로오너라아픈 사람의 이마를 짚는 손길처럼떡살에 머무는 흰 빛처럼
오늘 하루마음에 가장 오래 머문 일,남몰래, 시들어 떨어지는 분꽃들눈여겨 바라봐야 했던 일말갛게 삭히러
허공을 파낸 이 풀씨만한 석굴로분꽃이 지듯,오너라분꽃이 지듯.
가까이 와
초여름 이슬비는이쯤 가까이 와감꽃 떨어지는 감나무 그림자도이쯤 가까이 와가끔씩 어깨 부딪치며 천천히 걷는 연인들바라보면 서로가 간절히가까이 와손 붙잡지 못해도손이 손 뒤에 다가가다 멈추긴 해도그 사이가안 보이는 꽃이니, 드넓은 바다이니휘어진 해변의 파도 소리파도 소리뉘우칠 일 있을 때 있더라도새 연애는꽃 진 자리에 초록이 밀리듯이 서로가까이 좀 와아무도 모르게초여름 늦게 오는 저녁도저녁 어둠이 훤하긴 하더라도그 속에서 서로이쯤 가까이 와
자화상
무쇠같은 꿈을 단념시킬 수는 없어서구멍 난 속옷 하나 밖에 없는 커다란 여행가방처럼종자로 쓸 녹두 자루 하나 밖에 아무 것도 없는 뒤주처럼그믐 달빛만 잠깐 가슴에 걸렸다 빠져나가는 동그란 문고리처럼나는 공허한 장식을 안팍으로 빛내고 있을 수 밖에 없었다사람들이 모두 외롭다는 것은 알았어도밥을 먹고, 걸음을 걷고, 산을 보곤 하는 것이 모두 외롭다는 것은 알았어도저 빈 잔디밭을 굴러가는 비닐 봉지같이비닐 봉지를 밀고 사는 바람같이 외로운 줄은 알았어도다시 외로운,새로 모종한 들깨처럼 풀없이 흔들리는외로운 삶은하수야 새털구름아 어디만큼 가느냐배거번드처럼 함께 흐르고 싶다만돌린처럼 외로운 삶고드름처럼 외로운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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