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새는 그 내부가
투명한 빛으로 가득 차 있다
마치 물거품처럼, 부서짐으로써 스스로의
나타남을 증거하는
새는
한없이 깊고
고요한,
지저귐이 샘솟는 연못과 같다.
그 저녁 나라로
물거품 속에서 태어나
빛과 바람과 사귀며 나는 조금씩
떠오르기 시작했다 푸른 잎사귀 따라
춤추며 서늘한 그늘 속에 스며들었다
풀려나오며 내 투명한 손은 지금 막
피어나는 꽃봉오릴 붙잡는다
내 입맞춤에 떠는 물결 위로
달빛이 흐르고 그 위로 내 가벼운
옷자락도 떠 흐른다 아무도 찾지 않는데
나는 아름답고 내 아름다움으로
풀밭은 푸르게 물든다
새들의 둥지마다 찰랑거리는
별빛 유리 같은 잎사귀들 은밀히
아주 은밀히 물 위에 드리워진 나무그림자를
밟고서 나는 거닌다
작은 새 한 마리 날아와
내 어깨 위에 앉아 지저귀는
이 저녁
나는 부르리라
나와 더불어 춤출 이를
네 방향에서 불어오는 바람의 중심에 서면 은하 저편
별들이 돌리는 풍차에서 내게로
날아오는 반딧불의 행렬
나에겐 거울이 필요없다
내 손이 스치는 자리마다 피어나는
꽃잎에 둘러싸여 영원히 넘실거릴 뿐
이제 나는 사라진다
어디선가 들려오는 피리소리를 찾아
지상엔 내 눈물로 반짝이는
이슬방울만 남기고.
나는 너를 종달새라 부른다
오 아름다운 나의 날개여
나는 너를 종달새라 부른다 그러면 너는
두 날개에 하늘을 가득 싣고 날아오른다
점점 높아지는 하늘 짙어지는 푸르름
소나무숲은 내게 솔방울을 주었다 솔방울을
주우며 나는 산길을 오른다 새벽은 눈부신 손님
말 탄 기사처럼 지평선을 넘어 힘차게 달려오고
너는 아직 봄의 정상 가장 높은 가지 위에 앉아
하늘을 바라본다 오 아름다운 나의 날개여
날아올라라 내가 잃어버린 날개를 대신 달고
화살보다 더 빨리 이 땅을 벗어나 메아리
울려퍼지는 환한 햇살을 지상 가득히 뿌려다오.
깊은 숲 오솔길을 지나 2
뿔을 감춘 달팽이 뒤를 따라가면
조용히 열리는 오솔길
달은 둥근 이슬을 한 방울내 이마에 떨어뜨린다
졸고 있는 언덕의 눈썹 사이로
양떼를 가득 실은 구름이 지나가는 저녁
조심스레 벌어지는
꽃봉오리 속에서 은빛 가루를
날리며 타 죽는 나방이들
잎사귀는 바람이 외우는 주문 따라
사방으로 흩어진다
모래톱
완만히 구부러진
초생달의 허리를 따라 강물이 흘러간다
소라와 조가비의 어두운 입 속에서 흘러나오는
파르스름한 빛, 바다는 솔 숲 사이로 차가운 숨결을
불어넣는다 멀리 조약돌에 씻겨나가는
파도소리를 들으며 나는 여기 앉아 있다
모래톱을 적시는 물거품의 머리칼
누군가 초생달 옆에 작은 별로
마침표를 찍는다
깊은 곳에 그물을
깊은 곳에 그물을 드리우라
진흙과 녹슨 쇠붙이와 물고기의 뼈
그리고 여인의 시신이 그대 그물 속에서 기어나오리라
깊은 곳에 그물을 드리우라
울음 우는 아기는 긴 밤 더욱 어둡게 하느니
앙상한 겨울 나무 굳게 못질한 폐가를 지나
이 밤 죄수들은 사슬에 묶여 변방으로 머나먼
사막으로 끌려가고
깊은 곳에 그물을 드리우라
성호를 그으며 떨어지는 별똥별 하나
......깊은 곳에 드리운 그물은 너무 무거워
다신 거두어들일 수 없다.
저문 빛
저문 빛
물 위에 어리는 저문 빛
고요한 숲속 메아리는 지저귀고 내 꿈의 모이는 잎사귀에 내려앉는 햇살만큼 반짝이고 그러나 나는 안다 아무도 건드리지 않은 이슬을 깨고
어느 날 한 마리 새가 태어날 것임을
혹은 그대 곁에 서서 나는 유리창 너머 펼쳐진 여름을 바라본다
들판은 하루 종일 둥글게 익어 이젠 누군가의 손길이 스쳐 지나가길 바라고 있다
구름이 자나간다 지나가며 내눈을 감긴다
빛이 서서히 사그라든다 하루의 재가 어스름의 켜마다 쌓여간다
물가를 거닐며 이야기하던 것들 아득한 옛날 옆집 풍금소리 따라 흘러들던 라일락 향기 그리고 꿀벌의 잉잉거림
이 모든 것을 지금 나는 그대에게 줄 수 없다 잎사귀가 떨어져
그대 얼굴을 가리고 나는 몇 번이나 입맞추며 사랑을 속삭이지만
저문 빛 물 위에 어린 저문 빛이 지워져가듯
나는 또 내일 기억해야 할 많은 것들이 있다
하늘에 하나씩 둘씩 자신의 깃을 적시던 새들이 돌아온다
풀밭이 점점 넓어져 간다 자전거를 탄 아이가 숲 속으로 사라진다 유리창 너머 풍경이 몽롱하게 풀어져
어스름 속으로 몸을 감추는 지금 나는 어쩌면 잠들었는지도 모른다
누가 나를 흔들어 깨우는지 어쩌면 깊고 먼 목소리가 나를 불렀는지
저무는 숲에 내리는 저문 빛 저문 빛 속으로
이제 막 떠나는 저 사람은 누구인지 메아리마저 잠든 고요한 숲 속
아무도 건드리지 않은 이슬을 깨고 지금 막 지금 마악.
환한 밤에서 어두운 낮으로
해와 달이 만나
둥근 빛무리를 만든다면 나는
환한 밤에서 어두운 낮으로 걸어갈 것이다
자욱한 모래바람 속 몇 번의 천둥이 지나가고
나는 내 뼈를 휘어 활을 만드는 바람의 거친
숨소리를 보았다 몰아쉬고 내쉬는 잎새들의 연한
몸부림을 들었다 자꾸 풀잎들은 눕고
태어나지 않은 새들이 안개를 거슬러 날고 있는 밤에서
내 머리카락 덤불 속에 둥지를 트는 낮까지
여름이 오고 겨울이 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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